리빙

내 스타일의 완성, 나만의 공간

2017.01.11

by VOGUE

    내 스타일의 완성, 나만의 공간

    옷으로만 스타일을 논하던 시대는 이제 그만!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든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든,
    내 취향대로 편안하게 꾸민 나만의 공간은 총체적이고 궁극적인 ‘내 스타일’의 완성이다.

    “기자가 되고 난 후부터 출장 다닐 때마다 작은 조명이나 그릇, 컵 사 모으는 걸 좋아했어요.” 패션 기자 출신의 스타일리스트 원세영은 얼마 전에도 굵은 회색 뜨개실로 짠 네덜란드산 빈 백 체어(Bean Bag Chair)와 컬러풀한 아카풀코 체어(Acapulco Chair)를 샀다. 늦여름에 쏟아진 장마처럼 패션계에 불어닥친 홈 리빙 유행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일하면 할수록 옷이 단순히 그 사람의 꾸밈새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전반과도 연결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이 복합적으로 패션의 범주에 포함되는 시대가 도래한 거죠.” 몸에 걸친 옷이나 구두, 가방 외에 그 사람의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그의 스타일을 보여준다는 것. “요즘은 흔한 풍경이지만 밀라노에서 10 꼬르소 꼬모에 처음 들렀을 때 그 충격이란! 패션, 리빙, 음악, 책, 레스토랑이 전부 한 공간에 모여 있었으니까요. 그곳에서 모든 걸 한 번에 즐기는 사람들 역시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죠(의식적인 패피가 아니라).”

    아르마니와 펜디 까사, 미쏘니, 에트로, 블루마린 홈 컬렉션의 시대를 지나 셀렉트 숍에서 디자이너 의류와 인테리어 소품을 나란히 판매하는 게 요즘이다. 또한 최신 유행의 프린트 옷을 찍어내는 것과 똑같은 속도로 색색의 침대 커버를 찍어내는 SPA 브랜드의 홈 라인이 인기. 같은 값이면 대형마트에 겹겹이 쌓인 지리멸렬한 플라스틱 수납함 대신, 잔망스럽고 앙증맞은 소품 박스들을 살 수 있는 아기자기한 라이프스타일 매장이 빛의 속도로 번화가에 입성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매장이 늘어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나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증가에 있다. 그러나 인테리어 매거진 <메종>의 인테리어 디렉터 박명주는 한때 옷차림으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던 이들이 이제 ‘나는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사람이야’ 라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녀는 리빙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의 인테리어 취향을 다음과 같이 나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층들은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즉 작가들이 만든 리빙 제품을 선호합니다. 일종의 투자 개념이죠. 그 외에는 전반적으로 여전히 북유럽이 대세고요. 색다르고 잡다한 것들을 믹스매치하는 맥시멀리즘 혹은 아날로그 아이템만 고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이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미 생활(예를 들어 피규어 수집 같은)이 색다른 인테리어 장식이 되는 경우도 많죠.” 그녀는 인테리어에 관심 많은 요즘 젊은이들은 시간을 두고 마음에 드는 제품을 하나씩 사 모으기도 하지만, 동시에 “SPA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제품을 다양하게 시도하는 선택적 경향도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는 저렴한 홈 리빙 브랜드 중 전문가는 무엇을 추천할까? “얼마 전 론칭 행사를 가진 H&M 홈 제품을 권하겠어요.” H&M 홈은 프린트와 디자인의 다양성, 품질 대비 저렴한 가격대로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롯데잠실몰(C2)에 곧 매장을 열 H&M홈과 올해 안에 론칭 계획인 자라 홈은 무인양품과 이케아 같은 전문 라이프스타일 SPA 브랜드와 달리 패션 SPA 브랜드의 홈 라인이라는 게 특징이다. 이 새로운 종족이 지향하는 바는 ‘집을 위한 패션’. 의류와 동일한 속도로 유행을 빠르게 흡수하고 소비할 뿐 아니라 패션에서 유행하는 테마를 디자인에 그대로 적용하기도 한다.

    H&M 홈의 헤드 디자이너 에벨리나 크라베브 소더버그(Evelina Kravaev Söderberg)는 “사람들은 집을 자신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기분이나 상황에 맞춰 인테리어를 바꾸고 싶어 한다”고 전한다. “H&M 홈은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집을 포근한 분위기로 만들거나 테이블을 장식하고, 취향에 맞게 침대를 꾸미는 등 집에 스타일을 더할 수 있죠.” 이런 특징은 묵직하고 가격대가 높은 가구류가 없는 대신, 침대와 쿠션 커버 등 손쉽게 교체할 수 있는 패브릭과 인테리어 소품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데서 드러난다. 홈 컬렉션 전체에서 텍스타일 비율이 60%인 자라 홈의 경우 한 시즌 안에서도 서로 다른 여러 분위기를 아우른다. 이번 가을 겨울 컬렉션은 식물과 꽃 그림의 ‘허베어리엄’, 앤티크풍의 ‘뉴 빈티지’, 동양 직물 문양을 응용한 ‘어번 우즈벡’ 등 취향대로 고를 수 있다.

    보다 편안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선호한다면 라이프스타일 SPA계의 유니클로 격인 니코 앤드자주가 있다. 니코 앤드의 매장에는 전형적인 일본 취향의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싶은 4차원적 아이템들(동전 두세 개가 들어가는 노란 버스 모양의 작은 도자기 상자, 끈에 엮인 인도산 종, 데코 테이프 등)이 한가득이다 보니, 귀엽고 예쁜 걸 좋아하는 여고생들로 매장은 늘 북적거린다. 이쯤에서 순수 국내 브랜드의 등장은 당연한 수순. 이마트의 자연주의를 리뉴얼한 자주는 강물에 사는 돌고기, 길바닥의 민들레, 토종 동물 등 친근하고 한국적인 주제를 프린트에 응용하거나, 전통 생활 도자기를 닮은 식기류로 대중에게 편안하게 접근하고 있다.

    스타일리스트 원세영은 생활에 꼭 필요한 제품을 가격 부담 없이 깔끔한 디자인으로 살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패션계에서 일하다 보면 늘 예쁘고 좋은 것만 보게 되죠. 그럴 기회가 많지 않은 사람들이 대형마트에서 손쉽게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살 수 있다는 건 긍정적인 현상이에요.” 비슷하게 대중적인 브랜드로는, 국내에서 의류 라인만 취급하던 막스&스펜서가 지난 봄 여름 시즌부터 방향제를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11월부터는 식음료와 리빙 제품도 순차적으로 들여올 예정. 미국의 크레이트&배럴이 곧 론칭할 거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한편 셀렉트 숍들은 기존의 구색 맞추기 식이었던 리빙 제품군을 보강하면서, ‘엄선되고 색깔 있는’ 컬렉션 구성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패션을 충분히 즐겼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라이프스타일로 관심사를 확장하고 있는 추세죠.” 9월 초에 이전 오픈한 쿤 플래그십 스토어 지하 1층에는 북유럽 디자인 가구를 취급하는 이노메싸가 숍인숍 형태로 입점했다. 이노메싸의 북유럽 가구 외에도 소위 강남 냉장고라 불리는 스메그 냉장고, 풋루즈 자전거도 함께 전시 판매 중이다.

    “여러 브랜드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예술적 성향이 강한 브랜드들도 눈에 띄었죠. 하지만 폭넓은 가격대(에시의 3만원대 와이피 티슈 박스부터 1,000만원대 프리츠 한센 라운지 체어까지)로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실리주의 제품이라는 점이 쿤과 어울린다고 판단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리빙 제품은 매일 사용하면서 즐길 수 있어야 하니까요.” 쿤의 바이어 장익준은 자신도 다양한 종류의 컵을 수집한다고 덧붙이며, 옷장에 각기 다른 옷들이 모여서 하나의 스타일을 완성하듯이 리빙 제품도 하나씩 사 모으는 재미를 가져보라고 권한다. “옷을 사는 과정은 꽤 번거롭지만, 리빙 제품은 지나가다 눈에 들면 쉽게 살 수 있다는 게 장점이거든요. 모으고 꾸미는 나름의 소소한 즐거움이 있답니다.”

    몇 달 전 문을 연 플랫폼 플레이스(이하 PP) 한남점은 도산공원이나 홍대점보다 라이프 스타일 제품 구성 비율이 높다. 점판암으로 만든 저스트 슬레이트의 투박한 쟁반, 1895년 탄생한 톤 체어, 일본 전통 철기 이와추 냄비, 100년 된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스탠리 보온병 등등. “스트리트웨어가 인기를 끈 것도 라이프스타일의 중요성을 높이는 데 한 몫했죠.” PP 홍보팀 이윤정은 옷의 디자인보다 문화, 가치관, 생활 방식에 중점을 두는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유행이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가 떠오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PP에서 판매하는 새터데이 서프는 서프 문화에 기반한 뉴욕 브랜드입니다. 이들은 예술, 음악, 커피 등 삶을 향유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취향을 공유하죠. 패션 아이템과 서프보드 외에도 책, DVD, 예술 작품, 그루밍 제품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을 함께 판매하는데, 이것들을 보면 누구나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고 싶어지죠.” 4D 상영관에서 의자가 흔들리고, 냄새가 나고, 물이 튀기듯 ‘이 옷을 입었을 때 이런 향을 풍기고, 이런 음악을 듣고, 이런 펜을 쓰고 싶어’라는 취향의 완전체를 추구하게 된다는 것.

    더불어 하이엔드 브랜드 홈 라인의 양상 또한 과거와 달라지는 추세다. 양털 부츠의 대명사 어그는 이번 시즌부터 양털 쿠션, 러그, 스툴을 포함한 어그 홈 라인을 론칭한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천송이 효과의 수혜로 재고까지 깔끔하게 팔아 치운 어그의 실내용 양털 슬리퍼의 경우 해외에선 스테디셀러 아이템이다. 어그 홈은 지속적으로 리빙 제품의 종류와 가짓수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요즘은 너나할 것 없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어필하고 싶어합니다.” 어그와 로에베를 담당하는 신세계 인터내셔널 관계자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는 개념이 패션을 넘어선, 보다 고급스럽고 확장된 브랜드 이미지를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13번 오브제 라인이 독특한 브랜드 컨셉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면, 에르메스 가구와 로에베의 리빙 제품들은 옷이나 가방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브랜드의 고급스러움을 과시하기에 좋다. 9월 30일 리노베이션 오픈하는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3층 전체는 맞춤형 가구와 조명, 주문 맞춤장 등 에르메스의 홈 컬렉션으로 채워지게 된다. J.W. 앤더슨의 첫 로에베 컬렉션 또한 최고급 소재로 만든 여행용 트렁크, 의자, 담요, 가죽 쿠션 등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이런 고가의 리빙 제품들은 옛날부터 존재해왔다. 차이점이라면, 과거엔 앉거나 건드리지 못하는 전시물 정도로 생각했지만 요즘 사람들은 가격이 비싸도 기꺼이 투자하며, 실생활에서 직접 사용한다는 것. 로에베 컬렉션에서 악어가죽 케이스에 든 빗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로에베 홍보 담당자는 해외 출장에서 돌아올 땐 자신의 가방에 리빙 제품들이 한가득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집 구조를 뜯어고치는 게 사실상 어렵죠. 그래서 내부를 장식하고 꾸미는 데 관심이 커지게 된 것 아닐까요? ‘내 집은 아니지만 그 집에서 보내는 시간만은 내 것’이라는 생각. 요즘은 다들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니까요.”

    우리의 삶을 진짜 장밋빛으로 물들이는 건 나만의 장소를 안락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 자신을 위해 꾸민 공간. 내 취향이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다면, 그거야말로 ‘내 취향의 완성’ 아닌가.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송보라
      사진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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