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아이템

유쾌하고 젊어진 가방 이야기

2016.03.17

by VOGUE

    유쾌하고 젊어진 가방 이야기

    예술혼이 담긴 드로잉, 손맛 가득한 핸드 페인팅, 당대 슬로건이나 철학을 내세운 레터링…
    활자와 낙서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유쾌하고 젊어진 가방 이야기.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패러디한 레터링백은 델보(Delvaux), ‛Forever No?’가 자수 장식된 빅 클러치는 겐조(Kenzo), 미니 플라스틱 레터링 클러치는 퍼스트 루머(1st Rumor), 팝아트 느낌의 레터링 모피백은 샤넬(Chanel), 손글씨가 멋스러운 토트백은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뉴욕의 20년대 슬랭인 ‘Cash or Check’를 손글씨로 써넣은 보스턴백은 퍼스트 루머.

    콧대가 하늘을 치솟았던 하이패션이 길거리 문화에 점령당한 요즘, 큼지막한 로고 장식과 팝아트적인 터치는 패션의 속성에 충실하려는 그들의 특급 비법이다. 젊고 더 젊어지기 위해! 특히 가방 판매율이 시즌 성과를 좌우하는 초대형 패션 하우스들은 ‘잇 백’의 전성시대를 잊지 못하며 저마다 가방의 화려한 부활에 공들이고 있다. 그들의 고고한 전통과 역사에 동시대적인 젊음을 주입하는 데 있어 ‘아트’만한 비법도 없다. 예술적 손길을 더한 성공적 사례는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100여 년간 가문의 문양을 대변한 루이 비통 모노그램 캔버스에 스테판 스프라우스는 생동감 넘치는 그래피티 터치로 ‘잇 백’ 시대를 열었었다.

    가방 전성시대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다들 스테판 스프라우스의 혁신적 시도를 다시 떠올린 걸까? 이번 시즌 패션 디자이너들이 주목한 것 역시 손맛 나는 레터링과 의미심장한 문구, 그리고 예술적인 드로잉이다. 심지어 다운타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런 터치는 버버리의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푹 빠져 있다. “20세기 초 런던 문화와 예술을 이끈 ‘블룸즈버리’와 ‘찰스턴’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그는 의상 곳곳에 물감으로 흔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큼직한 토트백을 캔버스 삼아 핸드 페인팅으로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펼쳤다. 디올의 라프 시몬스 역시 이번 크루즈 컬렉션을 위해 클래식한 레이디 디올 백에 붓 터치가 강렬한 핸드 페인팅 기법을 접목했다. “전설적인 일러스트레이터로 불리는 르네 그루 작품을 그대로 프린트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진짜 페인트가 묻은 듯 하죠. 좀더 과감한 아이템을 선호하는 고객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예술가들의 드로잉 기법이 분방한 이미지라면, 문구를 새겨 넣은 레터링백은 좀더 강렬하다. 벨기에 가방 브랜드 델보(Delvaux)에는 프랑스어로 ‘이건 델보 백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넣었다. 클래식한 토트백 형태에 팝아트적 발상을 가미한 레터링을 보며 미소 짓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매 시즌 겐조라는 브랜드에 젊음의 묘약을 듬뿍 쏟아 붓는 움베르토 레온과 캐롤 림은 뉴 백을 위해 슬로건처럼 보이는 레터링 디테일을 응용했다. ‘Forever, No?’ ‘Fire’ 같은 단어를 담은 컬러풀한 클러치가 그것. 레온과 림은 하이패션에 레터링을 접목하기 위한 수단으로 섬세한 자수 장식을 사용해 완성도를 높였다.

    그런가 하면 몇몇 디자이너들은 직접 붓을 들었다. 모델 겸 가방 디자이너 송경아는 자신의 백 브랜드 ‘퍼스트 루머(1st Rumor)’의 슬로건 백을 완성하기 위해 평소 그림 실력을 발휘했다. “프린트와 달리 직접 쓴 손글씨는 감동을 주잖아요. 브랜드 컨셉이 20년대를 오마주한 레트로이기에 미국에서 실제로 쓰였던 20년대 슬랭을 넣었어요. 시작은 ‘Hot Dawg’라고 쓴 가방이었어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Cash or Check’ ‘Please’ ‘doo’ ‘Something’ 등을 비롯해 넘버링으로 이어지는 가방 시리즈를 완성했습니다.” 이런 알쏭달쏭한 문구에 의미부여할 필요는 없다. 팝아트 작품처럼 재미 있게 예술적 감각을 느끼면 된다. 페인트 질감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는 ‘바이뵤(Bybyo)’의 쇼퍼백은 이탈리아 장인들이 직접 핸드 페인팅한 가죽을 사용했다. “안료를 사용해 페인팅한 후 코팅했기에 물에 젖어도 지워지지 않습니다”라고 디자이너 김민수는 전한다.

    이런 삐뚤삐뚤한 글씨나 붓 터치 하나만으로도 생동감 넘치는 드로잉백은 섬유공예나 미대 출신이 아니더라도 직접 도전해 볼 수 있다. “오래 써서 질린 가방을 이용해 보세요”라고 가방 디자이너로 거듭난 송경아가 조언한다. “가죽 전용 염료를 이용해 직접 손으로 그리다 보면 생각보다 재미 있어요. 멋진 문구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그저 재미 있는 미술놀이쯤으로 여기세요. 심지어 스트레스까지 확 풀리는 게 느껴질 겁니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김미진
      포토그래퍼
      HWANG IN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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