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체앤가바나: 이중시선
런던의 패션명문 센트럴 세인트 마틴즈에서 돌체&가바나의 이야기를 듣다!
패션계의 다이내믹 듀오는 80년대 초 처음 만났다. 고향 시칠리를 떠나 처음으로 밀라노에 온 도메니코 돌체는 스테파노 가바나를 만날 당시 자기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전 머리 뒤로 포니테일을 드리운 신부님같이 옷을 입었었죠!”
그리고 이 커플은 단출하게 출발해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즈에서 열린 이번 무대에 오르게 되기까지 어떻게 그 인연을 만들어가게 되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날 학생들은 이 커플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고된 작업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저널리스트이자 신진 디자이너 발굴 홍보대사인 사라 무어는 부드럽게 이야기를 재촉했고, 전형적인 이탈리아 디자이너인 돌체와 가바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농담을 던졌다. 우리는 도메니코가 6살의 나이에 팔레르모 외곽 작은 마을에서 양장점을 하는 아빠를 따라 첫 수트를 만든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핸드폰이 생기기 전 시대에 이 신진 디자이너가 조르지오 아르마니에게 스케치를 보여주기 위해 잡은 약속을 지키려고 애쓰면서 벌어진 우스꽝스러운 부재 중 전화 사건에 대해서도 이야기 들었다.
도메니코와 스테파노는 밀라노에서 조르지오 코르레자리를 위해 일했다. 그리고 결국 1988년 즈음 자신들의 이름을 함께 걸고 시칠리를 주제로 아이덴티티를 찾게 된다. 스테파노가 고백하길, 비록 미국 비평가들은 이 디자이너들의 핀 스트라이프 수트를 “마피아 조직원 같다”라고 묘사했고 첫 번째 코르셋을 내놓았을 때 언론에서는 “너무나 천박해서 길거리 여자들에게나 어울리겠다”라고 떠들어대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은 이에 반항적으로 대응했다. “그런 음탕한 시선을 가진 당신이 길거리 여자야! 이건 그저 다른 모양을 한 브래지어일 뿐이라고!”
“내 뿌리를 찾기 위해 시칠리로 향했어요. 나에게 뿌리는 가장 중요한 거거든요.” 스테파노가 말했다. “나는 스테파노가 시칠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확신했어요. 우리는 같은 대상에 대해 두 개의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아요. 이중의 시선이라 할 수 있죠.” 도메니코가 말했다.
스테파노는 적어도 크리에이티브에 있어서는 세계화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일 정체성을 잃는다면, 개성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돌체&가바나 초기 시절 모델 마르페사와 주름진 스커트, 술 달린 숄, 그리고 이탈리아 저 깊은 곳, 뜨거운 남부지방의 다육식물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물이 상영되는 동안 스테파노가 말했다.
그러나 스테파노는 “패션은 사랑입니다. 스타일은 영원해요. 영혼 깊은 곳에서 나와야 하는, 디자인의 세계에서는 가장 어려운 일이죠.”라며 덧붙였다.
리차드 아베든, 헬무트 뉴튼과 같은 사진작가들과 이미지메이킹 광고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크리스티 털링턴이나 신디 크로포드, 린다 에반젤리스타 등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디자이너의 패션 스킬을 꿰뚫어볼 수 있는 슈퍼모델들과 함께 작업했다.
이는 린다 에반젤리스타가 그 후 모든 모델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게 만드는 큰 성과를 가져왔다. “우리는 말했죠. ‘린다, 우린 이 모델들에게 줄 돈이 없어요.’ 그러자 린다는 우리에게 걱정 말라 했고 우린 대신 모델들에게 우리 옷을 주었죠!” 도메니코가 말했다.
이들 인생에도 힘겨운 순간들이 있었다. 뉴 밀레니엄에 벌어진 가슴 아픈 결별 말이다. 이들은 더 이상 함께 살지 않게 되었으나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웠고, 사랑을 지켰으나 섹스를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개념은 가족이에요. 그는 내 가족이고, 모든 컬렉션은 우리의 아이들이죠.” 스테파노는 설명했다.
또 다른 어려움도 생겨났다. D&G가 더 이상 H&M이나 자라와 경쟁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료해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도메니코는 자신의 아버지가 꾸리던 작은 양장점과 마찬가지로 “모든 재단에는 각기 다른 섬세함이 담겨야 한다”며 재단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기를 갈망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꿈, 바로 오뜨 꾸뛰르와 커스텀메이드 제품이 탄생했다. “뭔가 특별하고 정말 개인적이죠.” 스테파노는 알타 모다 꾸뛰르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알타 모다 꾸튀르는 3년 전 론칭 해 카프리에서 베니스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가 꽃폈던 주요도시에서 열렸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남성고객을 위한 하이엔드 브랜드인 알타 사르토리아가 마치 시간을 되돌려 여섯 살 꼬마와 아빠가 살고 있는 시절로 돌아온 듯 등장했다.
“마치 교회와도 같아요. 오늘날 마침내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재단사가 되었어요. 정말 자랑스러워요. 제 아틀리에에 와보시면 모든 직원들이 검은색과 하얀색으로 차려 입고 있답니다. 마치 종교적인 순간과도 같죠.” 도메니코가 말했다.
이번 강연에 앞서 도메니코와 스테파노는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석사과정 학생들에게 어떤 조언을 했을까?
“시작단계에서 당신은 젊을 거고, 그때엔 뭐든지 시도해보고 자신만의 길을 발견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거에요. 모든 것에서 배울 수 있죠. 이 업계에서 일하기 시작하면 내가 가진 강한 의견과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혼합해야 한다는 걸 깨달을 거에요. 스타일은 영원합니다. 디자이너 인생에서 스타일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죠.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다 보면, 아마 20년쯤 후에 사람들이 그걸 바탕으로 당신을 알아볼 거에요. 이런 건 영혼에서 나오는 거죠.” 스테파노가 말했다.
도메니코는 창의력 넘치는 개개인들에게 중요한 건 뿌리라고 보고 있다. “요즈음 나는 태어난 뿌리를 부인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러나 이러한 뿌리가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준다고 믿어요. 그게 바로 당신의 DNA이에요. 모든 혈통은 아름답죠. 뿌리를 부인하는 건 커다란 실수에요. 10년 전에 사람들은 세계화가 가장 중요한 일이라 여겼어요.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정체성이에요. 정체성을 잃게 되면, 개성을 잃고 스스로를 잃게 될 거에요.”
그리고 도메니코는 “우리는 젊은 세대를 무조건 믿어요. 우리는 많은 젊은 디자이너들과 일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았다. 최근에 해결된 이탈리아 조세당국과의 문제, 엄마와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순결하고 매혹적인 컬렉션에 대한 불만들, 그리고 가족을 형성하는 게이남성들에 대한 반대로 불거진 논란들 등.
몇몇 학생들은 캣워크 위에 더 이상 인종적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디자이너들에게 물음으로써 대화에 불씨를 지피려 시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질문에 스테파노는 강렬한 이탈리아 옷은 이탈리아 모델이 입어야 하는 거라 대답했다.)
그러나 이날 대화들은 솔직했다. 그리고 이러한 솔직함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려는 이 디자이너 듀오의 부족함을 메워주었다.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어요. 패션 디자이너가 하는 일 중 하나죠.” 스테파노가 말했다.
English Ver.
Dolce & Gabbana: Double Vision
In conversation at London’s famous fashion school, Central Saint Martins, Dolce & Gabbana told their story.
When fashion’s dynamic duo first met up in the early Eighties, Domenico Dolce, fresh in Milan from his native Sicily, described his appearance to Stefano Gabbana.
”I’m dressed like a priest with a ponytail at the back of my neck!” he said.
And that is how the couple started a relationship that took them from modest beginnings to the stage of London’s Central Saint Martins this week, where the students heard a story of life, love and hard work.
There was some gentle prodding by journalist and talent supporter Sarah Mower and much laughing and banter from the archetypal Italian designers. We heard about Domenico, at age six, sewing his first suit as he copied his tailor father in their small village outside Palermo. And a hilarious game of telephone tag – long before mobile devices – as the fledgling designer tried to secure an appointment with Giorgio Armani to show him sketches.
He and Stefano worked together in Milan for Giorgio Correggiari, ultimately linking their own names and finding their identity in the theme of Sicily around 1988, even if, as Stefano claimed, American critics described the designers’ pin-striped men’s suits as “Mafiosi” and when they presented the first corset the newspapers said “it is very vulgar, it is fit for a bitch”. But the designers’ reaction was defiant: “You are a bitch, because you have the dirty eye! It is just a bra in a different way.”
“To Sicily to find the roots, because for me the roots are the most important thing in human life,” said Stefano. “I convinced Stefano to think about Sicily,” said Domenico. “It is double vision because we have two different visions on the same thing.”
Stefano said that he has never believed in globalisation, at least creatively.
“If you lose your identity, you lose your personality,” said Stefano, as a film of those early days showed images of the model Marpessa and the flouncing skirts, fringed shawls and succulent flowers of Italy’s deep, hot south.
But while “Fashion is love – basra!” as Stefano put it. “Style is forever – the most difficult thing in the design world, something that comes from your soul.”
The story unfolded as the designers joshed each other on the podium and spoke of their early image-making advertising campaigns with photographers like Richard Avedon and Helmut Newton. They used supermodels Christy Turlington, Cindy Crawford and Linda Evangelista, who weighed up the designers’ fashion skills before speaking Italian with them.
Linda turned up trumps calling all her model friends. “We said: ‘Linda, we don’t have the money to pay these people,’” said Domenico. “Linda told us not to worry and we paid for them in clothes!”
There were tough moments on life’s trail: the thorny personal split in the new millennium, as they no longer lived together yet learned to respect each other, keeping the love, but not the sex.
“The family is our point of reference, he is my family and every collection was our children,” was how Stefano put it.
There have been other tough moments, as when it became clear that the D&G line could no longer compete with H&M or Zara, while Domenico yearned to focus on his primary love of tailoring, with “every tailor of a different sensitivity”, as in his father’s small business.
Thus was born a new dream: haute couture, custom-made clothes – “something special, very private,” as Stefano described Alta Moda couture, launched three years ago and held in the landmarks of Italy’s Dolce Vita days, from Capri to Venice. And now, finally, Alta Sartoria, high fashion for the male customer, as the wheel turns back to the six year old and his father.
“It is like a church… Today, finally, we are one of the best and most beautiful tailors in Italy. This makes me proud,” said Domenico. “If you visit my atelier, everyone is dressed in black and white, it is like a religious moment.”
What was the duo’s advice for the MA students whose work they had studied in the college before the talk?
“There is a time when you are young in the beginning when you need to try and discover your way, but it is good because you learn from this, too, you learn from everything,” said Stefano. “When you start working in this business you realise that you need to mix your very strong opinion, with what people want. Style is forever. It is the most difficult thing in the designer way to find a style… you develop the idea, after 20 years maybe, you know the people recognise you by this. It is something that comes from your soul.”
For Domenico it is the roots of each individual creative that matter, “I think for everyone today, the Chinese, the Europeans, the Pakistanis, sometimes we want to cancel the roots of where we are from, but I think they give us great power, he said’’. ‘’This is your DNA… every root is beautiful. To cancel the root is a big mistake. Ten years ago people thought globalisation was the most important thing… but your identity is more important. If you lose your identity, you lose your personality, you lose yourself.”
Domenico added, “We absolutely believe in the young generation. We have a lot of young designers.’’
There was plenty in this talk left unsaid: problems with the Italian tax authorities, now resolved; the recent rumpus caused by an innocent and charming fashion collection devoted to mothers and children – but soured by the Dolce duo disagreeing with gay men building a family.
Some students tried to whip up controversy by asking the designers why there was not more diversity on the catwalk. (To which Stefano replied that intensely Italian clothes required Italian models.)
But the talk had honesty on its side. And it filled the duo’s need to leave an emotion for the audience.
“We need to tell our story,” said Stefano. “It is part of a fashion designer’s job.”
- 에디터
- 수지 멘키스
- 포토그래퍼
- Courtesy of Dolce & Gabbana, Suzy Menkes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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