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레인코트
흙탕물이 튄 옷에 젖은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만큼 스타일 구기는 일도 없다. 우리에겐 〈쉘부르의 우산〉 속 카트린 드뇌브보다 더 멋지고 기능적으로 차려입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자, 올여름 날씨는 어떨까? 모 방송사의 표현을 빌리면 6월은 이른 더위, 7월은 시원찮은 장마, 8월은 집중호우와 강력한 태풍의 엄습. 해를 거듭할수록 수시로 쏟아지는 여름 물폭탄에 값비싼 가죽 샌들을 망치거나(말린다고 말렸는데 바닥을 뒤덮은 푸른 곰팡이라니!), 옷이 이염되는(가방의 검은 염료가 흉하게 묻어난 흰 셔츠) ‘우중 사고’가 횟수를 더해간다. 이제 허술한 접이식 우산 따위는 거세고 잦아진 빗줄기에 대항하는 무기론 어림없다. 비옷과 고무장화가 기분내기용 코스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동안, 그리고 봐줄 만한 비옷은 버버리의 방수 소재 트렌치코트가 유일하다고 여기는 동안 비옷의 세계는 흥미진진한 진화를 겪고 있었다.
“우리에게 지구온난화는 좋은 현상이죠. 레인코트가 연중 내내 고루 팔리니까요.” 매킨토시는 아쿠아스큐텀과 버버리보다도 앞서 방수 우비를 제작한 브랜드. 21세기 들어서 하이엔드 패션 하우스(루이 비통, 발렌시아가, 에르메스, 꼼데가르쏭)부터 젊은 디자이너 레이블, 수많은 스트리트 브랜드들과 협업하면서 동시대적이고 패셔너블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참고로 <보그> 패션팀만 해도 각기 A.P.C., 제이크루, 요지 야마모토와 협업한 맥(매킨토시를 줄여서 맥이라 부른다)을 가진 사람이 세 명이나 된다. 2015 봄 여름 시즌의 캡슐 컬렉션에는 일본의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 하이크(Hyke)가 디자인한 뱀피무늬와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의 깜찍한 무당벌레가 그려져 있다. 각각의 레인코트는 3년의 견습 과정을 거친 전문가가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수작업으로 만든다. 액체 상태의 말레이시아산 고무를 코튼 천 위에 롤러로 바른 다음, 대형 오븐에서 굽는 경화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고어텍스도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되지만 우리는 합성 소재가 아닌 천연 고무를 사용하죠.” 헌터 오리지널이 패션의 순간을 맞이한 것은 케이트 모스가 글래스톤베리의 진흙탕에서 웰링턴 부츠를 신은 모습이 포착됐을 때다. 헌터를 ‘부담 없이 어디든 입고 갈 수 있는 패션 브랜드’로 리뉴얼 작업 중인 알라스데어 윌리스는 고무장화뿐이었던 단조로운 컬렉션을 알록달록한 폴리우레탄 소재 판초와 고무를 입힌 더플 백으로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헌터에서 사야 할 레인 부츠는 오리 주둥이를 닮은 장화가 아니라 9cm 굽의 하이힐 부츠와 두툼한 블록 힐의 첼시 고무 부츠. 이 새로운 버전들은 윌리스의 표현처럼 “확실한 패션 아이템”이다.
기존의 기능성 브랜드들이 패션의 울타리를 넘어감과 동시에 처음부터 기능과 패션을 결합한 패션 우비 브랜드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파리에 며칠 동안 주야장천 비가 내리는데 스쿠터를 탈 때 입을 만한 멋진 비옷을 도저히 찾을 수 없더군요.” 캐스팅 디렉터 출신의 조한나 세닉(Johanna Senyk)은 60년대에 흔했던 투명 비옷과 헬무트 뉴튼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완다 나일론(Wanda Nylon)을 론칭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재활용 폴리우레탄 비닐은 친환경 소재인 데다 시간이 지나도 누래지지 않고 신축성도 있죠.” 완다 나일론의 대표 아이템은 관음증적인 코드의 섹시한 투명 PVC 트렌치코트. 다양한 디자인의 챙모자와 인조 페이턴트 소재의 서클 스커트, 재킷 등 은 비에 젖더라도 간단하게 마른 수건으로 닦아낼 수 있다.
스웨덴 브랜드 스투터하임(Stutterheim)은 칸예 웨스트, 제이지, 로드가 입어 유명세를 탔다. 카피라이터 알렉산더 스투터하임은 할아버지가 입던 클래식한 낚시용 방수 재킷을 본떠 실용적인 기능성과 도회적인 스타일을 고루 갖춘 레인코트를 만들었다.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의 아주 간결한 디자인은 시골 농부부터 브루클린의 힙스터까지 아우를 정도.
워크샵쇼룸은 2013년부터 덴마크의 우비 전문 브랜드 레인즈(Rains)를 진행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발간하는 <레인즈 저널>에서 문화적인 활동이나 집단을 다루며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길이와 디자인이 다양하고 10만원대로 가격도 저렴한 편. 폴리에스터와 폴리우레탄 합성 소재를 열로 접합해서 얇고 가볍다. 워크샵쇼룸 관계자는 아이템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여가 생활의 확산에 따른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여행이나 페스티벌을 즐기는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유행입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20대 중반~30대 초반 젊은이들은 합리적으로 소비할 뿐 아니라 새로운 제품 시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죠.” 편집매장에서 고가의 디자이너 레이블이 달린 방수 소재 아이템과 우비 전문 브랜드들이 나란히 걸려 있는 걸 보는 건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당신의 옷장에서도 곧 똑같은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CHA HYE KYUNG,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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