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굿즈의 신세계

2016.03.15

굿즈의 신세계

굿즈 시장이 커지면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는 불철주야 아이디어 넘치는 굿즈를 내놓고 있지만 팬들은 여전히 직접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려 굿즈 만들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게 다 너무 사랑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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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빅뱅 대성은 자신의 코, 입술의 본을 떠서 만든 아이스 트레이를 소개했다. 입술의 주름, 코의 표면까지 생생히 살아 있었다. 대성 팬들은 아까워서 비닐도 못 뜯을 레어템! 이 아이스 트레이는 대성 솔로 콘서트를 기념하며 일본에서 한정 판매한 ‘공식 굿즈’다. 굿즈란 영어 ‘Goods’를 그대로 발음한 용어로, 아이돌의 사진이나 로고, 캐릭터 등을 사용해서 만든 상품을 이르는 말이다. 품목도 다양하다. 포토북, 엽서 같은 고전적인 아이템부터 양말, 디퓨저, 마카롱 등 패션, 라이프스타일, 푸드 전 분야를 망라한다. 소속사에서 기획해 제작하는 상품도 있지만 파파버블, 매그넘, MCM 등 핫한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도 진행한다. 소속사가 직접 온·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백화점에도 입점했다. 그럼에도 없어서 못 판다. 활동 주기에 맞춰 컨셉별로 제작하다 보니 인기 그룹의 경우 신제품이 나오는 순간 품절 사태를 빚는다.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굿즈는 확실한 돈벌이를 보장하는 ‘캐시카우(Cash Cow)’로 떠올랐고, 팬들은 굿즈 역시 아티스트의 일부로 여기며 즐거이 소비한다. 굿즈는 사랑의 징표이자 사랑 표현법이다. 스타만이 아니라 팬덤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됐다.

물론 굿즈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20여 년 전에도 학교 앞 문구점에는 브로마이드와 엽서가 걸려 있었고, 팬들은 행사가 있으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인화해서 팔았다.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고, DSLR이 대중화되면서 팬들이 직접 제작하는 굿즈, 일명 ‘비공식 굿즈’ 역시 동반 성장했다. 사진 보정과 편집 프로그램의 발달은 굿즈 제작의 문턱을 더욱 낮췄다. 샤이니 팬들이 본격 대포 시대를 연 것으로 유명한데, DSLR의 대중화 시점과 일치한다. IT 발달의 역사가 곧 팬 제작 굿즈의 역사이기도 한 셈이다. 팬들은 자기들만의 관점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이들끼리 ‘공유’하고, 실물로 제작해 ‘소유’하고 ‘판매’한다. 팬들이 직접 제작하는 굿즈 품목의 숫자는 공식 굿즈 못지않다. 포토북, DVD를 기본으로, 포토카드, 달력, 엽서, 메모지, 머그잔, 부채, 스티커, 목걸이는 물론 반창고까지 만든다. 공식 굿즈가 연간 계획에 맞춰 일정한 컨셉을 가지고 나온다면 팬 제작 굿즈는 취향에 따라 세분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령, 공식 달력에는 아이돌 멤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등장하지만 팬들은 각자 좋아하는 멤버별로 달력을 만든다. 취향에 따라 멤버 두 명만 선택해 포토북을 만들기도 한다. 공식 굿즈에는 컨셉에 맞춘 완벽하게 다듬어진 모습만 등장하는 데 반해 비공식 굿즈에는 콘서트에서 윙크하는 모습, 공항 출국 모습 등 날것 그대로 살아 있는 스타의 모습이 담긴다. 무엇보다 모든 스케줄이 담기고 기록된다.

제작자는 ‘대포여신’이라 불리는 팬들이다. ‘엄마백통,’ ‘아빠백통’이라 불리는 망원렌즈로 공연장, 방송 현장, 제작 발표회, 출국장 등 스케줄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이들은 각자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홈마(홈페이지 마스터)’이기도 하다. 무대에서 춤추는 동작을 잘 잡는다거나, 보정을 잘한다거나 하는 장기가 있으면 팬들 사이에선 장인으로 대접받는다. 홈마들은 홈페이지에서 어느 정도 사진이 쌓이면, 사전 주문을 받아 포토북과 DVD를 제작해 판매하고, 스타의 생일 등 기념일에 맞춰 전시관을 대여해 사진을 전시하고, 영상회를 개최한다. 여기서 또 한 번 굿즈 판매가 이루어진다. 홈마는 콘텐츠에 스토리를 입힌다. 스타의 한 시절을 담은 연대기로 정성껏 편집한다. 팬시점에서 파는 엽서를 상상하면 안 된다. 팬이 아닌 사람은 공식 굿즈와 홈마 굿즈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사은품 전략도 일반 기업 못지않다.

최근 굿즈의 큰 축을 담당하는 건 스타의 캐릭터 그림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팬들이 자신의 스타를 재해석하여 2차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디즈니랜드의 미키마우스, 미니마우스처럼 스타의 캐릭터 그림으로 스티커를 만들고, 파우치나 머그잔에도 프린트한다. 팬들 사이에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은 봉제 인형. 멤버들을 동물에 비유해 동물 탈을 씌우거나, 우주복, 턱받이 등 아기 옷을 갈아 입힐 수 있는 베이비 돌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 엑소의 경우 트위터에서 ‘엑소 인형 대란’이 일기도 했다. 스타가 한 말을 마이보틀이나 에코백에 새기기도 한다. 에코백이나 마이보틀에 흔히 사용되는 서체와 디자인을 따르고 있어서 일반인들이 보면 전혀 굿즈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팬들은 이를 두고 ‘일코(일반인 코스프레)’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말한다. 팬들은 자신의 스타를 위해 화가도 되고, 디자이너도 된다. 실제 업계 종사자들이 솜씨를 부릴 때도 많다.

소속사 입장에서 팬들이 제작하는 비공식 굿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존재다. 초상권과 저작권을 모두 침해하는 활동이지만, 팬들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 그리고 굿즈가 더욱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엠블랙 소속사에서 팬 제작 굿즈에 대해 강경 대응하겠다고 나섰다가 팬들이 아티스트에게 등을 돌리는 결과를 빚어내기도 했다. “줄을 서서 직접 구매하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어요. 불법임을 알지만 묵인하고 있는 거죠. 팬들이 만드는 굿즈가 아주 훌륭해서 때로는 기획자 입장에서 자극을 받기도 해요.” 어느 소속사 굿즈 기획자의 귀띔이다.

아티스트에게 자칫 피해가 될 수도 있으며, 홈마들이 굿즈로 폭리를 취한다는 소문도 무성하고, 무엇보다 매우 훌륭한 공식 굿즈가 있음에도 팬들이 비공식 굿즈를 만들고 구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식 굿즈와 비공식 굿즈 중 무엇이 더 좋냐는 질문은 팬에겐 아무 의미가 없어요. 다 좋거든요. 팬들이 제작하는 굿즈는 시간에 대한 기록이에요. 제가 모든 스케줄에 함께하진 못하잖아요. 가더라도 사진 찍느라 아등바등하느니 내 눈에 담고 오는 게 낫거든요. 진짜 잘 나오고 있지만 사실 퀄리티가 떨어져도 상관없어요. 그 아이의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돈을 지불하는 거예요.” H.O.T.부터 엑소까지 팬질을 멈춘 적 없다는 서른다섯 살 팬은 말했다. 물론 그녀는 회사에서는 일 빠르기로 소문난 과장님이다.

굿즈 문화를 만들어가는 건 능동적인 팬들이다. 도를 넘은 팬덤이 언론에 여러 차례 노출되면서 적극적인 팬들에겐 늘 ‘빠순이’ ‘사생팬’ 같은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가 따라붙지만, 굿즈 제작은 넓게 보면 개인의 취향이자 대단히 창의적인 취미 생활이다. 좋아하는 대상을 빛나게 하기 위해, 혹은 좋아하는 마음을 더 즐겁게 누리기 위해 이토록 다양한 방법을 창조해내는 문화가 또 어디 있겠는가. 팬들은 굿즈를 만들며 즐겁고, 굿즈를 구입해서 또 한 번 기쁘고, 굿즈를 판매한 수익금은 기부나 서포트로 간접적으로나마 아티스트에게 돌아가니 선순환 구조다. 어차피 ‘내 꺼’ 할 수 없는 ‘대상’이라 팬심에 독점욕은 없고, 좋은 건 함께 누리자는 협력과 나눔 정신이 굿즈의 질을 높여왔다. 굿즈는 사랑이다. 사랑의 표현엔 한계가 없고, 진정한 사랑엔 이유가 없는 법. 스타가 존재하는 한 굿즈도 영원하다.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HWANG IN WOO
    타일
    윤현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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