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히피 소년들, 빅뱅!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 빅뱅의 다섯 멤버와 아름다운 소녀들이 여행을 떠났다. 낡은 픽업트럭에 몸을 싣고 찬란한 햇살이 빛나는 푸른 초원에서 보낸 멋진 하루. 3년 만에 돌아온 빅뱅의 음악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던 바로 그날의 이야기다.
이른 아침부터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가려는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5월 1일이었고,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이었다. 빅뱅의 신곡이 공개된 날이기도 했다. 무려 1,157일 만의 컴백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루저’와 ‘베베’는 단 몇 초 만에 실시간 검색어와 음원 차트 1위를 휩쓸었다. 세상이 온통 빅뱅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그 시각, 빅뱅은 경기도 안성의 청보리밭 한가운데서 한가롭고도 분주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관광객을 잔뜩 실은 트랙터 마차가 15분마다 지나갔지만, 누구도 바로 이곳에 빅뱅이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벌판의 나무를 지지대 삼은 행어엔 대서양을 건너온 오색 의상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촬영 스태프들과 멤버들이 타고 온 차량들이 나름의 요새를 형성했다. 하늘은 마냥 푸르렀다. 드라마 촬영장으로 사용되던 낡은 창고 건물 안에선 오전 7시부터 꽃단장을 시작한 한여름의 햇살처럼 눈부신 모델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가져온 스피커에선 빅뱅의 새 노래들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빅뱅의 다섯 멤버는 기지개를 켰다.
“어떤 노래가 좋았어요?” 먼저 의자를 끌어와 앉아 질문을 던진 건 태양이다. 솔로 앨범 활동 이후, 꼭 1년여 만에 다시 만난 태양은 전보다 더 까맣고 탄탄해졌다. “어젠 자정 무렵까지 사무실에서 뮤직비디오 편집 작업을 하다 집에 갔어요. 그리고는 마음을 비우고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봤죠.” 방송은 물론 아직까지 어떤 공식 인터뷰도 하지 않은 상태라 태양은 이번 음악이 다른 사람들에겐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지 궁금해했다. 시장의 평가에 대한 조바심이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이다. 솔직히 두 곡 모두 깜짝 놀랄 만큼 좋았다. 지금까지의 빅뱅을 ‘거짓말’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면, 이번 앨범 역시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리란 확신이 들었다. 이건 그냥 빅뱅의 음악이었다. 부엌에 있는 재료를 장난치듯 주물럭거려 적당히 만든 것 같지만, 레시피를 알아도 좀처럼 흉내 내기 힘든 그런 맛. 게다가 입에 짝 달라붙는다.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을 하는 뮤지션도 흔치 않지만, 그렇게 만든 음악이 대중성까지 획득하기는 더욱 어렵다. 빅뱅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가수가 그토록 세련된 태도로 찹쌀떡과 궁합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재밌죠? 가사도 유쾌하고. 처음엔 ‘찹쌀떡’이 아니라 ‘경찰 불러’였어요. 플로우만 맞춰놓고 가사를 뭘 하면 좋을까 하다 장난 삼아 찹쌀떡이 튀어나왔는데, 전 그게 아주 좋더라고요. 원래는 찹쌀떡하고 메밀묵까지 하려다가… 그건 너무 장난스럽다 싶어 참았죠.” 음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뒷얘기는 언제나 흥미로운 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사연이 궁금했던 건 ‘베베’ 뮤직비디오 속 태양의 장발! 가슴팍을 풀어 헤친 채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정열적으로 말을 몰던 태양은 지금껏 보아온 모습 중에 가장 쇼킹했다. “그건 제 아이디어였어요. 섹슈얼하지만 막 멋있다기보단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좀 과하게 갔는데, 저희 사무실 사람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더라고요. 어쨌든 뭐 그렇게 나왔습니다.” 사실 오늘 촬영에서도 말 타는 장면이 등장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만약 태양이 승마를 배웠다면 말이다. “전혀요. 연습 없이 탔다가 깔려 죽을 뻔했어요. 워낙 훈련이 잘된 말이라 그래도 괜찮았지만.”
그 뮤직비디오에서 탑은 고헤이 나와의 크리스털 사슴 조각과 함께 한쪽 눈에 고양이 렌즈를 끼고 등장한다. 지난 솔로 앨범 <Doom Dada> 에서 김환기의 ‘사슴’ 그림을 배경으로 내세운 적 있는 그는 이번에도 현대 미술 작품을 빅뱅의 이미지 속으로 끌어들였다. 탑은 꽤 알아주는 가구컬렉터일 뿐만 아니라 미술품 애호가이기도 하다. “고헤이 나와랑 저랑은 친구 사이예요. 전 한쪽 눈이 없는 상태로 나오는데 가사 중에 ‘사슴같이 예쁜 눈’이라는 좀 옛날식 표현이 있잖아요. 내가 부족한 하나를 가진 여자를 만났을 때 사랑에 빠지는 거니까, 자연스럽게 연상됐어요. 또 자연 미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작품이 실제 사슴을 박제한 것이기도 하고요.” 매 뮤직비디오를 공들여 찍을 수 있는 건 이번 컴백이 독특한 형식의 장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양현석 대표는 처음부터 정규 앨범을 내는 대신 5월 1일부터 8월까지 매월 1일 자정마다 두 곡 이상이 수록된 네 장의 싱글 앨범(M, A, D, E)을 발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9월엔 마침내 ‘Made’라는 단어가 완성되며 전체 앨범이 공개되는 식이다.
이미 곡은 다 완성된 상태다. 하지만 리스트가 확정된 건 아니다. 만약 중간에 더 좋은 곡이 나오면 언제든 추가되거나 바뀔 수도 있다. 최종 앨범에 다른 추가곡이 있을지의 여부도 아직은 비밀이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저희도 조금 있어 보여야죠.” 현재까지 공개된 사실 외에 덧붙일 수 있는 말이라곤 장르를 규정할 수 없다는 것, 거의 전부가 최근에 작업한 곡이라는 것 정도다. 물론 지난 <Still Alive> 활동이 끝난 후부터 지디가 빅뱅 앨범을 준비하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기 시작한 건 다섯 멤버가 모두 자리에 모인 올 초부터였다고 했다. 웃고 떠들고 노는 사이 저절로 곡이 흘러나왔다. 예전에 써둔 곡은 미련 없이 버렸다. “가장 신난 건 그때예요. 3~4월 즈음 우리 녹음 끝내고, 쫙 한번 들어보자 해서 작업실에 와인이랑 치즈 같은 거 갖다놓고 음악 들으며 춤추고 놀았거든요. 진짜 재미있었어요.” 아마도 그날의 분위기는 지난 6월 1일 공개된 ‘We Like 2 Party’와 비슷한 풍경일 것이다.
화보 촬영 현장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베레모를 쓴 대성을 보고 태양은 버스 안내양 누나 같다며 “오라이~”를 외쳤다. 그 말에 대성은 되레 신이나 흔들거리며 춤을 췄다. 일할 때를 제외하곤 거의 집 밖에 나오지 않는 대성이 이런 탁 트인 벌판에 나온 건 실로 오랜만이다. 앨범 발매를 앞두고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빅뱅 콘서트에서 승리는 그런 대성에 대해 “집에서 드럼 치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다. 집에서 좀 나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에요. 원래 외출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드럼은 어릴 때부터 워낙 배우고 싶었던 악기인데, 일본 솔로 앨범 첫 투어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죠. 한 2년 됐어요.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그의 드럼 솜씨를 본 멤버들의 반응은? “영화 <위플래쉬> 아시죠? 거의 뭐 그런 분위기예요.” 이 광기 어린 코믹 드러머는 요즘 한마디로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다. ‘루저’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 대성은 루저처럼 왠지 고독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얼굴의 반 이상을 앞머리로 가리고 나니 왠지 말수도 줄었다. “이게 사람이 뭔가 눈을 가리고 캐릭터가 변하니까 조심하게 되고 조용해지더라고요. 사실 앞도 잘 안 보여요.” 대성은 눈빛으로 말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았다. “그래서 요즘은 하관 연기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대성은 일본에서 솔로 활동을 해왔다. 형님들은 동생의 인기에 대해 “일본에선 대성이 거의 천왕 다음으로 유명하다. 일본 투어 무대에 서면 대성이를 향한 환호 때문에 기가 눌린다”며 농담 섞인 자랑을 했다. 몸 둘 바를 모르는 건 대성이다. “아유, 무슨 소리예요. 솔로 활동도 빅뱅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고, 그만큼 일본에서 빅뱅의 인기가 커진 거죠.” 지난 4월 빅뱅 콘서트의 마지막 날은 대성의 생일이기도 했다. 승리의 주도 아래 무대 위엔 케이크가 올라왔고 수백 명의 팬들과 멤버들이 그의 생일을 축하해줬다. 콘서트가 끝난 후엔 뒤풀이 파티가 열렸다. “모처럼 제가 아주 즐겁게 놀았습니다. 생일에 일을 해서 어떡하냐고 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어느 해의 생일보다 뜻깊었어요. 이거 아니었으면 집에서 혼자 거하게 시켜 먹기나 했겠죠.” 멤버들에게 받은 생일 선물이 궁금했다. “없어요. 어느 순간부터 저희끼린 선물을 안 하기로 했거든요, 깔끔하게.” 그 이유는 꽤 근사하다. 날로 커져가는 빅뱅의 인기와 함께 점점 수입도 늘다 보니 거기에 맞추다 보면 나중엔 집을 사줘야 할 거 같더라는 것. 그러니까 톱스타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빅뱅 가운데서도 멤버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슈퍼스타는 단연 승리다. “저희 중에서 제일 연예인 같아요. 부러워요.” 이 우아한 귀공자는 여행 한 번을 다녀도 품격이 다르다. 전 세계를 망라하는 남다른 인맥 덕분인데, 전세기는 기본이요, 구단을 소유한 친구도 있다. “제 친구는 집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촬영장에 있던 싸구려 김밥을 우걱우걱 먹던 승리가 자랑스레 말했다. 멤버들은 이 천진한 막내를 놀리면서 또 귀여워한다. 사실, 이번 앨범이 나오기까지 승리는 꽤 고민이 많았다.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면서 많이 의기소침해진 상태이기도 했다. “제가 판단력이 많이 흐려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래서 앨범 작업을 할 때 제 의견을 내세우기보단 멤버들이나 프로듀서 형들의 말을 많이 따랐어요. 어쨌든 앨범이 나오고 나니 기쁘고 좋아요.” 이번 촬영에서도 결정적 장면은 죄다 승리의 몫이었다. 예를 들면 최대 시속 30km/h의 빈티지 픽업트럭을 몰고 거칠게 질주할 때라던가, 여자 모델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한다던가. 기타를 멘 승리는 현을 퉁기며 갑자기 60년대 명동 음악다방을 풍미한 이장희의 노래를 불렀다.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밤 문득 드릴 말 있네.” 그리고는 오늘 처음 만난 모델 이호정에게 감미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너 혹시, C마이너 잡을 줄 아니?”
촬영은 해 질 무렵까지 이어졌다. 하늘엔 투명한 달과 함께 헬리캠이 떴다. 촬영용 헬리캠을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선 처음 본 멤버들은 아이처럼 신기해했다. “우린 그냥 같이 있으면 진짜 재미있어요. 어떻게 보면 10대 때 연습생 생활부터 지금까지 서로의 모든 걸 알잖아요. 전 어디 나가면 친구가 없거든요. 왜냐면 따로 만나서 얘기할 공감대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 다섯 명이 만나면 웃고 떠들 수 있어요. 그게 큰 힘이 돼요.” 태양이 말했다. 내년이면 빅뱅이 데뷔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된다. 아마도 2016년까지 이어지는 ‘Made 월드 투어’의 피날레가 곧 10주년 기념 공연이 될 것이다. 이제 빅뱅은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의해서 기획된 아이돌 그룹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완전히 넘어서버렸다.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돈에 목매는 사회를 비판하며 ‘Dirty Cash’를 부르던 10대 소년들은 제법 세련된 노래를 스스로 만들 줄 아는 인기 그룹의 수준을 넘어,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물론 그 과정이 여름날의 물놀이처럼 늘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그건 ‘루저’의 가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디는 이런 얘기를 했다. “누구에게나 다 각자의 사정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희도 그래요. 사람이니까. 엄청나게 많은 사람 앞에서 공연을 하고 TV에 나오는 모습만 보면 쟤네는 맨날 파티하고 여자애들이랑 술 먹고 놀 거라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사실 일 끝나면 각자 집에 가서 영화 보고, 자고, 그게 끝이거든요. 그런 데서 오는 공허함이 있어요.” 그런 순간을 버틸 수 있게 한 건 결국 빅뱅이라는 이름의 서로가 있기 때문이다.
빅뱅은 늘 우리의 기대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다시 또 10년이 흐른 후엔 어떨까? “더 이상 설렘이 없다면 굳이 할 이유가 없어요.” 탑은 단호했다. 지디는 그건 모두들 동의하는 바라며 그 말의 뒤를 이었다. “제삼자 입장에서 봤을 때 무대 위의 우리 모습이 별로다 싶으면 안 해요. 우리가 안 멋있고 자신감이 없는데, 어떤 걸 보여드릴 수 있겠어요? 애쓴다는 느낌 있잖아요. 그런 게 너무 싫어요.” 물론 이건 더 이상 빅뱅이 빅뱅답지 않을 경우의 얘기다. “하지만 아직은 몹시 재미있어요. 이번에 활동을 시작하면서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시간이 갈수록 어떻게 하면 더 멋있는지를 각자 알아가는 것 같고. 지금까지는 그래요. 가능하면 10년, 20년 후에도 그러고 싶고요.” 태양이 말했다. ‘Made’라는 프로젝트 제목처럼 빅뱅은 여전히 새로운 음악의 완성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사방이 완전히 어둠에 잠기고 난 후에도 다섯 멤버는 한참을 컴컴한 폐가에 앉아 자신들의 음악과 미래에 대해 얘기했다. 옆에 앉아 있던 매니저가 몇 차례 재촉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빅뱅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에 오르기 전, 이번 앨범에 대한 소감과 함께 “멋지다”는 말을 건넸다. 빅뱅은 마지막 인사 대신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우리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우리 안엔 아직 헝그리 정신이 있거든요.
- 에디터
- 이미혜, 스타일 에디터 / 이지아
- 포토그래퍼
- HONG JANG HYUN
- 모델
- 빅뱅(탑, 지드래곤, 태양, 대성, 승리), 한경현, 정호연, 이호정
- 스탭
- 헤어 / 김태현(미장원by태현), 메이크업 / 임해경, 원조연
- 세트 스타일링
- 최서윤(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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