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쇼 닥터 주의보

2016.03.15

by VOGUE

    쇼 닥터 주의보

    TV가 만병을 고친다. 아저씨의 탈모 증세도, 투병 중인 할머니의 치매도 쇼 닥터들의 처방이라면 말끔히 사라진다. 어느 때보다 성업 중인 TV 속 병원들. 과연 믿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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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구나무서기는 후두부 동맥 혈류량을 다섯 배 이상 증가시켜 발모 효과를 도와준다.” “어두운 곳에서 자거나 반신욕을 하면 모발 성장에 도움이 된다.” 얼핏 어처구니없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유산균을 먹으면 혈당이 조절돼 관절 류머티즘 약을 대신할 수 있다”는 소리나 “어성초에 탈모 효과가 있다”는 얘기 역시 어딘가 신비롭게 사람을 꼬드긴다. 일단 어성초란 이름의 약초는 뭔지 몰라도 용하게 들리지 않나. 하지만 이들 방법은 모두 올 상반기 TV를 시끄럽게 한 주범이다. 탈모에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한때 구하기 힘들 정도로 팔려 나가던 어성초는 결국 과학적인 효능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보도됐고, 상반기 홈쇼핑 최고의 히트 상품 중 하나였던 백수오 관련 제품은 백수오가 아니어서 논란을 일으켰다. 시판되던 대부분의 백수오 상품엔 백수오가 들어 있지 않았다. TV 채널을 타고, 의사와 한의사의 입을 통해 공공연하게 공유된 이 정보 중 상당수는 신통방통하게 들려도 결국 뻥이거나 과장이었던 셈이다. 요즘은 어설픈 TV가 사람을 잡는다.

    확실하지 않은 건강 정보를 적절한 여과 없이 내보내는 주범은 종편의 건강 정보 프로그램이다. 종편, 그리고 케이블 채널은 안정적인 시청률이 확보된다는 이유로 너 나 할 것 없이 건강 정보 프로그램 한 편 이상씩을 편성하고 있다. MBN은 <황금알> <천기누설> <엄지의 제왕> 등 일주일에 무려 세 편이나 방송하고 있으며, JTBC는 <닥터의 승부>, 채널A는 <닥터 지바고>, 그리고 TV조선은 <내 몸 사용 설명서>를 제작, 방영하고 있다. 시청률도 나쁘지 않아 <황금알>은 재방송이 3.4%를 기록한 적이 있고, <엄지의 제왕> 역시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전체 시청률 순위 20위권을 맴돈다. 몇몇 인기 프로그램을 제외하곤 1% 싸움이라는 종편의 시청률 시장을 생각하면 꽤 효자 종목이다. 심지어 몇몇 의사와 한의사는 ‘쇼 닥터’라 불리며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활약 중이다. 방송 이후의 반향도 커 백수오, 어성초 외에도 유산균, 벚굴 등은 꽤 오래 화제가 됐고, 홈쇼핑 방송은 건강 정보 프로그램의 콘텐츠에 맞춰 상품을 기획하기도 한다. 마술 같은 효능에 시청자를 홀리고 바로 구입처를 제시해 지갑을 열게 하는 시스템이다. 실제로 모 프로그램에 나와 ‘머리카락 회춘의 비밀’이라며 어성초를 강권하던 모 병원 원장은 이후 자신이 만든 어성초 관련 제품을 광고하기도 했다. 일부의 사례이긴 하지만 이 쯤 되면 거의 약장사 프로모션 쇼나 다름없다.

    건강에 좋은 정보를 보도하는 건 시청자에게 유용한 일이다. 하루 세끼 먹기도 힘든 요즘, 음식이든 약이든 몸에 좋은 걸 챙겨 먹을 수 있는 정보는 알아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종편의 건강 정보 프로그램은 거의 타블로이드성 콘텐츠로 채워진다. 시청률을 위해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내용 위주로 방송을 꾸리는 것이다. MBN의 <천기누설>은 건강을 위해 소변으로 세수를 한 뒤 그 소변을 마시는 한 노인 남성의 사례를 소개한 바 있고, 채널A의 <닥터 지바고>는 벚굴로 협심증을 치료한 여자를 보도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사례인데, 방송은 그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습니다’란 책임 회피성 자막만 붙여놓는다. 워낙 토속적인 민간요법 같아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지나치겠지만 혹시라도 해당 사항이 있다면 치료하고픈 마음에 혹할지 모를 일이다. 의사나 한의사의 명함을 달고, 공공의 전파를 통해 송출하는 정보라면 더 많은 책임감, 그리고 신중함이 필요한 것이다. 아픈 사람 놀리는 것만큼 나쁜 죄도 없다.

    최근 피부 질환 때문에 한약을 먹기 시작했다. 체질을 개선하고 몸 전체의 밸런스를 재조정해야 한다며 한의사가 기피해야 할 음식 리스트를 내밀었는데, 나는 거의 자포자기 심정이 됐다. 고기, 밀가루는 물론, 초콜릿이나 견과류도 먹을 수 없었고, 메밀국수 같은 음식도 메밀 100%가 아니라면 먹을 수 없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이렇게나 열심히 식이조절을 할 거면 수십만 원짜리 한약은 대체 왜 필요한가 싶었다. 한의학이 아무리 체질 관리에 기반한 학문이라 해도 이 정도면 그 학문의 효용이 의심되는 수준이었다. 결국 건강 테라피는 개인의 문제인 것이다. 나에게 독이 남에겐 약일 수 있고, 또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쇼 닥터들의 발언은 위험하다. 소수의 예를 근거로 권장 식품을 얘기하기 위해선 충분한 연구와 사례 조사가 필요한데, 종편의 건강 정보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노골적인 드라마와 효능이기 때문이다. ‘진단은 의사에게, 처방은 약사에게’. 쇼 비즈니스로 소비되기에 건강은 너무 위험한 주제다. TV의 오락성이 이곳에 낄 자리는 없다.

      에디터
      정재혁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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