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앰버 발레타의 셉템버 이슈

2016.03.15

by VOGUE

    앰버 발레타의 셉템버 이슈

    90년대에 샬롬과 명콤비를 이루며 당대 패션의 얼굴로 활약했던 슈퍼모델 앰버 발레타. 90년대 패션 신입생 시절에 앰버를 보자마자 반한 스타일리스트가〈보그〉 셉템버 이슈 표지 촬영을 위해 그녀를 만났다.

    스타일리스트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진행하고 싶은 <보그> 표지 작업을 맡은 지 벌써 6년째. 당대 최고의 톱 모델을 섭외하는 게 항상 관건이지만(게다가 9월호는 본격적으로 가을 시즌을 여는 만큼 더더욱 표지에 들어갈 톱 모델 섭외가 중요했다) 이게 웬일, 이번엔 스케줄이 꼬이고 해외 매체와 경쟁까지 붙은 가운데, 편집장이 원한 모델들이 하나둘 가능성이 없어지면서 데드라인까지 다가와 초읽기에 들어갔다. 서울의 <보그> 편집부에서 날아온 수많은 이메일, 사진가와 캐스팅 디렉터가 보낸 장문의 이메일 등으로 인해 내 이메일 사서함은 폭발 일보 직전! 바짝바짝 피가 마르던 바로 그때, 캐스팅 디렉터에게 앰버 발레타(Amber Valletta)를 섭외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누군가? 90년대 샬롬 할로우와 명콤비를 이루며 <보그> 표지는 물론, 수많은 캣워크와 광고를 독식한 그녀! 캐롤린 머피와 함께 가장 대중적인 슈퍼모델의 얼굴이기에 전성기였던 9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상에서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는 그녀! 동료 슈퍼모델들이 스캔들을 터뜨리는 것과 달리 자기 관리에 있어 깔끔한 그녀! 사실 나는 앰버의 존재를 여고 시절에 처음 알았다. 패션이라곤 게스 청바지와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넣을 만큼 큼지막한 휠라 가방, 톰보이 로고가 적힌 티셔츠가 전부였던 90년대. 그때만 해도 패션은 무조건 튀는 게 최고라는 생각으로 잔뜩 멋을 내고 다녔는데, 처음으로 가슴 떨리는 전율과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 같은 셀렘과 마주했으니, 바로 <보그 코리아> 표지에 등장한 앰버 발레타의 얼굴을 본 순간이었다(이름도 얼마나 예쁘고 매혹적인지)! 야릇하고 나른한 눈매와 표정은 나란히 등장한 샬롬 할로우의 앙칼진 매력과는 전혀 달랐다.

    그녀가 모델로 등장한 걸작 화보도 새록새록 생각난다. 사진가 피터 린드버그가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패러디해 뉴욕 시내 한복판에서 촬영한 화보,리처드 아베돈 앞에서 동료 슈퍼모델들과 역동적으로 걷는 포즈를 취한 베르사체 광고, 유르겐 텔러의 음란한 지시에 따라 미니멀한 블랙 드레스 차림으로 은밀한 곳에 손을 넣고 포즈를 취한 사진, 스티븐 마이젤의 카메라 앞에서 땀범벅이된 채 남자 댄서들과 쓰러질 때까지 춤추는 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패션을 알게 된 90년대는 물론 패션계에서 일하는 지금까지, 최고의 패션 이미지로 꼽는 화보 속엔 늘 앰버 발레타가 있었다(최근 안토니 바카렐로 광고에서 발현된 그녀의 중성적 매력이란!).

    세상에, 그 앰버를 <보그 코리아> 표지로 내가 촬영하게 되다니! 신기하게도 촬영 일정이 확정된 뒤부터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선 사진가는 신인 사진가 발굴에 탁월한 영국 <보그>는 물론, 당대 최고 패션 사진가들에게 명예의 전당처럼 여겨지는 파리 <보그>에도 이름을 올린 스콧 트린들이 결정됐다. 또 얼마 전부터 앰버와 사귀기 시작한 헤어 스타일리스트 테디 찰스가 섭외돼 나의 뮤즈가 좀 더 마음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테디로 말하자면 패트릭 드마쉴리에가 신임하는 촉망받는 인물. 촬영장 스태프들이 그가 한때 모델로 이름을 날리지 않았느냐고 물을 만큼 키가 훤칠한 데다 얼굴도 끝내주게 잘생겼다. 뜻밖에도 그는 한국과 인연이 있었다. 가슴 아픈 얘기지만, 그는 얼마 전 한국계 부인을 암으로 잃은 뒤 앰버를 만났다고 했다.

    다음 순서는 <보그> 셉템버 이슈의 커버 걸에게 입힐 옷을 정할 차례. 서울의 편집부와 나는 슈퍼모델에게 딱 맞는 슈퍼 브랜드의 최신 컬렉션을 준비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루이 비통을 위해 디자인한 올가을 컬렉션 신상 말이다. 그리고 스튜디오에서의 뻔한 촬영을 원치 않았기에 우리는 로케이션 장소를 찾았고, 뭔가 앰버의 추억을 말해주는 듯 한 스토리텔링을 위해 코니아일랜드로 떠났다. 촬영은 아침 7시부터 시작됐다. 그녀는 이 촬영을 위해 전날LA에서 뉴욕으로 날아왔다(테디의 손을 꼭 잡고 촬영장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 드디어 그녀와의 설레는 첫 만남! 클라우디아, 나오미, 에바 등은 물론 칼리 클로스 같은 ‘꺽다리’ 모델들과도 일한 내 눈에 앰버는 전혀 작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녀들과 비교할 때 키 175cm는 아담한 편. 그러나 운동으로 다져진 탄력 넘치는 몸매와 함께 강렬한 눈빛에서 엄청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 촬영장에 도착한 그녀는 모든 스태프들과 친절하고 상냥하게 인사를 나눈 후(특히 내겐 더 친절했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준비하러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도 그녀는 한순간도 연인과 떨어질 줄 몰랐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작업에 얼굴을 맡기는 동안에도 테디는 방해되지 않는 최소한의 거리에서 앰버와 눈빛을 교환했고, 그녀에게 혹시 부족한 건 없는지 수시로 살피고 자상하게 물었다(“우리 지금 열렬히 사랑하고 있어요!”를 온몸으로 드러낸 셈).

    공개된 장소에서 여러 곳을 이동해야 했는데도 이 독보적인 슈퍼모델은 연인이 곁에 있어서인지 시종일관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올 들어 가장 덥던 뉴욕에서 두툼한 가을, 겨울 옷을 입고도 사진가의 여러 요구에 한마디 푸념도 없이 모두 응했다. 땀으로 인해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 걷기조차 힘들 땐 테디가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고, 그녀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사랑의 힘이란! 테디에게 연인의 사랑이있다면, 나는 열혈 팬으로서 앰버를 사랑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녀와 특별한 순간을 남기기 위해 촬영 현장 풍경을 찍던 또 다른 사진가에게 매 컷마다 내가 등장하게 해달라고 미리 부탁했다. 이런 내가 귀여웠는지, 그런 팬심이 고마웠는지, 앰버는 팬 서비스 차원의 기념 촬영을 제안했고, 마지막 컷이 끝나자 나를 꼭 끌어안았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외모처럼 마음도 따뜻한 그녀. “사랑해요, 앰버!”

      김예영(스타일리스트)
      에디터
      신광호
      포토그래퍼
      SSAM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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