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 로션의 신세계
향수와 달리 옷을 입기 전에 피부에 안착한다. 향수처럼 강렬한 한 방은 없지만 더없이 부드럽고 또 은은하다. 레드 립스틱만큼 강렬하고 블랙 아이라이너만큼 매력적인 퍼퓸 보디로션의 신세계!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도 날씨지만, 가을을 손꼽아 기다려온 이유 중 하나는 보디로션을 마음껏 바를 수 있어서다. 여자들의 마음은 다들 비슷한지, 요즘은 향수 대신 ‘퍼퓸’ 보디로션으로 향을 즐기는 여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루 종일 촉촉한 보습 효과는 기본, 잔향이 향수 못지않다는 게 퍼퓸 보디로션의 인기 비결. 이런 트렌드에 발맞춰 뷰티 브랜드에선 향수 대신 써도 무방한 퍼퓸 보디로션을 출시하며 여심 공략에 나섰다. 이런 흐름은 향수 브랜드도 마찬가지인데, 보테가 베네타의 ‘놋 오 드 퍼퓸’의 경우 함께 나온 보디크림의 마니아층이 두터우며,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은 최근 향수와 동일한 라인의 보디로션을 재정비했다.
이쯤 되면 모두가 궁금해할 한 가지 포인트. 향수를 뿌릴 때와 보디로션을 바를 때, 몸에 남는 향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향수는 대부분 향이 잘 휘발되는 에탄올에 희석된 반면, 보디로션은 끈적끈적한 점도를 지니죠. 향수와 달리 휘발되지 않는 오일이나 왁스로 이뤄진 제형에 갇혀 있기 때문에 향수만큼 향이 멀리 퍼지진 않아요. 그래서 향수의 톱 노트에서 느껴지는 시원하고 상큼한 맛은 떨어지지만 그만큼 향이 부드럽고 은은하게 퍼져나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체취처럼 말이죠.” 한불화장품 수석 연구원이자 <향수 그리고 향기>의 저자 임원철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번 시즌 잘 어울리는 보디로션의 향취는 뭘까? “서늘해지는 계절이니만큼 포근한 느낌의 향이 잘 어울릴듯합니다. 섹시하고 따뜻한 일랑일랑이나 헬리오트로프 같은 꽃향기, 아기 피부에서 날 것 같은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바닐라 향, 고즈넉한 샌들우드 향, 바스락거릴 것 같은 삼나무 향, 책을 한 권 읽어야 할 것 같은 아이리스 향, 살냄새를 닮은 풍요로운 머스크 향이 특히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브랜드에서 즐겨 사용하는 향은 아니지만 가을을 연상하게 만드는 밤이나 호두 같은 견과류 향이나 커피 원두 향도 잘 어울릴 테고요.”
본 기사를 위해 <보그> 하우스 스튜디오로 잔향 끝내주기로 소문난 퍼퓸 보디로션 베스트셀러 30여 개가 도착했다. 최고의 향을 찾기 위해 임원철 조향사와 함께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고, 이 중 살아남은 제품은 19개. 올가을 내 ‘살냄새’가 되어줄 단 하나의 제품을 찾고 있다면 <보그>의 솔직 담백한 품평을 참고하시라!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엉 빠썽 바디 밀크’ 오렌지 블로섬, 혹은 네롤리 향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니! 테스트한 제품을 통틀어 최고로 마음에 든 제품이다.
¤에스티 로더 ‘모던 뮤즈 바디로션’ 이국적인 무화과 열매, 지중해 바다, 산뜻하고 투명한 꽃 향이 어우러진 여성스러운 향이 압권.
¤에르메스 ‘자르뎅 무슈 리 모이스춰라이징 바디로션’ 친숙하고 달콤한 우유나 과일, 그리고 샌들우드 향이 어우러진 보디로션의 신세계!
¤시슬리 ‘오 뒤 스와르 끄렘므 빠르퓌메 이드라땅뜨’ 잔가지의 나무 향과 녹색 수풀 느낌의 바질 향, 상큼한 라임 향의 앙상블.
¤아쿠아 디 파르마 ‘베르가모트 디 칼라브리아 바디로션’ 칼라브리아의 베르가모트 향이 느껴지는, 지중해 푸른 바다의 향기.
¤딥티크 ‘오 로즈 바디로션’ 장미 향보다는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 피부에서 날 법한, 그런 짭조름한 잔향이 매력적이다.
¤조 말론 런던 ‘잉글리쉬 페어 앤 프리지아 바디 앤드 핸드 로션’ 한마디로 표현하면 ‘통나무 집으로 떠난 가족 여행’. 꽃 향과 굵은 줄기의 나무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바이레도 ‘발 다프리크 바디크림’ 울이나 면 소재의 따뜻하고 포근한 향. 가을이나 겨울에 특히 잘 어울릴 듯!
¤밀러 해리스 ‘시트롱 시트롱’ 물에 젖은 나무와 덤불, 순수한 대자연 속에서 날 법한 천연의 향.
¤아틀리에 코롱 ‘포멜로 파라디 바디로션’ 핑크 자몽 향이 나는데 살짝 단조롭다. 자칫 샤워 젤이나 방향제 같은 가벼운 잔향에 실망할지도.
¤러쉬 ‘카마 크림’ YSL 뷰티의 향수 ‘오피움’ 광고가 생각나는, 다소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샤넬 ‘코코 마드모아젤 모이스춰라이징 바디로션’ 달콤한 바닐라 느낌이 많은, 그래서 자칫 셀러브리티 향수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
¤아카카파 ‘화이트 모스 바디로션’ 세탁이 덜 끝난 옷을 입은 듯한 기분? 꿉꿉하다기보다 보송보송한 느낌에 가깝다.
¤보테가 베네타 ‘놋 퍼퓸드 바디로션’ 모두가 좋아할 깔끔한 비누 향.
¤톰 포드 뷰티 ‘쟈스민 루쥬 바디 모이스춰라이저’ 재스민 향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그 이상의 매력은 글쎄.
¤디올 ‘어딕트 퍼퓸드 모이스춰라이징 바디 밀크’ 수련이나 사과의 시원한 향, 잘 만든 화장품을 바를 때의 느낌.
¤필로소피 ‘어메이징 그레이스 퍼밍 바디 에멀전’ 풍만한 볼륨이 느껴지는 향기.
¤로라 메르시에 ‘수플레 바디크림’ 과자 냄새가 난다. 자칫하면 유아용 제품을 바른 듯 유치한 분위기를 자아낼지도 모르겠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라떼 뻬르 일 꼬르뽀’ 기분 좋은 허브 향이 코끝을 맴돈다
- 에디터
- 이주현
- 포토그래퍼
- HWANG IN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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