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신세계
최고급 보석상의 담장 너머 패션 디자이너들 곁에 다가온 뽀얀 진주가 과감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파격적 디자인은 물론 신비로운 여자 몸을 탐험하는 진주의 신세계.
“상어의 송곳니와 턱뼈에서 영감을 얻은 진주 컬렉션입니다. 과감하게 목을 감싸는 다소 ‘쎈’ 디자인의 초커 형태로선보였죠.” 평소 우아하기 짝이 없던 진주 브랜드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들리는 표현은 지금껏 진주에 대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하지만 고상한 보석 이미지를 탈피해 ‘진주인 듯 진주 같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 여자들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타사키. 이 진주 명문가는 몇 해 전부터 나사, 못, 가시, 철조망 같은 형태에 진주를 더해 파격 그 이상의 신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하이엔드 주얼리 하우스에서 해체주의 관점으로 진주를 매만지자 패션 디자이너들도 서둘러 진주를 다루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왕은 발렌시아가 아카이브에서 발굴한 진주와 왕관, B 이니셜을 조합해 브로치와 이어 커프를 탄생시켰다. 이를 위해 왕이 사용한 것은 천연 진주. “가공을 최소화해 진주 본연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왕의 설명대로 자연스러움을 간직한 천연 진주는 세 개로 나뉘는 이어 커프(<스타워즈>아미달라 여왕의 액세서리처럼 보이는 미래적인 느낌)와 랩 스커트 자락을 여미기 위해 아찔한 지점에서 브로치로 완성됐다. “천연 진주의 매력은 크기와 모양이 전부 다른 게 특징입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진주가 있던 위치, 가령 귓불 아래에서 요조숙녀풍으로 달랑거리던 귀고리나 쇄골아래 얌전히 놓인 브로치 위치에서 벗어난 거죠.” 발렌시아가 하우스의 말처럼 진주를 위한 왕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클래식한 매력을 뽐냈다.
한편 디올 하우스에서 커머셜 주얼리 디자인을 맡았던 카미유 미셀리(지금은 루이 비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지난 2013년 다른 크기의 진주 두 개를 이어 독특한 형태의 진주 귀고리를 선보인 적 있다(소재만 바뀐 채 지금도 판매 중). 이번 시즌에는 라프 시몬스가 그녀의 진주 귀고리를 응용한 진주 반지를 완성했다. 못처럼 꼬인 검정 메탈에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천연 진주를 한 쌍으로 세팅한 것(두 개의 반지를 레이어링한 듯 보이는 게 특징).
그런가 하면 보테가 베네타의 토마스 마이어는 잘 어울리도록 ‘진주인 듯 진주 아닌’ 주얼리를 선보였다. “은을 산화시켜 어둡게 만든 뒤 장인들의 손으로 하나하나 다시 광택을 냈습니다.” 보테가 베네타 하우스는 반짝이는 흑진주처럼 보이는 아르젠토 오시다토(Argento Ossidato) 소재를 이용한 게 특징이라고 덧붙인다. 그 결과 다양한 사이즈의 메탈 스톤을 체인으로 한데 엮어 과감한 뱅글과 목에 딱 맞게 연출하는 체인 목걸이가 완성됐다. 고상한 흑진주에서 영감을 얻어 독창적인 록 스피릿의 주얼리가 탄생한 것. 진주의 거친 변신을 들자면 모스키노가 빠질 수 없다. 반항적인 갱스터 룩을 선보인 모스키노는 길게 늘어뜨린 진주 목걸이와 각종 체인 목걸이, 큼직한 진주 귀고리를 함께 매치했다. 이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조합에 데님 재킷과 스냅백, 캐주얼한 운동화를 더하자 우아함의 대명사였던 진주의 동시대적 환골탈태를 감상할 수 있었다. 내친김에 디자이너들은 진주를 향한 무한 애정을 발끝까지 밀어붙였다. 셀린은 크리스털과 진주알을 엮은 브로치를 위빙 펌프스에 장식했고,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는 투박한 워커에 진주알을 빼곡히 장식했다.
보시다시피 우아하고 고상한 시절을 보낸 진주가 클래식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있다. 시대를 앞서가는 패션 디자이너들 덕분에 우리 여자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탐험 중인 진주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발렌시아가 의상 곳곳에 진주 주얼리를 활용한 알렉산더의 왕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 디지털 세대와 클래식한 유산을 이어주는 우아한 소통의 매개체!”
- 에디터
- 김미진
- 포토그래퍼
- HWANG IN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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