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별난 웨스 앤더슨 스타일
현대판 동화 나라를 완성하는 웨스 앤더슨. 올가을 그의 영화 주인공들이 스타일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클래식과 레트로 이미지로 익숙하지만 조금 별난 웨스 앤더슨 스타일.
<로얄 테넌바움>의 마고 테넌바움이 실존 인물이라면, 올가을 쇼핑에 매진하느라 누구보다 분주할 것이다. 라코스테 스트라이프 테니스 드레스, 치렁치렁한 펜디 밍크 모피 코트, 에르메스 버킨 백을 유니폼처럼 즐기던 여주인공이 좋아할 모든 것이 지금 매장에 가득하니까. 미국 <보그>는 마고를 올가을의 ‘스타일 헤로인’으로 꼽았고, 블로그 ‘맨리펠러’는 재빨리 마고처럼 옷 입는 방식을 다채롭게 선보였다. 덕분에 마고가 구찌 플리츠 스커트와 모피 코트, 발리 헤어밴드와 라코스테 티셔츠로 옷장을 채울 모습이 쉽게 그려진다. 또 슬립 드레스를 즐겨입는 취향을 고려하자면, 루이 비통 레이스 미니 드레스에 마음을 뺏길만하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이 등장한 영화가 개봉한 지 14년 만에 취향에 딱인 옷이 넘쳐나는 사실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르겠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첫 번째 구찌 쇼가 끝난 후부터 패션계 사람들은 웨스 앤더슨의 이름을 들먹이기 시작했다. 구찌 쇼에서는 마고 테넌바움을 비롯한 웨스 앤더슨 영화 스타일이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듯했으니 말이다. 빨강 베레는 앤더슨의 초기작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맥스가 쓰던 모자를 꼭 닮았고, 밍크 코트는 마고, 파자마 수트는 <호텔 슈발리에>를 떠올리게 했다. 구찌뿐만이 아니었다. 프라다와 미우미우 쇼에서는 <문라이즈 킹덤>의 어린 소녀 수지가 입을 만한 파스텔 톤 미니 드레스가 있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부엌데기’였던 레아 세이두의 유니폼은 샤넬의 에이프런 스타일과 닮았고, 랑방과 드리스 반 노튼의 ‘유한마담’ 스타일은 틸다 스윈튼의 캐릭터와 꼭 어울렸다. 다양한 버전으로 등장한 트렌치 코트는?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입은 코트와 영락없이 닮았다. 여기에 라코스테와 발리처럼 노골적으로 <로얄 테넌바움>과 웨스 앤더슨을 언급한 브랜드까지.
가을 컬렉션을 준비하던 디자이너들이 웨스 앤더슨 영화를 단체 관람하기라도 한 걸까. 여러 매체는 갑자기 불어닥친 웨스 앤더슨 열풍의 근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2015년 가을 컬렉션의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는 추억과 노스탤지어다.” 미국 ‘스타일닷컴’은 우리 안에 숨은 과거를 향한 향수가 그 열풍의 시작이라고 해석했다. “구찌에서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선보인 빈티지 스타일링과 발리에서 파블로 코폴라가 선보인 클래식한 유럽식 재단과 스포츠 디테일에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숨어 있다.” <가디언> 역시 비슷한 해석이다. “앤더슨은 장난기 있으면서 복고적 분위기를 아련하게 표현한다.” 아울러 런던 디자이너 에밀리아 윅스테드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런 점 때문에 앤더슨 영화는 아주 ‘패션 친화적’이다. 가령 켄 로치 영화처럼 거친 현실과 정반대로 앤더슨 영화는 아주 세심하게 짜여 있다. 특히 스타일이야말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왜 갑자기 이 모든 게 딱 맞아떨어지는 듯할까요?” 14년 전 마고 테넌바움 스타일을 완성했던 의상감독 카렌 패치(Karen Patch)는 이 흥미로운 풍경을 보며 ‘스타일닷컴’에 이렇게 말했다. “영화 속 의상이 클래식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 아닐까요? 물론 조금 달라져 있죠. 어떤 면에서는 익숙하지만 또 달라 보이니까요.” 테니스 드레스와 밍크 모피, 버킨 백, 그리고 배스 로퍼를 매치한 마고 테넌바움의 스타일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론 함께 매치하지 않는 것들을 함께 입혔습니다.” 패치는 최근 앤더슨 열풍의 이유에 대해선 이렇게 추측했다. “지금 런웨이에서 볼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죠. 아이템을 다른 방식으로 함께 매치하는 거죠.”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아이템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짝짓는 것이야말로 요즘 패션의 대세라는 것! 유행 사조 대신, 자신의 취향대로 빼입어야 멋쟁이로 불리는 시대 분위기와 웨스 앤더슨의 개성 넘치는 스타일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소피아 코폴라, 스파이크 존즈 등과 함께 유난히 ‘패셔너블’한 감독으로 꼽히는 웨스 앤더슨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패션계와 손잡아왔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그의 열정적인 팬. 레아 세이두가 출연한 단편영화 <프라다: 캔디>, 제이슨 슈워츠맨이 등장한 <카스텔로 카발칸티(Castello Cavalcanti)> 등은 미우치아가 앤더슨에게 의뢰한 영화들이다. 또 올여름 밀라노에 문을 연 프라다 재단의 미술관 속 카페 ‘바 루체(Bar Luce)’ 역시 앤더슨이 인테리어부터 메뉴, 디자인까지 모두 맡았다. “바를 원했어요. 그리고 영화감독이 그 공간을 꾸며야 한다고 생각했죠.” 미우치아가 앤더슨에게 공간을 맡긴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엔 웨스가 계속 거절했어요. 그러나 몇 달에 걸쳐 설득하고 말았죠. 그리고 제가 옳았어요. 이 바는 평범한 곳이 아니에요. 웨스가 선보이는 예술의 연장이죠.” 페일 핑크, 라임 그린, 자수정 컬러의 가구와 인조석 타일 바닥, 세세한 창문이 그려진 벽지, 그리고 스티브 지소를 패러디한 핀볼 머신까지, 앤더슨은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케이크 아래 놓인 레이스 장식과 빈티지 주크박스에서 들리는 50년대와 60년대 팝송 등 모든 것이 앤더슨의 영화 세트장에 들어선 듯 기분 좋은 착각을 선사한다. “음식, 화장실, 설탕 봉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웨스의 선택이었죠.”
웨스 앤더슨의 영향력은 패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뉴욕에서는 앤더슨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예술 작품만 전시하는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린다(물론 전시 오픈 당일에는 영화 속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광팬들이 몰려든다). 또 쇼핑 사이트 ‘엣시(Etsy)’엔 ‘웨스 앤더슨 인테리어’ ‘웨스 앤더슨 생일 파티’ ‘웨스 앤더슨 소품’ 등의 이름을 단 제품으로 가득하다. 팬들은 이런 아이템을 구입하며 ‘팬심’을 드러내는데, 패션부터 인테리어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꾸민 웨스 앤더슨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웨스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분명 그의 스타일도 좋아할 겁니다.” 지난해 <The Wes Anderson Collection>이란 책을 쓴 영화 역사학자 매트 졸러 세이츠(Matt Zoller Seitz)는 이렇게 말했다. 완벽에 가깝도록 완성된 세계 속에서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사건과 사고가 묘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앤더슨식의 마법이라는 것. ‘놈코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뉴욕의 트렌드 예측 그룹인 ‘K-Hole’도 최근 리포트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마법’이라고 강조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를 감정적으로 어루만지는 마법의 힘! 어쩌면 웨스 앤더슨의 세상이 지금 유난히 매력적인 것은 그 마법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가 창조한 세상 속에서 무표정한 마고, 당돌한 소녀 수지, 90세가 넘은 마담 D.까지 패션이 참고할 만한 캐릭터들은 차고 넘친다. 그러니 올가을 멋쟁이가 되고 싶다면, 다시 한 번 웨스 앤더슨이 꿈꾸는 괴짜 세상을 유심히 살펴보길!
-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INDIGITAL, COURTES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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