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하게 자신만의 요새를 쌓은 닐 바렛
균형, 절제, 지속성, 하이브리드가 완성한 새로움. 16년간 닐 바렛은 한결같았고 그의 컬렉션 역시 모던함을 잃은 적 없다. 견고하게 자신만의 요새를 쌓은 닐 바렛이 서울을 찾았다.
2000년대 중반, 패션계 사람들은 세탁기에 마구 돌린 듯 쪼글쪼글하고 몸에 꼭 맞는 가죽 바이커 재킷을 갖고 싶어 안달했다. 당시 멋 좀 부린다는 남자들은 가슴 포켓 위로 하얀 행커치프가 뾰족하게 솟은 좁고 날렵한 검은색 수트로 멋을 냈고, 남성복의 강한 선을 좋아하는 톰보이 기질의 여자들은 이 브랜드의 여성복 론칭 소식에 욕망의 눈빛을 반짝였다. 2010년 이후 패션계를 휩쓴 네오프렌 스웨트셔츠의 선구자,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스스로를 전형적인 ‘구식 영국인’이라고 말하는 이 사람은 닐 바렛(Neil Barrett)이다. 1999년에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한 그는 16년 동안 ‘나만 알고 싶은 디자이너’에서 ‘모두가 입고 싶어 하는 디자이너’로 서서히 이동했다. 그의 상징적 스타일은 그동안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고, 10여년이 지난 현재의 관점에서도 여전히 모던하고 동시대적이다. 아이폰을 작동하는 터치 슬라이딩처럼 모든 것이 너무도 가볍고 빠르게 변하는 지금, 대체 무엇이 그를 굳건하게 만든 걸까?
VOGUE KOREA(이하 VK) 이번이 첫 서울 방문인가요?
NEIL BARRETT(이하 NB) 아주 오랜만에 다시 왔어요.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에 한 번 온적이 있죠.
VK 닐 바렛은 바이커 재킷, 날씬한 수트, 스웨트셔츠, 봄버 재킷으로 유명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브랜드의 강점은 뭔가요?
NB 테일러링 재킷, 옷감, 어깨선이 강조된 아이템입니다. 어깨에 무늬를 넣곤 하는데 그 부분으로 룩 전체에 균형을 잡는다는 발상이죠. 가죽 바이커 재킷이나 스포티 아이템에 수트 재단 방식을 결합한 것도 대표할 만합니다.
VK 당신은 늘 균일한 수준과 특정 스타일을 고수해왔죠.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취향을 바꿀 필요는 없다”라고 말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NB 보통 20대가 되면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낄 만한 취향을 갖게 돼요. 그 취향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평생 동안 지속됩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어떤 옷을 입을지에 대한 선택은 바뀔 수 있죠. 그래서 저는 디자인할 때 ‘동일한 인물’이 ‘같은 용도’로 입을 만한 ‘다른 옷’을 만들고자 합니다. 일하러 갈 때, 혹은 휴가를 떠날 때도 갖고 싶어 할 만한 옷의 다양한 버전을 보여주는 거죠.
VK 그렇지만 당신은 매 시즌 컬렉션에서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해요. 어떻게 새로움을 더하나요?
NB 제 범위 안에서 경계선 끝까지 밀어붙이는 거죠. 가령 여성복에는 나름의 논리(혹은 공식)가 있습니다. 남성복 요소를 가져왔지만 좀더 새롭고 여성적이어야 해요. 여자의 몸에 매력적으로 어울리는 동시에 보이시한 요소도 지녀야죠. 곧 선보일 프리폴 컬렉션의 레이스-카무플라주가 대표적입니다. 남성복의 카무플라주에 여성적인 레이스를 더한 하이브리드죠. 저는 하이브리드를 신뢰해요. 서로 다른 두 가지를 혼합하면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다고 믿거든요.
VK 당신의 컬렉션은 과거나 지금이나 늘 모던하고 동시대적이에요. 특정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그게 가능한 이유가 뭘까요?
NB 제 목표는 옷장에 오래 두고 입을 만한 옷을 만드는 겁니다. 제가 무채색을 주로 사용하고 유사한 톤을 꾸준히 유지하는 이유죠. 제가 즐겨 쓰는 네이비 블루는 늘 어두운 네이비 블루예요. 그래야 계속 입을 수 있고 몇 년 후에도 다시 꺼내 입을 수 있거든요. 늘 새로워 보이는 이유요? 제가 새로운 것을 원하고 늘 ‘조금 더’ 욕망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엄청나게 옷이 많아요. 그렇지만 늘 좀 더 다른 걸 원하죠. 어떤 부분에 있어 약간 더 나은 걸요. 늘 같은 옷을 보며 더 새롭거나 다른 걸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25년간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건 옷 자체를 바꾸는 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거죠. 하지만 용도의 관점에서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정해진 상황의 틀에 박힌 옷이 아닌, 약간 다른 방식으로 입을 만한 옷을 원하죠. 그래서 왜 이 옷을 만드는지, 어떻게 하면 더 나아 보일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지속적 진화라 할 수 있죠. 그게 제 옷에 새로움을 주는 듯합니다.
VK 그 변화는 늘 통제된 범위 안에서만 이뤄집니다. 왜 극적인 것은 제한하나요?
NB 현실적이어야 하니까요. 극적인 옷을 보고 싶다면 극장에 가면 돼요. 제 옷을 입는 사람들이 스스로 세련되고 쿨하다고 느끼길 바랍니다. 뭔가 새롭고 조금 다르지만, 지나치지 않은 방식으로.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고 할까요.
VK 그렇다면 지금 당신에게 새로운 건 뭐죠?
NB 2016 봄 컬렉션에선 새로운 소재에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제작 방식과 촉감, 형태, 색깔은 기존 방식을 유지했죠. 사실 대부 분은 ‘하이브리드’로 새로움을 더해왔습니다. 브랜드 론칭 후 16년간 매 시즌 두 가지 옷을 혼합했죠. 바이커 재킷과 봄버 재킷, 바이커 재킷과 코트, 드레스 셔츠와 티셔츠 등등. 다시 말해 제 DNA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VK 당신이 시도한 가장 모험적인 디자인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군요.
NB 지난봄 컬렉션! 제 평생 그토록 많은 패턴을 사용한 적은 없었어요. 가끔 프린트를 부분적으로 넣긴 하지만 푸치, 에트로, 미쏘니처럼 전체에 무늬를 넣은 건 처음이었어요. 제 분야가 아니라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닐 바렛 고객과 제 취향에 맞게 적용할지, 또 프린트를 입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공부했죠. 인도네시아의 바틱, 일본의 기모노, 브레톤 스트라이프 등 전 세계 대표 프린트를 가져와 제 방식대로 조합하고 뒤섞었습니다.
VK 젊은 층에 다가가고 싶은 의도는 없었나요? 과거에 마니아층이 두터웠다면 요즘엔 젊은이들 사이에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어요.
NB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기보단 그저 새로운 걸 하고 싶었어요.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건 사실입니다. 저는 늘 한결같았지만 매체에 광고를 싣지 않는 독립 디자이너이기에 대중에게 알려지는 데 시간이 걸린 거라고 생각해요.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점점 고객층이 넓어진 거죠.
VK 당신의 디자인이 시대적으로 앞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NB 브랜드를 시작하기 전, 프라다 남성복 론칭 팀에서 일했습니다. 우리는 프라다의 첫 남성복 컬렉션으로 기존 남성복 시장에 없던 미니멀리즘을 제시했어요. 질 샌더는 우리가 컬렉션을 선보인 다음 해에 데뷔했죠, 우리가 최초였습니다. 해를 거듭하면서 제가 깨달은 건 이거예요. 다른 사람이 당신의 아이디어를 빌릴 수 있지만, 꾸준히 잘해나간다면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보게 돼 있다는 거죠. 저는 모던함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압니다. 그리고 어느 인종, 어느 연령대 남자라도 늘 모던하고 신선해 보여야 한다고 믿죠. 어려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각자 자신의 나이에 맞게 멋져 보이는 게 옳아요.
VK 저도 그 말에 동의해요. 당신은 남자는 늘 남자답게 입어야 한다고 했는데, 여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NB 닐 바렛을 입는 여자는 톰보이입니다. 그래서 약간 남성적 요소를 겸비한 여성적 스타일을 추구하죠. 사실 여자들은 많은 옵션을 가질 수 있어요. 반면 남자들은 늘 남자다워 보여야 하죠. 여자는 남성적이든 여성적이든, 혹은 중성적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게 여자로서 지닐 수 있는 미덕이니까요.
VK 당신은 군복을 제작하던 할아버지에게 많은 걸 배웠다고 말하곤 했죠. 당신의 작업 방식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나요?
NB 디테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과 매우 체계적인 것. 또 정확히 순서대로 정리하고, 모든 디테일과 컷에 신경을 씁니다. 그래야만 재단의 형태, 패턴, 균형이 아주 깨끗한 실루엣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늘 체계적으로 일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가끔은 너무 지나칠 정도죠.
VK 혹시 당신의 성격이 그런 건 아닐까요?
NB 아마도! 혹은 제 열정이 예리한 눈을 통해 드러나는 것일 수 있죠. 누구나 유별난 점이 하나씩 있잖아요? 제 경우엔 그게 날렵한 실루엣에 집착하는 눈인 것 같아요.
VK 일반적인 질문 하나 할게요. 지금 패션계에서 가장 필요한 것과 가장 불필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요?
NB 가장 필요한 건 사고의 유연성.주위의 평가에 열려 있지만 옳고 그름을 따져서 받아들인 뒤 자신의 관점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불필요한 건, 글쎄요. 저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불필요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VK 소셜 미디어는요?
NB 지나치게 많죠. 하지만 그게 현실이에요.
VK 그리고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고요.
NB 명확한 저만의 세계를 구축했으니까요. 제가 하는 일에 대해 확신이 있으니 타인의 평가는 필요 없어요. 저는 스스로 평가합니다. 심각하게 비판적이거든요. 모든 상황이 자신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래서 매일 스스로에게 의문을 제기하죠. 맞게 하고 있는지, 충분히 새로운지, 다음엔 뭘 할지, 옳은 방향인지 등등. 그게 저를 발전시키는 추진력입니다.
VK 마치 군인 같군요!
NB 지극히 영국적인 가정에서 자랐거든요. 몹시 구식 영국 스타일이죠. 전 다른 누구도 아닌 저 자신과 늘 싸웁니다.물론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언제나 분명하게 알고 있죠.
-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CHA HYE KYUNG
- 모델
- 정소현, 김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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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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