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주얼리
그동안 ‘자선’ ‘윤리적’ ‘지속 가능한’이라는 말과 짝을 이룬 건 ‘패션’이다. 그러나 최근 이 말의 새로운 짝으로 ‘주얼리’가 급부상 중. 타인을 위해 빛을 내는 착한 주얼리야말로 2015년 마지막 선물로 충분하다.
지난여름, 서울을 방문한 패션 저널리스트 수지 멘키스는 자신이 만난 이들에게 자그마한 선물 상자를 건넸다. 그 안에는 하트 모양 펜던트가 달린 은색 팔찌가 담겨 있었다. 그 주얼리에 대해 묻자 그녀는 몹시 반가운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암스테르담의 주얼리 브랜드예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여자들이 쉼터로 피신해 이 주얼리를 만들고 있죠. 이걸 사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답니다. 아주 의미 있는 일이죠.” 브랜드 이름은 ‘See Me’. 씨 미의 설립자 카테리나 오키오(Caterina Occhio)는 지난해 피렌체에서 열린 첫 콘데 나스트 럭셔리 컨퍼런스의 연설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새로운 유행의 시작입니다. 럭셔리 마켓의 고객들은 누가 이 제품을 만들고 어디서 만드는지에 대해 질문하죠. 여기서부터 ‘공정한 럭셔리(Fair Luxury)’가 발전합니다.”
오키오의 말처럼 배울 만큼 배운 요즘 사람들은 순전히 취지 때문에 무의미한 제품을 사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구입한 제품이 공정한 과정을 통해 생산되기를 바란다. 이제 재단은 기금 마련을 위해 어설픈 액세서리를 파는 대신 재능 있는 주얼리 디자이너와 협업하고, 주얼리 하우스와 디자이너들은 고객에게 어필하기 위해 윤리적인 과정을 강조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주얼리 디자이너 아니타 고(Anita Ko)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비영리 재단 ‘이매진1데이’를 위해 커피콩 모양의 목걸이를 디자인했다.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최상의 원료인 커피에 초점을 맞췄어요. 재미있고 기발한 것으로 대중에게 취지를 알리고 싶었죠.” 커피콩을 녹인 금에 담갔다 건진 듯한 목걸이는 옐로 골드, 로즈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개당 100만~200만원대를 호가한다. 좋은 취지의 아이템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이 주얼리는 기부를 위한 게 아니다(기부를 위한 제품은 저렴해야 한다는 것 또한 선입견). 우선 커피 마니아인 당신은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들었고, 게다가 치른 돈의 50%는 자동으로 재단에 기부되니 의미 있는 소비의 명분까지 덩달아 생긴 것.
할리우드 A급 배우들의 주얼러로 소문난 로버트 프로콥(Robert Procop)은 자신의 중요한 고객인 안젤리나 졸리와 대화하던 중 전 세계 어려운 아동을 돕는 그녀의 재단을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이 컬렉션의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는 데 합의했어요. 얼마 전엔 드디어 아프가니스탄에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됐죠! 이제 두 번째 학교를 준비 중입니다.” 쿠션 컷 에메랄드와 검은 스피넬 원석이 세팅된 ‘스타일 오브 졸리’ 컬렉션에 이어 프로콥은 최근 브룩 쉴즈와의 협업 컬렉션 ‘레거시 브룩’도 발표했다. 피스당 5,000달러에서 30만 달러에 이르는 주얼리의 수익금은 두 번째 학교를 짓는 데 쓰인다. 주얼리 디자이너 피파 스몰(Pippa Small)의 ‘터쿠아즈 마운틴’ 라인은 아프가니스탄 전통 공예와 수도 카불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터쿠아즈 마운틴 재단’을 위한 컬렉션이다. “아프가니스탄 바다흐샨에서 채굴한 라피스 라줄리를 사용했어요. 기원 전 7세기부터 이 지역에서 써온 원석이죠.” 이 컬렉션은 재단이 후원하는 현지 장인들의 손에 의해 제작된, 고대 유물 같은 전통적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런 움직임에 ‘콧대 높기 이를 데 없는 주얼리 업계에 암행어사라도 등장한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고학력 소비자들은 하이엔드 브랜드에 투명성과 윤리적 행동, 환경보호, 여기에 브랜드의 가치(혹은 명성)까지 기대한다. 쉽게 말해 높은 가격만큼 엄격한 기준에 부합하길 바란다는 것. 맞춤 제작 방식의 영국 주얼리 디자이너 해리엇 켈잘(Harriet Kelsall)은 럭셔리에 대한 정의가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는 부의 과시가 아닙니다. 럭셔리의 의미는 이제 ‘독점(Exclusivity)’이 아닌, ‘포용(Inclusivity)’이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보석에 나만의 의미를 담는 것, 그리고 공정거래로 만든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데서 사람들은 특별함을 느껴요.” 월스트리트 금융 전문가에서 사회 환원 컨셉의 주얼리 디자이너로 변신한 조앤 호니그(Joan Hornig)의 고객 루이스 그리피스가 대표적인 예다. “보석을 살 때마다 제가 아름다운 걸 착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재활 치료 재단을 위해 좋은 일도 한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죠. 처음 보는 사람이 다가와 보석에 대해 물어볼 땐 더더욱!”
얼마 전 한국에 론칭한 주얼리 브랜드 모니카 비나더 역시 이 흐름에 합류했다. “‘#그녀는 내게 영감을 준다’라고 새겨진 프렌드십 팔찌의 판매수익금은 여성들을 위한 국제 여성운동 단체 ‘위민 포 위민 인터내셔널(WfWI)’에 전액 기부돼 분쟁 지역의 여성들을 돕는 데 쓰인다. 사실 이 팔찌는 겉으로 보기엔 비나더의 다른 프렌드십 팔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선택하는 순간 이 팔찌는 특별한 것이 된다. “모든 여성은 삶을 지켜갈 권리가 있고 WfWI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 권리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제공해왔어요. 이 팔찌를 차는 건 존경할 만한 그 행위에 대한 지지와 공동체 의식의 상징입니다.” 그러니 성탄 선물로 이런 주얼리만큼 적당한 게 있을까. 그 주얼리는 작고 반짝이며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데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으니까.
-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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