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가상 시나리오
올해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4인의 필자가 2016년을 내다보며 가상의 시나리오를 보내왔다. 희망적이거나, 절망적이거나. 그래서 일상이 될 2016년 문화·사회 예보도.
대한민국 신년사
새해의 첫날은 늘 그랬듯 대통령의 신년사와 함께 시작할 것이다. 2015년 신년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여는 기반을 다지고,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 하는 통일의 길을 열겠다고 밝혔다. 1년이 지난 현재, 국제신용평가기관 S&P는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이 6년 만에 감소하여 2만7,000달러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북 장관급 회담은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8년째 중단되었고, 지난해에도 북한의 무력 도발과 한국의 강경 대응이 반복되었다. 물론 피부에 가깝게 와 닿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취업 시즌, 여러분이 올해 구직한다면, OECD 통계 자료에 근거한 근무 예상 시간은 연간 2,285시간이다. 세계 1위다. 물론 정규직으로 취직한 경우의 얘기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여러분이 비정규직이 될 확률은 32%다. OECD 평균인 12%의 세 배 정도된다. 정규직 대비 평균임금은 거의 절반이다. 여성분들은 특별히 더 걱정하셔야겠다. 남녀 임금 격차 역시 세계 1위니까 말이다. 32%의 비정규직 비율은 “나만큼은 결코 비정규직이 되지 않을 거야!”라는 결심으로 피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구직에 성공했을 때의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취업자 수 증가 폭이 지난해보다 대략 20만 명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자, 행운을 빈다.
물론 이 수치는 가변적이다. 국회 계류 중인 노동개혁 5대 법안이 통과하여 올 초부터 발효될 수도 있다. 비정규직이나 간접 고용 노동자가 될 확률은 더욱 높아지고, 최대 임금은 고정되고, 연장 근무시간은 늘어날 것이다. 입법 기간이 지나면 4월에는 제20대 총선을 치를 예정이다. 현재 서울 지역구 16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 의석은 40석까지 확대될 것 같다. 이건 내 개인적인 바람이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 민주정책연구원장인 민병두 의원의 예상 수치다.
그래도 이 나라는 여전히 성장 중일 것이다. IMF는 한국의 2016년 경제성장률을 2.7%로 예측했다. 여름이 지나면 연초 신제품을 발매하던 대기업의 어닝 시즌이 돌아온다. “삼성전자, 매출 10조원 달성! 현대자동차, 영업이익 사상 최대!”처럼 해마다 보던 낯익은 기사를 보게 될 것이다. 사원이라면 연말 보너스 시즌에 적절한 보상을 받게 될 테고. 아! 이건 당신이 만약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새 노동개혁안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을 때의 얘기지만. 그래도 함께 버텨보자. 궁금하지 않은가? 내년 대통령 신년사에선 또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말이다. 글 / 손아람(소설가)
새해에 조심해야 할 것 횡단보도, 빚, 자살
새해에 걱정할 필요 없는 것 전쟁, 강도, 복권 당첨
새해에도 불가능한 것 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국가. 2007년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미리 작성해본 2016년 영화 총 결산
이쯤 되면 히어로 복면 금지법을 발의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정치가들이 이해가 갈 지경이다. 마블과 DC는 2016년 한 해 동안 돈이 될 만한 캐릭터는 몽땅 끄집어내 박스 오피스 돌려 막기를 시전했다. 시작은 2월 개봉한 마블의 <데드풀>이었다. 자신이 만화 속 캐릭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32차원 캐릭터 ‘데드풀’은 슈퍼히어로의 세계에 새로운 철학과 위트를 부여했다. ‘캡아’와 아이언맨이 충돌하고 소니에 입양시켰다가 되찾아온 스파이더맨까지 가세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엑스맨> 시리즈의 완결편인 <엑스맨: 아포칼립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정점이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틸다 스윈튼, 매즈 미켈슨이 출연한 <닥터 스트레인지>는 슈퍼히어로 코스튬이 더 이상 연기파 배우들의 금기가 아님을 증명했다. 심지어 <데어데블>(2003)로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벤 애플렉도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배트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았다. 무엇보다 파란을 몰고 온 것은 <수어사이드 스쿼드>다. DC코믹스의 악당들이 특별사면을 대가로 자살 특공대를 결성한다는 내용으로, 자레드 레토가 새로운 조커를 연기하고 마고 로비가 할리 퀸으로 출연했다.
복면을 벗은 악당들도 있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여덟 번째 영화 <헤이트풀8>은 눈보라를 뚫고 산장에 모인 여덟 명의 남녀가 서로에 대한 불신과 증오, 광기 속에 하룻밤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열번째 작품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지만 <헤이트풀8>을 본 관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를 말리고 있다. 지난해 <버드맨>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각본상을 휩쓴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19세기를 배경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하디가 끝장 대결을 펼치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내놓았다. 비평가들은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또 한 번 오스카 트로피를 싹쓸이할 거라고 예측했다. 남우주연상 후보에 네 번이나 올랐지만 매번 낙방한 디카프리오도 이번만큼은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을 기세다.
한편 한국 영화는 연초 <내부자들>이 8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기분좋게 한 해를 시작한 데 이어 정우성, 황정민 주연의 <아수라>, 김지운 감독의 <밀정>,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7년의 밤> 등이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 박찬욱은 <아가씨>로 또 한 번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감독상을 수상했다. <올드보이>(2003)로 심사위원 대상을, <박쥐>(2009)로 심사위원상을 받은 데 이어 세 번째 수상이다. <사도>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이준익 감독은 <동주>를 통해 또 한 번 역사적 인물의 내면을 감성적으로 그려냈다. 지난해 유아인이 그랬듯 이번엔 윤동주 역을 소화한 강하늘이 신드롬을 일으켰다.
2016년 한 해 영화관을 찾은 누적 관객 수는 4년 연속 2억 명을 돌파했다. 브라질 올림픽도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과 편당 최대 관객 수 7,000만 명을 헤아리는 중국 시장 진출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지만 한국 영화 산업의 체질은 점차 안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 / 이숙명(영화 칼럼니스트)
2016년의 신인 김태리
중국을 사랑한 할리우드 <스타 워즈 앤솔로지: 로그 원>의 견자단부터 <렘>의 리빙빙까지
게임보다 영화 <워크래프트>, <어쌔신 크리드> 영화화
여전히 차가운 음악의 계절
일단은 힙합의 강세가 계속된다. 마이크로폰 하나와 비트, 그리고 에둘러 말하지 않는 가사.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일은 없어 보이는 세상을 향한 분노와 혐오를 담아내는데 이만한 그릇이 없다는 점에서 힙합은 상한가의 끝을 점치기 어렵다. 일렉트로닉,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디제잉의 강세도 여전하다. 저성장 시대의 우울함을 떨쳐낼 광란의 파티가 더욱 절실해진다는 기능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을 포함한 모든 예술계의 고민이기도 한 오리지널 창작의 한계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는 힙합의 장점과도 일맥상통하며 두 장르 모두 다양한 협업을 통해 무궁무진한 재창작이 가능하다. 덕분에 그 어떤 장르보다 참신한 ‘이슈와 이벤트’를 가장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이슈와 이벤트라고 말한 건, 음악 팬으로서는 안타깝지만 음악이 문화를 선도하고 트렌드를 만들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인 탓이다. 요즘의 음악은 이슈와 이벤트에 종속되어 있다. 음악이 음악 자체로 승부를 보기 어려운 상황은 더 심화되어 결국 2016년 한국 대중음악계의 키워드도 <무한도전>을 비롯한 몇 개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3대 메이저 기획사는 2015년, 그러니까 본격적인 경기 침체가 닥쳐오기 전에 주요 소속 팀의 정규 앨범을 앞다퉈 거의 다 냈고 미뤄오던 신인 팀을 다 데뷔시켰다. 남은 카드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일단은 큰 투자보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어중간한 중소 기획사에겐 더욱 혹독한 시간이 될 거다. 남미와 아랍 정도로 유지되던 한류의 버블이 붕괴되고, 끝물을 노리고 난립하던 아이돌 시장이 정리되면서 자연스럽게 옥석 가리기가 될 수도 있다. 메이저 시장이 이런 상황이라면, 과연 인디는 꺼지지 않는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글쎄, 솔직히 인디 신이 제일 어려워 보인다. 음악 하고 싶은 어린 친구들은 이제 인디 뮤지션이 되기 이전에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간다. 장래 유망한 원석의 유입 자체가 희박해졌다. 이름난 아티스트들의 행보는 여전히 그들 스스로의 빛남에 의존한다. 매니지먼트 전략의 부재. 자족적이다. 하긴 어쩌겠나. 이런 게 인디인 것을. 그런데 그렇게 해도 경쟁이 되는 팀은 몇 팀 안 된다는 게 문제다. 인디의 태도와 어법에 익숙해지면서 대중도 인디를 표방한 아마추어를 다 가려낼 줄 알게 되었다. 시장은 어렵고, 듣는 귀는 까다롭고, 자본력과 정보력과 기획력은 달리고… 이제 무엇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야말로 Winter is coming! 글 / 윤성현(KBS 라디오 〈심야식당〉 PD)
주목해야 할 공연 (반드시 할 거란 전제로) H.O.T. 데뷔 20주년 콘서트
기대되는 콜라보 장기하 & 아이유
내한이 기대되는 해외 아티스트 유투, 콜드플레이(그저 바랄 뿐)
또 한 번 먹어야 사는 예능
2015년은 다들 먹고 사는 데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예능은 요리하고 먹는 것이 대세였고, 드라마에서는 KBS <프로듀사>처럼 지상파 방송사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사는지 보여줬다. 각 분야의 직장인들이 자신의 ‘꿀팁’을 소개하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백종원이 요리하는 법을 가르치며 시청률을 높이고, 차승원이 tvN <삼시세끼>에서 여행을 떠나 하는 마법 같은 요리에 열광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tvN <응답하라 1988> 역시 사는 게 그렇게 팍팍하지 않았던(또는 않았다고 믿는) 시절, 가족 같은 이웃들이 네 것 내 것 크게 따지지 않고 함께 식사하던 이야기다. 그러니 2016년에도 어떤 식으로든 먹고사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되지 않을까. 먹고사는 문제는 생존이고, 먹는 것을 나누는 것은 풍요인데, 이 두 가지는 지금 한국인들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6년 여름쯤 tvN에서 <응답하라 2002>의 제작을 발표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고, 그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미래의 남편이 섞여 있는 서너 명의 또래 남자들과 월드컵을 응원하면서 치킨과 피자를 쉴 새 없이 먹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요리와 옷 입기의 ‘꿀팁’을 넘어 면접 잘하는 법, 취업 성공 요령을 가르쳐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아니면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막대한 부를 보여준 힙합 뮤지션 도끼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쇼를 찍고,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그의 성공 비법을 강의하거나 전속 계약을 원하는 참가자들을 심사하는 서바이벌 오디션을 여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방송 산업에서 가장 큰 ‘갑’ 중 하나인 중국의 비중은 계속 커질 테니 사극의 주인공이 어린 시절 부모를 모른 채 중국에서 사는 일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은 지금보다 더 재미없어져도 계속 방영될 것이다. 중국에서 인기 있는 <런닝맨>만큼 SBS 예능국을 먹여 살리는 프로그램은 없다. 그렇다면 결론. 데뷔 때부터 먹고사는 것에 투철했고 지금은 더욱더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한 김구라는 2016년에 더 활약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는 어쨌든 시대정신과 가장 부합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유재석은 여전히 신성하다고 할 수 있는 그만의 지위를 지킬 것이다. 프로그램이 잘되든 안 되든, 모든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그의 태도는 이미 흔들리지 않는 어느 위치에 서 있다. 먹고사는 문제의 반대편에는, 그렇게 종교적 신실함으로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염원이 놓일 것이다. 글 / 강명석(웹진 아이즈(ize) 편집장)
주목해야 할 인물 이말년. 시청자는 이제 이말년에게 ‘잼’할 준비가 되었다.
제대로 흥할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 이 프로그램의 포텐셜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다음이 궁금한 드라마 작가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의 도현정 작가
- 에디터
- 조소현
- 일러스트
- JO SUNG HEUM
- 포토그래퍼
- CHA HYE KYUNG, GETTYIMAGES / MULTIB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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