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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사의 손끝에서 탄생한 중독성 있는 향기

2016.03.16

조향사의 손끝에서 탄생한 중독성 있는 향기

세계적인 조향사들의 임무는 단 하나. 사람들이 그것 없이는 외출할 수 없는, 진짜 중독될 만한 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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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 뷰티의 오피움, 디올의 어딕트, 바이 킬리안의 인톡시케이티드. 향수 마니아라면 눈치챘을 것이다. 한번 맡으면 취해버리는 마성의 향수, 즉 유혹의 향이 대세다. 최면에 걸리게 하는 마약 같은 중독은 최신 향수의 가장 강렬한 특징 중 하나다. 그리고 지금 이 같은 요소가 과거 어느 때보다 조향사들을 강렬하게 유혹하고 있다. 아치 글라서, 킬리안 헤네시, 이탈리아 출신의 퍼퓨머 듀오 나소마토 같은 신세대 조향사에게 향으로 최면을 거는 마약 성분은 영감의 원천이다. 프란시스 커정과 게자 쇤은 조향사들이 성취하고 싶어 하는 목표의 핵심을 한 단어로 ‘중독’이라 설명한다. 이건 향수 시장에서 조향사와 홍보 담당자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향수는 무언가 위험한 향이 날수록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법이니까.

“1980년에 출시한 YSL 뷰티의 향수 ‘오피움’이 가장 좋은 예죠.” 조향사이자 역사학자인 로자 도브가 말했다. “‘아편’이란 의미의 이름부터 굉장히 충격적이었죠. 그 향은 훨씬 더 충격적이었지만요. 그것은 뭐랄까, 굉장히 따뜻하면서도 진하고, 관능적인 동시에 음란했습니다. 실제로 그 불법 약물의 향과 흡사하진 않았지만 광고 이미지는 음란함과 퇴폐적인 향락주의를 암시했습니다. 이건 분명히 향수 업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죠.” 그는 “YSL 뷰티가 ‘오피움’의 생산량을 줄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더 갈구하는 ‘중독자’로 만드는 전략을 사용한 소수의 향수 중 하나였다”고 덧붙였다. 따져보면 게자 쇤만큼 이런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이센트릭 몰리큘스(Escentric Molecules)를 탄생시킨 향수 업계의 이단아이자 9년 전 ‘Molecule 01’을 론칭하며 ‘원맨 향수의 혁명’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이 향수는 결코 로맨틱하지 않은 이름의 ‘Iso E Super’라는 순수하고 깔끔한 아로마 분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지금까지 전설적인 향수로 남아 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향수라기보다 ‘어떤 효과’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이 향을 맡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인 중독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향수의 사용자들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향수를 뿌렸는지 질문을 받으며 이 개종자들은 그것 없이 외출한다는 생각에 움찔할 정도로 중독되어 있다. ‘몰리큘 01’은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하비 니콜스와 리버티 등 전 세계 고급 백화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향수 중 하나다.

이 향수의 성공 신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 처음 이 향수를 사용하는 열에 아홉은 그 향을 맡지 못한다. 그래서 향수가 아닌 값비싼 물을 구매한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희미하고 부드러운 달콤한 향이 코끝에 감지된다. 이건 마치 향기 나는 잡음처럼 아주 희미하고 부드러운데 그 이유는 성분 중 하나인 ‘Iso E Super’가 빠른 후각적 피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당신의 코가 이 향에 빠르게 익숙해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다른 향에는 무감각해지죠.” 결론부터 말하면 담배와 가장 유사한 중독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향수다. 흡연자들은 종종 니코틴을 멀리하는 금연 선언을 하지만 알고 보면 이런 다짐이 더 많은 니코틴을 갈구하게 만든다.

스프레이로 분사하는 형태로 선보이는 중독의 신세계. 조향사들에겐 이 얼마나 엄청난 성취인가! “예전에 누군가 제가 만드는 향수를 일컬어 ‘약물’과 같다고 말하더군요.” 조향사 아치 글라서는 유명 인사들과 패션 하우스를 위해 다양한 향수를 만들어왔다. 지금은 ‘퍼퓸 스토리(The Perfumer’s Story)’라는 이름의 시그니처 컬렉션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그녀는 향수와 쾌락의 상관관계에 매료되어 있음을 고백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읽고 그들이 무슨 향을 사랑하게 될지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그녀의 놀라운 능력에서 비롯된다. “아치는 뭐랄까, 특별한 마법을 지니고 있어요. 어떤 향의 특징적인 핵심을 제대로 포착해냅니다.” 조니 뎁이 말했다. 조니 뎁을 비롯해 주드 로와 헬레나 본햄 카터는 종종 그녀에게 영화 배역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향수를 만들어달라고 의뢰한다. “향수 없이는 완전히 옷을 갖춰 입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그래서 향수를 뿌리지 않은 채론 영화 세트장에 절대 가지 않습니다.” 본햄 카터는 말한다. “그것은 일종의 보호막,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갑옷, 혹은 감정의 기준과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죠.” 그녀의 컬렉션 중 하나는 쾌락 추구를 새로운 영역으로 가져갔다. “처음엔 코카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어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C’라고 부르죠.” 페퍼, 네롤리, 베티베르, 화이트 머스크 등 향수의 노트는 아주 친근하다. 그러나 그 효과는 꽤나 비범한데 처음엔 톡 쏘고, 곧이어 알데히드 냄새를 풍긴다. 그래서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온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 것이다. 그녀에게 후각적인 영감을 주는 물질은 왜 하필 불법 약물이었을까? 사실이야 어떻든 이 향수는 이미 엄청난 팬을 확보했다. 그리고 그녀 주위에 있는 숱한 조언자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아서의 팬들은 다른 향수의 10배나 되는 양을 기꺼이 주문했다.

마약에서 영감을 얻는 또 다른 조향사는 킬리안 헤네시다. 저명한 코냑 제조사의 손자인 그는 럭셔리와 중독이라는 두 가지 분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최근 선보인 ‘바이 킬리안’ 라인의 세 가지 제품은 제대로 중독성 있는 향수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이를 위해 캐비아(Light My Fire), 터키 커피(Intoxicated), 그리고 몬테크리스토 시가(Smoke for the Soul)를 이용했다. ‘스모크 포 더 소울(Smoke for the Soul)’은 놀라운 발명품이다. 우아하면서도 살짝 투박한 향을 머금은 이 향수는 담배 연기처럼 소용돌이치면서 순식간에 형태를 바꾸는 느낌을 전한다. 다시 말해 한순간 야수처럼 시가의 거칠고 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교회에서 피우는 향의 달콤함이 느껴진다. 그는 이 향수에 대해 마리화나로 인한 환각 상태를 강조하며 담배, 자작나무, 캐시미어 우즈 등 마음 상태를 바꿔주는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고 설명한다.

아티스트들과 화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술인 압생트(Absinthe)는 헤네시의 향수 ‘테이스트 오브 헤븐’을 통해 후각적인 변신을 거듭했다. 이 향수에서는 압생트 특유의 터키시 로즈, 라벤더, 그리고 버번 바닐라가 결합된 향이 난다. 헤네시는 그런 물질의 맛을 후각적으로 해석해내는 기술적인 도전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더 큰 도전을 품고 있다. 그는 향수를 유혹의 영역을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 상태를 바꾸게 만드는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싶다고 고백한다. “향수는 초월적일 수 있습니다. 지난 컬렉션을 위해 ‘유혹’에 대해 연구했는데 그다음 단계는 자연스럽게 ‘중독’에 대한 것이었어요. 무언가 중독성을 일으키려면 위험한 요소가 들어가야 해요. 그래서 말 그대로 누군가를 향수에 중독시키기 위해 일종의 독이 될 수 있는 후각적인 조화를 찾아내야 했습니다. 당신을 죽이는 모든 것은 당신을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이는 제품 홍보에 소극적인 향수 하우스 나소마토를 이끌고 있는 이태리 듀오도 공감하는 정서다. 그들은 향수 재료 공개를 일절 거부했다. 그리고 그 향을 묘사하기보다 향의 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 했다. 그들은 중독성 강하고 불법적인 것을 거듭 강조하며 이 회사의 베스트셀러인 블랙 아프가노에 대해 “일시적인 행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시도의 결과물”이라고 표현한다. 반면 압생트는 지나친 흥분과 무책임한 행동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블랙 아프가노는 바이 킬리안의 ‘스모크 포 더 소울’과 같은 가죽 향과 스모키한 향(Incense)이 나지만 압생트는 전혀 다르다. 순수한 알코올의 깨끗하고 강한 향이지, 병원 냄새에 가까운 향은 전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땅 냄새, 신록의 향, 무성하고 뭔가 가차 없을 정도로 낙천적이다.

나소마토의 향수 재료 ‘해시시(인도 대마)’가 세관에 묶여 뒤로 미뤄진 그 모든 생산과 관련된 이야기는 YSL 뷰티 ‘오피움’의 경우처럼 향수의 악명을 더욱 드높인다. 그러나 나소마토의 가장 흥미로운 향수로 말하자면 약물과 관련된 역설적인 이름의 ‘나코틱 V’을 빼놓을 수 없다. 이것은 나소마토 라인 중 가장 강렬한 플로럴 향수로 지금 그들이 흥미를 가진 중독은 ‘여성의 성적 파워의 중독적인 강렬함’이다. 그리고 그것은 후각적으로 멋지게 구상된 작품이다. 마치 프레데릭 말의 ‘카날 플라워’처럼 여성의 매력과 거의 동물적인 냄새가 나는 월하향의 관계를 탐색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독성을 높이기 위해선 마약성이 꼭 필요한 걸까? 프란시스 커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이 시대에 가장 재능 있는 조향사 중 한 사람으로 26세의 어린 나이에 장 폴 고티에의 ‘르 말’과 나르시소 로드리게즈의 ‘포 허’를 탄생시키며 상업적인 성공을 이뤘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향수 라인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 첫 번째 작품인 ‘아쿠아 유니버셜’은 앞서 묘사한 깊고 진한 묘약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가벼움의 정석으로 베르가모트와 시칠리안 레몬을 톱 노트로 사용해 거의 코롱 같은 가벼운 느낌이 나는 반짝거리는 사랑스러운 향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재스민과 장미의 완벽한 아름다움이 있다. 영리한 점은 농도이다. 커정은 향을 아주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 ‘아쿠아 유니버셜 포르테’에 약 40%의 농축액을 쓴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 역시 백화점 선반을 텅 비게 만들고 향수에 대한 수다로 방 안을 가득 메우게 만든 중독을 불러왔다. “제가 보기에 중독은 아주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는 파리에 있는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신선한 향에 중독되고 어떤 사람은 플로럴 향에 중독됩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아쿠아 유니버셜’과 자신들과의 관계를 마치 약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걸 들었어요.” 커정에게 그 말은 최고의 칭찬이다. “중독될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개념이 향수의 핵심입니다. 원재료를 뛰어넘어 일종의 연금술을 성취했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마법의 순간에 도달하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입니다.”

향수에 대해 열정적인 사람들을 위해 조향사 린 해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제게 맞춤 향수를 주문하는 고객들은 분명 중독적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그녀의 새로운 사업인 ‘퍼퓨머 H’는 맞춤 서비스와 2년에 한 번씩 선보이는 다섯 개의 한정판 향수 컬렉션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자신의 향수를 중세 약재상의 신비로운 용액을 떠올리게 하는 날씬한 유리 마개가 달린 평범한 색유리병에 담아 팔기로 마음먹었다. “고객들이 궁극의 향수를 찾아야 한다는 결심에 자극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발견하면 그것이 어느 정도 그들을 완벽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위치한 자택에서 소규모 향수 사업을 운영하는 조향사 겸 작가인 맨디 애프텔. 그는 향수가 중독성이 있는지 없는지 논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분명 다른 때 같으면 드러나지 않을 창의적인 충동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저는 활력 넘치는 삶을 살아왔어요.” 그녀는 스티비 닉스 같은 보헤미안이다. 60년대 조슈아 트리에 살면서 뮤지션들과 어울렸다(그녀는 도노반과 그의 아내와 함께 살았으며 나중에 친구인 브라이언 존스의 전기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저는 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이 모두 쾌락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향수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한 쾌락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쓸모 있는 게 아니니까요. 향수는 당신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 말고는 쓸모가 없어요. 그래서 그것은 궁극의 쾌락이며 그보다 더 중독적인 것은 없습니다.”

‘아뜰리에 퍼퓸’ 레이블에서 나오는 그녀의 향수는 용량이 작고 모두 천연 성분이며 공들여 그린 식물 드로잉을 떠올리게 하는 디테일에 신경을 쓴 아주 정교한 작품이다. 그녀는 음식 노트와 꽃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야생 버섯의 질박함을 월하향의 관능적인 요염함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물버섯(Cepe)과 월하향(Tuberose)을 사용했고 나머지 잔향은 무화과와 카카오에 집중했다. 자연스러운 이들 향은 겨우 2시간 정도만 지속되기 때문에 다시 뿌려야 한다. 그녀는 그것을 아주 유념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향수는 직접적으로 뇌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언어와 연관되지 않은 쾌락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관능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경험합니다.”

로자 도브의 생각처럼 그것은 향수와 중독의 상호작용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해주는 감정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후각이 발달한 이유는 음식을 찾고 위험에서 탈출하고 배우자를 찾기 위해서였어요. 현대에는 향수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향수의 멋진 점은 우리가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칠 효과를 조작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태를 바꿔주는 속성을 가진 인공적인 물질은 약물이며 향수는 그것에 대한 후각적인 해석이다.

    니콜라 몰튼(Nicola Moulton)
    포토그래퍼
    JULIA HE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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