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라프, 헬무트, 마르지엘라의 두 번째 전성기

2016.03.16

라프, 헬무트, 마르지엘라의 두 번째 전성기

1월 초, 어느 빈티지 판매 전문 사이트에 라프 시몬스 2003년 가을 컬렉션의 파카 세 벌이 올라왔다.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새빌(Peter Saville)이 작업한 뉴 오더, OMD, 조이 디비전 등의 앨범 커버가 등에 새겨진 세 벌의 가격은 무려 2만 달러. 13년 전 빈티지 파카가 꾸뛰르 드레스 가격을 호가한다는 이 뉴스는 인터넷에서 바로 화제가 됐다.

“어쩌면 이건 지난 10월 디올과 결별을 선언한 라프 시몬스를 향한 열기를 증명하는지 모른다.” 미국 <보그>는 이 엄청난 가격의 물건을 두고 이렇게 해석했다. “업계를 뒤흔든 그 뉴스 이후, 그는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디자이너가 됐고, 그의 남성복에 대한 2차 시장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 중이다.” 그리고 이 뉴스에서는 지금 패션계에 감도는 새 유행을 감지할 수 있다. 컬트적 위치에 오른 소수 디자이너의 빈티지 물건을 향한 인기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

그렇다면 지금 유행하는 빈티지란 대체 뭘까? 50년대 샤넬 트위드 재킷? 70년대 이브 생 로랑 블라우스? 혹은 20년대 유럽 고성에 사는 아가씨가 입었을 법한 레이스 드레스? 그게 전통적 빈티지였다면, 2016년형 빈티지는 새 카테고리로 묶인다. 라프 시몬스, 마르탱 마르지엘라, 헬무트 랭, 언더커버, 요지 야마모토, 그리고 꼼데가르쏭처럼 영혼이 담긴 특별한 물건이야말로 제2의 빈티지다. 여기에 톰 포드의 구찌, 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 등도 포함된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열풍이라 할 만큼 인기를 끈 디자이너의 컬렉션만이 명예의전당에 오를 수 있다.

지금 불고 있는 새 빈티지를 둘러싼 열풍의 중심에는 데이비드 카사반트(David Casavant)가 있다. 이 스물네 살짜리 스타일리스트는 현재 패션 쪽 사람들이 비밀처럼 숨겨둔 빈티지 보물 창고의 주인이다. 라프 시몬스 2002년 컬렉션(‘버지니아 크리퍼’)부터 80년대 헬무트 랭 초기작까지 10대 시절부터 모은 ‘패션 명작’이 그의 아파트를 채우고 있다. 그 가운데 화제가 된 라프 시몬스 파카도 있다.

“계속 찾아야 합니다. 이베이를 체크하고 매주 여러 가게를 방문해야 하죠. 또 전 세계에 있는 판매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그래야 좋은 물건을 싼값에 구할 수 있어요.” 이런 노력 덕분에 그는 전설로 남은 헬무트 랭 ‘니플 탱크’를 획득할 수 있었다.

최근 빈티지 패션 게임에 빠진 건 한국의 GD다. 지난 꾸뛰르 기간에 파리 클럽에서 입은 라프 시몬스 티셔츠, 공항에서 포착된 헬무트 랭 파카 등 모두가 빈티지. 몸에 걸치는 모든 걸 감시 당하는 그가 요즘엔 시몬스와 랭의 빈티지에 매료된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GD는 어떤 경로로 이토록 구하기 힘든 빈티지를 손에 넣는 걸까? “어느 개인 딜러와 긴밀하게 연락하고 지냅니다. 우리가 좋아할 만한 물건이 시장에 나오면, 맨 먼저 우리에게 연락하죠.”

그렇다면 10년 뒤를 위해 지금부터 빈티지 수집에 나선다면 어떤 디자이너가 유효할까? 라프 시몬스 남성복은 늘 환영받는 아이템. 하지만 평범한 수트 대신 컬렉션에 등장한 ‘쇼피스’를 구하는 게 관건이다. 에디 슬리먼의 생로랑 역시 아울렛에서도 살 수 있는 실크 블라우스가 아닌, 쇼에 나온 자수 케이프여야 한다. 기대되는 또 하나는 베트멍이다. 그렇다면 전문가 카사반트의 추천은? “저는 지금 크랙 그린을 모으고 있습니다. 런던 남성복 디자이너이자 제 친구인 그레이스 웨일즈 보너 역시 환상적이죠. 새롭고 젊은 디자이너 없이 빈티지는 생기지 않으니까요.”

빈티지 쇼핑의 숨은 고객은 바로 디자이너다. 밀라노의 어느 거대 패션 재벌은 빈티지를 구하는 직원을 따로 두는가 하면, 쿨한 태도로 유명한 어느 유럽 브랜드 역시 시즌을 준비할 때 빈티지를 긁어모아 품평회를 가진다.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마리 아멜리 소베는 도쿄에 갈 때 반드시 헬무트 랭이 가득한 어느 빈티지 매장에 들러 쇼핑하고, LA와 뉴욕을 오가는 빈티지 팝업 스토어 ‘A Current Affair’에서는 젊은 디자이너들을 다 만날 수 있다. 라프 시몬스조차 디올 쇼가 끝나고 랭의 빈티지 데님 재킷을 입고 나와 화제가 되지 않았나.

“패션 역사는 결코 똑같이 반복되는 법이 없다.” 미국 <보그>의 사라 무어는 90년대 빈티지가 인기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하지만 새로 운 세대는 마르지엘라와 헬무트가 남긴 스트리트 시크의 가치를 대체하 는 뭔가를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는 누구나 추측할 수 있다.” 남들과 다르고 싶은 슈퍼스타의 스타일을 완성하고, 현재 패션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는 90년대와 2000년대 초. 케케묵은 바이어스컷 드레스가 아닌, 캐주얼하고 새로운 멋을 설파하던 당시 패션을 둘러싼 게임은 당분간 계속된다.

    에디터
    손기호
    포토그래퍼
    INDIGITAL, GETTY IMAGES / MULTIBITS,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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