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업의 전형을 깨고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뮤지션들의 예술적 공동체와 이들의 창조적인 움직임! 꿈과 이상을 공유하는 이들의 이야기와 한국 음악 신의 오늘을 〈보그〉의 시각으로 포착했다.
SWALLO SEASON
건축 사무소, 인디 레이블과 함께 씨티알이 운영 중인 제비다방은 밤이 되면 ‘취한 제비’로 간판을 바꿔 달고 새벽이 올 때까지 기타를 튕긴다. 정해진 관람료는 없다.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만큼 모금함에 돈을 넣는 식이다. 제비 다방 역대 최다 모금 3위 안에 드는 연남동 덤앤머더는 6월 발매될 이번 컴필레이션 앨범의 수록곡 작업을 이제 막 끝냈다. “노래 제목이오? ‘니네 엄마한테 물어봐.’ 진짜예요.” 싱거운 농담과 기막힌 상상이 현실화되는 곳. 21세기 제비가 우리에게 건넨 건 사라져가 는 낭만의 씨앗이다. (왼쪽 위부터)제비다방 최다 공연 기록을 세운 정소휘, 연남동에 동명의 칵테일 바(무드살롱)를 열었지만 공연은 이곳에서만 한다는 무드살롱의 염진실, 이정효, 박상흠, 유연식, 정혜원, MBC <무한도전>에 이어 <라디오스타>까지 접수한 연남동 덤앤더머 황의준과 김태진, 제비다방에서 첫 공연을 한 히든 플라스틱의 MK, 루나율, 크랜. 중앙은 씨티알싸운드 소속 뮤지션 곽푸른하늘 그리고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조까를로스.
CAPTAIN ROCK FESTIVAL
홍대 3대 명절로 불리는 크라잉넛 한경록의 생일 파티 현장. 수백 명의 뮤지션과 음악 평론가, 공연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해 20주년을 맞은 한국 인디 신과 크라잉넛은 나이가 같지만 한경록의 생일은 매년 열여덟 번째다.
홍대 앞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3대 명절이 있다. 크리스마스와 할로윈 그리고 ‘경록절’이다. 국내 펑크 문화와 맥을 같이하는 21년 차 펑크 록 밴드 크라잉넛 한경록의 생일 파티는 그야말로 1년에 단 한 번뿐인 인디 음악계의 성대한 잔치다.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그 시작은 미약했다.
2005년 군에서 제대한 그는 자신의 생일을 핑계 삼아 단골 술집을 통째로 빌렸다.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들어와 공짜로 먹고 즐길 수 있었다. 뮤지션들은 무료 공연으로 술값을 대신했고 밤새도록 즉흥 잼 연주가 펼쳐졌다. 규칙은 단 하나. 모든 비용은 한경록이 지불한다는 것. 그때부터 매년 2월 11일은 명절만큼이나 기다려지는 특별한 날이 되었다.
올해는 그 규모가 더욱 커졌다. 캡틴락의 열여덟 번째 생일 파티(그는 영원한 18세다)가 열리던 날, 서교동 예스24무브홀엔 5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60만cc의 맥주와 위스키는 자정이 되기 전에 모두 동이 났고, 그 열기는 한여름 록 페스티벌을 방불케 했다. MC 프라임의 사회로 무대에 오른 크라잉넛, 더 모노톤즈, 갤럭시 익스프레스, 칵스 등은 어느 때보다 열정적이었다. 캡틴락은 벌써부터 내년 생일잔치를 고민한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나로 인해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그뿐입니다.”
UNLIMITED WORKS
빈지노의 <브레이크(Break)> 뮤직비디오를 본 사람이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궁금증이 하나 있을 것이다. ‘빈지노 뒤에서 서로 머리가 깨져라 부딪치는 두 친구는 누구일까?’ 바로 빈지노와 함께 ‘아이앱 스튜디오(IAB Studio)’를 운영하며 새로운 작업으로 자신들의 한계를 (가사처럼) “깨부수고 싶은” 김한준, 신동민이다.
조소를 전공한 신동민은 직접 세트를 만든다. <팔당댐> 작업 때는 여자 머리카락이 물이 흐르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박스와 파란색 가발을 이용해 촬영을 했다. 빈지노의 <어쩌라고> 아트 필름에 등장한 거대한 분홍색 싱크홀도 실물 모형으로 완성한 것이다. 김한준은 패션 브랜드 ‘엔조 블루스’와 협업해 자신의 드로잉이 프린트된 옷을 만들기도 했다. 각자 따로 떼어놓아도 자기 몫을 톡톡히 하는데, 셋이 모이면 어떤 시너지가 날지 궁금했다. 빈지노의 답은 이렇다. “(동민과 한준은) 뮤지션이 아니지만, 제가 음악 작업을 하다 막힐 때 전혀 다른 방향의 답변을 제시해줘요. 작업적인 부분 말고도, 인간관계를 배우죠. 아무리 가까운 친구고, 같이 일하는 동료지만 서로 간의 관계에 대해 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까지 음악과 관련된 비주얼 작업을 해왔는데, 여러 가지 장르를 시도해보고 싶어요. 지금도 패션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 중이에요.” 아이앱 스튜디오는 자신들이 구체적으로 그리는 방향은 아직 없다고, 그렇다고 누군가를 따라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저희 스튜디오의 이름(‘I’ve Always Been’을 줄인 IAB)처럼, 저희도 하던 걸 하다 보니까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진거죠. ” 빈지노도 동의한다. “해오던 걸 계속할 수 있으려면, 결국 처음의 태도가 변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많은 아티스트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변하는 걸 봐왔어요. ‘리얼함’을 지키고 싶어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에 우리를 맞추지 않고요.”
아이앱 스튜디오는 디자이너 김한준과 뮤지션 빈지노, 조소를 전공한 신동민으로 구성된 젊은 아티스트 집단이다. 음악과 미술을 매개로 앨범 아트워크부터 패션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까지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