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눈동자까지 스타일링하는 시대

2016.05.02

눈동자까지 스타일링하는 시대

눈동자 색에 메이크업을 맞추고 콘택트렌즈로 홍채까지 스타일링하는 시대. 대세는 입맞춤보다 섹시한 ‘눈맞춤’이다.

눈동자 색에 메이크업을 맞추고 콘택트렌즈로 홍채까지 스타일링하는 시대. 대세는 입맞춤보다 섹시한 ‘눈맞춤’이다.

2005년 <뉴욕타임스>에 독특한 이벤트 소개기사가 실렸다. 낯선 남녀가 모여 앉아 서로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일명 ‘눈맞춤 파티’에 기자가 직접 참여한 뒤 후기를 게재한 것이다. 진행 규칙은 간단하다. “어디 사세요” “전공은 뭐죠?”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시는지?” 같은 ‘면접 대화’를 완전히 생략한 채 그저 말없이 3분 동안 뚫어져라 서로의 눈만 바라본다. 파트너를 바꿔가며 같은 방식으로 시선을 교환한 후 마지막엔 그중 가장 ‘필’이 온 상대와 커플을 이룬다. 말 그대로 눈을 맞춰 ‘눈이 맞는’ 단체 미팅은 이후 CNN, BBC, 연합뉴스 등에서 대서특필하며 미국 전역에 유행처럼 번졌다. 이 기발한 파티의 창시자는 저널리스트 마이클 엘스버그. 그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처음 만난 사람의 출신지와 직업 같은 정보는 서로를 파악하는 데 분명 필요하죠. 하지만 이런 호구조사만으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란 어렵지 않을까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눈맞춤이었어요.” 그는 오랫동안 취미로 살사 댄스를 춰왔고 매력적인 여성 파트너의 공통점을 되새겨보니 외모보다 남다른 눈빛이 떠올랐다. 아무리 박색이라도 눈이 살아 있다면 춤을 추는 내내 행복했다. “짧은 시간에 낯선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할 때 눈맞춤보다 강한 무기는 없음을 몸소 체험한 거죠.”

그러고 보니 일찍부터 눈맞춤을 탐구하며 나에게 그 중요성을 역설한 사람이 더 있다. 사진작가 조세현이다. “모든 패션지 커버 모델이 카메라와 눈을 맞추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독자와의 만남에 힘을 싣기 위해서죠.” 20년 표지 사진 인생, 아이 컨택의 장인으로 불리는 그의 스튜디오가 총선 후보자들의 은밀한 방문으로 북적대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포스터 한 장에 영혼을 담아 국민에게 구애하는 입장이니까). 눈맞춤 기사를 준비하는 나에게 조세현은 자신의 철학을 구현한 <아이 콘택트: 눈빛>전을 선공개했다. 언더스탠드 애비뉴 전시장에서 이민호, 김수현, EXO 등 ‘한 눈빛’ 하는 스타 30명, 60개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이건 눈빛전이 아니고 ‘심쿵전’이구나 싶었다. 눈빛이 아우라를 만든다는 사실을 스타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가수들이 무대에 선 자신의 모습을 모니터하며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도 카메라와의 아이 컨택입니다”라고 SM엔터테인먼트 홍보팀은 말한다. 적게는 네다섯, 많게는 열댓 명이 무리를 지어 데뷔하는 아이돌, 그중 한 멤버가 대중에게 기억에 남는 눈빛을 쏠 기회는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 몇 초 와중에도 소년 소녀들은 쓰러지고 스타는 탄생한다.

이처럼 마음을 흔드는 눈맞춤의 힘, 그 중심에는 눈동자가 자리한다. 보디랭귀지 전문가 중에는 ‘감정을 전달하는 건 눈동자가 아니라 눈주변의 근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학자들 대부분은 눈동자의 형, 색, 빛 그 자체가 이미 많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설명이 필요 없는 진화론자, 찰스 다윈도 눈동자 연구자 중 한 명. 그의 저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읽다 보면 동공에 대한 구절을 자주 마주치게된다. 예를 들어 “분노를 느낄 때는 눈이 번들거리며 충혈될 듯 튀어나와 보인다. 정맥이 팽창할 때처럼 피가 머리로 쏠리기 때문이다”라거나 “공포를 느끼면 눈의 홍채를 둘러싼 흰자위 부분이 커진다”처럼 감정에 따른 눈동자의 형태 변화가 세세히 기술돼 있다. 우리가 눈을 보고 상대방의 놀람, 분노, 호감, 기쁨, 혐오 등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건 이렇듯 뇌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눈동자 덕분이다.

사회신경학자 대니얼 골먼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눈을 맞추면 서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남녀의 눈이 맞는 낭만적인 순간을 신경학적 측면에서 설명해볼까요? 그건 그 둘의 안와 전두엽 부위가 서로 연결됐다는 뜻이에요.” 안와 전두엽은 사회적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영역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고 그들의 행동을 해석하여 특정인에 대한 호불호를 판단하는 지점이다. 그러니 그의 설명대로라면 눈동자를 통해 서로 얽혀들었다는 건 교감하고 공감하며 호감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연애의 시작이 안와 전두엽의 얽힘이라니! 이보다 더 ‘뇌섹한’ 사랑이 또 있겠나.

눈동자의 재구성

그렇다면 눈동자는 무엇으로 구성될까? 형태부터 살펴보자. 언뜻 동글동글 다 똑같아 보이겠지만 사실 크기와 테두리의 또렷함은 손가락 지문처럼 다르다. 눈맞춤에 유리한 형태는 크고 또렷한 것. 강아지처럼 선하고 아이처럼 순진해 보이기 때문이다. 어려 보이는 건 덤이다. 사실 큰 동공에 대한 선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중세 시대 귀족 레이디들은 홍채 크기를 키워 매혹적으로 보이고자 눈에 벨라도나라는 가짓과 식물의 즙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벨라도나에는 부교감 신경 억제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것을 눈에 넣으면 동공이 살짝 풀리듯 커지면서 섹시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치장. 사실 벨라도나는 너무 자주 눈에 사용하면 실명에 이를 수 있고, 소량 섭취만으로도 죽을 수 있는 맹독성 식물이었다. 목숨 걸고 눈동자를 키우던 옛날 여자들에 비하면 단숨에 변신이 가능한 서클 렌즈가 존재하는 시대이니 우리는 행운아일지 모른다.

내 생각에 서클 렌즈의 장점은 크기보다 테두리에 있는 것 같다. 대인 관계에서 매력을 어필할 때 중요한 건 또렷한 동공 테두리, 즉 서클링이라는 연구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홍채를 감싸는 둥근 경계 부분을 ‘서클링’이라 하는데, 이는 나이가 들거나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 점점 흐릿해진다(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눈동자까지 혼탁해 보이다니). 뒤집어 생각하면 또렷한 서클링은 젊음과 활력의 상징이자 호감 가는 인상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인 셈. 이를 뒷받침하는 재미있는 연구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인지과학부 대런 페섹 연구팀의 ‘같은 얼굴 다른 눈동자 실험’이 그것이다. 동일한 인물의 사진을 두 장 준비하되 한쪽은 포토샵으로 눈동자 테두리를 더 또렷하게 만든다. 그렇게 80쌍의 얼굴을 두고 선호도를 조사해보니 결과는 또렷한 서클링의 완승. 남녀 불문 45명의 참가자 전원이 포토샵한 눈동자 쪽 얼굴을 선호했다.

빛은 또 어떤가. 만화가들이 미녀를 묘사할 때 흔히 눈에 다이아몬드 모양의 플래시를 그려 넣곤 하는데 이건 수분감에 대한 2차원적 구현이다. 흔히 우리는 흐리멍덩하고 생기 없이 뿌연 눈을 두고 썩은 동태의 그것에 비유하곤 하지 않나. 죽은 눈에는 물기와 광채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다윈식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눈의 반짝임은 윤근의 수축과 추켜올린 볼의 압력으로 인해 눈이 긴장하는 것이 원인이다. 또 즐거움으로 인해 오는 흥분 때문에 혈액순환이 빨라지면 안구가 혈류와 기타 액체로 가득 차는데 이것이 광채로 발현되는 것. 반대로 순환이 느려지면 눈도 활기를 잃는다.” 혹시 당신이 계속 말을 나누고 싶고 함께 일하고 싶고 한집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있나? 그의 눈을 떠올라보라. 눈동자가 물기로 반들반들할 것이다. 그의 눈에 고인 찰랑한 수분감이 빛을 반사할 때 다이아몬드 모양의 플래시가 반짝 빛났고 아마 그 광휘에 기꺼이 당신은 안와 전두엽을 내어놓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색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사실 내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을 부르는 별명이 따로 있는데 바로 ‘눈동자 컬렉터’다. 실제로 그녀의 휴대폰 사진첩 중 한 폴더에는 수많은 한국 여자의 눈동자가 저장돼있다. 눈 모양이 아니라 눈동자를 주로 찍어놓은 이 기이한 컬렉션을 처음 봤을 때는 의아함이 앞섰다. 이유를 묻자 그녀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눈동자 색을 연구 중이라는 것. 동양인 눈동자 색이 다 똑같은 검정이니 뭐 그리 다르겠냐 싶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얘기다. “관찰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 눈동자 색은 크게 두 가지 색으로 나눌 수 있어요. 짙은 적갈색과 밝은 브라운. 그리고 대개 머리카락의 색 또한 눈동자 색과 톤을 같이하더라고요.” 미묘한 차이 같지만 이게 메이크업과 만나면 큰 차이를 만든다. 그녀는 “자신만의 고유색을 찾아 거기에 포함된 색으로 메이크업하면 미모가 확 살아나요”라고 설명한다. “짙은 적갈색 눈동자를 가졌다면 레드와 그린을 바탕으로 하는 컬러가 잘 어울려요. 핑크, 민트, 버건디, 청록 같은 것이죠. 상대적으로 밝은 브라운 컬러의 눈동자를 가졌다면 주황색과 파란색이 바탕이 되는 색을 고르세요. 코럴, 밝은 하늘색 같은 것이 좋겠죠.” 그녀는 머리를 염색할 때도, 쇼핑을 할 때도 앞의 눈동자의 색 이론을 응용해보라고 덧붙인다. “눈동자의 기본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변주를 시도하면 아무도 모르게, 미묘한 매력 상승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20시간 지속되는 수분 팩으로 편안한 착용감을 돕는 뉴 원데이 아큐브 디파인.
1 서클 라인이 선명하고 또렷한 ‘액센트 스타일’.
2 섬세한 빗살무늬로 깊이감을 표현하는 ‘비비드 스타일’.
3 회색 서클과 골드 패턴의 조합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내츄럴 샤인’.

동공 스타일링의 시대

요즘 진짜 대세, 실세 스타를 가리려면 브랜드가 그녀의 눈동자에 얼마를 투자했는지 보라는 말이 있다. 렌즈 광고를 하고 있느냐는 뜻이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미녀가 최대 인테리어였던 안경점에 언제부턴가 낯선 입간판이 서기 시작했고, 그 등신대는 이민정, 한효주, 전지현을 거쳐 지금은 설현에 이르렀다. 브랜드가 스타의 눈동자에 돈을 지불하기 시작했다는 건 렌즈가 스타일과 쇼핑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기존의 시력 교정용 콘택트렌즈는 그저 건강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눈이 나쁘면 끼고 아니면 말고. 하지만 지금 신사역 앞에서 늘씬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설현은 “저와 안구도 공유하세요”라고 말한다. 그녀와 눈 맞추고 나면 홍채 쇼핑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반짝반짝 또렷한 눈동자를 하고.

사실 스타일링의 일환으로 렌즈를 가장 자주 활용하는 건 아이돌 가수다. “아이돌 그룹의 무대 공연에 있어 눈동자 색를 바꾸는 컬러 렌즈는 효과적인 이미지 변신 도구 중 하나입니다.” SM엔터테인먼트 홍보팀의 설명이다. 화보 촬영은 물론 본인의 브랜드 광고 촬영장에서도 컬러 렌즈를 사용하는 정샘물은 홍채 스타일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피사체가 원래 모습과 좀 다르게, 혹은 다른 화보에서는 보지 못한 모습으로 보였으면 할 때 자주 사용해요. 특히 판타지 컨셉이라면 더더욱. 어떤 메이크업 색과 매치하느냐에 따라 뻔하지 않은 크리에이티브가 탄생하거든요.”

반면 배우들에게 서클 렌즈는 다소 민감한 영역이다. 잘못하면 ‘사극 서클 렌즈’ 같은 논란에 휩싸이기 십상이니까. 대신 그들은 좀더 여우같이 활용한다. 브라운관보다 오히려 사석에서 서클 렌즈를 착용하는 것이다. 완전 생얼인데 자세히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서클 렌즈를 끼고 있는 식. 그들에게 서클 렌즈란 새로운 BB크림이다. 맨 얼굴과 환상의 궁합을 이루며 티 나지 않게 예뻐진다. 지름이 큰 서클 렌즈, 그래서 ‘나 렌즈 꼈소!’ 하는 디자인은 구식이다. 아큐브 마케팅팀 김지현 대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요즘은 연령을 불문하고 내추럴이 대세거든요. 개발자들도 이런 소비자 니즈에 맞게 움직일 수밖에요. 낀 듯 안 낀 듯 자연스러운 컬러와 디자인을 개발해 선보이고 있고 그럴수록 판매율이 좋아요.”

실제로 아큐브는 지난해 인간의 홍채와 가장 유사한 디자인에, 수분감이 20시간 이상 지속돼 천연 안광이 절로 연출되는 업그레이드 버전 렌즈를 출시해 장외 홈런을 날렸다. ‘아이디어’의 김우성 안경사는 이런 내추럴 스타일 서클 렌즈의 인기가 사실이라고 전한다. “얼굴 전체 흐름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눈동자를 또렷이 연출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컬러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 대세라고. 지나치게 검거나 요란한 색보다는 내추럴한 브라운 컬러가 가장 잘 팔린다. 그에게 좋은 렌즈의 조건에 대해 묻자 단박에 건조하지 않은 것이라고 답한다. “서클 렌즈 착용 시 가장 많은 사람이 호소하는 불편함은 건조증입니다. 산소 투과율이 높은 렌즈를 선택하고 너무 긴 시간 착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눈이 마음의 창’이라느니, ‘눈동자로 마음을 읽는다’느니 하는 말이 클리셰로 생각되나? 옛말은 틀린 법이 없다. 동시에 ‘눈맞춤은 곧 집중’이라는 심리학자 폴 에크먼 박사의 말을 단단히 마음에 새기길. SNS와 텍스트 메시지, 스마트폰이 세상을 지배하는 요즘, 사람을, 그것도 말없이 상대방의 눈만 바라볼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위기는 곧 기회! 먼저 눈맞춤을 던져보시라. 그래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주목받고 있다는 기쁨을 느끼게 하라. 홍채까지 스타일링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타고난 동공 미녀가 아니어도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먼저 눈맞춤을 건넬 용기와 그 안에 담을 따뜻한 진심만 있다면 세상 모두의 전두엽은 당신의 것이 될 테니까.

    에디터
    백지수
    포토그래퍼
    HWING IN WOO
    소품 제작
    이주영(stylize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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