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스 X 마키나: 하이패션이 하이테크를 만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마치 커다란 리본으로 묶인 거미줄 같은 블랙 앤 화이트 트위스트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이스라엘 출신 디자이너 노아 라비브가 합성 폴리에스테르를 3D 프린트 해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옷장을 위한 퓨처리즘!
전시의 마지막 부분 즈음 만나게 되는 이 작품에서 나는 <마누스X마키나, 테크놀로지 시대의 패션(8월 14일까지 전시)>의 큐레이터를 맡은 앤드류 볼튼에게 찬사를 보냈다.
볼튼이 사람 또는 기계가 만들어낸 꽃과 레더 컷아웃, 플리츠와 같이 단순한 아이디어를 사용해 발전시킨 컨셉트와 연구의 깊이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리고나서 볼튼은 이 친숙한 화려한 드레스들에서 시작해 레이저로 도려낸 실리콘 깃털과 갈매기 두개골로 이뤄진 네덜란드 디자이너 아이리스 반 하르펜의 드레스를 이끌어냈다.
2번에 걸쳐 전시회를 찬찬히 훑어본 후 나는 큐레이터의 목표가 사람과 기계 간의 전투판을 벌이기 위함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프리츠 랑이 1927년에 만든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차갑고 냉철한 기계의 패션화나 종종 런웨이와 심지어 멧볼 레드카펫에도 등장한 스타워즈 식의 퓨처리즘이 아니었다.
우아하고 거의 조형적이었던 전시와 셀레브리티들이 생각한 ‘퓨처리즘’적인 의상 간의 대조는 드라마틱하고 예측 가능했으며 때론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레드카펫의 계단을 오르는 많은 이들처럼 나는 은색 드레스를 입었다. 그러나 내 옷은 기이한 광택으로 번들거리는 셀러브리티들의 드레스에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은하계 군단에는 빛나는 발망의 시스 드레스를 입은 신디 크로포드, 돌체 앤 가바나의 반짝이를 뒤집어쓴 케이트 보스워스, 루이비통의 은색 드레스로 감싼 테일러 스위프트가 포함된다. 그리고 딱 달라붙은 발망 드레스를 입은 킴 카다시안은 예술적으로 찢긴 진 위에 광택나는 재킷을 입은 자신의 파트너 카니예 웨스트를 압도했다.
이번 전시 뒤에는 미국 <보그> 편집장이자 컨데나스트 사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안나 윈투어, 그리고 이 행사의 스폰서인 애플의 조너선 아이브가 있었다. 전시 주제는 흥미로웠지만, 레드 카펫은 지난 해 멧볼의 주제였던 <중국: 거울을 통해 바라보다(China: Through the looking glass)>때보다 부조화스러워 보였다. 볼튼의 전시와 셀러브리티들의 드레스에는 상당한 괴리감이 존재했다.
이 전시는 로테르담에 위치한 렘 쿨하스(Rem Koolhaas)OMA의 파트너이자 뉴욕 오피스 책임자인 건축가 쇼헤이 시게마츠가 지은 로버트 레만(Robert Lehman)관에 특별히 마련된 대성당 느낌의 장소에서 시작됐다. 브라이언 이노의 곡 <An Ending(Ascent)>이 비현실적인 느낌을 살렸고 임신한 신부를 위해 디자인되었던 2015년 샤넬 꾸뛰르드레스는 긴 옷자락으로 종교적인 경외와 호기심을 자아냈다.
또 다시 틀렸다! 볼튼이 이 웨딩 가운을 선택한 이유는 긴 옷자락 위에 천연 금속성 색소로 핸드페인팅 한 후 다시 덧칠하고 3D 프린트를 한 후 마지막으로 픽셀 처리된 바로크 문양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손으로 자수를 놓아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바로 슬로우 패션의 화신이자 사람의 손과 결합된 기술적 혁신 그 자체였다.
다음 세션에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벨벳 꽃봉우리와 실크 꽃송이, 가죽 잎사귀와 온갖 매혹적인 꽃장식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는 과거시대의 조신한 바느질이 아니었다. 조화(造花)와 자수, 그리고 깃털에 관한 섹션, 그리고 주름과 레이스 같은 다른 테마의 섹션에서 등장한 각 장식품은 사람과 기계가 협동한 결과였다.
“이 전시는 사람과 기계의 이분법이라는 상징적 의미에 의문을 던집니다. 전통적으로 수작업은 독점성과 자연스러움, 개성 등으로 정의되어 왔고 기계는 진보와 민주주의, 대량생산을 뒷받침하면서도 열등한 것으로 이해되어왔죠.” 볼튼이 설명했다.
니콜라스 알란 코프가 찍은 아름다운 사진으로 만들어진 스마트한 전시 카탈로그에는 다양한 패브릭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설명 뿐 아니라 여러 디자이너들의 인터뷰가 함께 수록되었다. 알렉산더 맥퀸의 사라 버튼은 “저는 핸드메이드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기계 역시 제 디자인 과정에서 똑같이 중요합니다.” 라고 고백했다. 후세인 샬라얀 역시 “제 모든 컬렉션에는 테크놀로지의 요소들이 들어가 있죠”라고 단언했다.
터키 키프로스 출신의 영국 디자이너인 샬라얀은 이번 전시에 여러 충격적인 작품들을 내놓았다. 매끈한 금빛 시스 드레스는 유리섬유로 형태를 잡은 후 금속 염료를입혔으며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매달았다.
나는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재단사와 재봉사들이 기계로부터 위협보단 도움을 받았다는 볼튼의 컨셉트를 이해하는 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전시 제목에 테크놀로지라는 말을 집어넣는 건 일종의 미끼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회는 사실 사람과 기계 간의 화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거든요.” 볼튼이 말했다. 그리하여 마리아노 포르투니와 일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패브릭에 주름 잡는 법을 발견했을 때엔 기쁨이 넘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매력적인 부분은 플리츠들이 대결을 벌인다는 점이다. 1920년대 포르투니가 손으로 주름을 잡고 베네치아 유리로 손자수를 놓은 실크 샤르무즈부터 젤라틴 시퀸으로 은은히 빛나는 노먼 노렐의 1953년도 실크 드레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이세이 미야케가 선보이고 있는 시각적으로 드라마틱하게기계 프린트 한 ‘리듬 플리츠’까지 전시됐다.
“이세이는 이 모든 것들의 대부라 할 수 있어요. 마치 이세이가 이번 전시가 은밀하거나 숨겨진 테크놀로지에 관해 다뤄야한다는 것까지 정해준 거 같아요. 이번 전시는 이세이 미야케가 처음부터 추구해오던 사람과 기계의 화해에 좀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그의 작품이 테크놀로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생각할테지만 사람의 손이 닿은 그 존재감은 아주 특별해요. 우리는 지금 테크놀로지를 입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는 테크놀로지의 유토피아적 개념이라 하기 보다는 패션에 있어서 테크놀로지의 실용적인 적용을 들여다본다 할 수 있죠.” 볼튼이 말했다.
볼튼은 아이리스 반 헤르펜을 예를 들며 3D 프린트를 가장 주목할만한 테크놀로지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디지털 필름이 더해져, 아이리스와 노아 라비브 작품 곁에서 상영되는 미니 영화를 보고 관람객들이 작업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디자인의 제왕이지만 패션과는 거리가 있는 조니 아이브에게 전시에 대해 어떻게 느꼈냐고 물었다. 조니는 오픈 바로 전날 전시를 관람했다. “다양한 수준에서 답할 수 있는 질문이네요. 그러나 저는 전반적으로 전시가 고요하고 평온하며 우아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쓰는 수많은 첨단기기들을 만들어낸 디자이너가 말했다.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훌륭한 맥락을 제공해줬어요. 그리고 저는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지능적인 측면에서 놀라우리만큼 도발적이에요. 저는 사람과 기계 사이에서 나온 실용적인 예들과 함께 그 둘이 만들어낸 관계에 반했어요. 그리고 몇몇 작품과 그를 만들어낸 과정에 대해 정말 연구를 하고 싶어졌죠.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는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작품들이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기계가 지닌 시적인 가능성에 대해 믿어요. 동시에 인간이 만들어낸 것도 엄청나게 존경하고 감탄하죠. 우리의 목표는 언제나 기능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쓸모 있으면서 우아한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아이브가 말했다.
현대기술의 제왕은 또한 ‘누군가 직접 입은 3차원 작품들을 볼 수 있었으면 흥미로웠을 것‘이라 말하며 이번 전시에서 누락된 몇몇 부분을 지적했다.
나는 고요한 느낌을 살리고 싶던 볼튼의 갈망을 이해한다. 그러나 몇몇 미술관들이 의상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대로 작은 화면에서 일부 옷들의 움직임을 보여주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았을 것이다.
조니가 “전시를 본 후 저는 정말 일부 작품들과 그 뒤에 숨겨진 과정들을 좀 더 깊이 알고 연구하고 싶어졌어요.” 라고 말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영역으로 접어들게 되면서 패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조니 아이브와 함께 애플이 결국 패션계에 뛰어들면 ‘마키나(기계)’를 이끄는 ‘마누스(손)’는 애플워치보다도 훨씬 패션지향적이 될까?
“우리는 점점 더 개성있는 제품들을 만들고 있어요. 사람들이 매일 입을 수 있는 제품이죠. 우리는 이 카테고리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주 오래전 시작했던, 테크놀로지에 개성을 부여하고 이를 유용하게 만드는 애플의 여정을 이어갈 수 있거든요.” 애플의 최고 디자인 책임자가 말했다.
애플은 디지털기기를 따뜻하고 친근하게 만들면서 초기의 애플 맥에서부터 오늘날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테크놀로지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나는 3D 프린트한 하얀 폴리아미드를 염소가죽 위에 기계로 꿰맨 후 손으로 잘라낸 아크릴 프린지 장식의 이리스 반 헤르펜 의상이 코코 또는 칼 라거펠트가 만든 샤넬만큼 황홀하도록 우아하게 사람의 몸을 감쌀 수 있을지 꽤나 의구심이 들었다.
- 글 / 사진
- 수지 멘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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