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치토세가 사카이의 전 세계 네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 릴라 후쿠시마, 앰부시의 윤, 버벌로 구성된 사카이 프렌즈와 함께.
“어제 정말 많은 사람이 왔어요. 이전에도 서울에서 사카이의 옷을 볼 수 있었지만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좀더 발전된 형태의 매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발전된 형태’는 우선 사카이 팀이 직접 고른 가구부터 시작됐다. “매장 가구는 일본의 DIY 아티스트 료타 모리카와의 겔촙(Gelchop)과 함께했어요. 우리가 직접 참여한 인테리어를 보여주고 싶었죠.” 빈티지 가구 사이사이에 쏙쏙 배치된 아이템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
“S/S 컬렉션은 카오스가 테마였습니다. 사카이는 옷을 만들 때 빈티지 매장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빈티지 소재를 하나하나 보다가 반다나를 고르게 됐어요. 다만 사카이는 ‘하이브리드’를 굉장히 진지하게 여겨서 단순히 반다나 문양을 프린트하는 게 아니라 고도의 기술을 이용해 레이스 위에 페이즐리 무늬를 직조하는 등 다양한 변주를 시도했습니다.”
사카이 프렌즈가 촬영일에 입은 옷도 모두 치토세가 직접 고른 것이다. “오늘 여러 명이 함께 찍는 사진도 있으니, 각자의 옷이 균형을 이루도록 했죠.” 치토세가 할리우드에 진출한 배우 릴라 후쿠시마, 엠플로의 래퍼로 활동한 버벌,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스타일리스트인 윤 같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포섭한 것처럼 브랜드도 협업의 경계를 확장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일본적인 것’을 정의하는 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카이의 옷에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일본적인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아침에 입은 옷을 저녁까지 갈아입지 않죠. 저녁에 파티가 있다고 도중에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지 않습니다. (이번 시즌에 나온 반다나 패턴의 플리츠 셔츠를 가리키며) 이런 셔츠는 회사에서도, 파티 장소에서도 잘 어울려요. 앞면은 무난한 패턴이지만 뒷면에는 화려한 디테일이 있어 파티에서 돋보이죠. 이런 게 일본적인 게 아닐까요?”
99년 사카이의 등장은 그야말로 패션계에 조용한 혁명이었다. 패턴, 소재, 옷의 모든 요소에서 잔잔한 충돌을 빚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아베 치토세가 일으킨 파동은 도쿄와 파리를 넘어 10여 년째 지속되는 중이다. 파리 호텔 데브뢰에서 2010년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2011년 에콜 데 보자르에서 런웨이를 시작한 사카이는 현재 파리 패션 위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쇼가 됐다. 사카이가 유럽 시장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건 런던의 멀티숍 브라운에서 바이어로 일한 바 있는 다이스케 젬마(Daisuke Gemma)의 역할도 컸다.
“쇼를 시작하기 전에도 비즈니스적으로 브랜드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파리에서 쇼를 보여주고 나니, 피드백이 정말 많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많은 사람에게 직접 제 옷을 보여주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죠.” 젬마 말고도 런웨이 스타일리스트 칼 템플러 또한 사카이의 글로벌한 팬층을 만드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잡지 <인터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그는 사카이가 유럽에서 첫 런웨이를 시작할 때부터 일한 주요 멤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