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의 ‘세계시인전’과 ‘오늘의시인총서’는 43년 전부터 숱한 문학청년들을 어른으로 키웠고, 한국문학은 이들과 함께 진일보했다. 올해 50주년을 맞이한 민음사가 고유의 심미안과 명분으로 선별한 <세계시인전>은 그 시간에 대한 헌정에 다름 아니다. 최초로 완역된 호라티우스 라틴어 서정시부터 문학텍스트로서는 처음 기획된 ‘욥의 노래’, ‘최초의 현대적 시인’인 프랑수아 비용의 시, 한국 모더니즘의 선구자 김수영의 시, 설명이 필요 없는 윤동주의 자필 원고, 김경주 시인이 번역한 애드거 앨런 포의 시, 황현산 교수가 해석한 보들레르의 시,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 고 김현 선생이 풀어낸 랭보의 시 등. 시간과 국경을 넘나드는 15편의 명작들이 동시대적 문학성으로 재해석됐고, 이는 새로운 탄생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시는 포기하지 않음의 윤리이며 그 기술이다’라던 황현산 교수의 말은 여전히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자 <세계시선집>이 젊은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은 지점이다. 결국 인간성을 다독이고 세상을 바꾼 건 목청 높은 구호가 아니라 속삭임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