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으로 여행을 간다면 구룡 섬 끝에 내걸린 오렌지색 간판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를 눈여겨보기 바란다. 이는 홍콩에서 중국을, 세계를 품고자 하는 시각문화미술관 M+가 주도하는 예술적 변혁의 야심 찬 예고편이다. M+의 수석 큐레이터 정도련과 아직 지어지지 않은 미술관을 둘러보며, 이 ‘쇼핑 천국’의 문화 지형과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해요. 리우데자네이루와 뉴욕이 만나서 아기를 낳으면 홍콩이 되지 않을까 하는.(웃음)” 홍콩섬에서 구룡반도로 택시 타고 이동하는 길, M+의 부관장 겸 수석 큐레이터 정도련이 말했다. M+의 탄생을 주도하며 미술관의 유전자를 만들고 있는 정도련의 또 다른 중요한 일 중 하나는 홍콩의 불균질한 에너지를 체화하는 것이다. “홍콩 사람들조차 돈 벌고 쇼핑하고 맛있는 거 먹는 것에만 관심 있지, 문화는 불모지라는 이야기를 종종 해요. 하지만 고급문화만 문화는 아니잖아요. 홍콩은 충분히 독특해요.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식민의 역사를 통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어버니즘(도시 문화)이 형성되었다는 것, 그 자체도 문화죠.” 물론이다. 이를테면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이어진 홍콩 영화의 붐은 완벽한 아방가르드로 각인되어 있듯이 말이다.
안전모에 안전화로 갈아 신고 버스에 올라탄 일군의 무리는 어느 황량한 공사 현장에 내렸다. 구룡반도 끄트머리의 매립지, M+의 건설이 한창인 이 지역은 서구룡문화지구라는 공식 명칭을 얻었다. 홍콩 섬과 구룡반도를 오가는 페리를 타면 볼 수 있는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간판은 이 일대에 홍콩의 물리적 지도는 물론 문화적 지형까지 새롭게 그리겠다는 위풍당당한 예고편이다. 서구룡문화지구는 23만㎡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이다. 동쪽으로는 캔톤 로드, 북쪽으로는 웨스턴 하버 크로싱 입구와 오스틴 로드, 서쪽 및 남쪽으로는 빅토리아 하버를 끼고 있는 요지다. 1990년부터 홍콩은 이 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했고, 결국은 공항과 아파트 대신 문화지대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메인 격인 M+를 중심으로 공연 예술 극장인 시취(Xiqu) 센터, M+의 공공 프로그램을 선보일 파빌리온, 그리고 건물 주변으로 1만 명이 즐길 수 있는 대형 야외 공원 등이 구성된다. 지하에는 또 하나의 복합 도시가 건설 중이다.
서구룡문화지구의 완성본을 구경하려면 좀더 기다려야 한다. 공원의 일부인 프리 스페이스가 이미 시민들을 위한 행사와 모임, 여가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지만, 파빌리온은 오는 7월 중순, 시취 센터는 2018년, 그리고 M+는 2019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3년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우린 이미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정도련의 말은 일리 있다. M+는 2011년부터 총 열 개의 전시를 열었다. 시각문화미술관답게 건축, 디자인, 영상 같은, 전통 미술 장르를 벗어난 주제까지 다룬다. 거대한 벌룬 형태의 공공 미술 전시, 홍콩 네온사인의 온라인 전시, 영상 작품만 모은 전시 등이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시공간에서 펼쳐진 바 있다. 양혜규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모바일 M+ 전시: 라이브 아트’의 일환으로 선보였고, 안무가인 에이코 오타케의 퍼포먼스는 홍콩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인 ICC 센터 주변에서 이뤄졌으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홍콩관을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사진) Frog King Kwok의 설치 작품.
당시 이 전시를 큐레이팅한 정도련은 홍콩을 대표하는 작가 창 킨 와(Tsang Kin-Wah)의 멀티 채널 비디오 프로젝션으로 빛과 영상, 움직임을 직조한 전시를 직접 소개해주었다. 특히 베니스에서의 전시는 단순히 M+의 존재를 드러낸다기보다 M+가 홍콩의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젊은 예술가들, 혹은 홍콩 아트 신과 어떻게 교감하고자 하는 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매니페스토로 느껴졌다. (사진)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홍콩관에서 선보인 Tsang Kin-Wah의 ‘The Infinite Nothing’전.
M+ 건물이 서구룡문화지구의 지하에서부터 기초공사를 하는 동안, M+는 전시를 통해 미술관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알리고 문화적 토양을 구축하는 일에 몰두하는 셈이다. “그간의 M+ 전시를 아우르는 마스터플랜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열 개의 전시 하나하나가 M+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죠. 앞으로도 이런 요소를 차곡차곡 더해가는 것이 전시 전략이에요.” 각각의 전시는 마치 유기체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홍콩, 중국, 아시아, 세계의 미술계에 M+를 각인시키는 중이다. 물론 스무 개의 전시를 연다고 해도 5,000여 점에 이르는 M+의 컬렉션을 모두 보여주기에는 부족하겠지만 말이다. (사진) Eiko Otake의 퍼포먼스.
지난 5월 초까지 열린 <지그 컬렉션>전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무대였다. 스위스의 사업가이자 전직 외교관 그리고 영향력 있는 중국 현대미술 컬렉터인 울리 지그는 2012년 본인 컬렉션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510점을 M+에 기증했고, 이는 M+의 시작이 되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쩡판즈 같은 작가가 소더비에서 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중국 미술이 잭팟을 터뜨리기 수십 년 전부터 중국 대륙을 주목해왔다. 올해 아트 바젤 홍콩에서 울리 지그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상영한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사진) <M+ 지그 컬렉션: 중국 현대미술 40년> 전시 전경.
‘중국 현대미술 40년’이라는 부제를 단 이번 전시는 80여 점의 혁신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중국 현대미술의 태동기부터 1976년 문화대혁명이 끝날 무렵까지, 1980~90년대까지, 중국 미술이 세계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를 연대순으로 선보였다. 전시장 입구의 연표는 역사적, 예술적 사건이 어떤 보폭으로 따로 또 같이 오게 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아이웨이웨이, 장샤오강, 쩡판즈, 웨민준, 장후안, 왕광이, 카오페이 등 유명 중국 작가들의 대표작이 다 있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직관적인 감흥이 앞섰다. 18세의 작가가 알몸으로 퍼포먼스 하는 사진은 이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발언했는지 보여주는 듯했고, 사실주의, 사회주의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작가들이 뒤샹의 작품을 보고 어떻게 전율했는지가 생생히 전해졌다. (사진) John Cage의 ‘Writings through the Essay: On the Duty of Civil Disobedience’전.
정도련과 함께 전시장을 찾았을 때, 우리는 이번 전시의 리드 큐레이터인 피 리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곧 그가 전시장에 걸린 작품 ‘The Curators’의 주인공임을 알아차렸다. 지난 2000년 외국 큐레이터들이 대거 중국에 왔을 때 찍은 사진을 기초로 한 얀레이(Yan Lei)의 회화는 중국의 아트 신이 어떻게 세계화되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다. 중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훑는 울리 지그의 컬렉션은 M+의 빌딩이 문을 열 때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실루엣을 짐작할 수 있는, ‘소리 없는 선언’이다. 동시에 M+가 울리 지그 컬렉션의 전통적 접근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확장할 지 상상해보는 건 이 전시의 관전 포인트이기도 했다. (사진) Yan Lei의 ‘The Curators’.
중국만 빼고 모두가 좋아하는 예술가, 아이웨이웨이의 ‘스틸 라이프 1995~2000’를 보기 위해서는 천안문 사건을 가장 잘 표현한 왕싱웨이 (Wang Xingwei)의 ‘New Beijing’을 지나쳐야 했다. 온몸에 총알이 박힌 시신을 수레에 싣고 가던 베이징 주민을 담은 유명한 이미지는 사람을 펭귄으로 대체한 초현실주의적인 그림으로 다시 태어났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에요. 이 그림이 홍콩에서 공개되었을 때 우려가 많았어요. 아이러니한 건 중국 본토에서는 오히려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거예요.” 정도련은 천안문 사건의 민주화 시위를 찍은 류홍싱(Liu Heung Shing)의 사진 앞에서 부연 설명했다. “천안문 사태를 언급할 때마다 거론되는 유명한 사진 있잖아요. 탱크 앞에 사람이 서 있는. 그걸 중국의 대학에서 보여주면 학생들이 모른대요. 완전히 삭제된 거죠. 중국 본토에서 보여줄 수 없는 작품,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을 거리낌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M+에 있어 매우 중요해요. 요즘 자기검열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하지만 이 작품들이 검열된 작품으로 보이나요?” (사진) Wang Xingwei의 ‘New Beijing’.
모마, 워커아트센터 등에서 ‘클래식 큐레이터’로 활동해온 정도련은 큐레이터로서 이제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갤러리와 미술관, 컬렉터와 관람객의 경계가 흐릿해진 현시대의 미술관, 그중에서도 홍콩, 중국, 아시아에 있지만 동시에 세계 속에 속해 있음을 실감하게 만들고자 하는 야심만만한 미술관 M+의 역할에 대해서 말이다. 미술의 위치와 성스러움을 지킬 것인가, 대중에게 한 발 더 다가갈 것인가, 혹은 현대미술에 내재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에너지를 어떻게 안전하게 대중에게 전할 것인가, 기존 미술계에 대한 존중과 도전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 등등. 오히려 검열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M+의 고민이기도 하다. (사진) Ming Wong의 ‘Looking at the Stars’.
공사 현장을 둘러보면서 던컨은 여러 번 강조했다. “이 모든 건 그들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에요.” 해마다 아트 바젤 홍콩이 성완 거리를 가득 메운 갤러리와 함께 수직적인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는 건 특정 시기나 장소가 아니면 세계적 미술 작품을 거의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정치와 예술, 중국과 홍콩, 대중과 예술가, 미술계와 일상 등 지금 M+를 둘러싼 다양한 대립항이 치열하게 갈등할수록 우리는 더욱 진화한 홍콩의 예술적 토양과 자유의 공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M+의 존재 가치는 결코 아트 신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M+가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미술관을 공개한 이유이자, 내가 그 공사장 한가운데서 ‘예술가(예술)는 대중(세상)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한다’던 공자님의 말씀을 떠올린 연유다. 두 발 아래, 아직 형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떤 예술적 사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