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Super 5 in SEOUL – ② Jean Paul Gaultier (장 폴 고티에)

2016.08.02

by VOGUE

    Super 5 in SEOUL – ② Jean Paul Gaultier (장 폴 고티에)

    패션계는 패션의 미래를 이끌 마켓으로 상하이와 도쿄가 아닌 서울을 지목했다. 그리고 2016년 상반기만 해도 많은 패션 전문가들이 서울을 방문했다. 서울에 들른 유명 디자이너 중 제일 영향력 있는 5인을 〈보그 코리아〉가 인터뷰했다. ▷ ② Jean Paul Gaultier

    장 폴 고티에, 그의 전설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혜안은 흐려지지 않는다. 그의 날카로운 감각은 무뎌지지 않는다. 계속 전진할 뿐이다.  이 인터뷰는 지난 4월, 장 폴 고티에가 전시 오프닝을 위해 서울에 왔을 때 나눈 내용의 일부다. 당시 한 인터뷰 분량의 반은 5월호에 화보와 함께 나갔으니 2부 혹은 후반전쯤으로 여기면 좋을 듯하다. 우리는 전반부에서 회고전 아닌 회고전(고티에는 자신의 전시를 회고전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지 않았다)과 관련된 그의 어린 시절과 아이코닉한 디자인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미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입에서 술술 답변이 흘러나왔는데, 아마 그동안 전시가 열린 다른 나라에서 여러 차례 비 슷한 질문을 받은 이유일 것이다.

    장 폴 고티에, 그의 전설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혜안은 흐려지지 않는다. 그의 날카로운 감각은 무뎌지지 않는다. 계속 전진할 뿐이다.
    이 인터뷰는 지난 4월, 장 폴 고티에가 전시 오프닝을 위해 서울에 왔을 때 나눈 내용의 일부다. 당시 한 인터뷰 분량의 반은 5월호에 화보와 함께 나갔으니 2부 혹은 후반전쯤으로 여기면 좋을 듯하다. 우리는 전반부에서 회고전 아닌 회고전(고티에는 자신의 전시를 회고전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지 않았다)과 관련된 그의 어린 시절과 아이코닉한 디자인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미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입에서 술술 답변이 흘러나왔는데, 아마 그동안 전시가 열린 다른 나라에서 여러 차례 비슷한 질문을 받은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짜인 듯한 질문과 답을 지나 그의 커 리어와 좀더 ‘흥미로운’ 최근 에피소드, 요즘 패션계에 대한 그의 생각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질문을 끝까지 주의 깊게 듣고, 특유의 오묘한 표정을 짓고, 곰곰이 생각하고, 때로 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흥분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결론은, 이 거장은 자신이 주장 하는 대로 아직 회고전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에 박제된 패션계의 전설적 인물 이 아니다. 무슈 고티에는 아직도 패션계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우리는 처음부터 짜인 듯한 질문과 답을 지나 그의 커리어와 좀더 ‘흥미로운’ 최근 에피소드, 요즘 패션계에 대한 그의 생각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질문을 끝까지 주의 깊게 듣고, 특유의 오묘한 표정을 짓고, 곰곰이 생각하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흥분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결론은, 이 거장은 자신이 주장하는 대로 아직 회고전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에 박제된 패션계의 전설적 인물이 아니다. 무슈 고티에는 아직도 패션계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VOGUE KOREA(이하 VK) 디자이너가 된 후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은 누군가요?
    JEAN PAUL GAULTIER(이하 JPG) 당시 아주 훌륭한 패션 에디터가 있었어요. 오, 그녀를 알기에 당신은 너무 어려요. 1960~70년대에 활동한 인물이거든요. 니콜 크라사(Nicole Crassat, 아제딘 알라이아를 발굴하기도 했다)라는 이름의 프랑스 <엘르> 에디터였어요. 하루는 그녀와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자신이 쓴 패션 기사를 보여주더군요. ‘Ciao 70년대, Now 80년대’라는 제목의 특별 기획이었고 첫 펼침 페이지가 내 컬렉션으로 꾸며져 있었어요! 1979년에 선보인 ‘제임스 본드’ 컬렉션이었죠.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그녀는 당시에도 ‘정말’ 위대한 스타일리스트였거든요. 사실 나는 전문 패션 학교를 다니지 않았기에 그녀에게 많은 걸 배웠습니다. 잡지에 실린 그녀의 창의적 스타일링을 보고 영감을 얻곤 했죠. 예를 들면 오뜨 꾸뛰르 재킷과 팬츠 수트의 짝을 바꿔 매치하거나 점프수트에 하이힐을 매치하는 식이었어요. 아직도 기억나요. 그녀의 점프수트 룩이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점프 수트는 실제로 기계 정비공들이 입는 옷처럼 지퍼와 포켓이 잔뜩 달려 있었고 거기에 뾰족한 하이힐과 화려한 주얼리를 주렁주렁 매치한 걸 본 순간 깨달았어요. ‘바로 이거야!’라고요. 내 눈엔 클래식하기만 한 꾸뛰르보다 그쪽이 훨씬 더 아름다웠죠.

    VK 당신은 독립하기 전 피에르 가르뎅과 장 파투 하우스에서 일했는데, 그곳에서의 경험은 어땠나요?
    JPG 가르뎅에게 배운 것 모두 매우 독창적이었지만 사실 내가 흠모한 건 이브 생 로랑이었어요. 이브는 보다 세련됐죠. 그는 당대 젊은 여자들을 위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어요. 1940년대에서 영감을 얻은 1971 S/S 컬렉션에서 모델이 복고풍의 초록색 여우털 코트와 뒤쪽에 세로줄이 들어간 스타킹을 신고 등장했을 땐 “와우!”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답니다. 생 로랑과 가르뎅은 극과 극이었어요. 가르뎅은 약간의 모더니즘 성향과 꾸레주풍이 공존해 보다 60년대 스타일에 가까웠어요. 그렇지만 그 역시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나는 그 점을 좋아했죠. 장 파투는 당시에도 이미 역사가 깊은 하우스였답니다. 상당히 부르주아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여서 내가 옷 입는 방식을 못마땅해하며 놀려먹곤 했어요. 심지어 런웨이 모델들도 반드시 금발이어야 했죠. 난 이해할 수 없었어요. 물론 완벽한 금발도 좋지만 빨강 머리도 좋고 갈색 머리도 좋았거든요. 그래서 내 컬렉션을 하게 됐을 때 패션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도 개성 있고 멋진 여자들을 쭉 캐스팅했습니다. 내가 좋으면 그냥 좋은 거니까요.
    VK 그리고 결국엔 다른 사람들도 그걸 좋아하게 됐죠.
    JPG 네, 결국에는 그렇게 되더란 말이죠!

    VK 당신이 옷을 만들어준 마돈나, 카일리 미노그, 베스 디토, 디타 본 티즈도 전부 개성 있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죠. 혹시 옷을 만들어달라는 셀러브리티의 부탁을 거절한 적도 있나요?
    Jelka Music(장 폴 고티에 PR 디렉터) 매우 비공식적인 질문이군요! (고티에와 묘한 표정을 주고받은 후 키득거리며 말했다) 장 폴, 당신이라면 돌려서 잘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면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옷을 만들어준다’라는 식으로요.
    JPG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우리는 거절하진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 타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우리 타입이 아닌데 꼭 입고 싶다면, 사서 입는 것도 그들에겐 방법이 될 수 있죠. 그렇지만 누군가를 위해 특별한 걸 만들어주는 쪽을 더 좋아하긴 합니다. 가끔 우리 타입이 아닌 사람들에게서 그런 요청을 받으면 옷을 빌려주는 편이죠. 그리고 말 그대로 빌려주는 거니까 다시 돌려받아야 하고요. 한번은 팔로워가 정말 정말 많은 누군가에게 요청을 받았고 그녀에게 옷을 빌려줬어요. 문제는 그 룩을 런웨이의 모델처럼 소화할 수 없었다는 거죠(그녀는 지난해 어느 시상식 레드 카펫을 위해 그 옷을 빌려 입었고 그 결과 세상에 단 하나뿐인 꾸뛰르 의상의 주머니가 뜯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Jelka Music 이니셜만 알려줄게요, K.K.W예요. W는 결혼 후에 붙었죠.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7,000만이 넘어요. 이제 누군지 감이 와요?
    JPG 단지 그녀가 내 취향이 아닌 것뿐이죠. 딱히 보기 싫다는 건 아니에요. 나도 작고 굴곡진 몸매를 좋아할 수 있죠. 베스 디토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그저 돈만 많고 딱히 하는 것 없이 셀피만 찍어대는 건 내게 아무런 영감을 주지 못합니다. 나도 처음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봤지만 요즘은 지겹더군요. 이제는 더 이상 보지 않죠.

    VK 그렇지만 요즘 패션계에서 가장 강력한 판매력을 발휘하는 게 그런 셀러브리티들이에요.
    JPG참으로 애석한 일이죠. 그들 중 대부분이 옷값을 지불하지 않으니까요. 정말이에요. 1980~90년대에는 영화배우와 록 스타들이 매장에 직접 와서 돈을 주고 옷을 샀죠. 요즘은 돈을 내지 않을뿐더러 돌려줄 생각조차 하지 않아요. 그러더니 드디어 옷을 입는 계약까지 하기에 이르렀죠. 대체 그게 뭡니까? 진심으로 그 옷을 좋아하지도않고 그 옷을 입고 기분 좋게 느끼지도 않으면서 계약하는 건 가짜예요. 그게 싫습니다. 예전에는 TV에서 내 옷을 입고 있는 마돈나를 보고 깜짝 놀라곤 했죠. 그녀를 위해 옷을 만들기 전이었고 그녀를 내심 좋아했기에 진심으로 기뻤답니다. 보이 조지나 유명 여배우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모두 매장에 와서 직접 돈을 내고 옷을 사고, 나는 그걸 나중에야 발견하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요즘 사람들은 모든 것을 광고로 사용하죠. 게다가 A브랜드와 계약을 맺은 여배우 B는 C, D, E 브랜드와도 계약을 맺는 게 다반사예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왜 그런 식으로 일해야 하죠? 정말 말도 안 되는 행태예요. 우리는 각자의 정체성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잘될 수 없어요. 가방이나 액세
    서리, 향수는 팔 수 있을지 모르지만 더 이상 옷을 팔 수는 없을 거예요.

    VK 옷을 팔 수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JPG지금은 훨씬 싼 가격에 품질도 괜찮은 옷을 살 수 있는 시대니까요.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이 SPA 브랜드와 협업해 ‘H&M 오뜨 꾸뛰르’를 만들어내고 있죠. 물론 그게 하나의 대응책이 될 수 있을진 몰라도,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보세요. 90년대 후반부터 돈은 있지만 패션을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패션쇼는 입을 옷을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구경거리인 쇼, 다른 뭔가를 위한 프로모션, 광고 수단으로 전락했죠. 1980~90년대에는 나도 옷을 꽤 많이 팔았지만 더 이상은 아닙니다. 컬렉션이 너무 많아지면서 오히려 판매량은 점점 줄어들었죠. 옷이 더 많아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사 입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사 입지 않아요. 의미 없는 과도한 생산인 거죠. 시간도 잃고 돈도 잃는 거예요.

    VK 그럼 본인도 너무 많은 옷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JPG 컬렉션을 줄이기 전에는 그랬죠. 이제 더는 그러지 않습니다. 이 업계는 모든 게 경쟁적으로 돌아가죠. 늘 남보다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판매가 최우선이죠. 예전엔 아무도 그러지 않았지만 요즘은 1년에 컬렉션을 최소 다섯 차례나 준비하고 있어요. 내 경우 오뜨 꾸뛰르와 남성복 컬렉션, 에르메스까지 맡았을 땐 거의 1년에 열두 개의 컬렉션을 준비해야했죠. 요즘 사람들은 많이 만들수록 더 많이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경쟁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옷을 만들어내죠. 유럽의 경기 불황을 고려한다면 컬렉션은 이미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한 번의 쇼를 위해 1,000켤레의 슈즈를 만들기도 하더군요. 모든 사이즈, 모든 색상으로. 그건 말도 안 돼요. 쇼가 끝나면 그건 전부 어디로 가죠?

    VK 패션계에 또 지나치게 많은 게 있다면 뭘까요?
    JPG 전부. 광고도 너무 많죠. 내가 처음 레이블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은 광고를 하지 않았어요. 광고를 하는 건 주로 저렴한 브랜드였고, 광고에 꾸뛰르 하우스가 등장하는 건 원단 제조사가 광고비를 지불하고 1년에 한두 번 생 로랑 드레스를 실을 때뿐이었죠. 그때에 비해 지금은 광고가 열 배쯤 늘었어요. 당시만 해도 <보그>는 고작 세 권뿐. 미국, 영국 그리고 프랑스요. 그다음에 이탈리아판을 론칭했고요. <보그 코리아>는 몇 년이나 됐죠?
    VK 곧 20주년이 돼요.
    JPG 오, 20년이라. 한국은 새로운 패션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어요. 신선한 에너지와 가능성이 있죠. 어쩌면 거기서 잠재력 있는 창의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거예요. 내가 1978년에 처음 일본에 갔을 때도 그런 에너지를 느꼈죠. 대체 저
    기모노는 어디서 온 걸까, 갖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며 나를 전율케 하는, 참신하고 반짝이는 것들. 모든 게 멋졌고 유럽, 특히 프랑스와 다른 뭔가가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어요. 지금 서울이 바로 그런 분위기입니다. 파리는 모든 게 상업성 위주로 돌아가고 있죠. 온통 누가 다음 디자이너가 될 것인가, 이제 누가 떠날 차례인가에 대한 얘기뿐이에요. 가십이나 떠들어대는 리얼리티 TV 쇼처럼 돼버렸죠.

    VK 당신의 말처럼 요즘 패션계는 돈에 좌우되고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고, 무엇이 우아한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한다고 들었어요.
    JPG좋은 것은 본능적으로 스스로에게 좋다고 느끼는 거죠.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좋은 겁니다. 쉽게 말하자면, 좋지 않다고 느끼거나 원치 않는 것과 반대되는 걸 하면 돼요. 그리고 나쁜 것은 당신 자신이 아닌 척하는 겁니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 솔직한게 좋다고 느끼기 때문에 거기에 충실하죠. 누군가는 솔직하지 않은 편이 더 좋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래야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모두는 다양성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각자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미의 기준이 단일할 수 없죠.

    VK그렇다면 특정한 몸매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JPG 때때로 패션은 매우 제한적이고 좋고 나쁨에 대해 엄격하게 평가하지만, 지금은 특정한 것만이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예요. 생각해봐요, 우리는 이전에 좋아했던 많은 것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정한 미의 기준이 대다수에게 공감을 얻을 수는 있지만, 세상에는 전부 각기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서로의 차이를 존중해야 하죠.

    VK 그럼 우아한 것은 뭔가요?
    JPG 태도와 마음에 대한 겁니다. 당신이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알 수 있는 거죠.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더 아름다워지는 이유는 그저 옷을 더 잘 입는다기보다, 나이 듦에서 오는 고요함과 철학적인 뭔가가 쌓이기 때문이죠.

    VK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중요한 주제인 영화에 대해 듣고 싶어요. 유명 영화감독의 작품에 의상 디자이너로 참여하기도 했으니까요.
    JPG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는 세 번 작업했고, 피터 그리너웨이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마르크 카로와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등에도 참여했죠. 매번 내 컬렉션을 본 감독들이 먼저 작업을 제안했어요. 감독들은 정체성이 매우 강하죠. 그들에게 영화는 아이 같아요. 내 컬렉션을 할 때는 내 시나리오를 따르지만 그들과 일할 때는 그들의 시나리오에 따라 작업하는데, 난 그 점이 좋았어요. 더 창의적이고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었거든요.

    VK 어떤 식으로 작업했나요?
    JPG 감독이 각 캐릭터에 대한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그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너웨이 감독의 경우에는 아주 오래된 프랑스 타블로이드 사진 속 인물을 보여주며,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요?”라고 물었죠. 그런 영혼을 지녔지만 동시대 인물로 표현해달라는 거였어요. 뤽 베송 감독의 미적 관점은 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죠. 그의 세계관이나 일상생활은 나와 정반대였지만 영화 작업에 들어가면 완전히 달라졌어요. 역할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죠. <제5원소> 역시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작업은 즐거웠어요. 절대 “이러이러한 옷을 만들어달라”고 하지 않았죠. 대신 각각의 캐릭터에 대해 굉장히 구체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어요.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미묘한 부분까지 충분한 레퍼런스를 갖고 있어서 작업에 전혀 문제없었죠.

    VK 만약 다른 감독이 또 협업을 제안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JPG 내 작업과 어울린다면 언제든 할 준비가 돼 있어요. 물론 저도 그의 작업을 좋아해야 하죠. 내 시간과 에너지, 열정을 쏟아부으려면 저도 신이 나야 하니까요.

    VK당신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궁금해요.
    JPG 매우 프랑스적인 드라마, 코미디도 좋아하고 <블레이드 러너>, <브라질> 같은 SF 판타지물도 좋아하죠. 아, 페데리코 펠리니의 작품도 주옥같아요. <와호장룡>, 장예모 감독의 <연인> 같은 영화는 시각적으로 매우 아름답죠! 그런 영화에서 독창성을 발견하곤 합니다. 최근에 본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나쁘지 않은 정도예요.

    VK 그러고 보니 당신이 직접 영화를 만들어도 꽤 괜찮을 거 같은데요?
    Jelka Music 그것 봐요, 장 폴. 나도 그런 얘기를 한 적 있지만 그는 늘 싫다고 하죠.
    JPG 오, 싫어요.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감독이 되면 너무 많은 일을 감당해야하죠. 감독의 삶이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라고요. 돈도 너무 많이 들고, 여배우 기분도 맞춰야 하는 데다 온갖 신경전까지. 나는 현재 직업에 충분히 만족한답니다!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JANG DUK HWA
      모델
      박희정, 스테파니, 이승미
      헤어
      Odile Gilbert(L’Atelier(68))
      메이크업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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