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Super 5 in SEOUL – ③ Stuart Vevers (스튜어트 베버스)

2023.02.26

by VOGUE

    Super 5 in SEOUL – ③ Stuart Vevers (스튜어트 베버스)

    패션계는 패션의 미래를 이끌 마켓으로 상하이와 도쿄가 아닌 서울을 지목했다. 그리고 2016년 상반기만 해도 많은 패션 전문가들이 서울을 방문했다. 서울에 들른 유명 디자이너 중 제일 영향력 있는 5인을 〈보그 코리아〉가 인터뷰했다. ▷ ③ Stuart Vevers

    “아마 더 오래전일걸요?” 스튜어트 베버스(Stuart Vevers)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말했다. “지난번 서울에 온 이후 6년은 지났을 거예요. 내 가 코치에 온 지도 벌써 2년 6개월이나 됐으니까요.” 우리는 베버스가 로에베의 크리에 이티브 디렉터로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때 한 번 만난 적 있다. 그는 3~4년 전일 거라는 나의 추측에 의심쩍은 표정(‘확실해?’)을 지었다. 정확히 2011년 11월이었다. 그는 그 후 시간이 빨리 흘렀다고 느꼈고, 나는 느리게 흘렀다고 느낀 셈이다. “그땐 거의 24시간 만 에 서울을 떠났죠. 이번엔 좀더 오래 있을 거예요. 4박 5일 정도?”

    “아마 더 오래전일걸요?” 스튜어트 베버스(Stuart Vevers)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말했다. “지난번 서울에 온 이후 6년은 지났을 거예요. 내가 코치에 온 지도 벌써 2년 6개월이나 됐으니까요.” 우리는 베버스가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때 한 번 만난 적 있다. 그는 3~4년 전일 거라는 나의 추측에 의심쩍은 표정(‘확실해?’)을 지었다. 정확히 2011년 11월이었다. 그는 그 후 시간이 빨리 흘렀다고 느꼈고, 나는 느리게 흘렀다고 느낀 셈이다. “그땐 거의 24시간 만에 서울을 떠났죠. 이번엔 좀더 오래 있을 거예요. 4박 5일 정도?”

    그는 5년 전보다 훨씬 자신감에 차 있고 명쾌해 보였다. 혹은 그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그 렇게 보이도록 만든 건지 모른다. 가죽 제품으로 알려진 미국 브랜드에 혁명을 일으키기 전, 그는 베일에 싸인 스페인의 하이엔드 하우스에서 6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마드리드 에서 지내며 역사 깊은 가죽 하우스의 전통을 계승하려고 노력했고, 떠나기 직전의 컬렉 션은 가격대를 어마어마하게 만들 정교한 수작업 디테일과 풍요로운 가죽 원단으로 매혹 적인 여인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부 시각으로는 그가 패션계에서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하우스를 파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듯 보인 것 또한 사실이다. “

    그는 5년 전보다 훨씬 자신감에 차 있고 명쾌해 보였다. 혹은 그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건지 모른다. 가죽 제품으로 알려진 미국 브랜드에 혁명을 일으키기전, 그는 베일에 싸인 스페인의 하이엔드 하우스에서 6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마드리드에서 지내며 역사 깊은 가죽 하우스의 전통을 계승하려고 노력했고, 떠나기 직전의 컬렉션은 가격대를 어마어마하게 만들 정교한 수작업 디테일과 풍요로운 가죽 원단으로 매혹적인 여인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부 시각으로는 그가 패션계에서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하우스를 파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듯 보인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까지 거쳐온 회사 중 그곳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습니다. 분명한 건 제가 그 브랜드에 반했 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에요. 저와 팀원 모두 야심 찼고 많은 걸 이뤘죠.” 그는 캘빈 클라인, 루이 비통, 지방시, 보테가 베네타에서 경험을 쌓은 후 멀버리에서 크 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그의 선택에 대한 주위 반응은 매번 엇갈렸다. “제가 선택할 때마다 사람들은 놀라곤 했습니다. 왜 제가 그런 결정을 내 렸는지 이해하지 못했죠.”

    “지금까지 거쳐온 회사 중 그곳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습니다. 분명한 건 제가 그 브랜드에 반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에요. 저와 팀원 모두 야심 찼고 많은 걸 이뤘죠.” 그는 캘빈 클라인, 루이 비통, 지방시, 보테가 베네타에서 경험을 쌓은 후 멀버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그의 선택에 대한 주위 반응은 매번 엇갈렸다. “제가 선택할 때마다 사람들은 놀라곤 했습니다. 왜 제가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하지 못했죠.”

    그는 사람들의 반응에 연연하기보다 본능에 따랐고,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왔다. “저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새로운 걸 배우거나 얻을 수 없으니까요. 패션에서 가장 좋아하는 점도 매 순간 변화한다는 겁 니다. 늘 스스로에게 도전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려왔어요.” 그의 이력을 그래 프화한다면 그래프 선은 너울성 파도처럼 큰 진폭을 그릴 것이다. 특정 지점에서 그의 능 력이 극대화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젊고, 통통 튀고, 발랄하고 생기 가득한 환경에서 자 신의 최대치를 끌어낸다. 그리고 마차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미국 패션 하우스로 옮긴 이 후로 그래프는 가장 다이내믹한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그는 사람들의 반응에 연연하기보다 본능에 따랐고,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왔다. “저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새로운 걸 배우거나 얻을 수 없으니까요. 패션에서 가장 좋아하는 점도 매 순간 변화한다는 겁니다. 늘 스스로에게 도전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려왔어요.” 그의 이력을 그래프화한다면 그래프 선은 너울성 파도처럼 큰 진폭을 그릴 것이다. 특정 지점에서 그의 능력이 극대화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젊고, 통통 튀고, 발랄하고 생기 가득한 환경에서 자신의 최대치를 끌어낸다. 그리고 마차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미국 패션 하우스로 옮긴 이후로 그래프는 가장 다이내믹한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역동적 성장세는 베버스가 코치와 공유하는 것이다. 그가 코치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이 뉴욕 하우스는 어느 때보다 강력한 터닝 포인트 한 방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다.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코치의 과거에 대해 ‘상업적’이라고 표현하는 건 결코 비난이 아니다. 이들이 그동안 합리적 가격대에 품질 좋은 가방(적당한 인지도까지 고루 갖춘)을 제공하 며 고객과 신뢰 관계를 쌓아왔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접근 가능한 럭셔리 브랜드’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심지어 시의적절하기까지 하 다. 스튜어트 베버스는 이 과정을 더 현명하고 효과적인 것으로 만드는 결정적 열쇠였다. “패션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였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 고, 패션 커뮤니티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레이블이 되기 위해서요. 오랫동안 가방 브랜 드로만 알려져 있었기에 ‘그들만의 세계’가 필요했습니다.”

    역동적 성장세는 베버스가 코치와 공유하는 것이다. 그가 코치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이 뉴욕 하우스는 어느 때보다 강력한 터닝 포인트 한 방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다.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코치의 과거에 대해 ‘상업적’이라고 표현하는 건 결코 비난이 아니다. 이들이 그동안 합리적 가격대에 품질 좋은 가방(적당한 인지도까지 고루 갖춘)을 제공하며 고객과 신뢰 관계를 쌓아왔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접근 가능한 럭셔리 브랜드’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심지어 시의적절하기까지 하다. 스튜어트 베버스는 이 과정을 더 현명하고 효과적인 것으로 만드는 결정적 열쇠였다. “패션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였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패션 커뮤니티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레이블이 되기 위해서요. 오랫동안 가방 브랜드로만 알려져 있었기에 ‘그들만의 세계’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2014년 가을 뉴욕 패션 위크 때 첫 컬렉션을 발표했고, 미국적 사고방식과 문화를 단편적이고 명쾌하게 담아낸 소규모 프레젠테이션(깜찍한 소방관 코트와 영화 의 아폴로 스웨터를 포함한)은 기 대 이상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흥분되는 일이었죠, 첫 시즌부터 환영받는 건 흔치 않으 니까요. 코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2014년 가을 뉴욕 패션 위크 때 첫 컬렉션을 발표했고, 미국적 사고방식과 문화를 단편적이고 명쾌하게 담아낸 소규모 프레젠테이션(깜찍한 소방관 코트와 영화 <더 샤이닝>의 아폴로 스웨터를 포함한)은 기대 이상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흥분되는 일이었죠, 첫 시즌부터 환영받는 건 흔치 않으니까요. 코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최근 2016년 가을 뉴욕 패션 위크에서 다섯 번째 컬렉션을 발표했다. 베버스와 함께 촬영하기 위해 뉴욕에서 서울로 온 모델 최소라는 오늘 가을 컬렉션 의상을 입고 있다. 그녀는 렉시 볼링, 리앤 반 롬페이, 클로이 모레츠와 함께 코치의 봄 시즌 광고 모델이었다. “스티븐 마이젤이 소라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죠.” 수많은 동양 모델 중에서 왜 소라를 선택했냐는 질문에 그는 합리적인 이유를 생각해내느라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이유는 설명하기 힘들어요. 그 사람의 외모와 태도에 대한 거니까요. 본능적으로 끌리는 거예요. 그냥 그게 맞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소라를 가을 시즌 광고에서도 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스터드 장식의 스웨이드 웨스턴 재킷과 미니스커트는 꽤 잘 어울렸다. 코치 런웨이에서 짧은 스커트 위에 벙벙한 봄버 재킷(‘과잠바’를 연상케 하는)이나 바이커 재킷을 걸친 채 큼지막한 부츠로 터덜터덜 걷던 아메리카나 걸이 떠올랐다. 거기엔 젊은이 특유의 무심한 태도와 의도치 않은 매력적인 무례함이 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곤 하죠. 프랑스인들이 시크함을 보여줬다면, 미국인들은 쿨함을 정의했다고요.”

    최근 패션계에서 미국식 쿨한 태도는 가장 널리 애용돼온 레퍼런스다. 나른한 캘리포니아 해변, 공격적인 뉴욕의 뒷골목, 뻐기는 듯한 웨스턴 등등. 베버스는 보다 보편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코드로 미국의 쿨함을 정의한다. “일종의 ‘풀어짐’이랄까요. 지나치게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반항적이죠. 그래서 눈에 띄고 남들과 구별됩니다. 코치 작업 대부분은 뉴욕 도시 특유의 다양성을 조명하는 거예요. 그 도시가 가진 ‘스웨거’요.” 그는 스웨거라는 단어에 꽂혀 있다. 코치에 와서 디자인한 첫 가방에도 ‘스웨거’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실 이 단어는 정황적 표현이라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는 것 자체가 ‘스웨거’하지 않은 일이다. 형식이 없고 불분명하지만 그저 느낌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 베버스는 스케이트보더들이 스웨거라는 표현을 쓰는 데서 착안했다고 장난스레 털어놨다. “사실 제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소셜 미디어에서 얻은 것들이죠! 오늘날 패션 속도는 제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현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전 패션이 빨라지고, 그 속에서 제 자신을 재발견하는 게 마음에 들어요. 전 늘 유스 컬처(청년 문화)와 서브 컬처(하위 문화), 카운터 컬처(반문화)에 매력을 느껴왔죠. 제가 새로운 변화에 열려있는 이유도 그 때문일 거예요.” 그는 영원히 늙지 않는 청년의 영혼을 간직한 듯하다. “소셜 미디어가 젊은이들에게만 유효하다는 건 선입견입니다. 40대인 저뿐 아니라 50대, 60대도 소셜 미디어를 즐기죠. 물론 젊은이들이 새로운 것에 빠르게 반응하긴 하지만, ‘젊다’는 건 실제 나이가 아닌 태도에 대한 거라고 생각해요. 패션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래야 하고요.”

    베버스에게 소셜 미디어는 즉각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창구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컬렉션과 브랜드의 방향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무엇에 열광하는지 실시간으로 체크한다. 확신에 찬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거리의 사람들이 패션의 최종 방향을 결정하고 있어요. 머지않아 그들이 인식을 바꾸고 제어하게 될겁니다. 지배권이 브랜드와 미디어에서 대중으로 이동하는 거죠.” 그의 ‘열린’ 혹은 ‘긍정적’ 관점은 그동안 당연시해온 것들조차 어리석은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 정도다. 베버스는 신제품을 정식으로 론칭하기 전에 디자인팀에게 직접 써보도록 권장한다고 알려져있다. “컬렉션 의상이 아니라 가방이에요. 거리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 위한 게 아니라 실제 사용 경험을 알아보기 위해서죠. 훌륭한 가방 디자이너가 만들었다고 해도 실제로 쓰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먼저 사용해보라고 권하곤 합니다.” 디자이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디자인 유출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조금 의아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저는 그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죠. 때로 우리가 지나치게 과잉 반응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새로운 물건을 가졌는지 알아내기 위해 서로를 살핀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베버스가 실제 판매율에 특히 관심이 많은 디자이너로 알려진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신이 평균보다 좀더 신경을 쓴다고 인정했다. 패션 비즈니스가 디자이너의 주요 업무는 아니지만, 디자이너의 작업이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당신이 만든 대상을 위해 지불한 금액만큼 그걸 좋아한다는 뜻이죠. 결국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건 고객들의 반응이에요.” 이런 세계관은 그와 코치가 함께 정의하는 새로운 럭셔리와도 연결된다. 그는 기존 럭셔리에 대한 개념에 반기를 든다. “배타적이어야 하고, 격식을 갖춰야 하고, 투자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 이 모든 개념은 사실상 사라지고 있어요. 아끼거나 소중하게 다루고 많은 돈을 쓰는 건, 이제 구식처럼 느껴지죠.”

    좋은 품질은 이런 담론에 끼기 위해서 갖춰야 할 기본 소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럭셔리는 태도에 대한 것이다. “옷을 입을 때 동일한 인상을 추구하고, 같은 걸 즐기는 거죠. 저는 그런 것들에 훨씬 더 흥미를 느낍니다. 제게 동시대적인 럭셔리란 개인적이고 자신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일관된 기준이에요.”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JANG DUK 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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