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최고 여배우, 창의적 패셔니스타, 디자이너의 뮤즈! 전형성을 벗어나 이토록 매력적이고 자유로운 패션 아이콘은 없었다. 배두나가 예술과 패션의 도시 파리에서 전하는 루이 비통의 동시대적 매력.
대한민국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뜨거운 여름이지만, 배두나의 여름만 할까 싶다. 2016년의 8월은 그간 파편적으로 들려오던 배두나의 활약이 집대성된, 활화산처럼 뜨거운 그녀의 결정적 시기로 기억될 것 같다. 영화 <터널>이 개봉과 동시에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와 환호를 받는 동안 그녀는 새벽 3시부터 분당의 어느 납골당에서 워쇼스키 감독과 넷플릭스의 TV 드라마 <센스 8>의 시즌 2를 촬영하고 있었다. 한편 그사이 <보그> 사무실에서는 전 세계 여자들이 사랑하는 루이 비통의 패션 천재,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우리의’ 배두나가 허리를 감싸 안고 찍은 커버의 편집 작업이 한창이었다.
“<터널>은 도전이었어요. 세현이라는 캐릭터는 누가 연기해도 되는 역할처럼 보여요. 워낙 주어진 상황이 처절하다 보니 배우가 자기 매력을 첨가하기도 쉽지 않죠. 하지만 시나리오가 무척 맘에 들었어요. 원작은 무겁지만 처절하면서도 헛웃음 나게 하는 매력이 느껴지는 각색이었죠. 하정우, 오달수 두 남자 배우들이 터널 안에서 생동감 있게 연기하려면 그 일이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는 걸 알리고 감정선을 잡아주는 캐릭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저라면 좋겠다 싶었어요. 김성훈 감독님이 이 역할을 제게 보낸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고요.”
배두나의 영화에 대한 순정은 한 발짝 움직일 때조차 ‘주연’으로서의 모든 조건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요리조리 뜯어보고 계산기를 두들기는 여느 한국 배우’들의 방식과는 확실히 다르다. “낯선 곳에서 활동하면서 마음이 많이 강해졌어요. 특히 <센스 8>을 찍으면서 신기한 훈련을 받았죠. 극 중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7개 도시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는 제가 다른 배우들을 서포트해야 하는데, 그때 조연이 되는 법을 배웠어요. 그래서 <터널>도 더 자신 있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터널에 매몰된 남편을 어쩌지 못해 울고 또 울던 ‘배두나의 세현’이 한국 사회와 현실의 민낯을 일깨웠다면, <센스 8>에서의 ‘배두나의 선’은 초국적, 범우주적 이야기에 복무한다. <센스 8>은 전 세계 8개 도시에 흩어져 사는 여덟 명이 같은 감정과 생각 그리고 능력을 공유한다는 내용의 드라마. 극 중 박선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증권회사의 커리어 우먼이지만 알고 보면 끝내주는 무술 실력을 가진 여자인데, 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조차 차별 받는 선은 스트레스를 싸움으로 푼다.
“서울 촬영에서는 무엇보다 해가 중요해요. 존 톨 촬영감독님이 오스카를 두 번 탈 정도로 그림을 중시하는 분이거든요. 해가 뜨면 감정 신을 찍고, 해가 중천에 뜨면 액션 신을 찍다가, 해 질 무렵에는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감정 신을 찍어야 하는 식이죠. 저는 1시간의 점심시간 낮잠 자는 데 써요. 그래야 오후 촬영 때도 파이팅할 수 있거든요.”
“케냐에서 촬영하고 왔는데, 아프리카보다 더 더운 것 같아요. 매일 아침 아이폰에 폭염 경보 알림이 뜰 때마다 놀라는 동료 배우들을 안심시키는 것도 제 몫이죠. 원래 한국은 아름다운 사계절의 나라인데 올해는 좀 이상하다고 변명하기도 하고요.(웃음) 왠지 우리 집에 친구들을 초대한 것처럼, 이들이 보낼 시간에 대해 책임감이 느껴져요.” 얼마 전에는 워쇼스키 감독을 위시한 배우들이 단체로 <터널> 시사회를 왔다는 둥 하정우를 눈여겨 보았다는 둥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도희야>로 칸 영화제에 갈 때 그녀는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배두나의 손목 둘레 치수까지 재어 공들여 만든 블랙 드레스를 입었다. 그리고 루이 비통의 글로벌 광고 캠페인 ‘시리즈 4’의 모델이 됨으로써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뮤즈가 되었다. “매년 니콜라와 여름휴가를 함께 가요. 피에르 아르디 같은 다른 친구들도 함께하죠. 이번에도 네 방은 항상 비어 있으니, 시간이 나면 꼭 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답했죠. 미안하지만 제일 바쁜 시간이야!(웃음) 우린 둘 다 사교적인 편도 아니고, 혼자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나는 그를 아티스트로서 존경하지만, 우린 거창한 야망이나 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소소한 고민을 상담하며 밤을 지새워요. 그러고 보니 그곳에 너무 가 있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