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넘 궁전에서 열린 디올 크루즈 쇼
Royal Express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에 등장하는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를 타고 처칠의 생가인 블레넘 궁전으로 떠나는 패션 트래블! 60년 전의 무슈 디올처럼 디올 가문은 이곳에서 크루즈 잔치를 열었다.
Lady Dior Pub 쇼 전날 저녁, 단 하루만을 위한 레이디 디올 펍이 개장했다. 디올 하우스가 내린 특명은 ‘매우 런던적이고 시크하면서 쿨하게 행동하는 것!’ 마운트 스트리트에 위치한 정통 영국식 펍 ‘Audley’는 레이디 디올 펍으로의 변신을 위해 매장 곳곳에, 심지어 유리 창문에도 레이디 디올 마크를 새겨 넣었다. 영국 펍의 완벽한 파리식 변신! 레이디 디올이 새겨진 맥주잔, 컵 받침 그리고 팔뚝에 레이디 디올 타투를 그려 넣은 웨이터들까지. 1층 가라오케 무대는 아바와 <그리스>의 노래를 부르려는 손님들로 붐볐고, 삼삼오오 모여 앉은 손님들은 화창한 오늘과 달리 내일은 과연 비가 올까 안 올까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또 이번 행사를 위해 고안된 ‘디올 인 런던’ 앱을 다운받아 신나게 사진 촬영 중. 다들 치즈 샌드위치와 스카치 에그, 작은 바닷가재와 감자 칩, 치킨 파이 등을 맛보며 런던의 밤을 보냈다. 변덕스러운 영국 날씨는 금세 잊혔다.
House of Dior in London 런던의 뉴 본드 스트리트 160-162번지. 이곳은 전 세계 디올 하우스 중 가장 큰 규모다. 공식 오픈을 며칠 앞두고 크루즈 쇼에 초대된 기자들에게 미리 문을 열었다. 흰색 차양과 깃발이 장식된 이 성대한 왕국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피터 마리노에 의해 치밀하게 계산된 토니 크랙의 조각 작품과 라도 키로프의 메탈 조각품 그리고 루이 16세 네오 클래식 양식의 가구가 눈에 띄었다. 또 프레스코에는 아티스트 오요람이 구상한 그래픽적인 영상이 상영됐는데, 이를 감상하며 계단을 따라 오르면 여성복과 액세서리, 주얼리, 타임피스뿐 아니라 영국에서 처음으로 시작하는 남성복 세미 맞춤 서비스, 단독 공개될 디올 홈 컬렉션, 베이비와 키즈 섹션, 리미티드 제품을 전시한 퍼퓸 공간 등을 만날 수 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눈에 띈 것은 런던 디올 하우스 오픈을 기념해 아티스트 마크 퀸이 재해석한 레이디 디올 백. 자신의 정물 유화를 프린트한 리미티드 에디션 백과 클러치는 단연 백미!
Paris-Blenheim Dior Express 오전 11시. 빅토리아 역의 플랫폼은 블레넘행 디올 익스프레스를 타게 될 근사한 옷차림의 손님들로 인산인해. 그들에겐 금색 견장과 더불어 디올 익스프레스 배지가 달린 회색 유니폼을 갖춰 입은 남자 모델 12명이 배치됐다. 초대장과 함께 배달된 기차표에 적힌 좌석 번호를 찾아 플랫폼을 따라 걸으며 다들 발걸음을 재촉했다. 기차역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설렘 때문인 듯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훌륭하게 세팅된 테이블이 우리를 반긴다. 흰색 리넨 덮개와 블레넘 디올 익스프레스 로고 장식 냅킨의 정성스러운 세팅을 보니,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멋진 열차에 탑승한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상상과 현실이 환영처럼 오버랩되는 가운데 창밖의 고즈넉한 영국 시골 풍경을 감상하며 코스 요리를 맛보는 동안, 즉석 카메라를 든 역무원 복장의 사람들이 역무원 모자를 주며 즉석 사진 찍기를 권한다. 디저트까지 맛보며 다들 느긋한 시간을 보낼 무렵, 열차가 찰버리 역에 정차했다. 어제 우려한 대로 계속 비가 내린다. 차례로 나눠주는 검은 우산을 쓰고 걸어 나오는 동안 누군가 이렇게 외쳤다. “아름다운 영국으로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Blenheim Palace 금빛 돌, 붉게 물든 나뭇잎, 높디높은 가을 하늘이 어우러져 교향악을 펼쳐내는 곳. 그곳에 버스 한 대가 멈춰 서고, 아름다운 여성 10여 명이 내려 감탄한 듯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그 뒤로 짐을 잔뜩 실은 차량이 줄줄이 들어오고 나면 당대 가장 드라마틱하던 패션쇼 무대가 비로소 마련된다. 1954년 11월, 이곳은 영국에서 첫 번째 디올 컬렉션이 열린 블레넘 궁전.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택 중 하나로 베르사유 궁전을 연상시키는 정원과 풍광을 간직한 곳이자 윈스턴 처칠의 생가로 유명하다. 적십자사의 후원으로 영국의 마가렛 공주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무슈 디올의 컬렉션 이래 이브 생 로랑이 이끄는 두 번째 컬렉션 그리고 ‘뉴 룩’ 탄생 70주년을 앞둔 지금, 다시 블레넘 궁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 쇼를 위해 런던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온 관객들을 위해 디올 가문이 준비한 것은? 맨 먼저 궁전의 안뜰에서는 브라스 밴드가 ‘Third Kind’의 ‘Close Encounters’를 연주하며 환영 인사를 대신했다. 또 차에서 내리는 손님들을 위해 테일 코트를 입은 잘생긴 안내원이 홀까지 가는데 한쪽 팔과 우산을 제공하기도 했다. 내부의 웅장한 홀에는 블레넘 궁전에서의 1954년 컬렉션 피스 중 가장 빛을 발한 드레스와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가 전시돼 있었는데, 이는 이번 쇼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기에 충분했다.
2017 Cruise Collection 1958년 이브 생 로랑이 발표한 쇼와 동일한 코스로 준비된 긴긴 런웨이. 윌리엄 3세의 초상화 아래 52명의 모델들이 영국의 록 밴드 라디오헤드의 최신 싱글 ‘Burn The Witch’의 리듬에 맞춰 캣워킹을 시작했다. 라프 시몬스가 떠난 후 디올 컬렉션을 맡고 있는 두 디렉터, 루시 마이어와 세르주 루피외(이때만 하더라도 발렌티노의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확정될 거라는 공지는 없었다)은 무슈 디올의 첫 컬렉션으로 돌아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상류층 의상에 그들만의 도전 정신을 부여했다. 자카드로 묘사된 사냥 장면, 강렬한 레드는 사냥개들을 풀어놓고 수렵하는 사냥꾼들의 진홍빛 복장을 연상시켰고 투박한 트위드, 시골풍의 포플린 소재로 영국을 표현했다.
장미꽃 봉오리를 프린트한 페플럼 티 드레스 역시 다분히 영국적이었다. 특히 파리의 향기를 담은 디테일과 실루엣은 영국의 영향에 답하는 듯 보였다. 바 재킷의 부드러운 곡선은 몸에 꼭 맞게 제작됐고, 잘록한 허리선을 강조하거나 패브릭의 풍성한 율동감을 함께 연출해 어깨선에서 펄럭이는 포켓 장식이 인상적인 코트로 탄생했다. 볼륨감은 디올의 전통에서 나왔지만, 실질적으로 영국적 코드를 겨냥했다고 할까? 영국과 프랑스 스타일이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듯 보였다. 무슈 디올이 새빌 로우 하우스에서 자신의 의상을 구상하던 시절, 영국식 울 소재나 스코틀랜드 트위드, 프린스 오브 웨일스 체크와 같은 남성적인 코드를 여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사용한 것처럼 말이다.
쇼가 끝난 후 궁전을 떠나기 전 500여 명의 관객은 거의 동시에 꽃으로 가득한 호화로운 대리석 테이블로 향했다. 영국식 티타임을 위해서였다. 차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가기 전, 오이 샌드위치와 슈가 로즈 장식이 돋보이는 마카롱을 곁들인 차를 마시며 디올과 블레넘 궁전의 60년 만의 감격스러운 재회를 만끽했다. 사실 쇼의 대미는 몇 시간 후 런던 시내에서 진행될 애프터 파티일 것이다. 하지만 블레넘 궁전 살롱에서의 티타임은 프랑스와 영국이 만든 완벽한 쇼를 축하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 에디터
- 이지아
- 포토그래퍼
- COURTESY OF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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