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밀레피드의 보석
영화 <블랙 스완>의 안무를 담당한무용수 벤자민 밀레피드. 반클리프 아펠과의 협업을 통해 ‘보석(Gems)’의 신세계를 펼쳐 보인 그를 <보그>가 만났다.
Grand Plié
런던 중심가에서 살짝 벗어난 엔젤 지역. 이곳엔 유서 깊은 새들러스 웰스 극장이 있다. 이곳 풍경을 잠시 살펴보자. 전 세계에서 초청된 소수의 기자들, 반클리프 아펠 메종의 CEO 니콜라 보스와 그의 우아한 고객들, 안무가 벤자민 밀레피드와 그의 아내 나탈리 포트먼(당신이 알고 있는 바로 그 나탈리!)이 샴페인을 한 잔씩 손에 든 채 오늘 처음으로 공개되는 발레 공연 <On the Other Side>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이 공연은 올해 110년이 된 보석상 반클리프 아펠, 그리고 영화 <블랙 스완>의 안무가 벤자민 밀레피드가 이끄는 L.A. 댄스 프로젝트(L.A. Dance Project)의 협업 작품인 발레 시리즈 ‘보석(Gems)’의 마지막 편, 제3부의 초연이다.
유서 깊은 보석상과 발레에 과연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지 쉽게 연상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클리프 아펠과 발레는 오랜 세월 긴밀하게 인연을 맺어왔다. 반클리프 아펠 메종의 창의적인 주얼리를 모티브로 전설의 안무가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이 발레 공연 <주얼(Jewels)>을 선보인 게 무려 50년 전의 일. 또 4년 전에는 벤자민 밀레피드가 창립한 L.A. 댄스 프로젝트와 동맹해 무용계와 인연을 이어갔다.
L.A. 댄스 프로젝트는 나탈리 포트먼의 남편이자 세계적인 안무가 벤자민 밀레피드(최근까지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예술 감독이었다)가 창단한 댄스 팀이다. 그저 단순히 무용단이라기보다 예술적 화합이라는 컨셉 아래 발레 자체를 재조명하는 개별 예술가들의 연합체라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2012년 9월, 반클리프 아펠 메종은 미국 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열린 L.A. 댄스 프로젝트의 창단 공연을 축하하며 파트너십을 맺었고, 벤자민 밀레피드는 반클리프 아펠에서 영감을 얻은 발레 작품 ‘보석(Gems)’을 구상했다.
작품은 총 세 개의 시리즈다. 2013년 5월 23일 프랑스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선보인 <Reflections>이 제1부, 2014년 12월 1일 마이애미 구스만 센터의 올림피아 시어터에서 공연된 <Hearts & Arrows>가 제2부, 그리고 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제3부 <On the Other Side>가 2년 만인 올해 런던에서 공개된 것이다.
공연은 에메랄드 그린, 루비 레드, 사파이어 블루, 화이트 다이아몬드를 연상시키는 반짝이는 실크로 만든 스포티한 복장 차림의 무용수들이 필립 글래스의 매혹적인 음악에 맞춰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50년 전, 조지 발란신이 보석의 컬러에 매료됐다면, 벤자민 밀레피드를 사로잡은 건 보석의 광채다. “이번 공연은 원석의 상징성과 봄의 기운, 희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자아내는 보석의 투명한 아름다움은 다이내믹한 춤동작의 영감이 됐죠.” 아울러 필립의 음악과 무용수 각각의 동작 하나하나가 이 공연을 완성하는 에너지 그 자체라고 덧붙였다.
설치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가 제작한 무대는 댄서들의 움직임을 몹시 섬세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덕분에 관객들은 인체가 보석의 광채를 어떻게 표현해내는지 숨죽이며 지켜볼 수 있었다. 사실 이것은 보통의 주얼리 컬렉션 프레젠테이션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체험이었다. 반클리프 아펠은 쇼케이스 안에 고이고이 진열된 보석 그 자체로서의 주얼리를 구경하고 감상하는 1차원적 관찰에서 진일보한 방식으로 그들만의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듯했다.
벤자민 밀레피드는 한결 홀가분한 모습으로 디너 테이블에 나타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작품의 안무를 구상하는 건 아주 흥미로운 여행 같았습니다. 필립 글래스의 음악은 그 자체로 놀라운 기운을 불어넣었고, 무용수들은 이번 도전을 완벽한 균형과 감성으로 승화시켰죠.” 반클리프 아펠과 벤자민 밀레피드의 진일보한 협업을 경험하고 나자 주얼리 수집가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남긴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보석의 광채를 소유할 순 없다. 그저 감탄하며 바라볼 수밖에!
- 에디터
- 김지영
- 포토그래퍼
- COURTESY OF VAN CLEEF & ARPELS, GETTYIMAGES / IMAZ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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