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올림픽의 청춘 주연들 – ⑤ 박상영
리우데자네이루에서의 축제는 끝났다. 그곳에서 메달과 관계없이 우리에게 강렬한 뭔가를 남긴 리우 올림픽의 청춘 주연들. 매트 위에 선 자체로 아름답지만, 오늘 서울에서 또 다른 나로 새로운 인사를 건넨다. 누구에게 올림픽은 폭주하듯이 달려가는 목표였고, 누구에게는 산뜻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올림픽을 빼고도 할 이야기는 많다. 〈보그〉 뷰파인더 안에서 그들은 또 다른 영웅이다. ▷ ⑤ 박상영
“할 수 있다” 말고도 박상영이 하는 말
인터뷰는 한국체육대학교로 가는 차 안에서 이뤄졌다. 박상영은 기숙사 통금 시간인 밤 9시까지 들어가기 위해 저녁도 걸렀으니 뭐라 할 수 없었다. 흔들리는 차에서 등을 의자에서 떼고 앉아 강남에서 한국체육대학교까지 1시간을 가야 했던 그가 수고라면 더 했다. “8시 50분까지는 꼭 가야 합니다.” 올림픽이 끝난 지 열흘이나 됐을까. 느슨해져도 되는 유일한 기간일 텐데 단호했다.
스물둘, 역대 최연소 펜싱 국가 대표이지만 나이와는 상관없이 그는 펜싱과 관계된 모두에 엄격하고 분명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어냐고 묻자 1초도 안 돼 펜싱이라고 답한다. 예를 들면 ‘행복한 삶’ 같은 본능이 들어서기도 전에. 펜싱은 행복이나 나은 삶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하나로 완성체였다.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펜싱을 시작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그랬다. 또래의 학창 시절이 부럽지 않았느냐고 자주 답을 강요당하지만, 그는 “꿈이 있잖아요”라고 같은 답을 한다. 리우 올림픽에서 그가 되뇌던 “할 수 있다”처럼 공익광고 같다. 하지만 진심이기에 말갛고 아름답다. 그는 답을 지어낼 줄 모른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의 감격도 마찬가지다. “기쁘다는 표현보다 더한 말을 쓰고 싶어요. 근데 뭔지 모르겠어요. 온몸에 전율이 일었는데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어느 분야가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스포츠는 특히 말도 안 되는 성공 확률의 게임이다. 어머니는 그래서 만류했다. 중학생 소년은 아침 8시에 단체 운동이라면 새벽 6시에 개인 운동을 하고, 훈련이 끝나도 강변에서 러닝을 하고, 집에 들어와서 빨래를 돌리고 훈련 일지를 쓰고, 펜싱 영상을 봤다. 매일 밤 12시에 잠이 들었다. 하루는 A4 용지에 10년 계획을 썼다. 고 1 때 메달 따기, 최연소 국가 대표가 되기, 대학생 때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기. “놀랍게도 모두 이뤘어요. 그 종이를 잃어버렸는데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어요.” 모두 자신을 위한 거였다. 그래서 그는 요즘이 놀랍다. “‘할 수 있다’란 말도 온전히 내가 경기에 집중하기 위한 거였는데, 국민이 힘을 얻었다고 들었어요. 한 중년 아저씨가 일을 그만두려다 제 경기를 보고 다시 시작했대요. 그런 SNS 쪽지가 많이 와요.” 덕분에 요즘엔 어딜 가나 “할 수 있다”를 반복해야 하지만, 이 긍정적인 전염이 신기할 따름이다.
사실 그가 경쟁에서 긍정의 힘을 찾은 지는 얼마 안 됐다. “펜싱만큼은 심하게 예민했어요. 제가 집착하는 분야라 그런가 봐요. 애정이 깊을수록 불안도 덩달아 크더라고요.” 작년 3월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받고 12월까지 재활 훈련을 할 때는 오죽했겠는가. 스스로 심리 치료를 요청할 정도였다. “불면증이 심했어요. 심리학 박사님이 ‘불안은 미래에서 오는 거다. 후회가 과거에 있듯이 불안은 미래에 있다. 좋은 성적을 내려면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어요. 머리를 ‘탕’ 맞은 거 같았죠. 그때부터 하루하루를 즐기려고 했어요. 올림픽은 재미있는 놀이라고요.” 그럼 펜싱 말고 다른 취미는? 없는 걸 끄집어내듯이 한참을 망설인다.
‘’명언을 검색하곤 해요.” ‘연습은 완벽을 만든다.’ ‘인생을 사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무 기적이 없듯이 사는 것, 다른 하나는 매 순간 기적이 있듯이 사는 것.’ 이런 명언을 검색하고 외운다. 생각해보니 이 역시 펜싱에서 자기를 독려하는 수단이다.
- 글
- 김나랑 (프리랜스 에디터)
- 스타일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AHN JOO YOUNG
- 헤어
- 장혜연
- 메이크업
- 이나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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