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메이크업 브러시의 모든 것

2016.10.06

by VOGUE

    메이크업 브러시의 모든 것

    화장 좀 제대로 해보자, 심기일전 장만했으나 결국 화장대의 계륵으로 끝나는 메이크업 브러시. 16년 화장붓 외길 인생을 걸어온 더툴랩 백수경 대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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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메이커, 브러시

    단언컨대 ‘절대적으로 좋은 붓’이라는 건 없다. 같은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이라도 어떤 것은 길고 부드러운 붓이 어울리고, 또 다른 것은 짧고 탄성 있는 붓이 잘 발린다. 중요한 건 텍스처와 브러시의 궁합. 예를 들어볼까. 3년 전 P&G에서 개최한 이노베이션 이벤트. 한국의 브러시 개발자들은 SK-II를 만났다. 당시 그들은 스타 프로덕트였던 솔리드 파운데이션을 스펀지로 바르도록 가이드하고 있었다. 이미 좋은 제품이었지만 더 좋아질 수 있는 열쇠가 우리에게 있었고 그들은 새로운 브러시와 합을 맞춰보라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2015년, SK-II ‘크림 인 파운데이션’은 짧고 둥근 브러시를 짝꿍으로 소개하며 업그레이드됐다. 판매율이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고 하니 도전은 성공. 브러시는 단독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도구’지만 이처럼 맞는 짝을 만나면 주인공에게 반드시 주연상를 안기는 킹메이커이다. 완전히 새로운 브러시를 개발해 선보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2~3년. 그 과정이 지난하고 금전적으로도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브랜드에서 계속 새로운 브러시를 찾아 헤매는 데는 이런 내막이 있는 것이다.

    웰메이드 기획작

    튀어나온 문고리를 보면 당겨 열고 홈이 파인 문은 옆으로 밀어 열 듯, 세상 모든 디자인은 그렇게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다. 브러시도 마찬가지. 더툴랩의 ‘101 멀티 태스커’ 일명 ‘쓱싹이’는 다른 브러시보다 핸들과 모의 길이가 짧다. 이런 귀여운 생김새가 의미하는 것은 “눕히지 말고 세워 사용하시오”. 여자들이 그토록 꺼리는 붓 자국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브러시를 눕히지 못하게, 그리고 핸들을 힘주어 밀지 못하게 의도된 것이다. 또 피부와 닿는 털 다발의 면이 마치 스펀지처럼 느껴지도록 밀도를 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이처럼 신기능의 브러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화장 제스처에 대한 데이터, 인체에 대한 공부, 검증을 위한 충분한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다. 어느 필드에서든 웰메이드의 길은 험하고 집요한 법이니까.

    싼 게 비지떡

    물론 모든 브러시가 이토록 정성껏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모양은 똑같은데 가격이 열 배도 더 차이가 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첫째 원재료. 화학 레진을 압축해서 만드는 인조모의 경우 분리수거하는 재생 플라스틱으로도 만들 수 있다. 좋은 의미에서는 리사이클이지만 재료의 순도가 낮으면 내구성은 떨어지게 마련. 모의 염색과 핸들 도색에 사용되는 색소의 질도 천차만별이다. 싸구려 염료가 내 얼굴에 이염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뿐인가. 브러시를 사용하다 핸들이 쑥 빠져 모와 분리됐다면 이건 제대로 말리지 않은 나무를 사용한 탓이다. 습기를 머금고 팽창한 나무가 운반 도중 말라 쪼그라들면서 조립이 헐거워진 것이다. 빨리, 싸게 브러시를 유통하고 싶은 브랜드에서는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인체에 유해할 수도 있는 강한 본드를 쓰기도 한다. 둘째는 ‘사람’이다. 싸든 비싸든 브러시는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차이는 노동력의 질과 중간 공정의 수. 예전 프랑스 장인들은 털을 물에 담갔을 때 위로 떠오르는 가볍고 부드러운 것만 모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어르고 달래며 브러시를 만드느라 한 달에 300개도 채 만들 수 없었고 고가의 브러시에 대한 수요가 적어져 수지 타산이 맞지 않자 결국 문을 닫았다. 브러시 장인들의 노고는 퀄리티 그리고 생산 시간에 정비례한다. 브러시의 가격에는 그들에 대한 리스펙트가 포함되어 있으니 너무 야박하게 생각하지 말아주길.

    마지막은 디테일. 브러시를 살 때는 반드시 얼굴에 사용해보고 판단해야 한다. 호(모 하나하나의 끝)의 가공이 허술하면 얼굴에 미세한 흠이 날 수도 있다. 부드러운 브러시가 모두 좋은 건 아니지만 자극이 없어야 하는 건 기본. 호와 같이 피부 건강과 직결되는 디테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 좋다.

    진주 목걸이를 걸 자격

    아무리 좋은 브러시도 사용자에 따라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만약 인조모로 파우더를 바르고 가루 날림이 심하다 불평한다면? 선택이 잘못된 탓. 표면이 매끈하게 가공되는 인조모는 가루 입자를 잘 머금지 못한다. 대신 습기에 강하니 리퀴드 제품과 궁합이 좋다. 반면 양털, 염소털, 말털 등의 천연모는 모 하나하나마다 큐티클이 살아 있어 틈틈이 많은 양의 가루를 잘 품었다 쏟아낸다. 발색이 좋아지는 건 당연지사. 대신 단백질 그 자체라 세균이 쉽게 번식하니 습기가 많은 리퀴드 제형에 취약하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바로 세척법.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알코올 베이스의 세척제는 천연모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인조모의 세척력을 저하시킬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천연모는 단백질 덩어리라 알코올에 녹아 푸석해진다. 인조모로 주로 바르는 오일 베이스 리퀴드 제품은 알코올에는 잘 녹지 않고. 그럼 어떡하냐고? 기름은 기름으로 씻는 게 맞다. 오일 클렌저의 미끈함이 내심 찝찝하다면 비누로 2차 세정하면 될 일이다. 천연모는 머리카락이나 양모 스웨터 다루듯 샴푸혹은 울 샴푸로 감기도록. 세정 빈도도 유난 떨 것 없다. 파우더류에 사용한 브러시는 2~3주, 파운데이션 브러시는 일주일에 한 번 빨면 족하다.

      에디터
      백지수
      포토그래퍼
      CHUNG WOO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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