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y, Me
이번 시즌 트렌드는 ‘나’다. 개성이라는 모호한 화두를 따르는 뷰티적 방법은 두 가지. ‘생긴 대로’ 거나 ‘마음대로’거나.
“Ma name is Nada, Nada is nothing.” 이 바이브 넘치는 목소리는 누구? TV로 고개를 돌리니 <언프리티 랩스타>의 래퍼 나다가 ‘마이 스토리’를 테마로 한 랩 메이킹을 선보이고 있다. ‘나는 이런 여자’라며 툭툭 털어 뱉는 그녀의 진보랏빛 입술은 완전히 시선 강탈! 두 달 전 새파란 후배에게 “언니, 왜 이렇게 못해?”라는 디스를 받고 겸연쩍게 웃던 때와 같은 ‘춘장’ 빛깔 입술인데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후광, 그 발원지는 어디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지난 2016 F/W 컬렉션 백스테이지는 좀 당황스러웠다. 원래대로라면 뷰티 대가들에게 ‘유행 예언’을 청하고 그들이 사용한 립스틱 번호나 헤어 컬의 노하우를 상세히 노트하면 된다. 그런데 이번 시즌 아티스트들은 “안티 트렌드가 트렌드입니다. 자기 자신이 되세요” “자유롭게 하세요. 여러분은 복제 인간이 아니잖아요” 같은 선문답을 던졌다. 하지만 4대 도시 컬렉션이 종료되고 백스테이지 룩을 모아 훑고 나자, 아티스트들이 “트렌드는 곧 ‘나’”라고 입을 모은 것이 무슨 뜻이었는지 슬슬 감이 오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 뷰티 트렌드는 ‘생긴 대로’거나 ‘마음대로’.
‘생긴 대로’라면, 요즘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 아이스 버킷 챌린지처럼 번지는 #nomakeup 무브먼트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미안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생얼’은 뷰티적인 맨 얼굴이 아니다. 알리샤 키스가 “화장은 일종의 사회적 도구로 개인의 참된 개성을 감춰버린다”고 말하며 메이크업을 공격했다는데, 미적 소비와 자존감의 관계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실제로 맨 얼굴 체험에 나선 동료 에디터는 하루에 세 번씩 “저 정말 괜찮아요?”를 물어왔다. 타인인 나는 후배의 맨 얼굴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는데 정작 못 견뎌 한 건 그녀 자신이었다. 캠페인은 메시지일 뿐, 자기애는 오히려 메이크업을 적당히 했을 때 더 강해진다.
그렇다면 뷰티적 민낯이란 무엇인가? 이자벨 마랑의 키 메이크업 아티스트 리사 버틀러가 그러했듯 솜털이 다 드러날 정도로 얇은 커버로 윤기를 불어넣고 도톰한 아이브로로 인상을 더한 ‘노메이크업 메이크업’이다. “모델들 자신이 가장 예뻐 보이는 버전으로 메이크업했어요”라는 그녀의 설명이 ‘생긴 대로’에 대한 답인 셈이다. ‘마음대로’ 식 개성은 모델 65명의 얼굴을 모두 다른 패턴으로 메이크업한 마크 제이콥스의 컬렉션이나 모델들이 ‘땡기는’ 립스틱 컬러를 마음껏 골라 바르도록 허락한 막스마라의 백스테이지에서 잘 드러난다. 또 디올의 피터 필립스가 연출한 검은 입술이나 샬롯 올림피아 런웨이에서 목격한 붉은 눈두덩은 차별화된 매력일 뿐, 전혀 기괴해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움의 스펙트럼이 넓어져 당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든 모두 정답이 될 수 있는 트렌드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시각적 방종과 개성은 분명 다르다. 이 간극을 메워주는 열쇠? 그 또한 ‘나 자신’에게 있다. 래퍼 ‘나다’가 범상치 않은 컬러의 립스틱을 바르고 등장했을 때 그녀의 영상 밑에 달린 리플은 ‘춘장, 고추장, 와사비’였다. 하지만 나다가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좋다”고 고백하고, 그녀만의 무대를 선보이기 시작하자 연관 검색어에 ‘나다 립스틱’이 추가됐다. 디지털 인플루언서들은 노랗고 파란 품귀 컬러 립스틱을 재소환해 나다 따라잡기에 나섰고, 라임 크라임 ‘립스틱 데님’이나 닉스 ‘마카롱 립스틱’의 해외 직구 수요 또한 치솟았다. 심행일치와 딱 맞는 뷰티 룩은 유니콘과 같다. 잡아서 길들이긴 힘들지만 올라타 소유하는 순간 용맹한 파괴력을 갖는, 개성이란 그런 것이다.
아름다움은 일종의 놀이고 약간의 나르시시즘은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 돌아이와 아이콘 사이, 당신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뷰티 룩에 도전하는 건 매우 긍정적인 실험! 시작은 입술이 가장 만만하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태윤은 블랙, 퍼플, 옐로 컬러 립 제품을 쇼핑하라고 권한다. “갖고 있던 립스틱에 섞어 발라보세요. 블랙은 채도를 떨어뜨려 다크 아우라를 만들어주고 퍼플은 바랜 듯한 쓸쓸함을 연출하죠. 옐로는 누런 피부색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컬러를 모두 잘 받게 만들어줍니다.”
금자씨처럼 붉은 아이섀도를 쌍꺼풀 라인에 발라 마카브르 트렌드를 소화하거나 속눈썹 날개에만 핑크 마스카라를 덧발라 찰나의 즐거움을 느껴도 좋다. 실패하면 어떡하냐고?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아님 말고’ 정신. 당신의 캐릭터와 맞고, 마음에 든다면 남의 시선 따위 개의할 것 없으니, 그냥 내키는 대로!
- 에디터
- 백지수
- 포토그래퍼
- LEE HYUN SEOK, JAMES COCH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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