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화보

New Nose

2016.11.29

New Nose

낯설지 않지만 새로운 향, 그 한 방울에 천일 야화를 담는 크리스틴 나이젤. 향수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 첫 줄은 그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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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의 자크 폴주가 올리비에 폴주에게 바통을 넘겼을 때, 그리고 에르메스 메종의 자존심 장 클로드 엘레나가 왕좌에서 물러난 지난여름, 향수사가 일단락됨을 느꼈다. 동시에 기대해 마지않은 것은 내성이 생긴 코끝을 깨워줄 새로운 감각의 출현! 이에 대한 에르메스의 응답은 스타 퍼퓨머, 크리스틴 나이젤이었다. 까르띠에, 조 말론 런던, 디올,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등의 향수를 잇달아 성공시킨 그녀가 에르메스에서 처음 선보인 것은 ‘갈로 데르메스’. ‘질주’를 형상화한 향이라니, 스타트 라인에선 조향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아닌가.

VOGUE KOREA(이하 VOGUE) 서울이 처음은 아니죠?
CHRISTINE NIGEL(이하 NIGEL) 그럼요, 아시아 중 가장 처음 방문한 도시가 서울이었는걸요. 당시 만난 한국 여성들은 하나같이 역동적이고 자유로워 보였어요. ‘갈로 데르메스’ 그 자체였죠.

VOGUE 에르메스의 향에 비유되는 도시라! 기분 좋은데요? 솔직히 처음엔 좀 놀랐어요. 당신은 장 클로드 엘레나와는 결이 좀 다른 조향사라고 생각했거든요.
NIGEL 에르메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담한 곳이에요. 누가 악어가죽으로 핑크색 가방을, 이다지도 우아하게 만들 수 있겠어요. 전통적인 동시에 유머러스하죠. 저를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해요. ‘관능미’를 사랑하는 크리스틴 나이젤이 에르메스의 얼굴이 된다는 것 자체가 꽤 신선하지 않나요?

VOGUE 저는 여성성을 해석하는 당신만의 방식이 좋아요. 마냥 상냥하거나 순종적이지만은 않거든요.
NIGEL 그렇게 느꼈다면 성공이네요. 아버지는 스위스, 어머니는 이탈리아 사람이에요.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는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다르게 보고 새롭게 구상하는 걸 좋아하죠.

VOGUE 아무래도 에르메스의 전속 조향사라는 자리는 영광인 동시에 부담일 것 같아요.
NIGEL 물론이죠. 조향사라는 직업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한 병의 향수에 응축시키는 일이니까요. 향수를 갖고 있다면 메종 전체를 갖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VOGUE 작지만 큰 우주를 담고 있는 진짜 럭셔리죠.
NIGEL 맞아요. 에르메스는 조향사 입장에서도 럭셔리해요. ‘완벽한 자유’을 주거든요. 스스로 만족할 만한 향이 완성될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려주겠대요. 요즘 같은 세상에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사치스러운 행복이 있을까요. 게다가 에르메스는 시향 테스트를 하지 않아요. 다른 브랜드의 경우 샘플이 나오면 으레 100명 정도의 여성들에게 향을 맡게 한 뒤 되도록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상품화해요. 하지만 우린 다르죠. 전적으로 조향사를 믿고 그냥 출시해요.

VOGUE 절대적 권위, 전무후무한 자유네요. 그렇기에 달콤한 향수가 주를 이루고 있는 지금 향수 시장에 이같이 역동적인 향을 출시할 수 있었던 거군요.
NIGEL 정확해요. 극소수만 주소를 알고 있는 가죽 창고에 가서 에르메스의 DNA를 느낄 수 있는 특권도 누리고 있죠. 갈로 데르메스의 영감도 거기서 얻었어요. 100개가 넘는 가죽의 종류를 손으로 만져보던 중 도블리스 가죽에서 여자의 피부를 느꼈답니다.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여성의 캐릭터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어요.

VOGUE 가죽도 여성적일 수 있다는 건 신선한 발상이네요.
NIGEL 향수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깰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향수는 맥박이 뛰는 곳에 뿌려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이것 역시 표현의 한 방법일 뿐이에요. 살에 뿌리면 개인적이고 은밀한 연출이 가능하고, 좀더 관대한 느낌을 주고 싶다면 스카프나 스웨터에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죠. 조향도 마찬가지예요. 가죽이라는 하나의 모티브를 형상화하는 방법도 조향사에 따라 달라요. 가죽을 재료로 쓰되 단순히 알코올에 녹인 향만 취하지 않고, 만졌을 때의 촉감 자체를 후각으로 설계하는 것이 저답죠.

VOGUE 새롭네요. 가죽과 장미의 조합은 요즘 럭셔리 하우스에서 많이 시도하는 것이지만 레더의 향으로 촉감까지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공감각일 테니까요.
NIGEL 그게 에르메스랍니다. ‘촉감’은 우리 브랜드와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거든요. 가죽, 스카프 등 장인들이 재료를 만지는 제스처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까요.

VOGUE 에르메스에 푹 빠졌군요.
NIGEL 그럴 수밖에요. 굉장히 특이하고 다채롭거든요. 알려지지 않은 모습이 아직 많아요. 앞으로 메종의 면면을 모두 향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대대로 물려주는 버킨 백처럼 ‘갖고 싶다’는 소유의 욕망이 절로 동하는, 진짜 역작을 말이죠.

    에디터
    백지수
    포토그래퍼
    KIM YOUNG 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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