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re The Futurists
청춘의 음악에서는 꾸며낼 수 없는 흥겨움과 본능적인 설렘이 들린다. 2집 준비로 녹음실과 연습실을 오가고 있는 아이콘(iKON)이 연출한 영화 〈싱 스트리트〉의 패셔너블 뮤직 신.
“우리 밴드 뮤직비디오에 출연할래?” 영화 <싱 스트리트>에서 밴드가 결성되는 이유는 하나다. 소년은 소녀에게 첫눈에 반했다. 아이돌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견고한 시스템하에서 기획되지만 멤버 각각의 시작점은 그보다 본능적이다. 바비는 노래, 랩, 춤, 뭐든 하나는 잘해야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을 것 같아서 랩을 시작했고, 공부도 못하고 맨날 장난만 치던 구준회는 유일하게 친구들한테 박수 받는 순간이 춤출 때라서 가수가 됐다. 소년들에게 멋져 보이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면 이 세상 뮤지션의 숫자는 반으로 뚝 떨어지지 않았을까. “주인공이 원래 멋있지도 않고 약해 보이는 애잖아요. 그런데 음악 하나로 깡이 생겨서 자신감을 얻는 면이 저희와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저희도 이 일 아니었으면 뭘 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했으니까요.(김진환)” <싱 스트리트>에서 루시 보인턴은 뮤직비디오를 위해 물속으로 뛰어든 뒤 말했다. “절대 적당히 해선 안 돼. 우리의 작품을 위해서.”
데뷔 후 오히려 소식이 뜸했지만 우리는 아이콘이 아이콘이 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지난 10년 동안 예능 프로그램 키워드를 딱 하나 꼽는다면 ‘서바이벌’이고, 아이콘은 데뷔하기 위해 두 개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WIN: Who is Next> <Mix & Match>를 지독하게 거쳤다. 구준회는 <K팝스타>를, 바비와 B.I는 <쇼미더머니 3>도 통과했으니 이들의 연습생 시절은 곧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연관 검색어로 ‘눈물’이 자동으로 따라올 정도로 과정은 혹독했지만 아이콘은 데뷔 전부터 뜨거운 응원을 받는 팀이 됐다. 옆방 남동생보다 아이콘의 미래가 더 신경이 쓰였다. 꿈을 향해 달려온 소년들이 데뷔할 수 있기를, 그리고 무대에서 진정으로 신나게 뛰어놀기를.
2015년 세 차례에 나눠 발표한 정규 앨범을 지켜보는 마음은 성장 드라마 마지막 회를 보는 그것과 비슷했다. 다행히 해피 엔딩이었다. ‘취향저격’ ‘리듬 타’ ‘지못미’ ‘덤앤더머’는 발표와 동시에 각종 음원 차트와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휩쓸었고, 아이콘의 경쟁곡이 아이콘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이콘은 선배 가수 빅뱅만큼 무대에서 잘 놀았고, 소속사 YG 스타일에서 벗어나 칼군무를 선보였으며, 감성적인 곡도 터프한 곡도 신나는 곡도 내놓았다. 작사·작곡자 리스트에 B.I, 바비의 이름이 있었다. 자신의 곡을 직접 만드는 아이돌이었다. 김동혁은 ‘Airplane’의 안무를 직접 짰다. 각자 자리에서 투박하게 반짝거리던 소년들은 아이콘이라는 하나의 매끈한 색깔을 이루었다. 아이콘의 첫 앨범은 퍼포먼스를 보지 않고 귀로 듣기만 해도 좋았다. 세상에 없던 아이들이라기보다는 제대로 실력을 갖춘 아이들의 등장이었다. 언젠가 국정 아이돌 교과서가 편찬된다면 2015년 편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뤄야 할 그룹이었다. 여기까지가 서바이벌이 키운 그룹, 아이콘의 탄생기다.
한창 두 번째 앨범을 준비 중인 아이콘은 1집을 돌이켜보며 “좋은 경험이었다”는 말로 소감을 전했다. “앨범이 나왔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어요.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잖아요.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 더 좋은 2집을 내기 위한 발판이었다고 생각해요.(B.I)” 타이틀곡에 무게가 실리기보다 여러 곡이 사랑받은 만큼 멤버 각자 좋아한 곡도 달랐다. “‘아니라고’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제가 거기서 랩을 잘 썼습니다. 저답지 않게.(바비).” “춤을 좋아하니 ‘리듬 타’가 최고죠. ‘덤앤더머’는 신나긴 하지만 저희가 약간 우스워 보일 수도 있는데 ‘리듬 타’는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어요.(웃음)(김동혁)” “‘솔직하게’라는 곡이 있는데 유명하진 않아요. 하지만 당시의 저를 잘 표현했어요.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의 장르이기도 하고요(B.I).” “‘오늘따라’가 펩시 CF에 삽입되었는데 제주도에서 바닷바람 맞으면서 촬영한 기억 때문에 제일 좋아해요.(구준회)” “저희가 각자 색깔이 달라요. 좋아하는 음악도, 장르도 다 다르기 때문에. 피부 톤이 특히 다르죠! 하하.(B.I)” 좋아하는 음악도, 각자 가진 재능도 너무 다른 일곱 명의 취향을 맞추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멤버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나, 아이콘의 대표곡은 ‘취향저격’으로 남았다. “<맛있는 녀석들>에 매회 ‘취향저격’ 노래가 나와요. 보통 후렴까지만 나오고 끊기는데 꼭 2절까지 나와요. 항상 감사하고 감동하고 있습니다.(구준회)”
작년 한 해 아이콘은 해외 팬들의 ‘취향저격’에 나섰다. 일본 데뷔를 시작으로 홍콩, 난징, 방콕, 싱가포르, 쿠알라룸푸르, 자카르타 등 아시아 투어를 진행했고, 12월 30일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마치 한 해 활동에 대한 선물 같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정말 떨렸고 벅찬 순간이었어요. 외국인이기도 하고 아무도 저희에게 상 받으러 나가는 방송이라고 말을 안 해줬거든요. 한국에서는 사실 미리 알려주기도 하는데요.(웃음)(김동혁)” 세계 무대를 운동장 삼아 마음껏 누빈 소년들은 어떤 무대에 올라가도 떨지 않는 배짱을 얻었고 애드리브를 칠 수 있을 정도로 외국어 실력이 급상승했다. 한국의 아이콘이 되라며 ‘icon’에서 c 대신에 k를 넣어 그룹명을 지은 YG 양현석 대표의 바람은 통했다. 해외 팬덤 규모가 더 커졌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이콘은 순식간에 커버렸다. 작년 하반기 바비는 위너 송민호와 콜라보레이션 유닛 MOBB을 결성, 래퍼로서 존재감을 재증명해 보였다. 막내 정찬우가 스무 살이 되면서 아이콘은 전원 성인이 되었다.
해외 순방을 마치고 무사 귀환한 멤버들은 현재 국내 활동에 목이 마른 상태다. 국내 활동 공백기에 불안감이 없느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이런 씩씩한 대답. “당연히 있는데 그것도 저희 몫이니 차근차근 풀어가야죠!” B.I와 바비만 작사 작곡에 참여한 1집과 달리 멤버 전원이 작사 작곡에 시간을 투자하며 2집 준비에 발동을 거는 중이다. 1집 당시 B.I의 하드디스크에는 40여 곡이 있었는데 그중 25곡이 내부에서 불가 판정을 받았고 10여 곡이 세상에 나왔다.
2집 진행 상황은 철저히 비밀이다. 멤버들은 각자 평소 작사 작곡 노하우만 귀띔해줬다. “누가 들을지 생각을 많이 해요. 이 곡이 클럽이나 술집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싶으면 굉장히 신나게 만들죠.(바비)” “일단 그림을 그려놓고 쓰는 편이에요. 신나는 노래는 클럽이나 바닷가를 떠올리고, 슬픈 사랑 노래는 시처럼 쓰는 편이에요. 얼마 전에 꿈을 꾸고 쓴 곡도 있어요. 디테일하게 얘기하진 않을게요. 남자들만의 그런 게 있어서.(웃음)(B.I)” “혼자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기억을 짚으며 진환이 형이랑 같이 쓴 곡이 있어요.(김동혁)”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아서 딱 하나로 얘기하기 어려워요. 그냥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구준회)” “준회는 곡 만드는 기계죠. 중국 스타일. 인해전술 스타일.(B.I)”
멤버들이 아이콘의 노래에 담고 싶은 감성은 ‘흥겨움’이다. 너무 신나기보다 기분 좋게 들썩이는 흥겨움. “2집이 순탄하게 나온다면 ‘떼창’이 많을 것 같아요. 에미넴도 놀라고 가는 떼창.(B.I)” 라이브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 그룹이니 예상컨대 떼창의 데시벨은 콘서트장 천장도 들썩하게 할 것이고, 고양이보다 새침한 소녀들도 그루브를 타게 할 것이다. “저희가 라이브를 위해 ‘잘생김’을 버렸잖아요. 하하.(김진환)” “라이브를 위해 ‘삑사리’까지 감수합니다. 숨이 차도, 숨을 헐떡여도 감수합니다.(송윤형)” “‘지못미’는 부를 때마다 힘들다니까요. 핫핫.(구준회)”
떼창은 <보그> 촬영 현장에서도 우렁차게 라이브로 울려 퍼졌다. 잠이 덜 깬 얼굴로 등장해 각자 휴대폰 게임을 즐기며 스튜디오를 PC방으로 탈바꿈시킨 지 7시간 만이었다. 스탠딩 마이크를 중앙에 두고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찍어보자는 말 한마디에 ‘애국가’ ‘독도는 우리 땅’ ‘아리랑’으로 떼창 메들리가 이어졌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봤듯 아이콘의 팀워크는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의 관계와 비슷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관계. 구박, 비난, 치켜세우기, 농담, 애교 부리기, 객관적인 인정, 독설이 1초에 한 번씩 오고 갔다. 송윤형은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멤버들 앞으로 괜히 쓱 걸어갔다가 카메라 앞에 섰고, 구준회는 멤버들이 헤어 & 메이크업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존 트라볼타’ ‘데이비드 보위’ 등 끊임없이 인물을 매치시켜주었다. 촬영 소품이었던 기타는 바비에서 송윤형으로, 김진환에서 B.I로, 정찬우로 건네졌다. 메이크업 순서를 기다리다가 소파에서 잠든 B.I를 무심히 챙겼고, 갑자기 춤 연습을 했다가, 결국엔 다 같이 평화롭게 휴대폰 게임을 했다.
“숙소에서도 비슷해요. 저, 동혁, B.I 셋이 쓰는 방이 최악인데 제2의 거실처럼 사용하고 있어요. 가장 쾌적한 방은 진환이 형 방? 저희는 불편한 일이 있으면 꼭 모여서 얘기해요. 방은 당연히 가위바위보로 정했죠.(구준회)” “윤형이 형이 미식가예요. 요리해달라고 하면 다 해줘요. 치즈 리소토, 계란말이, 김치볶음밥 다 맛있어요.(정찬우)” 공동생활은 라이프스타일의 일치를 가져왔다. “뭔가 생활이 비슷해져요.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이 밥 먹고 같이 운동하고 같이 퇴근하니까.(송윤형)” 서로 닮아가다가 근육 모양까지 똑같아질지도 모르겠다. 웃긴 말투는 순식간에 전염되고 비밀도 없다. 요즘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녹음실이고 가장 자주 하는 얘기는 게임이지만, 지치지 않고 하는 얘기는 진로에 대해서다. 하고 싶은 노래, 앨범, 춤에 관해서라면 밤새워 얘기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바비는 개인적으로는 춤 하나도 없이 랩만 멋있게 하는 무대가 멋있다고 생각하고, B.I는 스탠딩 마이크 하나 두고 노래로 승부를 거는 무대가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콘이 팀이었을 때 가장 ‘날아다닌다’고 말했다. 데뷔 직전 그만둘까 고민도 했다는 송윤형은 결국 ‘이 사람들’ 때문에 계속 음악을 하게 됐다고 했다. “진심이에요. 멤버들 때문에 음악을 많이 알게 됐고 더 좋아하게 됐어요. 같이 하고 싶어서 음악에 대한 마음이 더 커졌어요.” “우리 노래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계속 춤추고 노래할 것 같아요. 스스로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인 것처럼요.(B.I)” “책임져야 할 가족과 돈 때문이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에 그 꿈을 위해서 합니다.(바비)”
머리를 자른 뒤 개그욕이 승천했다며 농담을 멈추지 않던 B.I는 리더답게 아이콘의 방향성을 정리해줬다. “아이콘은 ‘웰메이드 케이팝 그룹’입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트렌디한, 퓨처리스트.” 더불어 앞으로 목표도 데뷔 때와 마찬가지로 ‘이름을 알리는 것’임을 덧붙였다. “저희 내면은 성숙해졌을 수 있겠지만 아직 표출되지 않은 관계로 다음 앨범을 통해 저희 색깔을 보여주고 좀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소년들은 자신들의 바람대로 멋진 무대를 선보이는 아이들이 됐다. “최고의 멋짐은 믿음 같아요. 데뷔했을 때 회사 어떤 분이 ‘얘는 봤을 때 멋있고 그런거를 떠나서 자기가 멋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아’라는 얘길 하셨어요. 아, 그거구나. 내가 멋지다고 믿으면 멋져 보이는구나.(구준회)”
<싱 스트리트〉 소년들도 말했다. “비틀스는 우리한테 ‘쨉’도 안 돼.” 아이콘은 스스로 멋지다고 믿었고 우리도 아이콘이 멋지다고 믿게 됐다. 사실 청춘들에게 필요한 건 그것뿐이다. 아이돌은 모두 ‘미래파’일 필요가 있다.
- 에디터
- 이지아(패션), 조소현(피처)
- 포토그래퍼
- KIM HEE JUNE
- 필름 디렉터
- DANIEL JON
- 스타일리스트
- 지은
- 헤어 스타일리스트
- 공드레(미장원by태현)
- 메이크업 아티스트
- 김지현
- 세트 스타일리스트
- 최서윤(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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