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ture of Basic
“디자인으로 좀더 나은 일상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처음 디자이너가 된 계기였죠.” 떠올려보면 크리스토퍼 르메르(Christophe Lemaire)는 패션계에 일했던 25년간 삶과 동떨어진 디자인을 선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패션은 판타지가 아니라 리얼리즘이니까. “리얼리티의 시적 측면에 관심이 있어요.” 1992년 론칭한 자신의 브랜드 르메르가 영감을 받는 대상은 파리의 도시 남녀. 한철이면 바뀔 유행을 좇지 않고 실제 삶에서 힌트를 얻은 옷은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그가 라코스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있었던 10년간을 대변하는 말은 ‘시대를 초월한 스포츠 시크’였다. 에르메스 아트 디렉터 시절에도 대담한 디자인을 추구했던 전임자 고티에와는 달리 실용적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그러나 자기 브랜드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에르메스를 떠났다.
그가 2015년 SPA 브랜드 유니클로와의 캡슐 컬렉션 출시로 패션계를 흥분시켰다. 르메르의 절제된 우아함을 ‘보급형’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협업 아이템은 불티나게 팔렸다. 세 번의 성공적인 협업 후, 유니클로는 크리스토퍼에게 네 번째 컬렉션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협업 컬렉션의 이름을 르메르에 더 비중이 있게 ‘Uniqlo And Lemaire’가 아니라 ‘Lemaire for Uniqlo’로 바꿔준다고 설득했을 때 크리스토퍼는 이렇게 말했다. “패션 피플들만 신경 쓰고 유니클로 고객들은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은데요?” 오히려 크리스토퍼에겐 유니클로의 새 레이블 ‘유니클로 유(Uniqlo U)’의 아티스틱 디렉터 자리가 매력 있게 다가왔다. 옷을 살 때 크리스토퍼 르메르가 누군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옷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유니클로 유의 첫 컬렉션을 준비하기 위해 처음으로 착수한 일은 파리에 있는 R&D센터에서 같이 일할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적합한 인물들을 뽑는 데 6개월이 걸렸어요. 이곳에서 일하는 게 럭셔리 브랜드나 트렌드를 카피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 사람을 뽑기 위해서였죠.” 현재 디자인 팀은 15명. LVMH 그룹, 발렌시아가, 라프 시몬스 등에서 경험이 있고 동시에 브랜드의 지향점을 함께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만들 이들로 구성했다. 크리스토퍼는 기존의 거대 패션 브랜드에서 볼 법한 수직적 업무 구조가 아닌, 모든 디자이너들이 첫 스케치부터 광고까지 함께 논의를 하는 스타트업 같은 조직을 꿈꿨다. 첫 컬렉션을 앞두고 크리스토퍼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테마, 무드 보드, 다 잊어버리고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봅시다. 갑자기 두 달 동안 떠난다고 쳐요. 트렁크에 뭘 챙길 건가요? 필수 아이템 20개를 고른다면 뭘까요?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면 기본 아이템을 쿨하게 디자인할 수 있을까요?”
작년에 이어 2월 17일 공개된 유니클로 유 2017 S/S 컬렉션은 이번에도 모노톤과 파스텔 톤이 조화를 이룬 블루종, 재킷, 셔츠, 원피스 등 기본 아이템이 주를 이뤘다. 디자인은 지금 당장 입고 거리로 나가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친근하다. “모두의 옷장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옷이 하나씩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도 멋스럽고 입었을 때 편하고, 자신감이 생기는 그런 옷들이오.” 크리스토퍼는 유니클로 유를 통해 라이프 웨어, 즉 일상에 필수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옷을 만드는 게 목표다. “유행과 평범함 사이를 메우는 겁니다. 기본적이지만 갖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옷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놈코어’라는 말은 너무 많이 쓰였잖아요.”
- 에디터
- 남현지
- 포토그래퍼
- LEE HYUN SEOK, COURTESY OF UNIQ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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