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og Boy
<오무라이스 잼잼>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조경규는 사실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 등 경계를 넘나들며 오색찬란한 감성을 흩뿌려온 전방위 아티스트다. 종이 한 장에 장인 정신을 담아 종이 놀이를 만들어왔던 그가 그동안 작업을 묶어 <가족오락관>이라는 유희물을 내놨다.
종이 놀이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002년 관훈동 ‘토토의 오래된 물건’에서 아톰 딱지, 태권 V 딱지, 말판 놀이 등을 만든 적이 있다. 교과서 그림, 옛날 스타 사진 등을 오리고 붙여서 만들었으니 무단 도용한 셈이다. 그러다가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 별책부록으로 딱지, 말판 놀이, 종이 인형 등을 만들었다. <가족오락관>은 그동안 종이 놀이 작업 중에 좋아하는 것만 추린 것이다. 돈을 내면서라도 하고 싶은 작업인데 돈을 받으면서 하니까 나는 정말 행운아다. 괴수, 공룡, 석기시대, 세계의 불가사의 등 다 원래 좋아하는 테마다.
언제 적 감성이 담겨 있나.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80년대를 기준으로 70~90년대가 걸쳐 있다. 옛날 디자인을 보면 재미있는 것이 많다. 지금 우리가 복고풍으로 부르는 것이 옛날에는 세련되게 하려고 했던 디자인이다. 일부러 복고 감성으로 디자인한다기보다 과거에 좋아 보였던 디자인인데 사실은 안 그런 것 같은 디자인이다. 실제 딱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림체를 뒤죽박죽 그려서 여러 명이 만든 것처럼 보이게 하기도 했다.
<가족오락관> 표지에 ‘최고급 5도 인쇄’라고 적혀 있다. 어떤 컬러와 서체를 사용했나.
형광 핑크색을 썼다. 80년대 어린이 작업물을 보면 만화책이든, 백과사전이든 무조건 형광 핑크색이 들어갔다. 폰트도 다 옛날에 썼던 서체다. 잘 안 써서 그렇지 지금도 다 컴퓨터에 있다.
게임의 룰은 어떻게 정했나.
계속 골탕만 먹어도 재미가 없다. 쭉쭉 나가는 맛도 있어야 하고 함정도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웃기거나 무섭게 할 때 재미를 느낀다. ‘이 정도 세게 하면 오줌을 쌀지도 모르지! 하하’ 그러면서 만든다.
종이 놀이의 매력은 무엇일까.
종이 한 장으로 놀 수 있다. 어디 처박아놓고 잊어도 몇년 후 튀어나올 수도 있다. 만드는 입장에서는 종이 한 장의 미학을 느낀다. 그림, 글 등이 한 장에 딱 들어맞는 쾌감이 있다. 같은 이유로 포스터 작업을 좋아한다.
아날로그 작업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는.
붓으로 선을 그리고 스캔한 후 컴퓨터로 색칠한다. 그냥 색연필, 크레파스로만 그리기도 한다. 손으로 그리면 좀더 깔끔하게 딱딱 떨어지고 필력이 느껴지면 보는 재미가 있다. 바꿀 필요성을 못 느껴서 그냥 그리고 있다. 원래 기계를 별로 안 좋아한다. 어릴 때 <터미네이터>를 보고 기계에게 지배당하게 될까봐 걱정했는데 진짜 그런 시대가 왔다. 진짜 무서운 건 기계가 친근한 테크놀로지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절대 내비게이션을 쓰지 않는다. 어릴 때 충격 때문인지 피해망상인지 모르겠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하는 작업이 좋다.
작품 세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은.
청소년기에 뿌리가 있는 것 같은 게 뭔가 만들면 늘 촌스럽게 나온다.(웃음) 모범적인 효자로 지내면서 하고 싶은 건 다 했던 시절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극장에 갔고 음악도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중 · 고등학교 때 라디오 듣고 음반 사고 영화 봤던 경험에서 세계관이 형성된 것 같다. 몰래 해서 집중력이 있었다. 그때 좋아했던 것들이 지금까지 작업으로 이어진다. 나는 요즘 디자이너들의 디자인보다 식당이나 영화 전단지를 좋아한다. 실생활에 접목되어 있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내용이 다 담겨 있다. 이미지와 조그마한 글씨로 빈틈없이 꽉꽉 채운 작업이 좋다.
지금도 레전드로 생각하는 영화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쥬라기 공원> 시리즈. 성룡 영화, <최가박당> 영화, 강시 영화 등 80년대 봤던 홍콩 영화들은 다 DVD로 가지고 있다.
수집하는 물건이 있다면.
돈 들어가는 수집은 절대 안 한다. 이 내용 나가면 안 되는데… 사실 15년 전부터 항공사별로 탈출 요령 안내문을 모으고 있다. 영화 전단지와 식당 전단지도 모으고 있는데 1996년 한솥도시락 전단지가 제일 오래됐다. 코카 콜라 병이랑 캔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하나씩 사온다. 모두 기억이고 기록이다.
놀이판마다 적혀 있는 카피가 구호 같다.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많이들 잊고 산다. 지도를 펴 보면 우리나라는 작고 세계는 너무 넓다. <6시 내 고향> 지방 음식을 전 세계로 따지면 얼마나 많겠나. 정말 열심히 돌아다니지 않으면 다 못 먹어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넓은 시각을 가지고 지구본을 보면서 지낸다.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COURTESY OF CHO KYUNG 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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