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지만 모피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꽤 반가운 소식입니다.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에서 모피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Yoox Net-a-Porter Group)은 온라인 쇼핑몰 육스닷컴, 네타포르테, 미스터 포터, 더 아웃넷을 보유한 거대 기업입니다. 지난 2015년 10월, 육스 그룹과 네타포르테 그룹이 합병하면서 최대 규모의 온라인 패션 리테일 그룹으로 우뚝 섰죠. 2012년부터는 보테가 베네타, 생로랑, 발렌시아가 등이 소속된 케어링(Kering)그룹의 온라인 스토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180개국에 약 290만 명의 고객을 보유하고 있으며, 작년 순이익은 2조4천억원에 육박합니다.
엄청난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의 ‘모피 판매 중단’ 발표는 모피 시장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은 최근에 모피 반대 연합(Fur Free Alliance)의 ‘퍼 리테일 프로그램’에 합류하며 이 단체에서 규정한 다음 모피 제품의 판매를 중단키로 발표합니다. 밍크, 코요테, 흑담비, 여우, 사향쥐, 토끼, 너구리 모피 제품입니다. 아직까지는 양털, 양가죽을 비롯해 가죽 제품의 판매는 계속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모피 판매가 중단되는 것은 물론, 사내 직원 모두 브랜드 행사나 패션쇼와 같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모피를 입지 않기로 했습니다.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은 지난 2009년부터 ‘지속 가능한 패션’ 산업을 위해 꾸준한 노력해왔습니다. ‘지속 가능성 책임자(Head of Sustainability)’인 마테오 제임스 모로니는 모피 판매 중단을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미국 동물보호단체(The Humane Society of the United States), 국제 동물보호단체(Humane Society International), 이탈리아 동물보호단체(Lega Anti Vivisezione)와 꾸준히 소통해왔습니다. 럭셔리 패션 시장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모피인데, 거대한 럭셔리 패션 그룹에서 이런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건 무척 놀라운 일입니다.
모피 중단 발표는 동물보호협회의 요청이었을까요? CEO 페데리코 마르케티(Federico Marchetti)는 ‘고객의 피드백’이라고 말했습니다.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에서 2만5천명에게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모피 판매를 중단했으면 좋겠다고 답변했기 때문. 2015년부터 진행하기로 결심했지만, 모피 제품을 판매 창에서 내리는 것부터 직원 교육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모피는 우리 비즈니스에서 꽤 중요한 일부였습니다. 하지만 희생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고객의 의견을 듣지 않는 기업은 ‘고객 중심’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모피 판매를 중단하면서 브랜드의 항의는 없었을까요? 모피 하우스인 펜디와 마르니, 발렌티노와 같은 브랜드 말이죠. “우린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 제품을 포기하면 다른 제품으로 대체하면 됩니다. 모두가 만족하며 내린 결론입니다. 일시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아니에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중대한 발표죠.”
동물보호단체의 모피 반대 운동은 항상 패션계로 향해왔습니다. PETA는 패션 위크 때 강력한 저항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모피 반대 경고 문구를 든 PETA 회원이 쇼장 앞은 물론, 런웨이로 난입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빅토리아 시크릿부터 2006년 돌체앤가바나, 줄리앙 맥도날드 런웨이까지. 동물보호협회와 패션계의 ‘모피’ 갈등은 골이 깊습니다.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는 모피 착용을 공개적으로 찬성했다가 맨해튼에서 식사 도중 페타 회원들에게 죽은 쥐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의 발표는 의미가 깊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는 아닙니다. 지난 2004년, 영국의 하비 니콜스 백화점은 모피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부터 토끼, 여우, 코요테 모피가 진열대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질타를 받았습니다.
모피를 판매하지 않고, 동물 실험에 반대하는 ‘Fur Free’에 참여해온 패션 브랜드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동물보호단체 ‘The Humane Society’가 올해 5월 기준으로 공개한 자료를 볼까요? 모피 판매 중단을 선언하거나, ‘Fur Free’ 규정(밍크, 코요테, 흑담비, 여우, 사향쥐, 토끼 , 너구리는 ‘모피’로 구분되고, 양털과 양가죽은 해당되지 않음)을 따르는 브랜드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제이 크루, 아베크롬비 & 피치, 아르마니, 아소스, 캘빈 클라인, 칼하트, 디젤, 포에버 21, 게스, H&M, 나파피리, 나이키, 나인 웨스트, 파타고니아, 폴로, 랄프 로렌, 탑샵, 반스, 유니클로, 자라도 있군요!
채식주의자이자 동물 보호가로 유명한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는 2015 F/W 컬렉션에서 처음 인조 모피를 사용했습니다. “요즘 인조 모피는 진짜와 다를 바가 없어요. 저도 어떤 것이 진짜 모피인지 구별하기 어렵더라고요. 어린 친구들과 진지하게 얘기해봤는데 아무도 진짜 모피를 원하지 않았어요. 그때 결심했죠.”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은 이미 90년대 초부터 인조 모피를 사용해왔습니다. 당시엔 인조 모피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이 만연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런웨이에 올렸죠. 평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섞기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실험 정신이기도 합니다. 페이크 퍼(인조 모피)의 ‘페이크’란 말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는군요. 이런 성향 덕분에 어떤 쇼에선 진짜 모피를 사용한 적도 있지만, 2017 F/W 런웨이엔 모두 인조 모피가 올랐습니다.
디자이너 한나 웨일랜드의 쉬림프(Shrimps)는 인조 모피로 이름을 알린 브랜드입니다. “LCF에서 텍스타일을 전공한 덕분에 원단 가게를 많이 다녔는데 쓸모없는 인조 모피를 많이 봤어요.” 진짜 모피는 절대로 입지 않는 한나 웨일랜드는 자신이 입고 싶은 코트를 만들기 위해 인조 모피를 찾아다녔습니다. 한나가 만든 코트를 엄마의 친구인 모델 로라 베일리가 마음에 들어 해 런던 패션 위크에 입고 가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때, 네타포르테의 창립자인 나탈리 마스넷의 눈에 띄어 브랜드를 론칭하게 된 것. 쉬림프는 네타포르테에 맨 처음 입점한 인조 모피 브랜드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