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Kids from the Bloc
소비에트 연방 몰락기에 성장한 사람들이 이제 모스크바 언더그라운드 아트 신의 대표 주자가 됐다. 이 청년 반란의 패션 코드들이 스타일 혁명을 이끌고 있다.
고샤 루브친스키(Gosha Rubchinskiy)는 2000년대 모스크바 얼터너티브 신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테크노 뮤직, 스케이트보드 키즈, 영화, 사진 등은 그 신을 구성하는 일부였다. 그는 솔랸카(Solyanka) 나이트클럽 주인들의 도움으로 첫 컬렉션을 성사시켰다. 경기장에서 선보인 이 쇼에선 달리기 선수들이 모델들로 기용됐다. 냉전 시대 로널드 레이건이 러시아를 일컬어 부르던 ‘악의 제국(Empire of Evil)’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컬렉션은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9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 수도의 미술 대학과 디자인 대학에서 교육받은 루브친스키는 잘나가는 브랜드(2012년부터 꼼데가르송이 투자와 제작을 맡고 있는)를 책임지고 있다(그는 꼼데가르송의 사장인 아드리안 조프를 모스크바의 한 모임에서 만났다). 그것은 러시아 미술 역사, 축구, 스케이트보드, 그리고 90년대 소비에트 연방 이후 시대를 참고로 한 전복적 그래픽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브랜드가 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브랜드가 현재 진행 중인 것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패션 디자인은 영화(다섯 편의 단편영화), 사진, 책(일곱 권), 그리고 이벤트로 이어지는 그의 보다 원대한 작업의 한 부분이다.
“저는 서른두 살입니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90년대 초는 러시아에 특별한 시기였어요”라고 루브친스키는 10명의 직원이 일하는 모스크바 본사에서 말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에너지가 있었고, 사람들은 새로운 미술, 영화, 나이트라이프, 잡지에 열광했습니다. 저는 클럽에 가기엔 너무 어렸지만 학교 선배들이 아침에 눈이 빨개져서 돌아왔던 건 기억합니다. 우리 동네엔 스트리트웨어를 파는 가게가 딱 하나밖에 없었어요. 친구들은 <The Face>와 <i-D> 같은 잡지에 실린 파티광들에게서 영향을 받아 트랙 수트 톱, 티셔츠 같은 것을 입었어요. 지금은 나이가 좀 들었기 때문에 그런 에너지를 현재에 상응하는 것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Adidas Football × Gosha Rubchinskiy’ 컬렉션을 위해 그는 주류 도시에서 벗어나 발트해 연안의 칼리닌그라드에서 현지 축구 팬들과 소년들이 등장하는 쇼를 선보였다.
2017년 패션 풍향계는 러시아와 구 소비에트 공화국(조지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를 포함) 출신의 창의적인 젊은 세대를 가리키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집단적 기억과 구 소비에트 연방의 다층적 역사와 문화를 파고든다. 이런 경향은 이 지역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는 디자이너들의 통과의례다. 그것은 글래스고 교외에서 성장한 크리스토퍼 케인이 간직하는 베르사체풍 드레스로 멋을 낸 누나들에 대한 기억일 수 있고, 버질 아블로의 오프화이트에 반영된 80년대 힙합과 스케이트 문화의 흔적일 수도 있다.
서구의 관점에서(우리는 기업 문화, 진보적인 민주주의 가치 그리고 풍성한 패션에 익숙하다) 소비에트 시절의 러시아를 상기시키는 이야기,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 분열적 특징은 친근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진다(어릴 때 내 눈에 철의 장막 뒤의 삶은 투지 넘치고, 결의에 차 보였다. 내가 동구권 운동선수들에게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엄마는 시베리안 햄스터를 사주시기도 했다. 나는 1980년 올림픽 마스코트의 이름을 따서 그 햄스터를 미샤라고 불렀다). 90년대 말 러시아의 이미지는 가죽-팬츠-여우털을 입은 멋진 여장부였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자수 페전트 드레스, 벨벳 소재로 만든 율리아나 세르젠코의 21세기식 여황제 꾸뛰르 가운, 그리고 소련 붕괴 이후의 시선으로 해석된 고급 스트리트웨어와 80~90년대를 목격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리얼리즘’ 혁명이라고 부를 것이다.
고르바초프 시대(1985년부터 1990년까지)에서 가져온 풍부한 레퍼런스가 있다. 소비에트 연방이 문호를 개방했던 글라스노스트(개방) 시대에 동구와 서구의 스타일 이동은 새로운 정점에 도달했다. 뮈글러는 모스크바에서 광고를 찍었다(현재 조지아 출신의 데이비드 코마가 티에리 뮈글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다). 암시장을 통해 상당한 돈을 주고 잡지, 미국의 록, 유럽의 뉴웨이브 음악, 서구의 디자이너 데님과 스포츠웨어, 그리고 미드 <댈러스> 비디오테이프를 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선원들과 외교관들을 통해 패션과 귀한 물건을 사거나 서유럽 사람과 친구가 되었습니다”라고 듀르자 바틀렛(Djurdja Bartlett)은 말한다. 그녀는 런던 패션 대학에서 패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부교수다. 그녀의 책 <Fashion East: The Spectre that Haunted Socialism>은 동유럽과 패션의 관계를 기록하고 있다. 허가받은 사회주의 패션에서부터 진보적 경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용되었던 멋지고 화려한 컬렉션 제작(쇼로만 선보이고 결코 생산된 적이 없는)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서구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던 소비에트 패션에 대한 이미지는 유니폼과 회색이었어요. 하지만 그곳은 수십 년 동안 극도로 규제받던 사회였습니다. 수많은 정기 간행물과 패션 잡지가 있었지만 국가의 통제를 받았고 광고를 팔지 않았죠. 잡지는 자체 프로젝트를 팔았어요. 그게 바로 사회주의였습니다.” 80년대 말에 소비에트 연방은 문호를 개방했다. “러시아인들은 여행을 하고 서구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술과 패션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되었어요”라고 바틀렛은 말한다.
80년대와 90년대에는 암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직접 바느질과 뜨개질을 하고, 중고 제품을 리폼하는 것이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메르세데스 벤츠 키예프 패션 데이즈(Kiev Fashion Days)의 설립자이자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패션 저널리스트 다리아 샤포발로바(Daria Shapovalova)는 시베리아에서 성장했다. “회색 도시들과 흰 눈이 기억납니다. 모든 게 부족했죠. 엄마와 할머니는 아주 세련된 분들이었고 우크라이나의 리비프(L’viv)로 여행을 가시곤 했어요. 그곳은 유럽과 더 가까웠기 때문에 암시장에서 유통되는 중고품이 풍부했습니다”라고 샤포발로바는 말한다. 그녀는 키예프 패션 데이즈와 파리에 있는 자신의 판매 대리점인 모어 대시(More Dash)를 통해 우크라이나 디자이너들을 알리는 일을 돕고 있다.
1998년 러시아 경제가 흔들리기 전까지 희망, 행복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엄청난 욕구가 있었다. 모스크바에 엘에스댄스(LSDance), 예르미타시(Ermitazh), 타이타닉(Titanic) 같은 클럽이 문을 열고 활기 넘치는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생성되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Z세대(밀레니얼 다음 세대)에게 궁극의 스타일은 기호학, 형태, 상징을 비틀고 가지고 노는 ‘진짜’ 스트리트웨어와 스케이트웨어다. 그것은 일반적 캐주얼웨어와 다르다. 그 전복적 태도는 쿨하고 박식한 20대뿐 아니라 실리콘 밸리의 거물들에게도 잘 어울린다. 그 결과 베트멍(조지아 출신의 형제인 뎀나와 구람 바잘리아, 러시아 출신의 스타일리스트 로타 볼코바가 탄생시킨)의 과장된 후디, 커다란 패딩 재킷, 그리고 예술적으로 재구성된 데님은 그들을 모방하는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탄생시켰다.
한편 볼코바의 뭉툭하게 자른 앞머리는 남자 성가대원 같은 재미있는 헤어컷 트렌드를 촉발시켰다. 지금 같은 패션 시기에 해독할 수 없는 키릴어 그래픽(준야 와타나베의 반항적 펑크 의상에 도배되다시피 한)과 역설적 숨은 의미가 담긴 고급 스트리트 패션은 뭐든 인기가 있다. 스트리트와 스포츠 ‘쿨’만 있는 건 아니다. 비타 킨(Vita Kin)과 율리야 마그디치(Yuliya Magdych)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디자이너들이 선보이는 자수 리넨 드레스에 대한 관심을 보라. 이런 드레스는 1,000파운드(한화로 약 145만원) 이상의 가격에 팔린다. 두 디자이너 모두 럭셔리한 기교로 이 나라의 에스닉한 비쉬반카(우크라이나 전통 자수 의상), 스목(Smock, 헐렁한 원피스)을 재해석하고 있다.
“저라면 후디를 사려고 줄을 서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시스터스 오브 머시(Sisters of Mercy)의 티켓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사랑을 위해선 줄을 설 거예요”라고 자신의 레이블이 열성적 추종을 받고 있는 것에 어안이 벙벙한 뎀나는 말한다. 루브친스키처럼 그도 바쁘게 자기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돈 많은 젊은이들의 화려한 삶과 반대되는, 문화 주변부와 교외의 젊은이들)에 매료된다. 90년대 중반 데이비드 심스와 코린 데이가 진짜 교외 젊은이들(덥수룩한 머리, 물어뜯은 손톱, 커튼 없는 창, 알전구)의 모습을 스타일 풍경으로 만든 이후 패션이 이렇게 ‘리얼’에 애착을 느낀 적은 없었다. 2017년 베트멍 F/W 쇼에서는 젊은이들에게 향했던 포커스를 바꿔 업사이클링한 밀라노 숙녀의 모피 코트, 점심 식사 중인 숙녀들의 수트, 이코노미 좌석에서 변신 가능한 팬츠와 베스트를 등장시켰다.
30대 세대는 많은 변화를 목격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비전을 독특하게 만들고 있다. 바잘리아 형제는 트빌리시(Tbilisi)에서 유혈 분쟁이 일어났던 1991년에 조지아를 탈출했다. “내전이 터진 열 살 때부터 적응해야 했어요. 매일 밤 폭격이 있었고 우리 가족은 지하 저장고에 몸을 피했습니다. 아버지는 군대에서 싸우셨고 집에는 숨겨놓은 소총이 여러 자루 있었어요. 우리는 할머니와 말을 타고 국경을 넘기 위해 산에서 2주를 보냈어요. 당신이 영화에서 볼 법한 그런 광경이었죠. 우린 사진 앨범만 갖고 나왔어요. 도망쳐야 했으니까요. 그 경험이 저라는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삶에서 뭐가 중요한지에 대해 확실한 가치를 분명하게 보여줬어요. 중요한 건 삶과 사람들입니다.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라요.”
이 스타일 운동의 주역들은 세상 물정에 아주 밝고 배짱이 두둑하다. 루브친스키, 바잘리아 형제 그리고 볼코바(모두 파리에서 만난 친구들이다)는 이 거대한 지역을 주목하게 하는 데 일조해왔다. 덜 알려진 레이블-라도 보쿠차바(Lado Bokuchava)의 아틀리에 키칼라(Atelier Kikala)와 LTFR(둘 다 트빌리시 브랜드), 러시아의 워크 오브 셰임(Walk of Shame), 카자흐스탄의 ZH 사켄(ZH Saken), 우크라이나 디자이너 파스칼(Paskal), 그리고 런던에서 활동 중인 에스토니아 출신의 로베르타 아이너(Roberta Einer)-은 기발하고, 엄격한 커트와 강력한 섹슈얼리티의 표현(발렌시아가 쇼에서 선보였던 무서운 80년대 여성 지배자를 생각해보라)을 비롯해 무대 세트와 음울하고 탄탄한 몸매의 미녀 모델들에 이르기까지 타협하지 않는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저는 모스크바에, 로타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뎀나는 조지아에 있었어요. 장소는 다르지만 소련 붕괴 이후의 에너지는 같았습니다”라고 루브친스키는 말한다. “위험하고 환상적이었죠. 지금은 디자인할 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을 공유하고 강한 것을 만들고 싶습니다. 아마 그 시절이 그리운 것 같아요.” 결핍과 희소성 때문에 생겨난 물건에 대한 페티시즘은 베트멍의 운영과 컬렉션에서 분명하게 감지된다고 바틀렛은 말한다. 어떤 아이템이 한번 생산되면 그것은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 소비에트 연방 국가에서 창작자로 사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유럽산 패브릭에 대한 무거운 수입 관세, 제작 문제, 복잡한 상법 등이 그것을 끔찍이도 힘들게 만든다. 그리고 국내 시장은 한정되어 있고 평균 월급은 600달러(한화로 약 68만원)다. 그러나 재능, 열의 그리고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은 놀랍다. “문제는 뛰어난 패브릭 공급자와 패턴 재단사들을 찾는 것입니다”라고 트빌리시의 메르세데스 벤츠 패션 위크 설립자인 소피아 츠코니아(Sofia Tchkonia)는 말한다. 이곳에서 당신은 여전히 중고 의상을 무게로 파는 매장을 발견할 수 있다. 화려한 국제적인 호텔과 새로운 개발에 가려진 드라이 브리지의 벼룩시장에서 조지아의 젊은이들과 여행객들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오브제와 빈티지 스포츠웨어를 사냥한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에 성장한 디자이너들에게 스포츠맨십 문화는 정치를 뛰어넘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2월 초 영하 14˚C인 날씨에 열린 키예프 패션 데이즈 기간 동안 가장 감동적이었던 쇼 중 하나는 2009년에 자신의 레이블을 설립한 릴리아 리트코브스카야(Lilia Litkovskaya)가 선보인 쇼였다. 그녀는 대를 이은 재단사 가문 출신으로 겨우 열여섯 살의 나이에 복잡한 패턴을 만들고 재단할 수 있었다. 리트코브스카야는 패션쇼 장소로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체육 대학을 선택했다. 우크라이나 올림픽 선수들을 기리기 위해 사진을 걸어놓은 벽, 벽화들, 그리고 파랗게 칠해진 농구 코트 등이 있는 이 건물은 매력적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펜싱 의상을 바탕으로 한 가죽 셔츠, 섬세한 자수가 놓인 아이보리색 드레스, 소년 성가대원의 예복에서 영감을 얻은 여성스러운 스커트, 그리고 홀로그램 효과를 통해 아래로 걸친 팬츠를 입은 투지 넘치는 여성들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의상은 모두 독창적이고, 아주 세련되고, 매력적이었다.
“아름다운 건물이자 노동 시설이에요.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역에 있는 많은 건물과 비슷하죠. 그 건물을 보면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한 세상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건 사랑과 스포츠로 증명된 것, 즉 인간 정신의 강인함뿐입니다”라고 리트코브스카야는 말한다. “이런 것은 인스타그램에서 팔지도 않고, 시장의 법칙에 좌우되지도 않습니다. 저는 제 비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우리나라의 탁월함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다시 격화된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우크라이나 동부에선 총알이 날아다니고 난민들이 전쟁 지역에서 도망치고 있는 지금 리트코브스카야의 명석함은 아주 예리하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맞다. 그 짝퉁 후디와 방글라데시에서 만든 가짜 우크라이나 스목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런 새로운 아름다움, 힘, 비전, 용기가 승리할 것이다.
- 글
- 해리엇 퀵(Harriet Quick)
- 포토그래퍼
- GOSHA RUBCHINSKIY, IGOR MOUKIN / GETTYIMAGES / IMAZINS, GUEORGUI PINKHASSOV / MAGNUM PHOTOS, COURTESY OF OM, INDIGITAL,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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