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 생긴 일
매년 여름과 겨울에 두 번 피렌체에서 열리는 ‘피티 이마지네 우오모(Pitti Immagine Uomo)’. 이곳에 특별한 손님 두 명이 찾아왔다.
매년 1월과 6월, 전세계 멋쟁이 남성이 모두 이태리의 피렌체로 모여든다. 이곳에서 열리는 남성복 페어인 ‘피티 이마지네 우오모(Pitti Immagine Uomo)’에 참석하기 위한 것. 주로 남성복 브랜드 관계자와 패션 기자가 참석하는 페어의 주최 측은 매 시즌 특별한 손님을 이곳에 초대한다. 라프 시몬스가 지난 해 이곳에서 쇼를 펼쳤고, 한국의 준지, 뉴욕의 프로엔자 스쿨러 등도 피티 우오모의 초대를 받아 아름다운 피렌체를 배경으로 쇼를 선보였다.
올여름 그 초대장을 받은 건 조나단 앤더슨(JW Anderson)과 버질 아블로(Off-White). 우선 무대에 오른 건 런던에서 온 앤더슨이었다. 6월 14일 고풍스러운 빌라 라 피에트라(Villa La Pietra)의 정원에서 열린 그의 쇼에서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캐주얼’의 멋. 런던에서 선보이던 중성적이고 조형적인 컬렉션이 아니라, 어느 때보다 실용적이고 접근 가능한 스타일이 가득했던 것. “거추장스럽지 않고 기본에 가까운 패션입니다.” 피렌체를 찾아온 여행객의 옷차림에서 그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 제가 모든 옷을 입어 본 첫 번째 컬렉션인 듯 합니다. 저에게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심플한 하얀색 티셔츠와 치노 반바지, 그리고 플립-플롭을 신은 모델이 그대로 런웨이를 떠나 피렌체 거리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다양한 변주를 거친 하트 모티브(스웨터, 바이커 재킷, 셔츠, 트렌치 코트), 특이하게 앞을 여민 데님 팬츠, 편안한 컨버스 슈즈 등도 앤더슨의 방향 전환을 암시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에게서 편안한 멋을 자주 만날 수 있을까? 한 평론가는 앤더슨에게 있어서는 하얀 티셔츠와 치노 바지야말로 아방가르드 패션이라고 덧붙였다. 이 시대의 패션 진보주의자답게 그의 방향은 언제 변할지 또 모르는 일.
다음 날 무대는 뉴욕에서 온 오프화이트의 몫이었다. 최근 이케아(Ikea)와 함께 협업을 공개한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좀더 효과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아티스트 제니 홀저(Jenny Holzer)와 손 잡았다. 90년대 헬무트 랭과 함께 했던 베테랑 아티스트 홀저는 1944년 바르사바의 혁명 당시 쓰여진 시는 물론, 지금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바라보는 글들을 조명으로 써내려 갔다. 가나 이민자의 아들인 아블로는 이러한 분위기를 통해 2017년의 난민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고자 했다. “전 제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 작업 속에서 반응하고자 합니다.”
이제껏 봐왔던 로고 장식의 티셔츠는 없었다. 대신에 앞면에는 구명 조끼를 착용하는 방법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이란 출신 난민 운동가이자 아티스트인 오미드 샴스(Omid Shams)가 남긴 문구, “난 결코 바다를 용서하지 않으리(I’ll never forgive the ocean)”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프리카와 시리아를 떠나 위험을 무릅쓰고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을 상징하는 디자인. 그 외에 구조 요원의 유니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실용적인 디테일, 스포츠 티셔츠 등이 컬렉션 속에 함께 담겨 있었다.
힙합 뮤지션의 친구로서 경쾌한 모습을 상상했던 관객은 오프화이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던 기회. 건축을 공부하고, 난민 위기에 관심을 가지는 디자이너는 2017년에 꼭 어울리는 디자이너 그 자체. 특히 쇼의 마지막, 제니 홀저의 글자가 흘러내리는 벽 아래로 뛰어나온 디자이너와 모델 무리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잊히지 않는 기억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INDIGITAL, COURTESY OF PITTI IMMAGINE U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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