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to be Blue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즈 뮤지션 쳇 베이커에게 한 말을 남태현에게 보낸다. “그의 음악에선 청춘의 냄새가 난다.”
지난봄, 남태현은 정수리가 천장에 닿을 만한 클럽에서 즉흥 공연을 했다. 해진 티셔츠에 마이크를 잡고 소리 지르는 모습은 무언가와 겹쳤다. 엘리엇 스미스가 그의 미래를 예고하는 것 같은 음습한 지하에서 처절하게 노래 부르던 영상. 20대 시절 그 모습을 보고, 그렇게 젊음을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그때 놓친 젊음을 남태현이 보여주고 있었다. 음악은 차치하더라도 두 뮤지션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사무엘 울만 ‘청춘’ 中)”의 얼굴이 닮아 있었다. “아이돌은 거리 공연 하면 안 되나요? 그런 게 싫었어요. 원할 때 노래 부르고 싶어요.” 강원도 강릉 옥계해변에서 만난 남태현은 바다를 가만히 바라봤다. 얼마 전 제주에 다녀왔지만 바다는 보지 못했다고. 그는 제주의 한 카페에서도 즉흥 공연을 했다.
남태현을 만나기 전에 위너와 YG 탈퇴 이유를 검색했다. 처음엔 아파서라고, 나중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의 자필 편지도 있었다. 관련 영상도 떴다. 데뷔 전에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해 “나를 YG 스타일로 바꿔야 해서 슬럼프가 왔다”는 인터뷰. 혼자 퍼즐을 맞추느니 직접 묻기로 했다. 어떻게 돌려서 말하지 걱정했는데, 남태현이 먼저 말했다. “많이 배웠고, 여전히 은인 같은 곳이에요. 하지만 똑같은 로직이 싫었어요. 팀에서 활동하다 솔로 앨범을 내고, 누구는 연기를 하고, 누구는 YG에서 나와 다른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고. 분명 다른 것도 가능한데 왜 시도를 안 하지? 예를 들어 왜 만들어진 모습만 TV에 보여야 하지? 가수인데 왜 화면에 나오는 모습을 더 신경 쓰지? 왜 동네 형 가게에서 노래 부르면 안 되지? 다들 자유를 갈망하지만 선뜻 시도하지 못해요. 물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순 없죠. 하지만 저는 시도하려고요. 내 음악에 자유를 담을 거예요. 내 음악을 듣는 이들도 자유를 꺼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유로움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그것은 청춘의 끝일 거다. 늙기 전에 죽고 싶다는 어느 로커의 말처럼, 남태현은 청춘이어서 가능한 한 자유를 누리기로 했다. “모두 자신의 버킷 리스트가 있잖아요. 세계 일주를 하겠어 같은. 시간이 지나고 이루는 것보다 젊을 때 하면 더 값지지 않을까요.” 젊으면 실패해도 ‘대미지’가 적어서? “글쎄요, 전 바닥까지 떨어져봐서 더 이상 잃을 게 없었어요. 오랫동안 몸담은 곳을 탈퇴하면서 그런 시간을 보냈죠.” 본인의 이야기라는 싱글 ‘Hug Me’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내가 죄를 지은 건가요. 너무 아픈 벌을 받나요… 나도 웃고 싶어요. 이제 그만하고 싶어. 나도 힘들어. 안아줘. 안아줘. 안아줘.” 힘들었던 시간을 ‘Hug Me’에 담았고, 그렇게 노래로 흘려보내겠다고.
남태현은 YG를 탈퇴하고 사우스바이어스클럽이라는 개인 레이블을 세웠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오마주다. 남태현은 힘들 때마다 그 영화를 본다. “주인공이 살려고 아등바등하잖아요. 내 모습 같았어요.” 그는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론(매튜 맥커너히)이 절망에 빠졌던 텍사스, 그곳의 블루스와 카우보이. 그 영화의 감독인 장 마크 발레의 <데몰리션>도 좋아한다. “그 주인공도 혼자가 되죠.” 남태현은 혼자가 된 시간에 무언가 배우며 보냈다. 꾸준히 해오던 기타를 비롯해 포토샵, 디자인 등등. 그렇게 몇 개의 타투가 늘었다. 팔 한쪽에는 악보 타투가 있다. 기타를 배우며 중요한 부분을 노트에 써서 타투이스트에게 가져갔다. 필체대로 그려 넣었다. 가슴에는 덜 마른 잉크를 뭉갠 듯 번진 레터링이 있다. “요즘 그런 타투가 유행인가요?” “유행이 아니어서 했죠.”
그는 자신의 밴드 ‘사우스클럽’의 앨범 디자인과 폰트, 속지 사이즈와 재질까지 스스로 결정했다. 그렇게 남태현 아닌 사우스클럽으로 내는 첫 번째 EP 앨범을 만들었다. 촬영일, 멤버들과 남태현은 옥계해변에서 같이 덤블링을 하고 농담으로 탁구 치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점심에 닭볶음탕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는 휴게소에서 끓인 라면을 먹을 거라고 했다. 작업실 겸 회사인 남태현의 집에서 거의 매일 서너 시간 연습을 하고 밥을 지어 먹고, 음악을 이야기한다.
지난 1월 남태현은 SNS에 밴드 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다. 예상했듯이 메일의 대부분이 여성이었고, 그의 팬이었다. 메일이 너무 많아서 열어 보기 힘들 정도였다. “사실 처음엔 밴드를 꼭 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저 음악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어요. 결국엔 정말 친구들이 멤버가 됐죠. 처음에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라이브를 좋아하고, 이런 음악을 추구한다, 그냥 연주를 같이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합을 맞춰보니 밴드가 하고 싶어졌죠.” 사우스클럽의 멤버는 다섯 명이다. 남태현과 강건구(기타), 김의명(베이스), 장원영(드럼), 최윤희(피아노).
최윤희는 남태현과 같은 교회에서 피아노를 쳤다. “오빠가 밴드 멤버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했어요. 제 자리라면 기회를 주시고, 아니면 기회 자체를 주지 마세요. 우연히 오빠가 통기타로 치는 ‘Hug Me’에 제가 피아노를 얹었죠. 잼 이후에 오빠가 전화했어요. 같이 밴드 할래? 당연하죠!” 베이스를 치는 김의명도 같은 교회에 다닌다. “원래 기타리스트 건구와 밴드를 했어요. 디제잉도 하고, 그냥 하고 싶은 음악을 했죠. 요즘엔 사우스클럽이 제일 재미있어요. 아무 준비도 없다가 갑자기 공연을 한다니까요!” 강건구는 너바나를 이야기한다. “너바나처럼 자유롭고 각자의 개성이 담긴 밴드가 되고 싶어요. 1등은 안 해도 돼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죠. 실패해도 할 수 없고요.” 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은 사우스 클럽의 목표나 목적이다.
사우스클럽의 음악은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고 보니 해변에서 남태현이 틀었던 음악이 그러했다. “웬만한 음악의 기초는 블루스거든요. 특히 저는 블루스와 로큰롤이 신나요. 그렇다고 하나만 고집하진 않아요. 이번 앨범을 들으면 알겠지만 굉장히 에너지 강한 곡도 있죠.” 최윤희를 비롯한 사우스클럽 멤버들은 남태현이 보낸 수십 곡의 파일을 받았다. “오빠가 가진 수백 곡 중에 일부만 보낸 거죠. 제가 콩깍지가 쓰인 게 아니라 정말 다 좋았어요. 이번 앨범에 사랑 노래는 없어요. 사랑 노랜 너무 뻔하잖아요. 대신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죠.” 앨범명이 <90>인 이유다. 멤버 모두 90년대생이기도 하고, 너바나를 위시한 청춘과 반항이 추앙받던 90년대가 떠오르기도 하고. 남태현도 그들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 헤밍웨이처럼 직선적이고 힘 있는 문장으로. “흔히 ‘꼰대’라고 하죠. 폐쇄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을 비방하는 곡, 젊음의 자유를 말하는 곡도 있어요. 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죠.”
김애란의 단편 ‘서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남태현은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우스클럽은 목적이 없어요. 도달점도 없죠. 카메라 앞에서 내가 어색하면 보는 사람도 어색해지잖아요. 우리가 즐거우면 듣는 사람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남태현에게 사우스클럽은 캔버스다. “물감을 뿌려도 되고, 그려도 되고, 찢어도 돼요.” 두렵지 않을까? “저는 꾸준히 음악을 해왔잖아요. 만약 내게 음악을 빼면 뭘 할지 모르겠어요. 음악이 힘들어지면 오히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음악을 들어요. 평소 잘 듣지 않는 헤비메탈을 듣다 보면 그 안에서 뭔가를 흡수하죠.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다른 식으로 들리기도 해요.” 남태현은 싫은 음악처럼 싫은 사람에게도 배울 게 있다고 했다. “나는 싫어도 누군가는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옥계해변에서, 남태현은 자신의 필름 카메라를 꺼냈다. 그가 좋아하는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처럼 친구들의 청춘을 담고 싶어서. 소설도 쓴다. 그림도 그린다. 노래도 만든다. 싫어하는 음악도 듣는다. 레이블의 살림도 돌봐야 하지만 이성과 감성을 분배하기 시작해서 괜찮다고 했다. 다들 남태현에게 건강해졌다고, 밝아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제 노래든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
- 에디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KIM CHAM
- 스타일리스트
- 안정희
- 헤어 스타일리스트
- 김환
- 메이크업 아티스트
- 이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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