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10 X New Wave

2019.01.16

by VOGUE

    10 X New Wave

    세상을 향한 물음표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필터는 젊은 작가의 것이다. 국제갤러리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국 미술의 현재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젊은 작가 10인의 현주소.

    눈송이를 걷는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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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작가 4인(최윤, 김익현, 박정혜, 이미래)은 질문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질문의 구조를 만들었다. 또 다른 질문을 사유하게 하는 질문, 신선한 물음표의 구조를 기획자 현시원이 되짚는다.

    다시 처음부터 세계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게 언제냐 하면, 호기심을 갖고 하나의 대상을 나도 모르게 오랫동안 바라보는 순간이다. <A Snowflake>를 기획하며 만난 네 명의 작가들은 2017년 서울의 어딘가에 각자 있다가 전시를 위해 함께 뛰어들었다. 그러다 초여름이 한창인 지금은 같은 시공간을 점유하며 ‘보는 일’을 함께 한다. 김익현, 박정혜, 이미래, 최윤 작가와 여러 선택을 나눌 때 <A Snowflake>전(국제갤러리, 7월 2일까지)은 맥거핀이었고 장치였다. 눈에 뭉쳐 가려진 돌멩이를 대신 맞아줄 것만 같은 커다란 눈사람이었다.

    그런데 눈사람이 뭐고 눈송이는 도대체 뭘까? 영국의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가 쓴 책 <눈송이는 어떤 모양일까>를 전시의 출발점에 데려온 나는 작가들을 처음 만날 때마다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었다. 그러면서 한 번에 스르르 녹아버리는 눈송이 결정체를 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과연 이 작은 입자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논했다. ‘젊은 작가’라는 프레임으로 이들을 뭉뚱그리지 않고 문제를 복잡하고 의문스럽게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A Snowflake> 오픈 며칠 후 작가 최윤은 말한다. “눈송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하나도 안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전시를 준비하며 제일 먼저 한 일은 이언 스튜어트의 책을 도서관에서 다시 빌려 보는 것이었어요. 수학자는 우주에서 사막까지 점프, 점프를 해요. 더 멀리 다른 것들을 알아내는 거죠.” 전시장에 있는 최윤의 작업 ’광고판 1, 2’는 폭포가 수직으로 낙하하는 중국산 광고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 안에 소주 광고를 하는 수지와 송중기 가면을 쓰고 있는 스티커 사진 속 인물이 바로 작가 최윤이다. K1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액정 기포 미래 진열’과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사람 같소’ , ‘크리스마스 트리와 SS 시리즈 6편’은 한국 리얼리티의 수상함에 대한 최윤의 변화무쌍하면서도 지속되는 수행적 목소리다. “알쏭달쏭한 것을 질문해나가면서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미술이라고 생각해보곤 해요. 쉽게 지나쳐버리는 것, 한심한데 생생한 것, 미술이 알 수 없는 것을 알려주는 당대 풍경 속에서 제가 스스로 뛰어들어보는 거죠”.

    ‘질문한다’는 행위는 왜 필요한 것일까. Q(질문)만 있고 A(답변)가 없다면? Q만 계속해서 전진한다면 견딜 수 있을까. 불현듯 질문은 타인에게 하는 것보다 세계의 바깥, 혹은 불특정 대상을 향해 하는 것이 한결 재미있다는 각성이 찾아온다. 완벽한 답을 데이터베이스화하려는 로봇을 원하는 것은 아니니까. ‘작가들이 오늘날 보는 세계는 도대체 어떤 모양일까?’ 하는 ‘진짜’ 질문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또 다른 물음표가 필요했다. 확정적 언술을 의심하면서도 실증적이고 경험적으로 지금의 작업을 보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A Snowflake> 전시장에 놓인 김익현의 사진, 박정혜의 회화, 최윤의 사물과 영상, 이미래의 조각은 서로의 작업을 향한 ‘시선’을 공유한다. 온전히 쉽게 내주지 않으면서 일부를 나눈다. 전시장 안쪽 공간으로 들어갈 때 이미래 작가가 만든 ‘히스테리, 엘레강스, 카타르시스: 섬들’의 일부와 김익현의 ‘Fig(도판)’라는 제목을 가진 일련의 흑백사진이 함께 보인다. 박정혜의, 위로 발사될 듯한 미로 형상의 컬러풀한 그림 반대편에 김익현의 실재했던 일제시대 폐광을 찍은 거대한 사진이 위치한다.

    사진을 찍고 연구하는 김익현은 말한다. “사람들은 왜 동굴을 볼까. 최초로 동굴 사진을 찍은 나다르는 왜 깊고 어두운 곳에 카메라를 가져갔을지 몇 해 동안 연구해왔어요. <하멜 표류기>같이 어딘가로 이동하는 감각에 관심이 있는 한편 아카이브라는 행위에도 큰 매력을 느낍니다.” 김익현이 말하는 “겪은 것과 겪지 않은 것의 갭(Gap)” “점프의 감각이 새로운 보기의 방식을 만들어낸다”는 입장은 매우 실증적이고도 경험적으로 시대와 시선의 층위를 조직해낸다. 김익현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연구하는 것을 뼈대로 깔고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둘러싼 ‘소실점’을 동시에 연구한다. 전시장에 놓인 그의 검고 거대한 동굴 장면의 사진 제목은 매우 길다. ‘Fig. Print 001 l.p.l.158×197.5(cm) 2016’이라는 제목에는 실제 폐광을 찾아 대상을 촬영한 시간인 2016년과 사진 사이즈가 기록되어 있다. 김익현은 전시장 벽면에 붙여 전시한 후 일부 찢긴 채 보관하고 있던 동굴을 촬영한 사진을 이번 전시에서 새로이 화면에 담았다. 사진을 또 사진으로 촬영한 것이다.

    인공의 세계와 생태계의 상관관계를 회화로 묻는 박정혜, 사진을 기반으로 리서치 및 아카이브의 방식을 탐구하는 김익현, 온 · 오프라인 세계의 부속물을 재료로 영상, 퍼포먼스, 조각 등을 다루는 최윤, 조각의 물성과 재료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제안하는 이미래.

    인공의 세계와 생태계의 상관관계를 회화로 묻는 박정혜, 사진을 기반으로 리서치 및 아카이브의 방식을 탐구하는 김익현, 온 · 오프라인 세계의 부속물을 재료로 영상, 퍼포먼스, 조각 등을 다루는 최윤, 조각의 물성과 재료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제안하는 이미래.

    박정혜는 천천히 그러나 리듬을 타며 말을 건넨다. “눈송이라는 자연현상이 그렇듯이 현실에 놓인 것의 결과와 가상의 형태를 상상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워요.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상태는 어떤 걸까 생각해요. 세상을 회화로서 어떻게 투명하게 볼 수 있을까 궁금한 거죠.” 보면서도 이야기하고, 걸으면서도 생각하고, 전시장의 공기와 소리를 감각적으로 읽어내는 작가 박정혜의 그림은 한 화면 안에서 무엇이 어떻게 그림이 되어가는가를 질문한다. 그의 그림이 만들어내는 한순간은 이야기도 감각도 재현도 추상도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것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작가가 ‘자신의 눈으로 보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충동을 가장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회화는 ‘정지된 장면’이라는 전통적인 매체예요. 궁극에 어떤 회화를 제가 보고 싶은지 오래 생각해요. 비현실적인 장면과 상황을 혼동할 때가 있는데, 문자가 약속된 코드이듯 회화도 하나의 언어라고 보고 있어요.” 박정혜는 전시장에 놓인 ‘No Desert & No Cry’ 연작에서 사막과 눈물을 한 공간 안에 넣는다. 화면 안의 어떤 요소도 서로에게 종속적이지 않은 형태를 만든다. 작가는 수직과 수평, 원근법과 미래의 ‘보는 방식’ 등 오늘날, 또 앞으로의 한 독립적 개인이 어떤 시각으로 세계를 보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이미래는 작가의 정령처럼 따라다니는 히스테리, 엘레강스, 카타르시스를 개별적 파편이지만 서로 붙었을 때 한 몸이 되는 조각으로 만들었다. 몇 점으로 나뉜 조각들의 이름은 ‘히스테리, 엘레강스, 카타르시스: 섬들’이다. 따로 또 함께 서 있는 조각은 ‘독립성’에 대한 연구로 보인다. 알루미늄, 시멘트, 유토 등 재료 연구를 진행하는 작가는 인체 사이즈의 조각들이 각자 무엇을 자기화할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연구한다. 이미래의 조각에 많은 말이 달라붙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작가의 단서는 비밀스러우면서 선명하다. 작업 ‘뼈가 있는 것들-바디 파츠’는 뼈처럼 보이는 것들이지만 사실은 작가가 ‘살’로 만들어낸(유토) 것이다. “열반(니르바나) 상태에 있는 것과 멍청해 보이는 것 사이에 있는 무언가가 늘 흥미롭지 않나요? 제 조각이 귀여움과 박력 사이에 있다고 언젠가 말한 적이 있는데 에너지가 갑자기 추락하는 것, 또는 힘의 방향이 일순간에 변화하는 것에 흥미를 느껴요.” 그의 둔탁한 조각들 한 면에는 일본 만화에서 떼어져 나온 문장이 각인되어 있다. ‘계속’이라거나 ‘같이 있고 싶다고’라는 문구가 뒷면에 적혀 있다. 이미래는 굉장한 에너지 상태가 갑자기 추락하는 것, 인간이 돌변하고, 차가운 마음이 갑자기 뜨거워지는 것, 숭고함과 어색함, 존재하지 않았다가 나타나는 것, 움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을 본다.

    <A Snowflake> 전시장에 살고 있는 질문의 그물은 ‘질문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 맞다. 그러나 이 질문의 그물 사이로 2017년의 젊은 작가, 화이트 큐브, 갤러리, 큐레이팅, 디스플레이, 인터넷, 미술의 매체 등 너무 많은 것이 스쳐 지나간다. 그와 동시에 네 작가들의 작품 사이를 걸어갈 때 여러 질문이 삐죽삐죽하게, 도저히 가지런해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다시 적어본다. 얼마 전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에서 모네는 수련을 그리다가 눈이 나빠져서 용기를 내 녹내장 수술을 했다는 대목을 보았다. 빨갛게 그려졌던 정원의 다리는 다시 녹색 빛을 되찾았다고 한다. 어떤 것이 그가 자신의 눈으로 본 진짜였을까? 오엑스 퀴즈는 아니므로 우리는 질문의 구조를 더 재미나게 만들어야만 한다.

    글 / 현시원(시청각 공동 디렉터, 큐레이터)      에디터 / 윤혜정

    Dear My Friend

    지금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 6인(김민애, 김윤하, 김희천, 박길종, 백경호, 윤향로)이 창조한 타임슬립은 과거를 소환해, 현재에 투영하고, 미래를 가늠한다. 창조적인 이들의 시선에는 모험 정신이 가득하다.

    지금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 6인(김민애, 김윤하, 김희천, 박길종, 백경호, 윤향로)이 창조한 타임슬립은 과거를 소환해, 현재에 투영하고, 미래를 가늠한다. 창조적인 이들의 시선에는 모험 정신이 가득하다.

    “브라보! 축배의 잔을 높이 들고 노래해/ 이밤 웃음소리 가득한 곳/ 노래해 새벽이 올 때까지.” 베르디가 살아 있었다면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재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축배의 노래’를 불렀을까? 에르메스는 축배 대신 “예술 그 자체보다 흥미로운 삶으로서의 예술”을 제안하며 등장한 처음의 정신처럼 미래지향적 신진 작가의 작품으로 10년을 돌아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라는 전시 제목 아래 모인 20~30대 젊은 작가 김민애, 김윤하, 김희천, 박길종, 백경호, 윤향로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과거 10년을 소재 삼아 10년을 재해석했다. 이들의 필터를 통과 한 시간은 한국 미술의 생생한 현재로 다시 태어났고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친구들의 싱글싱글한 와글거림으로 가득 채워졌다.

    전시장 입구, 마치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가벽인 척 서 있는 ‘파사드’는 김민애의 작품이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반투명의 벽 사이로 들어서면 텍스트가 쏟아진다. 벽은 새로운 길을 내고, 평소 두어 걸음이면 통과할 거리가 10여 걸음으로 늘어난다. 물리적인 상황의 변화를 통해 관객을 새로운 경험으로 몰아넣던 작가는 이번에도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록의 파편은 전시의 시작을 안내하는 지시어인 것만 같다. “큐레이터가 10년의 자료를 건네며 키워드를 추출해서 보내달라고 하셨어요. 전시의 큰 틀을 짜기 위한 실용적인 이유였죠. 그런데 단어나 구문을 추출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작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고른 문장이나 단어가 제 작업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이기도 했고, 앞으로 하고 싶은 부분, 지금 미술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기도 했어요.”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느냐에 따라 텍스트는 끊어지기도 하고 이어지기도 했지만 원본으로부터 변형은 없었다. 이는 ‘수집’해서 자기 정보화하는 요즘 세대가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법이기도 하다.

    윤향로 역시 자신이 속한 세대가 이미지를 인식하는 방법을 작품으로 풀어낸다. 추상화가 떠오르는 윤향로의 ‘Screenshot’은 육안으로 보기에 순수 회화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만화 속 인물과 내용을 지우고 동작선만 남긴 드로잉,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을 재구성한 회화 등 기존 작품 세계를 떠올리면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역시 제목이 수상쩍다. “미소녀 변신물 애니메이션에서 에너지가 방출되는 장면을 캡처한 다음 몇 가지 프로그램으로 이미지를 변형시켰어요. 그리고 최대한 제가 생각하는 추상회화에 가까운 이미지를 찾아가면서 디지털 드로잉을 한 후 회화로 옮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아크릴 스프레이로 분사해서 그렸지요.” 윤향로는 이를 ‘유사 회화’라고 불렀다. “인터넷에 보면 이른바 짝퉁 제품이 많은데 그걸 ‘st’라고 부르잖아요. ‘구찌st’ ‘애플st’ 이렇게요. 그게 너무 웃긴 거예요. 저 역시 회화 하는 작가라고 우기는데, 어떻게 보면 일종의 ‘st’로 느껴졌어요. ‘회화st’라고 하기는 좀 그러니까 미술 언어로 바꿔 ‘유사 회화’라고 부르고 있어요.” 윤향로는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꺼내기보다는 기존 대중매체에 있는 이미지를 지금 상황과 메커니즘에 맞게 변형해 미술의 언어로 표현한다. 미소녀의 ‘초발랄한’ 에너지였을지 모를 감정선은 어느새 카펫으로 변신해 전시장 한복판에 능청스레 깔려 있었다. 자신이 회화에 접근하는 방식과 카펫을 만드는 과정에서 유사성을 느낀 후 시도해보는 작업의 일환이다. 카펫을 구성하고 있는 실은 픽셀로도 읽힌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10년은 카펫에 숨어 있다. 힌트는 사이즈다.

    전시장 벽면을 화사하게 물들이는 거대한 그림 다섯 점은 백경호의 작품이다. 동그란 캔버스와 사각 캔버스가 마치 그 자체로 인격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평소 인물의 존재감에 끌림을 느꼈다. 과거 여행길에서 마주한 모아이 석상이 주었던 임펙트를 잊지 못한다. 그림 안에서 어떤 인물이 제스처를 취하고 있을 때 궁금증이 일었다. “2011년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 형태로 프레임을 짜서 그림을 그려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작업실에 사각형 캔버스, 원형 캔버스가 눈에 띄었어요. 이 둘이 사람의 형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고 지금의 형태가 나왔어요.” 동그란 캔버스에는 표정이 담긴다. 피를 흘려도, 일그러져도 웃는 표정이 반복된다. “연습 삼아 그린 얼굴이 활짝 웃는 표정이었어요. 한참을 붙여놨는데 각인된 것 같아요. 그때부터 아무리 다른 표정을 그려도 좋은 표정 같지 않은 거예요. 강박적인 상태였던 것 같아요.” 백경호의 그림은 계획하에 그려지지 않는다. 그는 에르메스 10년간의 자료를 읽으며 문득문득 자신에게 생기는 변화를 그렸다. 옷, 캔버스 천 등 물감이 아닌 재료의 조합은 그림에 창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찾아낸 해소법이었다. 서로 다른 질감과 표현이 공존하는 거대한 캔버스는 확실과 불확실이 들끓는 우리 마음 같다.

    김희천

    김민애

    김윤하

    백경호

    윤향로

    박길종

    “지난 전시 데이터를 보는데 제 눈에는 재료 출처가 다 보이더라고요. 이건 어디서 얼마 주고 했겠다 그런 것들. 평소 여러 재료를 사용해서 물건을 만들고, 작업실도 을지로 한복판에 있어 늘 보는 게 재료라서 그런가 봐요.” 박길종은 재료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날것의 재료가 작품 속으로 녹아드는 과정을 표현한 방식이 흥미로운데, 투명 아크릴 박스 안에 재료가 꽂혀 있는 설치물이 재료 그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조형미 있는 작품이라면, 나머지 작품은 거기에 조금씩 가공을 더해 재료가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재료 가공이 가장 많이 된 작품은 돌도끼와 나뭇잎이 된 매끈한 모빌이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듯한 이 다정한 설치물의 제목은 ‘내 친구의 친구들은 내 친구들이다’. 친구는 10년 동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일 수도 있고, 길종상가에서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이기도 하고, 재료이기도 하다. 친구들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변화시킨다.

    박길종과 친구 사이인 김윤하 작가는 예술에 관해 더욱 솔직하고 직접적인 얘길 꺼낸다. “작가로 불리지만 제가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면 과연 나는 뭘 하는 사람일까. 내가 만드는 물건은 예술일까, 쓰레기일까. 그런 고민을 하다 보면 ‘그냥 예쁘면 되지 않나? 사람들이 공감해주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미쳐요. 그럴 거면 예쁜 쓰레기를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김윤하는 눈에 띄는 단어, 이미지, 재료 등을 뽑아서 마인드맵을 만들었고 이는 ‘그 우발에 대한, 방치하고 싶은 그 불편에 대한, 그럼에도 의도할 수 없는 그 오염된 수단에 대한, 그 전생을 수행하려고 증식하다가, 경계를 발견하고는’이라는 대단히 긴 제목을 단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중정은 당구 큐대, 대걸레, 플라스틱 의자, 초, 테니스공 등이 기발하게 조합된 작품으로 가득 찼다. 소소한 유머가 흘러넘쳤다. “과거 어떤 작가의 작품으로부터 나온 작품인지 유추해서 맞혀보세요.” 창작집단 길종상가에서나 전시에서나 김윤하가 만들어내는 예쁜 ‘무언가’는 자유롭게 생각하는 계기를 던진다.

    김희천은 맹인 안내견이 실제 공간과 3D 그래픽으로 재현된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 매핑된 가상 공간을 넘나드는 내용을 담은 영상 ‘멈블’을 만들었다. 에르메스 10년이 가지고 있는 궤적과 자신의 궤적을 장소를 중심으로 풀어냈다. 주인공이 ‘개’인 이유는 동물영화에서 개를 찍는 방식과 연출을 하지 않고 장면 장면을 이어 붙이는 자신의 영상 작업방식의 유사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 동물 영화에서는 동물에게 감정 연기를 시킬 수 없으니 행동을 지시하고 그걸 이어 붙여 감정을 만들어낸다. ‘멈블’에는 공사 중인 에르메스 아뜰리에 3층을 비롯, 가상현실도, 작가 어머니의 집도 교차되어 등장한다. 허들을 넘는 ‘개’처럼 자유롭게 시공간을 넘나들던 이야기는 시대의 변화에 익숙해지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10년 사이 에르메스는 전시 공간을 3층에서 지하 1층으로 옮겼어요. 그렇다면 10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10년 동안 제가 본 전시는 어떤 공간이 주어졌느냐에 따라서 달라졌을 것 같아요. 그래서 10년 후에 어떤 공간이 있을까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전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3D, VR 등 디지털 인터페이스는 최첨단 물음표를 던지고, 이는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기능이 뛰어나다.

    작가 6인이 소환한 10년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7월 23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친구를 호명하며 우정의 시작을 이끌어내는 듯하다가 곧바로 친구는 없다며 우정을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실험과 창작의 역동적인 공간에서는 예술을 논할 친구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에디터 / 조소현
      에디터
      윤혜정, 조소현
      현시원(시청각 공동 디렉터, 큐레이터)
      포토그래퍼
      KWAK KI 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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