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으로 들어봐
최근 세상에 나온 이들 중 히트곡 하나가 아닌 앨범 전체로 진검승부하는 알짜배기들을 선별했다.
‘한 줄도 너무 길다’라는 책이 있다. 5-7-5의 음절로 이루어진 일본의 한 줄짜리 정형시 ‘하이쿠’ 모음집이다. 음악을 그에 빗대 말해보자면 ‘한 곡도 너무 길다’가 아닐까. ‘다음 곡’ 버튼 위에서 망설이는 리스너의 손가락을 잡아 두기 위해 자극적인 도입부, 중독적인 후렴구를 만드는 데 재능을 기울이는 창작가들이 늘어난 지도 꽤 오래다. 여기, 그런 세간의 흐름에 아랑곳 않고 한 장의 앨범을 들이미는 패기 넘치는 음악가들이 있다. 때로는 한 장 안에 꾹꾹 눌러 담은 세계관으로 때로는 타이틀보다 좋은 수록곡으로 존재감을 자랑하는 다섯 장의 앨범들이다.
OFONOFF [boy.]
데뷔 앨범은 누구에게나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다. 자기 나이만큼의 시간을 베어내 첫 앨범을 세상에 내놓는 음악가에게도, 그 정제의 과정을 통해 지금껏 세상에 없던 아름다움을 새롭게 만나는 리스너에게도 그렇다. 2016년 하반기 단 두 장의 싱글로 신에 심상치 않은 기운을 전했던 듀오 OFONOFF의 [boy.]는 바로 그런 데뷔 앨범이 가지는 의의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앨범이다. 기나긴 도시의 밤을 포근히 풀어 내는 깊고 여유로운 품새에 앨범을 듣는 내내 깜빡깜빡 시공간이 멈춘다.
NCT127 [CHERRY BOMB]
‘소방차’, ‘無限的我(무한적아)’, ‘Cherry Bomb’으로 이어지는 NCT127 타이틀곡 흐름은 분명 마니악한 구석이 있었다. [CHERRY BOMB]은 그렇게 일반 대중은 물론 아이돌 음악 마니아마저 목 넘김이 껄끄러웠던 이들의 이미지를 유화시키는데 안성맞춤인 앨범이다. 첫 곡 ‘Cherry Bomb’으로 일렉트로니카에서 힙합으로의 영역 확장 이전을 허락 받은 앨범은 이후 빈티지 훵크로 매만진 보이팝(‘0 Mile’), 상큼한 계절송(‘Summer 127’), 인디트로니카와 아이돌팝의 혼종(‘Sun & Moon’) 등을 새로운 카드로 쉼 없이 제시하며 ‘이것이 새로운 세대의 보이팝’임을 거듭 제시한다.
RAW BY PEPPERS COSMOS [COSMOS]
한마디로 이것은 한 장의 앨범이 아닌 한 편의 우주 대서사시다. 수록곡의 재생 번호가 하나씩 더해갈수록 호기심 많은 세 소년과 미치광이 과학자로 Spino를 주인공으로 한 뜻밖의 모험의 실체가 조금씩 정체를 드러낸다. 13곡의 노래는 마치 13개의 퍼즐 조각처럼 각자의 고유한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므로 단 한 곡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순서대로 천천히, 긴 호흡으로 앨범의 마지막까지 그저 따라가는 수 밖에는 없다. 앨범을 쪼개는 건 물론 싱글 발매가 오히려 환영 받는 시대, 극과 극에 놓여 있어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진아 [RANDOM]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다. 팝과 재즈, 인디와 메이저감성, 진지한 싱어송라이터적 작법과 송 캠프적 순간이 마구 뒤섞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SBS [K팝스타] 출연 이후 처음으로 발표하는 앨범 단위 결과물 속, 이진아는 마치 처음 지팡이를 손에 넣은 초보마법사처럼 여기저기 별 가루를 흩뿌리고 다닌다. [RANDOM]은 지금 우리가 ‘대중음악’이라 부를 수 있는 가장 넓은 범위 안의 음악들을 모조리 쓸어 담은 작은 장난감 상자다.
K.A.R.D [Hola Hola]
혼성그룹 카드의 데뷔앨범 [Hola Hola]는 최근 발매된 그 어떤 앨범보다 자기확신으로 충만한 앨범이다. 지난해 말 발표한 데뷔 곡 ‘‘Oh NaNa’를 비롯 지금까지 발표한 곡들을 차곡차곡 모은 컴필레이션 형식의 앨범은, 확고한 세계관 위에 건설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자체로 카드라는 그룹의 정체성을 설명하기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리메이크 곡 ‘난 멈추지 않는다’에서 아웃트로 느낌의 마지막 곡 ‘Living Good’까지, 앨범은 카드가 어떤 뿌리를 두고 있는 그룹인지를 매 순간 확인시켜준다. 최근 케이팝 신의 유행을 선도한 ‘트로피컬 프론티어’의 위용도 더불어 빛난다.
- 글
-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 에디터
- 윤혜정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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