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 At Heart
내면의 아우라가 존재를 반짝이게 하고, 입술의 컬러는 그것에 리듬을 더한다. 우아한 자신감, 여유 넘치는 파워, 스마트한 열정… 한층 원숙한 색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현아의 시간.
<보그>와 현아의 만남은 두 번째다. 지난 3월, 선명과 투명, 관능과 순수라는 각기 다른 아름다움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작업은 디올이 선정한 ‘아시아 마켓 베스트’로 꼽혔다. 앨범마다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는 현아에게도 처피뱅, 초록 눈썹, 코럴 컬러 립 등 뷰티에 집중해 변화를 끌어낸 스타일링은 신선한 시도였다. “원래 코스메틱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뷰티 화보는 무대 메이크업보다 내추럴하거나 여성스럽게 표현할 수 있잖아요. 진짜 여자가 된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뭔가 부족하던 부분이 채워지는 시간이었어요.” 현아는 뷰티 화보 촬영이 정말 적성에 잘 맞는다며 덧붙였다. “사실 뷰티 촬영이 제일 힘들어요. 얼굴이 예쁘게 나와야 하고 동시에 제품 발색력도 표현해야하는 굉장히 디테일한 작업이잖아요. 하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무대에서는 퍼포먼스 때문에 디테일한 얼굴 표현이 잘 안 되는데 코스메틱은 얼굴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현아가 생각하는 뷰티란 내면의 자신감을 한 단계 더 멋지게 해주는 포장이다.
피사체로서 뷰티 화보 촬영 현장을 벗어난 현아는 화사한 청량감을 던져주는 뮤지션이다. 물기를 머금은 반짝거리는 빨간색이 떠오르는, 투명한 탄산수 거품처럼 쾌청한 여자. 매년 깊이와 농도는 다르지만 우리의 여름 풍경 속에는 현아가 있다. 2011년 <버블팝>부터 여름마다 앨범을 내고 무대에 올라 자리 잡힌 공식이다.일부러 검색해서 찾아 듣지 않아도 현아의 음악은 여름 공기처럼 주변에서 팡팡 터져 나오곤 했다. “신기하게도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되었어요. 평소 집에 가만히 있는걸 좋아하고 물놀이는 해본 적도 없는데 며칠 전에도 뮤직 페스티벌 ‘워터밤’ 무대에 올라서 물총을 맞았어요.(웃음)” ‘버블버블한’ 에너지를 가진 현아를 무더위 한복판으로 끌고 나오는 범인은 아마도 여름인 것 같다. 올해도 어김없이 현아는 8월말 컴백을 앞두고 있다.
“이번 앨범의 키워드는 ‘숙녀’예요. 제가 체감하는 스물다섯 살과 스물여섯 살의 경계가 정말 달라요. 작년까지는 나이를 묻는 질문에 ‘스물다섯이에요’라고 대답하면 ‘아직도 그것밖에 안 됐어? 예쁜 나이네’라고들 하셨는데 올해 들어서 ‘스물여섯이에요’라고 대답하면 ‘숙녀가 될 나이네’라는 얘길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어떤 부분이 숙녀가 되었다는 거지? 고민을 하게 됐어요. 생각해보니 스물여섯이 된 저는 말하는 억양이 바뀌었고 좋아하는 것도 바뀌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성향의 윤곽이 두드러지는 시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청순하고 귀여운 컨셉에서 섹시한 컨셉으로 걸 그룹의 변화를 설명할 때 흔히 듣는 표현 ‘소녀에서 숙녀로’와는 다르다. 사전적 의미의 ‘교양과 예의와 품격을 갖춘 현숙한 여자’에서도 비껴서 있다. 현아의 ‘숙녀’란 차라리 시인 박인환이 한잔의 술을 마시고 떠올린, 목마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에 가까워 보인다. 갈증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출발점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단단한 시선이다. 무엇보다 현아라는 자신을 깊이 파고 들어간다. 앨범 재킷에는 화장기 없는 자연스러운 지금의 현아가 담겼고, 음악에도 다른 뮤지션과 피처링이나 콜라보레이션보다 자신의 마음속을 흐르는 멜로디가 우선시되었다. 자화상과 같은 본능과 감각이 부르는 노래다. “가수 생활한 지 10년 정도 되니 작업을 안 해본 작곡가분들이 많이 안 계세요.(웃음) 제 노래 중 ‘버블팝’을 명곡이라고들 하는데 그런 노래를 다시 한다면 6년 전으로 돌아가는 건데 어떤 새로움을 찾아야 할까? 같은 고민이 이번에도 많았어요. 결국 지금 무언가를 하는 그 자체가 신선하다, 가장 좋은 곡을 담는 게 우선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죠. 작곡가분들에게 ‘어떤 기분으로 있다가도 제 음악이 딱 시작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신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듣는 분들이 그 에너지를 그대로 흡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다들 너무 어렵다고.(웃음) 타이틀곡은 신나고 에너지 있는 무대에 포커스를 맞췄고, 나머지 곡은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담긴 곡을 수록했어요.”
작곡가들로부터 받은 곡 중 현아가 듣고 괜찮다고 느꼈던 곡은 100곡 이상. 그 안에서 다섯 곡을 추렸다. 곡을 선정하는 데 있어 복잡한 과정을 거치진 않았다. 기준은 한 가지. 마음을 흔드는 노래였다. “작사에 많이 참여하는 편이고 디렉팅을 주로 해요. 작곡가분들이 써주신 트랙을 듣고 ‘노래 제목은 이게 좋을 것 같아’ ‘이 부분이 아쉬운데 이렇게 바꾸면 좋지 않을까?’ 같은 식으로 큰 그림 그리는 걸 잘해요. 그러다 보니 모든 트랙에 참여하게 되는 것 같아요.” 현아는 간접경험 신봉주의자다. “메시지가 담긴 음악을 좋아해요. 음악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건드리는 일이잖아요. 제가 감정 표현에 서투른 편이라 상반되는 사람들로부터 매력을 느껴요. 영화나 책에서 자극을 받아서 작업을 많이 해요. 금방 써지는 가사도 있지만, 작업이 막힐 때면 집에 가서 영화를 봐요. 그리고 내가 저 장면에 뛰어들었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 도움이 돼요.”
열네 살에 원더걸스로 데뷔한 현아는 걸 그룹 포미닛을 거쳐 솔로 가수로 선 지금까지 대중이라는 수용자를 배제한 음악을 한 적이 없다. 매년 자연스럽게 트렌디한 음악 속에 놓였고 앨범에 대한 방향성도, 무대에 대한 고민도 ‘이런 곡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며 좋겠다’는 쪽에 포커스를 맞춰왔다. 변화를 위한 변화를 노린 적도 없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이 가장 잘하는 걸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모든 걸 바꾸자고 했던 ‘Change’ , 내일은 없으니 망설이지 말라고 노래했던 ‘내일은 없어’ , 같이 춤추자고 묻던 ‘어때?’ , 불만 있는 애들 상관 안 한다고 노래했던 ‘잘나가서 그래’ 등 현아는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자고 다정한 손짓을 하곤 했다. 혹은 ‘나’가 아닌 ‘현아’를 주인공으로 버젓이 내세우기도 했다. ‘Ice Cream’에서 현아는 달콤했고, ‘빨개요’에서 현아는 빨갰다. 자신을 타자화하는 화법이 어색하지 않을 수있는 건 현아가 자신의 매력을 잘 알고 있으며, 그런 자신을 사랑하고, 솔직하게 사랑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현아의 무대는 항상 신나고 파워풀하고 섹시할 수 있었다. 무대에서는 생각이 더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하는 그녀에게 무대란 무수한 훈련이 만들어내는 본능에 가깝다.
자신이 지향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표현할 줄도 몰랐던 소녀는 데뷔한 지 10년 만에 8개국 북미 투어를 자신만의 리스트로 꽉 채울 수 있는 뮤지션이 되었다. 자원해서 소속사 후배 걸 그룹 CLC의 음반 프로듀싱에 참여하고, 펜타곤 이던, 후이와 그룹 프리플 H를 결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은 스스로 ‘호불호가 갈리는 목소리’라고 인정할 수 있는 여유도 만들어냈다. 자신의 목소리를 두고 불평하는 대신 목소리 안의 여러 가지 색깔을 찾는 시도를 하고, 목소리와 어울리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찾아 나섰다. 믹스 마스터를 할 때 목소리를 바꿔보는 연구도 현아에겐 흥미로운 작업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은 선우정아와의 작업. “‘나팔꽃’이라는 곡을 선우정아 언니와 작업했는데 제게 없다고 생각했던 음색을 끌어내주셨고, 해보지 않았던 애드리브 라인을 구현해주셨어요. 원래 가지고 있던 음색에서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해내는 작업이었어요.” ‘나팔꽃’을 부르는 현아는 몽환적이고 나른하고 대체로 달콤했다.
자극이란 한 방향으로만 이동하는 것이기에 과거 걸 그룹에게 ‘섹시’란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현아는 처음부터 섹시한 최초의 걸 그룹이었다. 그리고 그 섹시함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선보인 무대는 ‘섹시’라는 단어가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섹시함을 통칭하는 대명사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했다. 발랄하게 섹시하기도 했고, 귀엽게 섹시하기도 했고, 건전하게 섹시하기도 했으며, 건강하게 섹시하기도 했다. 현아는 하이힐을 신었을 때만 나오는 아우라에 환호함과 동시에 스스로에게 편안함을 주는 운동화의 선한 물성을 또렷이 느낄 줄 알았다. 지난 10년간 그녀가 쌓아 올린 앨범은 춤, 음악, 퍼포먼스, 패션, 헤어, 메이크업까지 온몸으로 감각하는 음악이 선사하는 강렬한 에너지였다.
이번 새 앨범의 시작점을 숙녀로 잡았지만 현아는 숙녀를 명확하게 정의하진 않기로 했다. “그냥 저답게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매일 어제보다 더 낫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나가면 될 것 같아요.” 입추가 지났지만 여름을 떠나보낼 수 없는 건, 아무래도 아직 현아가 돌아오지 않아서인 것 같다.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스물여섯 현아는 여전히 다음이 궁금해지는 섹시한 크리에이터다.
ROCK YOUR LIPS
6개월 전 현아는 디올 메이크업과 처음 만났고 그곳에 <보그>가 있었다. 전작이 대면식이었다면, 이번은 그녀가 마음껏 놀 수 있는 무대. ‘루즈 디올 리퀴드’ 뷰티 필름의 컨셉은 음악의 연장선에 있었다. ‘심장을 두드리는 컬러, 비트에 얹히는 여자의 자신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드디어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립 메이크업은 현아가 직접 했다. “입술보다 1mm 더 크게 그려봤어요. 90년대 스타일 립 메이크업이 돌 아왔으니까요.” 모던하고 정제된 스타일링에 관능적인 립 셰이프를 곁들일 줄 하는 센스를 보라. 여전히 똑똑하다. 윈드 건을 맞으며 유연하게 움직이던 그녀가 곁들인 한마디. “매트, 사틴 그리고 메탈릭까지, 이건 여자들이 현실에서 진짜 필요로 하던 텍스처네요.” 게다가 강한 바람이 연신 쏟아지는데도 입술에 머리카락 한 올 달라붙지 않는다. “확실하게 발색되면서도 입술에뭔가 얹혔다는 느낌이 없이 가벼워요.”
현아가 극찬한 ‘루즈 디올 리퀴드’에 <보그> 역시 매료됐다. 1953년 태어난 뷰티 클래식, ‘루즈 디올’은 정통성을 유지하되, 모던함을 잃지 않는 선에서 매우 영리하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올 최초의 멀티-피니쉬 리퀴드 립스틱’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매력을 장착했다. 가볍게 발리고 선명하게 발색되지만 무려 12시간 동안 그대로 유지된다. 묻어나지 않는 립 제품 특유의 뻐근함이 전혀 없이, 그저 편안하고 정교하다. 발리는 느낌은 한마디로 실크다. 스카프가 입술을 훑는 듯한 황홀경을 경험한 뒤, 그 부드러운 여운을 유지해주는 건 상상하지 못했던 가벼운 밀착감과 촉촉함. 모순되는 모든 효과가 공존한다. 게다가 거울을 보지 않고 덧바르고 또 덧바르며 테이크를 거듭해도 뭉침이 없다. 충분한 양의 텍스처를 머금고 있다가 딱 적정량만 도포되도록 설계한 애플리케이터 덕분. 질척이지 않는 강렬함, 가장 동시대적인 뷰티 애티튜드가 아닌가! 무엇보다 놀라운건 역시 색이다. 컬러에도 꾸뛰르가 존재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네 가지 컬러 패밀리를 보라. ‘색 장인’ , 디올의 면모를 새삼 확인한 명품이다.
- 뷰티 에디터
- 백지수
- 피처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AHN JOO YOUNG
- 헤어 스타일리스트
- 효정(위드)
- 메이크업 아티스트
- 이은주(청담동 미용 실)
- 스타일리스트
- 정설
- SET STYLING
- 최서윤(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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