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s Makes the City
아트는 도시를 구했다. 귀족적 과거의 영광에 도취된 베니스, 세계대전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카셀,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했던 뮌스터. 이들 도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예술을 대했고, 치유 받았으며, ‘유럽 3대 미술 축제’라는 유산을 갖게 되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그리고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10년 만에 개기일식처럼 나란히 줄을 선 덕분에 동시대 현대미술이 ‘우리의 안녕’에 미치는 영향을 총망라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예술가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전시의 가치는 작품 이전에 어쩌면 전시의 속성 자체에서 오는 게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한정된 시공간이라는 사실이 작품을 최고의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처럼 다시 꺼내 볼 수도 없고, 다른 시공간에서 본다 해도 이미 콘텍스트가 달라져버리는 것이 이 스페셜 이벤트의 본질. 그리고 이는 올해 2년 만의 베니스 비엔날레, 5년 만의 카셀 도큐멘타 그리고 10년 만의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잇는 여정을 묶어 ‘그랜드 아트 투어’라 일컬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태양-달-지구가 일직선이 되는 개기일식처럼, 아드리아해부터 게르마니아 대륙으로 이어지는 세 도시가 10년 만에 ‘예술의 우주’로 변모했다. 현대미술을 즐기고(베니스), 탐구하고(도큐멘타), 공유하고자(뮌스터) 한 이들은 그러나 서로의 그림자에 가리는 법이 없었다. 미술계 혹은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은 10년 만에 찾아온 우주적 기운을 당연히 체험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 행사들이 토로하는 예술-예술가-세상의 관계로 지형도와 청사진의 퍼즐을 이리저리 맞추어보는 것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올해만큼은 “비엔날레의 사체를 확인할 겸, 베니스에 가야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몇 년 사이, ‘물의 도시’의 수면이 높아지고 있고 200년 후에는 베니스가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가설이 신빙성을 얻는 것과 같은 보폭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의 영향력에 대한 의문도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베니스 비엔날레가 뭇매를 맞을지언정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적은 없었다. 도록이라도 훑어봐야 하고(미술계의 ‘오늘’이 다 있으니까), 황금사자상을 독일관이 수상한 이유를 알아야 하며(독일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간다), 올라퍼 엘리아슨이 왜 작업실을 베니스에 차리고 이민자들을 고용하였는지 궁금해했다. 미국 <보그>가 베니스의 곤돌라 위에서 화보를 찍고, 미국관 작가인 마크 브래드포드가 모델과 촬영을 하며, 여성 작가들을 나란히 세운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저명한 아트 저널리스트 사라 손튼이 말한바, “베니스 비엔날레는 전세계 미술계의 의미 있는 순간을 포착해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초대형 전시” 라는 정의의 키워드는 ‘전 세계’ ‘의미 있는’ ‘포착’ ‘초대형’ 정도다. 매번 달라지는 건 ‘의미’일 텐데,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의미 따위는 집어던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퐁피두 출신의 크리스틴 마셀 총감독은 브렉시트, 트럼프, 난민 문제 등의 국제 이슈와는 상관없이 ‘Viva Arte Viva(만세, 예술, 만세)’를 외친다. 2년 전 오쿠이 엔위저가 ‘세상의 모든 미래’라는 주제로 도시의 귀족적인 풍경을 무겁게 짓눌렀던 것과 정반대의 태도다. 크리스틴 마셀은 역사를 가로질러온 예술과 예술가의 열정에 마음껏 열정을 표하며 폭죽을 터뜨린다.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가들에 의해, 예술가들을 위해 기획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메인 전시장인 자르디니에 작업실을 만들어 넣고, 퀼팅 작품이 걸린 그곳에서 예술가들은 음악을 만들거나, 잡담을 하거나, 잠을 자면서 어슬렁거린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애초에 이탈리아 국왕 부부의 은혼식을 기념하는 이벤트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예술과 백년해로하고자 하는 베니스의 자축 분위기는 이상할 것도 없다.
흑인 모델 자카리아 키아르 뺨치는 포즈를 잡고 있는 마크 브래드포드는 이번 비엔날레가 주목한 기린아 중 한 명이다. 미국관은 정치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이 반드시 같은 이야기는 아님을 증명하며,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 만연한 ‘카르페 디엠’에 면죄부를 준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과 싸워야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는 그리스 신화부터 자신이 쓴 영웅시 ‘헤파이스토스’를 나열하고, 제퍼슨 스타일의 건물부터 대서양 연안의 노예선 선체를 연상시키는 내부에까지 추상화된 페인팅, 조각, 영상을 배치한다. 한편 올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젊은 작가 아네 임호프(Anne Imhof)는 지식을 위해 악마와 흥정하는 학자에 관한 전설을 그린 ‘Faust(주먹이라는 뜻)’를 선보였는데, 기괴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그녀의 퍼포먼스 혹은 움직이는 조각 작품은 장장 7시간 동안 계속되며 ‘경험’을 경험하게 한다.
한편 코디 최와 이완이 협업한 한국관은 주요 외신이 ‘꼭 보아야 할 (Must See)’ 전시로 언급했다. “타자에 의한 급속한 근대화로 점철된 사회 정치적 역사가 어떻게 개인의 미시사에 반영되는지를 다른 세대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형형색색 네온사인으로 번쩍거리는 용과 호랑이, 국적 불명의 키치한 간판으로 요란하게 장식한 한국관은 평화주의로 고고한 베니스 자르디니 숲에 균열을 일으키며 균형을 잡아준다. 공교롭게도 한국관의 주제는 ‘균형추: 돌과 산 (Counterbalance: The Stone and the Mountain)’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샴페인을 든 채 행복한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면,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14)는 샴페인 대신 서슬 퍼런 칼(펜 혹은 붓)을 들고 있다. 이들의 칼끝은 지구상에서 펼쳐지는 모든 불확실하고 부조리한 현상을 향해 있다. 그러니까 전쟁, 테러, 난민 등 인류가 자초한 현대사 중에서도 현재 가장 절망적인 환부가 무엇이고, 날 선 감성과 지성의 예술가들이 어떤 질문과 답을 탐색하는지 궁금하다면 카셀에 가야 한다. 외신에서나 보던 일이 결국 ‘우리의 일’임을 상기시키는 지적 화두가 각종 예술의 형태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포스트 브렉시트’이자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 없는 ‘나우 트럼프’의 시대 아닌가.
‘핫 플레이스’라고는 올해 초 문 연 부티크 호텔 렌토프뿐일 정도로 작은 도시 카셀은 5년마다 인구(20만여 명)의 네 배가 넘는 관객과 현존하는 모든 예술계 인사들이 들르는 ‘100일간의 미술관’으로 변모한다. 다른 부유한 도시를 다 제치고 카셀이 이 영광의 타이틀을 거머쥔 건 그림 형제가 살았던 곳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카셀은 역사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다. 군사령부와 거대 군수회사가 생기며 주목받았지만, 그래서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표적이 되었다. 게다가 ‘퇴폐 미술’이라는 죄명으로 모던아트를 탄압한 나치의 만행은 유명하다. 당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이민 간 예술가도 여럿이었다니, 마을과 함께 독일의 미술사도 잿더미가 되어버린 셈이다.
카셀은 ‘세계대전의 전범’이라는, 콤플렉스를 넘어선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예술에 손을 내밀었다. 아르놀트 보데라는 교수가 제안한 이 기회는 정원박람회의 부대 행사로 마련된 천막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전후의 날 선 시대정신은 자양분이 되었고, 예술가들은 ‘발언’하기 위해 도큐멘타에 왔다. 이를테면 요셉 보이스는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조직위원회 사무실을 차리고 ‘100일 동안의 강연’을 선보였는데, 이는 퍼포먼스라기보다는 무브먼트에 가까웠다. 아이 웨이웨이는 평범한 중국인 1,001명을 20일 동안 카셀로 이주시키는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들은 스스로 ‘사회적 조각’이 되었고, 예술을 재정의함으로써 도큐멘타를 ‘기록자’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러므로 카셀에서는 디카프리오 같은 스타와 마주칠지 모른다는 기대를 아예 버리는 게 좋다. 대신 각국의 언어로 쏟아지는 불평불만을 듣게 될 것이다. “현학적이고 난해한 빌어먹을 도큐멘타!”
지금도 전설적인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의 전위적인 전시(1972년)나 오쿠이 엔위저의 정치보다 더 정치적이었던 전시(2002년)가 ‘베스트 도큐멘타’로 손꼽히지만, 이런 해조차도 도큐멘타는 늘 난해하다는 평을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아예 ‘Eventness’를 선포함으로써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음”을 선언했다. 올해 도큐멘타에서 ‘새롭다’고 할 수 있는 건 주 무대를 카셀뿐 아니라 아테네로 확장하며 독일과 그리스를 예술적 연대로 묶은 시도뿐일지도 모르겠다(‘Learning from Athens’라는 주제처럼). 이들은 스타 예술가를 모시는 대신 간과하거나 잊힌 예술가를 소환했고, 새로운 형식이나 기술 대신 혁신적인 세계 질서와 사고방식을 제시했다. 이 작업은 자본주의, 민족주의, 식민주의, 군국주의, 전체주의 등 ‘민주주의’ 이면에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이즘(ism)’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카셀 중심부이자 나치가 2,000권의 책을 불태운 프리드리히 광장에 아르헨티나 작가 마르타 미누진이 10만 권의 금서로 지어둔 파르테논 신전 ‘The Parthenon of Books’는 검열과 폭력, 역사의 잔혹함을 직설화법으로 고발하는 ‘반기념적’ 기념비다(지난해 우리가 겪은 블랙리스트의 소동을 떠올려보라). 반면 외곽에 있는 아그네스 데네스의 ‘The Living Pyramid’는 보다 은유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인간이 아닌 자연의 시간에 주목하면서, 작가가 던진 질문을 곱씹게 된다. ‘당신은 기후변화의 원인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관습의 노예라고 생각합니까?’ ‘선택권이 있다면 어떤 존재가 되고 싶습니까?’ 등등. 올루 오귀베(Olu Oguibe)의 콘크리트 오벨리스크에는 이런 제목이 붙여져 있었다. ‘낯선 이와 피란민들을 위한 기념비.’
기억할 만한 순간은 도처에 있다. 책상, 학용품 그리고 학생들이 그린 그림으로 채워진 방(‘The Missing Link. Decolonisation Education by Mrs Smiling Stone)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교육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중략) 모든 인간은 요람의 품에 안길 권리가 있다.” 한편 아프리칸 마스크가 인간의 얼굴과 뒤엉키는 영상의 대사에도 귀 기울여보자. ‘우리는 좀 덜 생각하고, 좀 더 느껴야 해.’ 팔레스타인의 벽과 난민 캠프를 재현한 작품이 전시되는 한편, 보수 인사로 유명한 다이슨 경과 다이슨 청소기 광고 클립을 미니 오페라와 결합하여 (이방인을 배척하는 이유가 ‘불결함’이었다는 폭력적 편견과) 이스라엘 난민 캠프를 시사하는 위트 있는 작품(‘The Dust Channel’)도 있다. 운이 좋으면 머리에 책을 얹고 거리를 걷는 ‘아름다운 여인들의 군대’를 만날 수도, 작가가 차린 숍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위한 신발’을 살 수도, 칠흑 같은 방에서 비폭력 세르비아 학생운동 전 리더의 주장을 경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형태의 예술이 모두 한 작가(이레나 하이덕)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시대의 기록자’들의 활약은 꽤 맹렬하다. ‘국가사회주의 지하조직’에 의해 살해된 북부 카셀 출신 청년의 의심스러운 죽음을 둘러싼 공방은 독일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시험해보기엔 충분하며, 평범해 보이는 터키 같은 곳에서 목격되는 섬뜩한 국가주의는 비단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디지털화된 현대와 잃어버린 인간성의 문제를 연결시키기도 하고, 그리스와 독일과의 미묘한 정치적 관계(난민들이 그리스에서 독일로 많이 넘어왔지만, 독일은 난민 수용에 대한 입장을 매번 달리하고 있다)를 댄 피터맨이 양국의 자원으로 만든 상징적인 주괴 작품을 통해 유추하도록 한다. 한편 5년 전 양혜규의 블라인드가 설치되어 있던 카셀역의 지하 역사와 철로에서는 아이폰으로 찍은 듯한 부산스러운 영상이 무너진 도시를 비춘다.
사실 난수표 같은 작품으로 넘치는 도큐멘타에서는 알량한 지도나 설명서 따위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시라기보다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영역의 숱한 실험적 담론을 쏟아내는 토론장 한가운데서 지끈거리는 머리통을 붙잡고 더위 탓만 했다. 평론가들은 “훈련과 연습으로 이해하는 데만 집중하고, 미래와 미지에 대한 창의력이 세상을 바꾸는 힘을 외면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잊히지 않는 메시지가 있다. “도큐멘타 14를 본다는 건 역사 속 정치적 주체가 되는 과정이다.” 세상의 불확실함을 명징하게 밝히고자 하는 예술적 시도는 결과적으로 나를 더한 불확실함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이 ‘세상의 파수꾼’은 내 뺨을 후려치기도, 회유하기도 하면서 다만 생생하게 살아 있으라 종용했다. 그러니 카셀을 찾을 땐 예술이 나와 우리의 ‘안녕’에 미치는 영향 같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거나, 죽을 때까지 고민할 가능성이 없는 질문과 함께 시원한 물 한 병만 챙기면 족하다.
카셀에서 약 200km 떨어진 뮌스터에서도 또 다른 ‘100일간의 미술관’이 열리고 있다. 10년 만에 다시 열린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ünster 2017)는 도큐멘타 14가 주지 못한 일종의 미적인 평온함으로 가득 차 있다. 뮌스터는 카셀에 비해 훨씬 부유하고, 안전하고, 쇼핑하기도 좋은 도시다. 8세기에 세운 학교가 건재한 데다 세 명 중 한 명이 대학생이라 교육의 도시라고도 불리고, 종교 문제가 야기한 ‘30년 전쟁’이 시청에서 열린 협상으로 종결된 이후 ‘평화의 도시’를 자처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들이 곳곳에 남긴 예술적 흔적이 ‘복원과 지속’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덕분에 70년대만 해도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던 이 도시는 과거보다 미래가 더 궁금한 도시가 되었다.
“지금은 모든 뮌스터 사람들이 조각 프로젝트를 좋아해요. 나의 도시를 예술가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요. 각국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100일 동안 뮌스터는 완전히 새로운 사회가 되죠. 정말 신나요. 지금도 그렇지만, 40년 전엔 얼마나 보수적이었겠어요? 우린 이런 예술 따윈 필요 없다고 반대하기도 했어요. 타의로 현대미술을 접하고, 작품에 대한 대화와 토론을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죠. 좀 웃긴 일이지만, 수십년 후에야 이 프로젝트가 도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우리가 얼마나 특별한 유산을 갖고 있는지 깨닫게 된 거예요.”
뮌스터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뮌스터 관광청에서 근무하는 아네테 슈타트보이머(Annette Stadtbäumer)가 말했듯, 공적 영역으로서의 조각의 본질을 묻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시민들이다. 뮌스터는 그동안 도널드 저드, 브루스 나우먼, 요셉 보이스, 제니 홀저, 클래스 올덴버그, 다니엘 뷔랑, 황용핑 등의 작품 30여 점을 영구 소장했다. 그러나 대가들의 공공 미술이 시간과 장소라는 개념과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이곳 사람들을 제1의 관객이자 마지막 관객으로 삼기 때문이다.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와 일상을 존중하는 것. ‘프로젝트’라는 행사명도 시민의 삶에 어떤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받는지 연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예술, 도시, 공간, 사람 사이의 관계를 사회, 역사, 정치, 미학, 도시공학, 환경의 관점에서 탐구하고 발전시키는 프로젝트. 올해 초에 열린 심포지엄의 주제도 ‘조각 프로젝트 아카이브: 그 잠재력과 관점’이었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알려진 대로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도로의 상태, 버스의 속도, 행인의 보폭마저 자전거를 타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뮌스터이기에 가능한 일인데, 생각보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청량한 바람을 맞으며 보물찾기 하듯 도시에 숨은 작품을 찾아내는 과정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몸을 통해 조각을 본다는 사실이 주효했다. 자전거 타는 행위가 몸에 깊이 새겨진 작동법을 가동한다는 것이라면, 조각도 결국 땅을 몸 삼아 무언가를 새기는 작업이다. 또 어딘가로 이동하여 조각을 보고 특유의 물질성을 대면하는 짧은 경험도 우리의 인식과 감성의 영역에 새겨지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이 전시장 같은 공간이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10년이면 강산뿐만 아니라 기술도, 사고도 변할 만한 시간이기에, 조각을 확장된 예술로서 재정의하는 건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가장 큰 역할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장 먼저 간 곳은 다뉴브 운하 일대였다. 산업 지대였다가 지금은 바와 레스토랑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곳. 여기에 터키 출신의 아이셰 에르크멘(AyŞe Erkmen)은 철장을 수면 아래에 깔아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물 위를 걷는 것 같다(제목도 ‘On Water’다). 운하에 난 새로운 길처럼 일상을 다시 보도록 만드는 것이 조각임을 시사하는데, 일단은 신발을 벗고 첨벙거리는 것부터가 재미있다. 이 보이지 않는 다리 옆에는 마이클 스미스가 만든 65세 이상을 위한 타투 숍이 오픈했다. 나이 지긋한 관광객 무리 사이에서 나는 총감독 카스퍼 쾨니히의 말을 떠올렸다. “공공이라는 단어는 ‘투명한’ ‘뻔한’ ‘반드시 대중의 눈길을 끄는 것은 아닌’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몸에 새겨져서 자연스러운 무언가처럼 말이죠. 이 도시에서 조각은 그렇게 새겨집니다.” 몸에 대한 관심이 조각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첫째 조건이며 참여형 퍼포먼스가 조각에 포함된 게 그런 이유라면, 타투 숍의 존재 이유가 납득이 간다.
“10년 전 영국 아티스트 제레미 델러는 독일에 정원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시민 농장 50군데에 씨앗을 나누어주었고, 매일 일기를 써달라고 요청했어요. 사회, 정치, 경제, 국제 뉴스, 뭐든 좋다고 말이죠. 그 일기가 33권의 두꺼운 책으로 완성되었어요.” 아네테 슈타트보이머가 말한 것이 콜로니 가든 안에 있는 제레미 델러의 귀여운 작품 ‘Speak to the Earth and It Will Tell You’다. 한편 아시안풍 슈퍼마켓 안에 파인애플 풍선과 심심해하는 중국인 판매 직원 그리고 멕시코의 중국인들이 순찰을 피하기 위해 지은 지하 도로를 연상시키는 비디오 작업까지 함께 배치한 미카 로텐버그의 ‘Cosmic Generator’ 역시 조각의 다채롭고도 유연한 정의를 보여준다. 이미 세상을 지배한 디지털의 존재는 뮌스터의 풍경도 바꾸는데, 에이 아라카와(Ei Arakawa)의 ‘Harsh Citation, Harsh Pastoral, Harsh Münster’는 귀스타브 쿠르베, 조안 미첼 등의 명작을 LED 페인팅으로 선보인다. 이것이 과연 물리적 오브제인지, 디지털 이미지인지, 혹은 두 가지 모두인지 묻고 있는 작품. 이는 ‘Cherry Column’(1987)을 만든 조각가 토마스 쉬테의 명언 “자동차의 빨간색보다 (예술로서의) 빨간색 체리를 경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문장을 20년 동안 진화시킨 결과물인 셈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기대한 건 피에르 위그의 작품이었다. 아이스링크였던 공간을 거대한 ‘바이오-엔지니어링 세트’로 만들었다는 소문이었다. 콘크리트를 썰어낸 바닥에는 계곡이 생겼고, 섬이 자리 잡았다. 퀴퀴한 물웅덩이 근처에는 초파리가 날아다녔고, 벌과 나비가 눈에 띄었다. 화성의 일부인 것 같기도, 종말 후의 지구 같기도 한 풍경 끝에, 작가는 암세포를 배양할 수 있는 블랙박스를 한쪽에 두고는 암세포가 날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앱을 통해 볼 수 있게 했다.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생명이 자생할 수 있는 일종의 인큐베이터를 만든 피에르 위그의 존재는 이번 조각 프로젝트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예술의 속성과 공공 미술의 본질이 어느 정도로 서로에게 개입하고, 비판하고, 협동하고, 방해하면서 영향을 끼치는지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철학적 조각가’의 본분을 다했다.
자전거를 잠시 세웠다. 올덴버그가 호수를 바라보고 펼쳐진 공원에 만든 커다란 콘크리트 공(1977) 옆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이 조각은 40년 동안 뮌스터에서 살아남았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뮌스터의 모든 것이 움직인다(굴러간다)’는 메시지를 남기고자 했다는데, 이는 주술처럼 현재의 뮌스터에 적용된다. 다니엘 뷔랑이 수도원의 문을 본떠 만든 스트라이프 게이트가 과거를 추앙한다면, 올덴버그의 공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고품격 미술 도시로 거듭나고자 애쓰는 (서울을 비롯한) 도시에서 뮌스터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조각을 효율적인 비용으로 세우는가가 아니라 장소와 조각, 시간과 예술이 서로에게 얼마나 헌신하는지 이해하려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 에디터
- 윤혜정
- 패션 에디터
- TONNE GOODMAN
- 포토그래퍼
- MARIO TES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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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짓 코스(Birgit Kos@The Society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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