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모던타임즈

2023.02.20

by VOGUE

    모던타임즈

    근대문화유산은 누구에게나 100년의 타임슬립이 허락된 여행지다. 늦어도 가을에는 떠나고 싶은 곳을 엄선했다.

    유럽을 여행하며 1백 년 가까운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된 근대풍의 멋스러운 건물들이 여전히 도심의 풍경을 완성하면서 사람들의 터전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사람들은 그 고풍스러움을 두고 낭만이라는 수식을 약속한 듯 헌정하며 이들을 추억한다.

    우리에게도 분명 ‘근대(Modern)’라 부르는, 그 유럽의 풍경을 떠올릴만한 거리를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오히려 그 ‘근대’가 우리에게 왔고, 공존했는지, 그리고 때론 회피했지만 이제 다시 그 시간과 마주하게 되었는지의 이야기는 그들보다 더 섬세하고 풍성하다. 100년을 넘나드는 시간 여행에서 그 이야기를 만난다.

    소설 한 권의 시공간이 통째로 현실에 남겨진 군산

    작가 채만식은 35살의 나이에 군산항 일대에서 쌀 선물 거래로 한 몫을 잡으려는 정주사를 둘러싼 인간 군상을 소설에 담았다. 1937년의 전라북도 군산을 주요 배경으로 삼은 소설 <탁류>이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소설 속 그 군산의 모습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한동안 일제강점기의 산물로 푸대접 받으며 방치되었던 건물들을 손보고 단장해 놓아 군산 내항 주변 거리는 더 현실감 넘치는 20세기 초중반의 풍경이다. 호남 일대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계획적으로 확장한 곳이 군산항이었다. 한 해 최고 2백만 석이 넘는 쌀을 이곳에서 수탈해 갈 만큼 군산항은 바빴고 돈이 흘러 넘쳤다. 일본 제18은행과 조선은행 군산지점이 내항 가까이 들어서고, 통관 업무를 감시 감독할 세관도 번듯하게 자리했다. 쌀의 선물 거래(일종의 투기성 곡물 거래로, 많은 조선인들이 한 몫 잡기 위해 드나들다가 알거지가 되는 일이 허다했던)가 벌어지던 미두장(米豆場)과 쌀 창고 등 그야말로 근대식 경제 활동을 위한 신식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이 옛 이야기는 당시 모습 그대로의 근대문화유산들로 채워진 거리에서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돈이 모이니 일본의 부호와 관리, 상인과 지주도 군산에서 터를 닦았다. 그래서 군산의 근대문화 유적은 내항에서 시작해 월명동, 신흥동, 해방동, 금광동 등 원도심 전역에 산재해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와 영화 <타짜>에서 고니가 머물며 화투를 배웠던 일본풍의 편경장의 집은 일본인 포목상 히로쓰의 저택으로 지금도 가장 인기 있는 군산 근대문화유산 여행지이다. 군산 내항과 원도심은 무시로 지나치는 곳들마저 근대의 흔적이 있어 ‘시간 여행’이라는 말이 조금도 식상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 최고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펼쳐졌던 인천

    인천을 배경으로 펼쳐졌던 근대사는 매우 다층적이고 다문화적이어서 만약 이 시대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보는 작가가 있다면 20세기 초 인천에서 펼쳐지는 스파이 소설 한 편 나올 법할 정도다. 1876년 강화도늑약 이후 7년만에 외국에 문을 열어 준 인천으로 일본과 미국, 유럽, 러시아, 청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들어왔다. 최초의 서양식 공원인 자유공원이 세워지고, 일찌감치 터를 닦아 두었던 청나라의 상인과 노동자들은 연안부두 주변에 아예 집단 거주지(현 차이나타운)을 꾸렸으며, 프랑스인들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답동성당(1897년)을, 영국인들은 대한성공회 최초의 성당인 내동교회(1890년)를 비롯해 근대적 종교와 교육 시설을 역시 중구 일대에 세워나갔다. 조선을 집어삼킨 일본의 근대 프로젝트는 더 치밀했다. 일본 제1은행, 18은행, 58은행, 일본 우선주식회사 등 일본에 본사를 둔 금융사들이 경제 수탈을 위해 대거 인천 지점을 두며 진출했다. 계단 하나를 두고 왼쪽은 중국풍이, 오른쪽은 일본풍이 완연한 석조 장식물과 가옥이 조성된 조계지 계단의 이 어이없는 풍경이 인천이 치러야 했던 근대의 고통을 증언하고 있다.

    제국 열강들이 우리 땅을 드나드는 관문으로 삼았던 만큼 인천 중구 인천역과 차이나타운, 자유공원 일대는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숱한 근대문화유산들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경험하게 한다. 20세기 후반까지 상업 시설이나 관공서로 나름의 역할을 다 했던 그곳들은 이제 대부분 박물관이나 체험관 등으로 전용되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골목 너머 초록 언덕에서 만난 광주

    우리나라의 여러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는 동안 바다, 즉 항구나 해안의 근대화 방식과 내륙의 그것에 일정한 차이와 규칙이 있음을 깨달은 적이 있다. 항구와 바다를 낀 곳은 대체로 경제 기반 시설이 우위를 차지하는 반면, 내륙에서는 교육, 문화, 선교 등을 위한 시설 중심이다. 안타깝지만 저 이국적인 유산들은 우리가 아닌 타자들이 선택한 결과물이 절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내륙식 근대문화의 흔적을 만나는 대표적인 곳들 가운데 광주광역시가 있다. 100년을 훌쩍 넘긴 시간을 광주에서 만나고 싶다면 옛 전남도청에서 머지않은 양림동으로 향해볼 일이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일대는 110여 년 전 영국과 미국의 선교사들이 기독교 포교를 위해 모여 들었던 곳으로, 1904년 유진벨, 오웬 등의 선교사들이 정착하면서 병원을 개설하고 학교(수피아 여고)와 교회를 세워 일명 서양촌으로 불렸던 곳이다.

    1904년에 창립된, 붉은 벽돌의 외관이 옛날 영화의 스크린을 뚫고 나온 듯한 양림교회와 교회 부지 안의 오웬 기념각(1914년 건립)을 비롯해 어비슨 기념관, 그리고 1920년대에 지어져 광주에 남은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이면서 앞뜰의 푸른 잔디가 영국풍의 전원 주택을 닮은 우일선(윌슨) 선교사 사택 등이 이 시간 여행에 함께 한다. 양림동 근대 시간 여행에는 서구인들의 공간뿐만 아니라 근대식 양반 가옥을 둘러보는 이색적인 경험도 있다. 이장우 가옥이라 불리는 이곳에 들어서 대청마루에 잠시 앉아 고급스러우면서도 푸근한 정경이 그만인 정원을 바라본다. 여기에 양림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시인 김현승의 자취를 따라가보는 여정도 의미 있다. 작은 동네이지만 카메라를 들고 골목을 누비는 이들을 무시로 만나는 조용한 명소가 바로 양림동이다.

      글과 사진
      남기환(여행 컬럼니스트, 편집기획사 '아쉬' 대표)
      에디터
      윤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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