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gning Supreme
뉴욕의 인디펜던트 레이블 ‘슈프림’은 스케이터들과 다운타운 힙스터들에게 사랑받는다. 물론 패션계에서도 그건 똑같다. 이토록 강렬한 슈프림 신드롬!
1994년에 뉴욕 소호에서 ‘슈프림’을 만든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는 지금도 운영자다. 슈프림이 만드는 옷, 스케이 트보드, 그 밖의 온갖 물건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꽂힌 제품은 무조건 가져야만 한다. 패션계 사람들 대부분은 슈프림이 라파예트 스트리트의 작은 가게로 시작해 세계적 전설이 된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제비아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슈프림이 공간에 가깝다고 본다. 제비아는 10대였던 80년대에 웨스트서섹스주 크롤리의 듀라셀 공장에서 일했다. 쉬는 시간에 티렉스와 데이비드 보위를 듣고 남는 돈은 런던에 가서 옷을 사는 데 썼다. 언제나 뭐라 규정하기 힘든 애매한 매장에 갔다. 그 가게가 슈프림의 모델이 됐다. “쿨한, 그 쿨한 가게요.” 54세인 제비아는 진과 플레인 다크 블루 티셔츠를 입고 있다. 레이블은 없고 대부분 차분한 옷이다. 머리는 짧게 깎았고 눈은 짙은 푸른색이다. “누구나 입는 쿨한 것들을 파는 가게였 어요. 유명 브랜드 같은 건 없었죠.”
슈프림 매장에서 서쪽으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는 레이먼드 페티본(Raymond Pettibon)이 디자인한 스케이트보드, 8세와 10세인 제비아의 아이들이 그린 그림 몇 장, 실물보다 큰 제임스 브라운 사진이 있다. 제비아는 브라운이 쇼 비즈니스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절대 관객 눈높이에 맞춰 내려가지 않은 사람으로 본다. 제비아 역시 늘 자신의 고객들을 염두에 둔 다. 그들은 보통 18세에서 25세 사이이고, 그저 쿨한 것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돈을 낸다.
브랜드를 시작할 때는 주로 남자에 초점을 맞춘 기업이었지만, 여자들도 점점 더 끌려들고 있다. 여성 스케이터들이 늘어난 것과 유스 컬처가 옷과 리빙에 젠더리스 접근을 취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현상이다(최근 모델들이 일하지 않는 시간에 슈프림 옷을 입고 놀고 생활하고 파티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잔뜩 올린 것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저는 늘 우리가 만드는 옷은 음악과 좀 비슷하다고 생 각했어요. 젊은이들이 밥 딜런과 우탱 클랜, 콜트레인(Coltrane), 소셜 디스토션 (Social Distortion)을 같이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평론가들은 늘 있어요. 젊은이들(그리고 스케이터들)은 굉장히 개방적이죠. 음악, 예술, 여러 가 지에 있어 그렇기에, 우리는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이것저것 만들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패션계가 슈프림을 주목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슈프림은 도쿄, 런던, 파리에 매장을 오픈했고, 고객들의 열성적 헌신은 스케이트보드 파크의 10대 들, 하이패션 맨 앞줄의 대화 소재가 되었다. 특히 파리는 이번 가을에 선보인 루이 비통과의 협업에 마음을 빼앗겼다. 제비아는 루이 비통 남성복 디자이너 킴 존스와의 작업이 아주 즐거웠다. 함께 스케이트보드 트렁크, 백팩, 반다나, 글러브, 셔츠, 재킷을 만들었다. 그건 킴 존스도 마찬가지였다. “뉴욕이나 런던에서 슈프림을 사려고 줄 선 사람들을 보면 정말 다양합니다. 그들에게 공감이 가요. 그들은 하이-로우(High-Low)를 이해하고, 스마트하고, 지성적이고, 유머 감각이 있습 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 알고, 브랜드에 아주 충성스럽죠. 브랜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원하는 게 충성스러운 고객입니다.” 킴 존스의 말이다.
루이 비통 협업은 패션계에 있어 슈프림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처음으로 엿본 기회가 되기도 했다. 사업을 하는 방법 때문에 슈프림은 진정성, 직접성, 속도, 교묘함의 약칭이 되었다. 운동복, 티, 모자만 파는 게 아니고, 다른 패션 기업처럼 매년 두 차례씩 새 컬렉션을 낸다. 일반적으로 온라인 룩북을 올린 다음 매주 목요일마다 제품 몇 개씩을 내놓는다. 모든 아이템은 온라인과 실제 매장에서 구입 가능하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슈프림의 제품 공개는 ‘이벤트’다. “우리가 가죽 재킷을 1,500달러에 내놓아도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하면 젊은 사람들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제품이 한 달 동안 여기 있지는 않을 거라는 느낌도 원해요. 제가 자라면서 그랬고, 다들 똑같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게 내 마음에 든다면 이건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내가 사야겠어.’ 이런 거요.”
제비아는 처음에는 매체에서 소개해주길 간절히 원했지만, 지금은 과다 노출을 우려한다. 슈프림은 최소한의 광고만 집행하고, 프로 스케이터 세이지 엘세서 (Sage Elsesser) 같은 인물과 작업을 한다. 슈프림의 룩북 모델인 엘세서는 마케터들이 보기엔 영향력 있는 아웃사이더지만, 고객들이 보기엔 그냥 쿨한 스케이터다. “슈프림은 가족 지향적입니다. 제겐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엘세서의 말이다. 슈프림 헤드들은 마케팅이 헛소리라는 걸 이해한다. 그들의 눈은 예리하다. 인간적인 척하는 기업, 잠재적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려고 애쓰는 브랜드를 알아본다. 그래서 슈프림은 주로 소셜 미디어를 전시 공간으로 쓴다. “우리는 지나치게 다가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우리가 뭘 하는지 보여주려 할 뿐이죠. 잡지가 20년 전에 하던 역할과 다르지 않습니다.” (슈프림은 2006년경에 웹사이트 를 만들기 전까지 자체적으로 잡지를 6호까지 냈다.)
슈프림이 미리 계획해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장소, 시간, 노력이 우연히 만나 이루어진 성공이었다. 영국을 떠난 제비아는 ‘파라슈트(Parachute)’라는 소호의 가게에서 일했다. 그때 그는 19세였다. 그는 근처 벼룩시장 매대 운영을 거쳐 스프링 스트리트에 유니온이라는 가게를 냈다. 영국 제품과 스트리트웨어를 파는 곳이었 다. 유니온은 제법 잘됐다. 스케이트보더 겸 서퍼인 숀 스투시가 디자인한 옷을 팔 기 시작했고, 그때까지는 승승장구했다. 제비아는 스투시의 가게 운영을 돕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스투시가 은퇴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제비아는 ‘이제 대체 뭘 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한다. “저는 스케이트계에서 나오는 것들을 늘 정말 좋아했어요. 덜 상업적인, ‘엿 먹어(Fuck You)’ 같은 것들을요.” 그래서 그는 라파예트 스트리트에 스케이트 숍을 열기로 했다. 당시 라파예트는 앤티크 매장, 소방서, 정비소가 있는 비교적 조용한 곳이었지만, 키스 해링의 숍이 있었다. 이제 와서 돌아켜보면 다운타운 아트 신 커넥션이 핵심이었다. 제비아는 널찍한 공간을 만들고(널찍함과 깨끗함이 곧 슈프림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좋은 스케이트보드를 들여놓았으며,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구경꾼들을 모으려고 무하마드 알리 경 기부터 <택시 드라이버>까지 온갖 다양한 영상을 끊임없이 틀었다.
그가 고용한 아이들 중에는 스케이트보더들이 많았는데, 쿨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들이었다. 쿨하지 않은 사람들을 비웃기도 했다. 하지만 아웃사이더들은 그들을 보며 스케이트보더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채용한 직원들은 래리 클락의 영화 <키즈>의 엑스트라들이었다. 각본을 쓴 하모니 코린이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코린은 슈프림이 가게보다는 노는 곳에 가까웠다고 기억한다. 1년도 지나지 않아 업타운 디자이너들, 유럽과 일본의 디자이너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런 불협화음을 쉽게 받아들여요. 문화적 스펙트럼의 서로 다른 지점에 있는 것들을 가져다 어떤 미학이나 분위기로 연결시키는 거죠.” 코린의 말이다. 슈프림은 배우 클로에 세비니, 포토그래퍼 라이언 맥긴리, 스케이트보더 마크 곤잘레스 등 다운타운 신을 대표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잡지를 내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비법을 발견한 것입니다. 슈프림의 인기는 여전해요. 문화를 밀 고 나가는 건 젊은이들이고, 슈프림은 언제나 젊은이들 편이었어요. 그건 속일 수가 없죠.” 코린의 말이다.
처음에 슈프림은 티셔츠만 몇 종류 만들었다. 그런데 고객들이 칼하트와 루이 비통, 구찌와 리바이스를 매치해서 입고 오기 시작했다. 다른 제품보다 품질이 더 좋기만 하다면 스케이터들은 더 비싸게 주고도 살 거라는 걸 깨달은 슈프림은 곧 코튼 후디를 만들어보았다. 제비아는 이런 발상은 스케이트 문화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구찌는 ‘네가 젊다고 해서 이 800달러짜리 스웨트셔트를 좋아하지 말란 법은 없잖아’라고 말합니다.” 제비아는 매체의 관심을 끌려고 젊은이들을 이용 하는 게 아니라, 젊은 소비자들을 존중하는 디자이너들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제비 아가 보기에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천재성은 그저 젊은이들에게 옷을 입혀 런웨이에 올리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정말로 입기를 바라 는 데 있다. “미켈레는 짜릿한 제품을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내고 있어요.” 후디는 성공했다. 그다음으로 시도한 캡도 마찬가지였다. 일찌감치 협업을 시도해, 아 티스트들이 티셔츠 등의 옷과 스케이트보드 데크를 위한 작업을 했다. 화가 루시 엔 스미스(Lucien Smith)는 슈프림의 친밀함을 높이 산다. “여긴 스케이트 숍이 라는 최초의 아이디어에 따라 일하는 아주 적은 사람들로 이뤄진 곳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20년 동안 슈프림과 협업한 아티스트들의 명단을 보면 갤러리를 가득 메울 수 있을 정도다. 크리스토퍼 울, 제프 쿤스, 마크 플러드, 네이트 로우맨, 존 발데 사리, 데미안 허스트, 심지어 닐 영까지 들어간다. 하지만 모든 것을 바꾸어놓은 콜라보레이션은 2012년에 꼼데가르송과 작업한 티, 슈즈, 셔츠 라인이었다. “그 일로 많은 기회가 생기고,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제비아의 말이다. “저는 그렇게 강하고 외골수적인 비전을 가진 사람,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늘 유 지해온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레이 가와쿠보의 남편이자 꼼데가르송 회장인 아 드리안 조프의 말이다. “그래서 우리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정말 의미 있었던 거죠. 그리고 슈프림의 성장이 우리의 성장과 닮은 면이 있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제비아와 잠시 함께 있다 보면 그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가 뭔지도 알게 된다. 유 명한 파타고니아부터 아마 당신이 들어본 적 없을 브랜드, 예를 들면 스케이트보 드 회사인 안티히어로(Antihero) 등이다. “그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기 가 하는 일에 있어 순수합니다. 저는 그들을 샤넬과 루이 비통만큼 존경해요.”
“여러 브랜드가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에겐 공식이 생겼다, 우리는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의 공식은 ‘공식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퀸스 엘름허 스트의 칠레계 가정에서 자란 자신의 아내 비안카 이야기를 한다. 그들 부부는 로어맨해튼의 아파트에서 아이들과 함께 산다. “비안카는 프라다에서 쇼핑했다가, 샤넬에서 했다가, 유니클로에서 쇼핑했다가 슈프림 옷도 입어요. 그건 ‘나 좀 봐, 내가 이 옷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녀는 그저 자기가 좋 아하는 걸 입는 거고, 내 생각엔 사람들이 요즘엔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아요.” 며칠 전이었다. 오전에 제비아는 사무실에서 일어나 커피를 사러 가며, 슈프림 신제 품인 모터 달린 스트리트 바이크가 공개되기 직전인 스튜디오를 가로질렀다.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협업의 최신 제품으로, 이번엔 콜맨(Coleman)과 손을 잡았다. 내부는 넓고 탁 트여 있으며, 벽은 하얗고 작업실 느낌이 났다. 성실하고 순수한 40여 명의 직원들은 우아하지만 실용적인 옷을 입고 새 꼼데가르송×나이키 에어 포스 1 공개를 준비하고 있었다. 라파예트 스트리트에 줄이 길게 늘어서려면 아직 하루 이틀 정도 더 남았다.
거리에 나와서 그는 자신의 역사에 대해 투어를 해주었다. “파라슈트가 저기 있었어요. 그리고 꼼데가르송 매장이 저기 있었고…” 그는 위를 가리켰다. “저는 화가 알렉스 카츠가 저 위에 산다는 게 좋아요. 사람들이 이 동네에 대해 뭐라 떠들든 상관없지만, 나는 여기가 세상에서 가장 활기찬 곳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제비 아에겐 직함이 없다. “아내는 그냥 설립자라고 하라고 계속 말하지만, 전 모르겠어 요. 보통 ‘그냥 스케이트 숍을 한다고 해요’라고 말하지만, 감독을 하는 셈인 것 같 아요.” 그는 카테고리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 걸 좋아한다. 시장의 수요에서 자유로 워지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그는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슈프림의 페이스 대로, 느리지만 고객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하려 한다.
“사람들이 우리가 까다롭고 비싸게 구는 브랜드라고 생각하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양에 한계가 있어요. 우리가 쓰는 모자 공장에서 만들 수 있는 모자 개수는 정해져 있죠.” 제비아는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나 자신의 위험부 담이 커지는 것들을 경계한다. “우리는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것들을 만들고 있 어요. 살아남으려고 하는 일이 아니에요. 저는 위험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 다고 생각합니다. 음악, 예술, 패션에서, 당신이 위험을 감당하면 사람들은 반응 합니다.” 나와 함께 걷고 있는 제비아에게 동네 사람들이 인사를 건넨다. 마침내 자리에 앉자 제비아는 잠시 긴장이 풀렸는지 주말 이야기를 한다. 그는 주말이 결 코 화려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아이들 숙제가 많아요. 그리고 사실 저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 걸 좋아해요.” 자신의 매장처럼, 그는 자신의 삶을 깨끗하고 단순하게 유지하고 싶어 한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주말이면 어쩌다 모마 (MoMA)에 다녀오는 정도로. “제 라이프스타일은 호화롭지 않아요. 그래서 돈을 많이 쓰지도 않죠.”
그는 다시 경계에 대한 말로 돌아간다. “저는 여러 브랜드가 안주하는 걸 봐왔습니 다. 하지만 전 안심한 적이 없어요. 언제나 매 시즌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 다고 느끼니까요.”
- 글
- ROBERT SULLIVAN
- 포토그래퍼
- ANTON CORBIJ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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