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tory
비디오테이프 공장이었던 문래동의 한 건물에 아티스트 25명이 있다. 이토록 다양한 사람이 모인 계기와 의도는 없다. 다만 하나의 목적을 공유할 뿐이다.
“이 인터뷰를 읽고 여전히 저희에게 물음표가 남았으면 좋겠어요.” 크루 홀로코인은 언젠가 <보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물음표는 오히려 더 커졌다. 현재 뮤지션 자이언티(김해솔), 포토그래퍼 최랄라(최한솔), 필름 메이커 김호빈이 쓰던 상수동 홀로코인 스튜디오는 문래동의 3층 높이 건물로 이사했고, 그 공간엔 아티스트 25명이 입주해 있으니까. 이 중 대부분은 소셜 미디어의 자기 소개란에 ‘@holocoin’이라고 적었다. 새 멤버를 영입한 걸까? 여전히 홀로코인 인스타그램에는 게시물이 ‘0’개. “홀로코인이라는 이름으로 상업적 활동을 한 적은 없어요. 이 이름은 어떻게 보면 열려 있는 거죠. 사실 홀로코인 멤버가 아닌 사람이 홀로코인 마크를 달고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요.” 자이언티가 2층에 있는 최랄라의 작업실 의자에 앉아 선글라스 너머로 응시하며 말했다. “홀로코인 스튜디오는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구성하는 공간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사회에 존재하는 위치나 조건 같은 건 내려놓고 서로 창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교류할 수 있는, 그런 무대예요.”
밖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트럭이 통째로 들어갈 만한 거대한 철문이 막고 있다. 이 무거운 문을 힘겹게 옆으로 밀면 텅 빈 하얀색 공간이 나온다. 고개가 절로 뒤로 젖혀지는 높은 천장과 거대한 도르래, 파이프관으로 과거 어마어마했던 공장의 규모를 유추할 수 있다. 바로 이 공간에서 얼마 전 화가 김희수의 개인전 <Normal Life>가 열렸다. 수 미터가 족히 넘는 그림과 작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한 모습에 전시에 대한 특정한 홍보 없이도 학생, 뮤지션, 모델 등 각계각층의 관람객들이 이 홀로코인 팩토리에 모여들었다.
한편 1층 한쪽에 김호빈은 미술감독 김미환, 정지혜, 조감독 조강호, 조연출 이진혁으로 꾸린 ‘호빈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모든 인테리어 요소가 흰색인 이 공간에서는 반대로 각종 패션 필름과 뮤직비디오, 총천연색의 작업물이 쏟아져 나온다. “홀로코인 이전에는 ‘작업’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요. 다른 사람의 일을 맡아서 했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작업은 많이 못했어요. 한솔과 해솔은 그걸 해도 된다고 말해준 유일한 친구들이었죠. 제일 가까운 곳에 존경할 수 있는 작업 세계를 가진 친구들이 있으니까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죠. 아직 모자란 기분으로 30대를 살고 있어서 행복해요.”
아직 공사 중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지나 계단을 한참 올라가면 미로처럼 연결된 작업실이 나온다. 우선 최랄라가 어시스턴트 포토그래퍼 손로디아, 사진 프린팅 작업을 하는 주유진과 함께 쓰는 스튜디오 겸 작업실이다. 큰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햇살, 선명한 채도의 페인트로 칠한 벽, 따뜻한 가구까지, 최랄라의 사진 속에 존재할 법한 공간이다. 처음에 이 문래 공장을 발견한 건 최랄라다. “인터넷으로 찾았어요. 무엇보다 넓어서 해볼 수 있는 게 많겠다 싶었죠. 직접 와보니 ‘여기다’ 싶더라고요.”
독립적인 공간을 얻은만큼 최랄라의 작업 방향도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곳은 굳이 따지자면 앞으로 사진 연구소가 되겠죠. 사진이라는 물성을 존재하게끔 만드는 데에도 관심이 많고요. 장기적인 프로젝트는 패션이라는 스타일을 빌리지만 한국의 전래 동화가 기본 이야기가 될 거예요. 더 늦기 전에 이 가치 있는 작업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 스튜디오를 지나면 메이크업 아티스트 오성석과 헤어 아티스트 이현우의 공간이 나온다. 26세로 동갑내기 친구인 둘은 핫한 뮤지션, 브랜드와 작업하는 ‘영 블러드’다. 중요한 비주얼 작업에 헤어와 메이크업이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홀로코인 스튜디오의 다른 아티스트와 가장 활발하게 협업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야외 테라스를 지나 또 다른 문을 열면 가죽 브랜드 GKRS의 디자이너 김민재의 작업실로 통한다. 브랜드의 가죽 제품 제작도 하지만, 홀로코인 스튜디오에 자발적으로 입주했기에 얻은 역할도 있다. “‘제너럴 매니저(GM)’라는 직함으로 불릴 정도죠. 하하. 건물 공사 때부터 지금까지 스튜디오에 필요한 것이라면 사소한 것까지 챙기는 편입니다.” 진한 가죽 냄새가 나는 공간을 지나면 이번엔 물감 냄새가 훅 끼쳐오는 화가 김희수의 작업실이 나온다.
그리고 건물 외부 계단으로 내려가면 ‘별관’ 느낌이 나는 1.5층에선 영화감독 이와 송(송민우)의 공간을 마주한다. 차분하지만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듯한 그의 단편영화처럼 그곳에 놓인 책 한 권, 비디오테이프 하나가 시선을 멈추게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건물의 사령탑처럼 넓은 옥상에 우뚝 존재하는 방에는 그랜드피아노, 드럼, 신시사이저가 꽉 들어차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 윤석철과 자이언티가 함께 쓰는 음악 작업실이다. 촬영날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윤석철이 건반 앞에 앉아 즉흥으로 연주를 하자 자이언티가 거기에 목소리를 얹는다. 이곳은 두 사람이 어떠한 제약과 압박 없이 자신들이 ‘하고 싶을 때’ 음악을 하는 곳이다.
지난 3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홀로코인 스튜디오는 인테리어의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모델, 오브제 아티스트, 래퍼, DJ, 프로듀서, 푸드 디렉터, 패션 디자이너 등 아직 스튜디오가 없는 아티스트도 있고, 비정기적으로 공간을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오늘 25명이 모인 건, 얼마 전 다 같이 간 ‘홀로코인 트립’ 이후 처음이에요. 이렇게 한날한시에 모이기가 쉽지 않죠.” 25명은 같은 건물을 쓰지만 서로가 “오랜만이야!”를 외치며 서로 사진과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업로드하느라 여념이 없다.
서로 비슷한 취향과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과거부터 존재해왔다. 같은 공간을 쓰며, 서로 협업하고 시너지를 내는 형태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지금까지 주어진 단서로 미루어봤을 때 홀로코인이 만들어내는 작업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과는 달리 유일무이한 결과물일 거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계속 홀로코인이 물음표였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희의 결과물로 많은 사람에게 느낌표를 갖게 만드는 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우리는 계속 물음표라고 고집하고 싶어요.”
- 에디터
- 남현지
- 포토그래퍼
- CHA HYE KYEONG
- 헤어 스타일리스트
- 조미연
- 메이크업 아티스트
-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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