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Sense & Sensibility

2018.01.15

by VOGUE

    Sense & Sensibility

    파리 외곽의 좁은 골목, 아름다운 모자 레이블 메종 미쉘의 아틀리에가 있다. 이 비밀스러운 작업실에 바이크를 타고 출근하는 프랑스 여인, 아티스틱 디렉터 프리실라 루아예를 만났다.

    2년 전 메종 미쉘에 합류한 아티스틱 디렉터 프리실라 루아예.

    2년 전 메종 미쉘에 합류한
    아티스틱 디렉터 프리실라 루아예.

    “이 돈으로 꼭 옷을 사겠다고 약속해. 실용적인 거 말고, 조금도 쓸모없고 멋진 옷을 사. 당신의 황금색 모자에 어울리는 것으로. 난 당신이 모자를 살 때 무언가를 배웠어.”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한 구절은 모자가 여자의 인생에 어떤 상징성을 부여하는지를 알 수 있다. 무엇을 상징하는가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의미가 달라져 때로는 권력과 신분, 때로는 재치와 슬픔이 여자의 모자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1936년, 창립자 오귀스트 미쉘이 파리에서 시작한 모자 스튜디오 메종 미쉘은 80년의 역사를 거쳐 가장 현재적인 모자 레이블로 자리 잡았다. 1975년부터 일찌감치 오뜨 꾸뛰르를 선보이는 패션 하우스와 협업해 YSL, 디올의 유명한 모자 시리즈를 만들어냈고, 1996년에는 샤넬 하우스가 이 모자 공방을 인수해 레디 투 웨어는 물론 꾸뛰르와 공방 컬렉션에서 선보이는 모든 모자를 이곳에서 제작하고 있다. 칼 라거펠트가 직접 룩북과 광고 사진을 찍을 만큼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메종 미쉘은 2년 전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를 맞이했다. 반항적 기질이 다분해 보이는 보브 헤어의 프렌치 걸, 프리실라 루아예다. 언니와 함께 선보이던 레이블 피스 다나카이브(Piéce d’Anarchive)로 안담 어워드(ANDAM Fashion Award)에서 우승을 하고, 파리의 뉴 페이스 디자이너로 떠올랐다가 홀연히 사라진 인물. 그 흔한 SNS 계정도 갖고 있지 않고, 매일 아침 바이크를 타고 출근해 공방에서 조용히 일한다는 그녀가 <보그> 코리아와의 인터뷰를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청바지에 낡은 부츠를 신고 성큼 들어선 그녀는 프랑수아즈 사강 소설의 주인공처럼 창백하고 무표정한 얼굴에 립스틱 하나 바르지 않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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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gue Korea 메종의 분위기와 당신 모습이 꽤 잘 어울린다. 이곳에 합류한 지 2년쯤 됐는데, 메종 미쉘은 어떤 곳인지 설명해달라.
    Priscilla Royer 실험과 창조를 위한 일종의 연구실이다. 메종 미쉘 모자는 물론 샤넬이나 다른 패션 레이블의 꾸뛰르 모자까지 모두 이 공방에서 탄생한다. 나는 이 연구실을 진두지휘하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창조할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VK 모자라는 한정된 형태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작업일 것 같다.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PR 영감의 영역이라는 것을 한정 짓고 싶지 않다. 꼭 미술관에서 근사한 걸 보지 않아도 내 책상 위에 놓인 연필, 계획 중인 여름휴가 같은 것도 영감이 될 수 있다. 특히 일상에서 영감을 찾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샌드위치
    도 영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빵의 거친 텍스처는 새로운 소재의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고, 둥글고 커다란 빵 모양은 베레모의 실루엣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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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K 당신은 언니와 함께 자기 브랜드를 운영한 적도 있고, 파리 의상 학교 스튜디오 베르소(Studio Beršot)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이력도 있다. 메종 미쉘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PR 딱히 어떤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다. 우연히 운명처럼 내게 기회가 주어졌고, ‘와이 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은 만들어봤지만 그때까지 액세서리를 디자인해본 적은 없었고, ‘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 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고 할까. 사실 어떤 아이디어라는 게 떠오르면 그게 옷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신발이나 가방, 모자로도 해석될 수 있는 거니까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VK 의상을 디자인하는 것과 모자를 디자인하는 것은 무척 다른 일일 것 같은데?
    PR 가장 큰 차이점은 몸이다. 체형은 같은 인종이라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옷을 디자인할 때는 아무래도 그런 것들을 고려해서 재단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모자 디자인은 전적으로 ‘룩’과 ‘스타일’에 관한 문제다. 난 이 점이 정말 흥미로웠다. 모자 하나로 사람의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지는 걸 관찰하고 실제로 내가 만든 모자를 통해 사람마다 매우 다른 개성을 연출하는 것을 보는 일은 무척 짜릿하다. 한 사람이 카우보이 모자를 쓸 때나 페도라를 쓸 때 완전히 다른 느낌을 갖는것도 흥미롭지만, 같은 모자를 여러 사람이 전부 다르게 소화하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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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K 2년 전 당신이 메종 미쉘에 합류했을 때 A to Z를 전부 새롭게 해석하라는 특명을 받았다고 들었다. 당신이 불러온 변화는 어떤 것인가? PR 아침마다 옷을 차려입는 행위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 혹은 어떤 식으로 나 자신을 표현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모자는 그걸 도와준다. 내가 흥미롭게 느낀 건 모자가 얼굴과 가장 가까이 있는 패션 아이템이기 때문에 셀피를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동시대 사람들의 삶에 꽤 어울리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이다. 메종 미쉘의 모자가 모든 사람의 삶에 필요한 요소로 다가가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변화의 핵심이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나이, 다른 성별, 수많은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VK 삶에 필요한 요소라면 장식적이기보다는 좀더 웨어러블하고 실용적인 모자를 뜻하나?
    PR 그렇다. 좀더 웨어러블하고 유연한 것. 사실 모자라는 아이템 자체가 굉장히 어렵고 좀 딱딱했다. 나는 좀더 쉽고 빠르게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모자를 만들고 싶다. 때로는 가방에 구겨 넣었다가 아무 때나 꺼내 쓸 수도 있는 유연함(상징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모두)을 가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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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K 당신의 모자는 클래식하고 우아한 동시에 남성적인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매니시한 스타일을 선호하나?
    PR 매니시함이라기보다는 ‘퀵 스타일’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바쁜 현대 여성들은 아침에 꾸밀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 모든 게 점점 더 빨라지고, 모두가 점점 더 바빠지고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다. 나한테 무엇이 어울리고 그렇지 않은지,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불편해하는지 아는 여자들은 5분 안에도 멋지게 꾸밀 수 있다. 내가 만든 모자를 통해 그걸 가능하게 해주고 싶다.

    VK 5분 안에 멋지게 꾸미는 게 진짜 가능한가?
    PR 당연하다! 내 경우엔 다크 레드 립을 바른다. 당신에겐 하이힐이나 모자가 될 수도 있겠다.

    VK “모자는 타투와 같다”는 당신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패션에서 모자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PR 어떤 글귀나 그림을 몸에 새겼느냐에 따라 자신의 분위기나 성향, 캐릭터를 드러낼 수 있다. 어떤 모자를 썼느냐 역시 자기 개성이나 취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타투와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타투는 한번 새기면 바꾸기 힘들지만 모자는 매일 아침 당신의 기분이나 무드에 따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좀 매니시하게 보이고 싶고, 어떤 날은 좀더 여성스러워 보이고 싶지 않나? 모자는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모자는 단지 장식으로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실루엣을 위한 액세서리가 되어야 한다.

    VK 지금까지 당신이 만든 모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PR 나는 펠트 소재를 좋아한다. 그동안 클래식한 모자에만 사용하던 펠트 소재로 지난 시즌 처음으로 베이스볼 캡을 만들었다. 캐주얼한 디자인이지만 최고의 퀄리티를 유지했고, 하우스의 특징을 살려 미니멀하게 마무리했다.

    VK 영화나 소설, 드라마 혹은 길거리 어디에서든 당신이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완벽한 모자 신은 어떤 것인가?
    PR 너무 많은데, 나는 특히 약간 매스큘린한 모자를 쓴 여자를 길에서 봤을 때 뒤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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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K 한국 여성들에게 모자는 여전히 일상적인 패션 아이템은 아니다. 평상시에 모자를 쓰는 것을 꽤 어색하게 생각한다. 반면, 프랑스 여자들에게는 모자가 매우 익숙한 것 같다. 일상에서 모자를 즐기기 위한 당신의 스타일링 조언을 듣고 싶다.
    PR 먼저 두려움을 떨쳐내라. 자기 자신을 믿고, 이 모자가 당신의 전체적인 실루엣을 더 근사하게 만들어준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모자를 쓸 때 의상은 되도록 심플하게 입는 게 좋다. 모자를 처음 시도하는 경우라면 챙이 작은 모자부터 시작해 점점 더 넓은 챙의 모자로 발전해가면 된다. 메종 미쉘의 모자 중 보터햇이나 ‘안드레’라는 모델로 시작해볼 것을 추천한다.

    VK 메종 미쉘 하우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당신 사진이 꽤 많이 올라와 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디지털 세계와는 거리가 먼 편인가?
    PR 그런 것 같다. 인스타그램을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계정을 보는 것은 정말 좋아한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은 새로운 영감을 위한 근사한 원천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사진을 찍고 편집하고 글을 써서 포스팅하는 것? 글쎄… 솔직히 그럴 시간이 없고, 꼭 그래야 할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이를테면 ‘보여주기(Showing)’보다는 ‘관찰(Observing)’하는 편이다. 앉아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는 쪽이다.

    VK 당신 모자를 가장 멋지게 표현하는 뮤즈는 누구인가?
    PR 딱 꼬집어 한 명을 얘기하기는 어렵다. 나는 다양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자를 씌워보는 일이 즐겁다. 그게 내 일이지 않나!

    VK 그렇다면 당신이 꼭 한번 모자를 씌워보고 싶은 사람은?
    PR 어릴 때 MTV의 열렬한 팬이었고, 뮤직비디오를 스타일링하는 게 꿈이었다. 지금도 팝 스타에 대한 일종의 동경 같은 게 있다. 그래서 리한나나 마돈나처럼 무대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는 팝 스타에게 씌울 모자를 만들어보고 싶다.

      에디터
      김지영
      포토그래퍼
      CHRISTOHE ROU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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