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게, 오르에르 아카이브
물건에 대하여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토록 많은 사유를 갖게 되었다. 오르에르 아카이브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부터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게, 오르에르 아카이브 김재원 대표와의 대화 그리고 그녀가 보그를 위해 고른 물건들과 내밀한 코멘트를 소개한다.
누군가를 마주할 때, 늘 ‘저 너머(beyond)’가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취향, 그녀가 지닌 삶의 이야기, 지니고 있을 물건들과 아이디어 그리고 이 다음의 행보까지도 말이다.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건 사뭇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마침내 오르에르 김재원 대표를 만나게 되기까지, 지난 몇 년간 그녀가 꾸린 카페와 가게들을 드나들며 이따금 실체모를 ‘그녀’를 상상해보았음을 고백한다. 성수동 자그마치의 매력적인 개방감, 오르에르라는 견실한 공간의 우아하고 자연스런 브랜딩, 그리고 일상의 틈새를 채워주는 WxDxH의 예리한 배열까지. 그녀가 만든 곳들은 한 번도 예상된 그림에서 드러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르에르 건물 3층에 ‘오르에르 아카이브(orer archive)’라는 문패를 내걸었다. 그녀가 은밀한 사무실로 사용했던 그 공간은, 어쩌면 이 오래된 건물의 오리진이 가장 그윽하게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둑한 조도,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어떤 향에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는 사이 눈앞에 펼쳐지는 어떤 것들은 진기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어떤 물건들 그리고 물건 이상의 어떤 것들과 그 자체로 자연의 물성인 것들로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공간. 이 모든 건 그녀가 오래도록 수집하고, 그녀의 눈과 마음이 발견해낸 것들이다.
조선시대 향합, 프랑스의 오팔린 유리 앤틱들, 생명을 다해 바스라질듯한 이파리와 고려시대의 토기, 평생을 쓰고도 남을 법한 다홍색 인주, 영국에서 만들어진 밸런스 토이, 몇 대째 가업으로 제작되는 일본의 대나무 바구니가 앤틱 비트린 안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비일상적이고 명확한 용도가 없는 물건을 워낙 좋아해서 그런 물건들을 소개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었어요.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라기보다는 고객들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 어떤 느낌이나 태도를 경험적인 측면에서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나는 향이 뭐예요?’ 라고 물어보시면 자연스럽게 그 향에 대한 스토리를 전해드리는 방식으로요.”
어린 시절 모았던 메모지와 분필, 영국 유학의 시작 무렵부터 쌓아둔 모든 가게들의 비닐봉지와 영어로 쓰여진 전단지처럼 사소한 애정과 맹목적인 수집에의 욕구. 오르에르 아카이브의 물건들은 ‘기능’이 모호한 그것들의 영역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오르에르 아카이브’가 일종의 불편한 가게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도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도 많은 이야기가 이어져야하기 때문이다. “마치 집에서 기르는 식물이나 강아지처럼, 나의 삶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관점으로 물건을 바라볼 수도 있다고 봐요.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더라도, 특별한 기능이 없더라도 형태나 컬러만으로도 어떤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물건이라면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손님이 ‘이 물건 어디에 써요?’라고 물어보시면 ‘특별한 용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예쁘잖아요.’라고 대답할 때도 있어요.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그것도 이 시대에는 물건의 어떤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고운 유니폼을 입고 손님의 물음을 기다리는 직원에게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어떤 이야기라도 좋다. 이곳에서라면 종이 한 장을 갖고도, 황동 덩어리를 얹어 놓고도 길고 길게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다. 혹은 가늠할 수 없는 장인의 삶과 살아보지 못한 아득한 시대를 잠시 그려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에 드는 오래된 물건이 두 세 개쯤 있었지만, 구매하지는 않았다. 단 하나 무언가의 결이 내 곁을 계속 맴돌 즈음, 다시 찾아가서 가져올 생각이다. 물건을 사색하는 일은 매혹적인 만큼 쉬운 일은 아니므로.
orer archive
주소 :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 18 3F
- 에디터
- 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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