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스물 일곱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 2008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상과 올해의 신인상, 그리고 그래미 여자 최우수공연상, 최우수 팝보컬상, 올해의 레코드상 5관왕을 거머쥐며 최고의 디바로 활약하던 그녀가 돌연 자택에서 숨을 거둡니다.
“난 오래 못 살 것 같아. 난 27세 클럽 멤버가 될 것 같아.”
그녀는 생전 엄마에게 자신이 ’27세 클럽’ 의 저주에 빠져 곧 죽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27세 클럽이란 천재 아티스트가 27세에 요절한 것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커트 코베인
전설적인 록 밴드 ‘너바나’의 리더,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커트 코베인은 90년대 X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기도 했습니다. 인디 밴드였던 너바나는 커트 코베인이 합류한 후 인기가 고공 행진을 합니다. 1991년, 마이클 잭슨을 밀어내고 빌보드 1위에 올랐죠. 하지만 화려한 성공이 싫었던 그는 코트니 러브와 결혼한 후 항상 술과 약에 취해 있었습니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보다 순간 타올라 버리는 삶이 더 낫다.” 고 말하던 그는 마약 중독에 빠져 수용소에 있다가 출소한 후, 1993년 9월 앨범 ‘in Utero’를 발표했지만, 이듬해 4월 긴 유서를 남기고 머리에 총을 대고 자살합니다.
지미 핸드릭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에도 짧은 인생, 멋대로 살 거야.” 20세기 최고의 기타리스트인 지미 핸드릭스. 그는 각성제를 먹어가며 하루 종일 기타 연습에 매진 할 정도로 집요한 성격이었습니다.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스물 일곱이 되던 해 런던의 한 호텔에서 술을 마신 후 먹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구토하고 질식사로 숨집니다.
짐 모리슨
사이키델릭 록과 블루스 록을 이끈 록 밴드 도어즈의 리드 싱어이자 시를 좋아하던 청년. 짐 모리슨은 도어즈가 승승 장구 하던 시절 약에 취해 공연 중에 말썽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공연에 늦게 나타나 관중 앞에서 욕을 하고 옷을 벗으며 난동을 피워대 투어 일정이 연달아 취소되기 시작했죠. 그리고 5집 때 도어즈를 탈퇴한 후, 시를 쓰며 파리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중 스물 일곱이 되던 해 욕조에서 심장 마비로 숨집니다. 사인은 헤로인 과다복용.
브라이언 존스
전설의 밴드 ‘롤링 스톤즈’의 초대 리더. 지미 핸드릭스도 그를 기타 천재라고 칭할 만큼 그는 뛰어난 기타리스트였습니다. 블루스에 심취했던 그는 자신의 밴드가 평소 경멸해왔던 로큰롤로 성공하자 신경 쇠약에 사로잡히며 약물 중독에 빠집니다. 결국 롤링스톤즈를 탈퇴하겠다고 했지만 계약 위반이라는 이유로 불화를 겪던 그는 요양소에 입원하기까지 합니다. 같은 밴드 멤버였던 키스 리차드와 자신의 약혼녀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1년 간 칩거한 그는 1969년, 롤링 스톤즈에서 퇴출됩니다. 그리고 한 달 후 자신의 집 수영장에서 자살했죠. 그의 나이 겨우 스물 일곱이었습니다.
종현
종현은 2008년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메인 보컬로 데뷔했습니다. 2014년부터는 3년 간 심야 라디오 DJ로 활동하며 대중들에게 구김살 없이 밝은 모습만 보이던 그는 사실 수 년 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왔습니다. 그러던 중 2017년 12월, 서울 청담동의 한 레지던스를 예약하곤 친 누나에게 “이제까지 힘들었다. 나 보내 달라. 고생했다고 말해 달라. 마지막 인사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갈탄과 번개탄을 태워 자살했습니다. 꽃다운 나이, 스물 일곱이었습니다.
Time fast, Die young.
천재적인 뮤지션들이 스물 일곱에 요절하는 것은 그저 우연일까요? 왜 ’27세 클럽’이라는 말 까지 생겨났을까요? 7,80년대 영국의 팝 가수들이 일반인에 비해 20대 후반에 사망할 확률이 약 3배 높았다고 합니다. 20대 초반에 유명해진 후 후반에 다가갈 수록 쌓인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일탈 행동을 하거나 약물 중독,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높았죠. 특히 감수성이 풍부하고 완벽 주의 적인 성향이 강한 뮤지션일 수록 무기력 감에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높았다고 하네요. 종현의 빈소를 다녀온 후 뮤지션 이적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극도의 경쟁을 거치고, 데뷔 후에도 밝은 빛 이면의 어둠을 끊임없이 마주하는 우리 후배들입니다. 어느 직업인들 스트레스가 없겠냐 마는, 깊은 우울이 창조적 재능으로 연결되는 경우를 자주 보는 대중 예술 계의 특성 상, 자칫 아티스트의 그늘을 으레 그런 것으로 흘려버릴 위험이 많습니다. 우리 더욱 더 서로를 세심히 살피고 손을 잡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