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New Boyfriend

2018.03.15

New Boyfriend

다분히 현실적인 남자 옷 ‘아미’의 디자이너 알렉상드로 마티우시. 우리 여자들을 위해 컬렉션을 선보인 그가 <보그>에 소감을 전했다.

비가 막 그친 런던 메이페어 거리는 한가로웠다. 붉은색 벽돌로 근사하게 장식한 알렉상드르 마티우시(Alexandre Mattiussi)의 아미(Ami) 매장 역시 오후 햇살만 조용히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지난해 9월 런던 패션 위크가 끝난 뒤, 친구와 함께 나는 잠시 쇼핑을 위해 그곳에 들렀다. 아미 로고 장식의 셔츠와 비니, 두툼한 가죽 봄버 재킷, 글렌 체크 트렌치 코트 등 지금 당장 입고 매장을 나서도 어색하지 않을 현실적이고 세련된 옷이 곳곳에 가득했다. 회색 헤링본 코트 소매에 팔을 밀어 넣을 무렵 출입문이 열렸다. 에르메스 백을 어깨에 멘 백발의 여인이 조용히 들어와 행어를 살피기 시작했다. 남성복 디자이너 매장에 나타난 여성 고객을 엿보던 중, 그녀 역시 내가 입은 헤링본 코트를 가리키며 점원에게 말했다. “저 코트 좀 입어봐도 될까요?”

내가 직접 경험한 이 풍경은 아미와 알렉상드르 마티우시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멋을 부렸지만, 과하지 않은 그의 옷은 남자뿐 아니라 여자에게도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캐롤린 드 메그레를 비롯한 멋쟁이 여자들이 그의 남성복을 입고 가끔 나타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영리한 디자이너 마티우시는 이런 점을 놓치지 않았다. 지난해 파리 봉 마르셰 백화점과 함께 선보인 여성 캡슐 컬렉션에 이어, 지난 1월 17일 파리 패션 위크에 처음으로 ‘Menswear for Women’ 컬렉션을 포함해 선보인 것이다.
“어쩌면 여성복이 좀더 편안하기도 하고, 힘을 빼는 것이 도움이 된 듯합니다.” 새로운 도전을 이야기하던 마티우시는 그 이유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었다. “스니커즈, 백팩 등의 유행이 여자들에게 남성복을 더 가깝게 느끼게 한 것도 있어요.” 하지만 패션계 전반에 흐르는 ‘젠더 뉴트럴’ 분위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남자와 여자가 옷을 비슷하게 입는 게 더는 놀라운 일은 아니죠. 오히려 여성이 남자 옷을 입을 때 쿨해 보입니다.”

파리의 지붕이 컨셉이었던 런웨이에 등장한 여성복 다섯 벌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는 ‘여성복’이라 부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여성을 위한 남성복입니다. 클래식한 남성 아이템을 여성의 실루엣과 분위기에 맞춰 해석한 거죠.” 자기 주위의 남자를 위해 처음 아미를 시작한 것처럼, 여자 친구들이 편하게 입을 옷을 디자인했다. 무엇보다 중요시한 건 ‘애쓰지 않는 멋’이다. “그거야말로 정말 섹시해 보입니다. 파리지엔들은 오히려 노출을 즐기지 않습니다. 타이트하거나 몸을 드러내지 않아도 유혹적일 수 있다는 것을 제 컬렉션을 통해 보여주고 싶습니다.”

물론 마티우시가 제안하는 중성적 옷 입기는 런던의 파격적인 악동 디자이너들의 방식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가 선보이는 옷도 분명 새로운 세대의 젠더 개념을 그대로 담고 있다. “10년만 흘러도 더 이상 패션에 남성과 여성의 경계는 없을 거라 봅니다. 지금 여성복을 즐겨 입는 남자들은 그저 시대를 앞서나가는 것일 뿐이죠.” 그렇기에 세대를 앞서고 싶은 여자에게 꼭 필요한 남자 아이템도 있다. “아주 커다란 니트와 아름다운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

그러나 아미 여성 컬렉션을 손에 넣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올가을이 오면 파리 그르넬 거리에 자리한 아미 부티크에서만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때를 대비해 부티크를 새로 꾸밀 예정입니다. 여자들을 위한 아주 특별하고 친밀한 공간을 선보일 겁니다.” 앞으로 전 세계 여자들을 위해 그 보폭을 넓혀갈 계획은 있지만 그렇다고 급한 건 아니다. “아직 치마와 하이힐을 디자인할 생각은 없어요. 우리 여자 고객들이 원하는 건 바로 아미만의 남성성과 ‘보이프렌드’ 실루엣이니까요.” 새로운 ‘보이프렌드’를 찾아 파리의 아미 매장을 향하는 멋쟁이 여자들의 행렬이 벌써부터 눈에 그려진다.

    에디터
    손기호
    COURTESY OF
    AMI ALEXANDRE MATTIUSSI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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