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은 약이 아닙니다
“치약, 별거 없다”, “사실 안 써도 된다”. 모두 치과 의사 입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럼에도 써야 한다면 무해함을 최대 목표로 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나는 케미포비아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화학 세제 대신 과탄산소다, 식초, 베이킹 소다를 애용하고, 화학 생리대 대신 생리컵과 면 생리대를 쓰고, 화학 염색제 대신 헤나를 사용한다. 화장품과 비누는 천연 아로마 사업을 하는 친구에게 얻어 쓰고, 선블록은 리프 프리 제품만 쓴다. 하지만 치약만은 뾰족한 대안을 못 찾았다. 나이가 들면서 구내염, 잇몸 질환, 치아 부식이 끊이지 않아서 선뜻 제품을 바꾸기 어렵다. 잇몸에 피가 마를 날이 없고, 작년에는 치아가 두 개나 부러졌다. 무엇보다 입 냄새가 문제다. 과로하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는 말이 뭔지 실감할 정도인데, 달고 향이 강한 마트용 치약으로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입 냄새를 향으로 덮는 느낌인 데다 그마저 금방 날아간다. 작년, 치약에서 유해 성분이 검출돼 수거를 하네 마네 하는 뉴스를 접했을 때는 ‘그럼 그렇지’라는 심정이었다.
물로 헹구고 뱉어내니 유해하지 않다고? 구내염을 달고 사는 나 같은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그렇다고 섣불리 천연 치약으로 갈아탈 수도 없다. 대개 계면활성제가 없어서 거품이 잘 안 나고 개운함이 덜하다. 호기심에 치약 없이 칫솔로만 양치를 해본 적도 있다. 구취 제거 효과는 일반 마트용 치약이나 비슷했지만 뭔가가 찝찝한데, 실제로 세균이 닦이지 않아서인지 그저 심리적인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최근 “치약은 칫솔질의 보조 역할을 할 뿐, 별다른 기능이 없으니 안 써도 된다”는, 지나치게 솔직한 주장을 펼치는 치과 의사를 만났다.
“치약은 약이 아닙니다.” 오늘안치과 강정호 원장의 말이다. 한국인들이 ‘약’을 좋아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거라고. “치약의 주성분은 연마제와 습윤제 그리고 방부제가 대부분이고 그 외 성분은 감미 향을 넣듯 미량입니다. 그러니 치약만으로 치아가 새하얗게 변하거나 충치가 나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세요. 불소가 함유된 일부 치약이 예방의 효과는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질환을 해결해주진 않을 겁니다.” 미백의 경우 과산화수소를 이용해 치아를 표백하는 원리인데, 치약에 함유된 양은 치과에서 사용하는 전문 미백제의 10분의 1 정도라 효과는 거의 없다(의약품이 아니라 의약외품이기 때문에 과산화수소 농도가 3%를 넘으면 안 되기 때문). ‘시린이’ 치약? 연마제를 현저히 적게 넣고 질산칼륨 등의 화학 성분으로 증상을 완화시키는 원리로 만들어지는데 이 역시 의약외품으로서 한계가 있다. “최소 2주에서 4주 사용해야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도지요.”
그럼 도대체 치약을 왜 써야 하는 걸까? 강정호 원장은 치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치과에서는 칫솔질을 잘하시라고 말하지 좋은 치약, 비싼 치약을 권하지 않습니다. 시장에 있는 그 어떤 치약도 유해균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없습니다. 치약을 사용하는 건 단지 구강 내 텁텁함과 구취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치약을 갈구하니 그냥 무해한 치약 하나를 만들어보기로 했다는 게 강정호 원장의 고백이다. 물론 시판용이기에 화학 성분도 들어가고, 방부제도 들어간다. “기존 천연 치약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기능성이 뛰어나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굳이 차별점을 꼽으라면 치과 전문의가 만들었다는 것 정도죠.” 치약의 수많은 함유물 중 한 가지 천연 유래 성분만 강조해서 천연 치약이라 부르는 제품도 많지만, 그건 마케팅일 뿐 진실은 아니니 ‘미니쉬’ 치약에서는 몸에 나쁜 것을 빼는 것에 더 집중했다.
기존 치약의 대표 유해 성분 10가지(파라벤, 사카린, 타르색소, 광물성 오일, 동물성 유래 원료, 소듐라우릴설페이트, 트리클로산, 화학 방부제, 인공색소, 안식향산나트륨)는 물론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CMIT/MIT, 과량 섭취 시 근육 장애나 신경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불소, 각종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PEG 등을 철저히 배제했다. “파라벤 대신 자몽종자추출물을 방부제로 사용하고, 습윤제로는 천연 소르비톨액, 연마제로는 이산화규소를 사용했죠.”
그의 말은 케미포비아의 신경증을 건드린다. 치과 의사마저 치약 유해 성분을 경계한다면, 소량인 데다 뱉어내니 괜찮다던 치약 제조사의 말은 역시 거짓이었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갑론을박이 많습니다. 미량이라 잘 헹구면 괜찮다는 의견도 있지만 구강 내 상처나 점막을 통해 흡수될 수 있어 미량이라도 위험하다는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찝찝한 것은 사실이지요.”
그의 말마따나 어차피 치약은 약이 아니라서 반드시 쓸 필요가 없고, 개운함을 목적으로 한다면, 천연 치약의 한계인 텁텁함을 극복하는 것이 관건일 거다. “천연 치약은 계면활성제가 없기 때문에 거품량과 양치하는 기분이 덜하죠. 짠맛도 나고요. 제가 만든 치약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레몬 오일과 죽염으로 천연 치약 특유의 거부감을 중화시키기로 했습니다.” 미니쉬는 사용자들로부터 개운하고 깔끔하다는 후기를 얻고 있다. 위험한 화학 성분을 쓰지 않고도 할 일은 다 하는 물건, 하긴 정성만 있다면 왜 못 만들겠나.
강정호 원장은 반드시 천연 치약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유해 화학 성분이 없는 제품을 골라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를 권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약은 약이 아니다. 그가 브랜드 개발자로서가 아니라 치과 의사로서 강조하는 것은 여전히 치약보다 칫솔질이다. 잇몸에서 치아 끝으로 쓸어내리듯 칫솔질을 하고, 잇몸과 치아 경계부를 잘 관리하고, 세균 번식을 피하기 위해 칫솔을 변기에서 멀리 떨어진 습기 없는 곳에 보관하고, 적절한 시기에 칫솔을 교체하고, 정기적으로 스케일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시 건강에는 왕도가 없다. 우리는 알약 하나로 모든 내과 질환을 잡을 수 없다는 건 알면서 치약에는 구강 건강을 다 책임지라는 너무 큰 기대를 했다. 다만 더 나빠지지 않게, 조금이라도 덜 유해한 제품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할 뿐이다.
- 에디터
- 백지수
- 포토그래퍼
- 이현석
- 글쓴이
- 이숙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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